회칠 한 무덤 | 만나교회 김병삼목사 | 회칠한 무덤 같은 자에게 화가 있으리라! [Joy] 76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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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회칠한 무덤을 비유로 사용하셔서 겉은 아름답지만 그 속에 더러운 시체, 뼈들이 들어 있는 것과 같은 위선자들을 나무라시고 꾸중하셨습니다. 무덤이 무엇입니까? 무덤은 생명이 없는 죽은 시체가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한 발 나아가 이 무덤이 “회칠한 무덤”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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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 회칠한 무덤 같은 자에게 화가 있으리라!
성경 구절 : 마태복음 23장 27절 ~ 28절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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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삼 #만나교회 #주일설교 #화가있으리라 #아프니까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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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칠한 무덤 (평토장한 무덤)

‘회칠한 무덤’은 평토장한 무덤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의 장례 풍습을 보면 바위 언덕에 판 굴 모양의 무덤을 돈으로 사서 그 안에 시체를 넣고 돌로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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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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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칠한 무덤이 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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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교회 김병삼목사 | 회칠한 무덤 같은 자에게 화가 있으리라!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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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회칠 한 무덤

  • Author: JOY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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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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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칠한 무덤의 비유(마 23:25~28)

오늘 저녁에 우리나 나눌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의 복음은 “회칠한 무덤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주제가 조금 무거운 주제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피해갈 수는 없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함께 생각하고 함께 기도의 재목을 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마 23장 27-28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칠한 무덤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먼저 살펴보야 합니다.

회칠한 무덤이란 유대백성들의 삶의 현장 중에서 장례문화를 이해해야 됩니다.

어느 사회이든 장례문화란게 있습니다.

구약시대나 예수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야 할 명절이 있었습니다. 이 명절에는 이스라엘 백성 중 남자이면 어디에 살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사회는 무덤문화가 우리처럼 봉분문화가 아니라 평토장을 합니다. 그래서 무덤을 잘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난한 자들은 자신들의 땅이 없기 때문에 가족이 죽으면 공터인 길가에 매장을 합니다. 유월절이나 다른 명절이 되면 전국에서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듭니다. 그들은 엄격한 정결법을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시체나 무덤이 몸에 닿으면 부정한 몸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예배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한 번 생각해보세요. 예루살렘에서 아주 먼 곳에 사는 사는 사람이 큰 맘 먹고 절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게 되었는데 부주의해서 혹은 다른 사람들에 떠밀려서 무덤을 밟았다면 그는 부정한 사람이 되어서 오던 길을 되돌아가야 합니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절기가 되면 성전에서 일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미리서 무덤을 희게 칠해서 구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전통을 가지고 있다보니까 그들은 평소에도 무덤을 아름답게 회칠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 회칠한 무덤을 비유로 겉은 아름답지만 그 속에 더러운 시체, 뼈들이 들어 있는 것과 같은 위선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회칠한 무덤을 누구에게 비유하셨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외관상으로는 예수님과 가장 비슷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따랐으며, 정결하게 사는데 힘겹게 수고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지목하여 가장 강하게 꾸중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뱀, 독사의 새끼, 어리석은 자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라고 불렀습니다.

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신것입니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외향을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회칠한 무덤과 같이 겉은 깨끗하고 번지르 하고 의인인척, 깨끗한척 하였지만 오히려 그들의 속은 시체가 썩고 있는것과 같이 썩고 벌레가 들끊는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을 보실때, 겉모습보다는 속모습을 꿰뚫어 보십니다.

겉으로 회칠해서 포장된 무덤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무덤속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회칠한 무덤을 비유로 사용하셔서 겉은 아름답지만 그 속에 더러운 시체, 뼈들이 들어 있는 것과 같은 위선자들을 나무라시고 꾸중하셨습니다.

무덤이 무엇입니까? 무덤은 생명이 없는 죽은 시체가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한 발 나아가 이 무덤이 “회칠한 무덤”이라고 합니다. 겉을 아름답게 보이려고 위장한다는 것입니다. 위선자들의 극치를 서슴없이 지적합니다. 진정으로 깨끗하고 정결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겉만 회칠을 하면 아름답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에서 버서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속사람을 단장해야 하는데 겉만 단장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겉을 단장하는데 전념할 것이 아니라 속을 단장하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도 겉으로 보이는 것을 잘 해서 사람들을 끌어모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일시적으로 사람들이 속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오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떄가 반드시 와야 합니다.

이왕이면 겉도 아름답고 속도 아름다우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겉을 꾸미면 속까지 아름답울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거룩의 회복없이는 안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스스로 경건한줄 여겼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실 때는 가장 더러운 존재들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경건한 줄로 속아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예배당에 드나들기 때문에,

우리에게 직분이 주어졌기에 스스로 경건하고 거룩한 줄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신분에 맞는 단장을 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그러나 질책 당함은 겉을 단장한다는 그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착취와 탐욕으로 가득 찬 그들의 마음 상태였습니다. 그것은 결코 꾸중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여자가 화장을 해야지 변장을 해서는 안됩니다.

화장이 지나치면 변장에서 멈추지 않고 환장을 한다고 한답니다. 환장까지 해서야 되겠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자신의 생각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과 가치관에다 성경을 뀌어 맞춰서는 안됩니다.

이런 것들이 결국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이라고 질책을 당하게 된 이유입니다

도박의 폐악을 지적하는 일에 힘을 썼던 이들이 도박에 중독된다든지,

가정을 돌보는 기본적인 의무를 저버린채 가정을 세우는 일에 앞장 선다든지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회칠한 무덤인 것입니다.

얼마 전에 몇사람이 모인 자리에게 가까운 사람 가운데 상담하는 일을 한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이야기는 곧 비난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정상담한다는 사람이 뭐 그래, 자기 가정이나 잘 하지…..

그래서 크리스찬 지도자는 겉보다는 직함보다는 속이 달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장차 전 세계에 흩어진 교회의 지도자가 될 제자들에게 “회칠한 무덤”이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의 일관성, 말과 행동의 일관성, 사상과 관습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않으면 비록 세상에서는 존경할만한 기여자로 인정받을지 모르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회칠한 무덤”이라는 질책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내기 위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신앙은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내가 만난 하나님을 이웃들에게 사랑으로 나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밤에 우리는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회칠한 무덤과 같은 교회가 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회칠한 무덤과 같은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성도가 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믿음의 Q&A] ‘회칠한 무덤’이 뜻하는 것은?

Q: 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 같다고 했는가(마 23:27)? 왜 바리새인들이 ‘평토장한 무덤’ 같은가(눅 11:44)?

A: 바리새인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1년에 한 번 무덤을 하얗게 회칠했다. 무덤을 눈에 잘 띄게 하여 행인들이 무덤과 접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모세 율법상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는 7일 동안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민 19:16).

하얗게 회칠한 무덤은 빛을 받으면 아름답게 보였다. 그렇지만 무덤 안은 죽은 사람의 살과 뼈가 썩어가는 심히 부패한 곳이다. 겉으로는 옳게 보이는 듯하지만 안에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바리새인들이 이와 똑같았다.

‘평토장한 무덤’은 보이지 않는 무덤이란 뜻으로 곧 봉분을 만들지 않고 평평하게 만든 무덤을 가리킨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곳이 무덤인 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무덤인 줄 모르고 접촉했을지라도 7일 동안 부정한 자로 규정된다.

결국 속에는 시체와 같은 부패함이 있지만 겉으로는 경건하고 의로운 체하는 바리새인들이 이처럼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악한 존재란 뜻이 예수님의 말씀에 담겨 있다. 평토장한 무덤이 무덤 속의 은폐를 강조한 비유라면 회칠한 무덤은 겉치장을 강조한 비유다.

QA성경(성서원)

회칠한 무덤이 되지 말라

예수님은 당시 유대 사회 종교 지도자들의 외식에 대하여 책망하시며 회칠한 무덤 같다고 하셨습니다: “소경 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6-27). 여기서 바리새인을 소경으로 표현한 것은 많은 사람들을 잘못 인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정결하신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먼저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경이라는 말의 의미는 자기 자신이 부정한(더러운)지도 볼 줄 모르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시 관습에 따르면 무덤을 아름답게 꾸밀 필요는 없습니다. 무덤은 그 안에 있는 시체로 인하여 사람들이 부정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무덤을 아름답게 치장하거나 꾸밀 필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절기 시즌에는 무덤에 회칠을 해야 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유대인 남자들은 1년에 3차례의 절기 때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보통 17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짧은 시기에 예루살렘에 모이게 되는데 순례의 길 가운데 부정하게 되는 것을 아주 조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 관리들은 미리 일꾼들을 사방으로 내보내어 순례객들의 모든 길을 체크하고 관리하게 하였습니다. 즉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 수 있는 짐승의 뼈들이나 또는 열린 무덤들을 미리 표시해둠으로써 사람들이 부지 중에 부정해지는 것을 막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장소를 표시하기 위해 석회가루를 물에 잘 개어서 부정한 뼈들이나 동물의 사체의 주변 그리고 바위에 판 무덤 겉 표면에 바르게 됩니다. 특히나 바위에 판 무덤의 문이 열린 경우에 반드시 그 곳에 석회를 칠해두어야만 사람들이 부정하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얗게 칠해놓을 때 그 무덤은 마치 치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렇게 된 상태를 회칠한 무덤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은 회칠이 되어 있는 곳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 곳에 앉아서 즐겁게 식사를 한다든가 쉰다든가 담소를 나누지 않습니다. 비켜서 지나가야 할 곳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회칠한 무덤에는 잘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겉보기엔 깨끗하게 보여도 회칠을 했다는 그 자체가 그 안엔 썩어가는 시체가 있으므로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런 회칠한 무덤을 보면서 주변에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은 저런 회칠한 무덤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겉은 깨끗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부정한 것이 가득해서 결국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만드는 무덤과 같아서는 안된다는 메시지입니다.

회칠한 무덤은 외식의 상징입니다. 외식이란 밖에서 식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즉 체면을 차려서 겉을 꾸미는 것입니다. 외식이란 단어로 쓰인 헬라어 ‘휘포크리테스’라는 말은 “가면을 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연극 배우가 무대 위에서 가면을 쓰고 연극하는 것에서 유래된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이 헬라어 단어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쩨바’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색깔, 또는 염색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살이나 물건의 상태가 더 좋아보이도록 색을 입힌다는 의미입니다. 일전에 제가 인터넷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닭고기가 빈약한 형태인데 주사기로 튜브를 통해 물을 주사하니까 점점 부풀려올라서 아주 통통한 닭고기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 눈을 이렇게 속여서 장사를 해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쩨바‘란 단어가 사람에게 사용이 되면 ”외식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사람들이 외식을 하게 되는 것은 자기 의를 드러냄으로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외식의 형태는 기도나 구제나 헌금 생활 등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만약 이런 신앙 행위가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즉 외식함으로 하게 된다면하늘의 상급이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마 6:1). 우리가 외식을 극복하려면 자기 안에 있는 더러움과 죄를 보고 매일 말씀과 기도로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세상의 축복보다 영혼의 정결에 최우선적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초연하고 오직 하나님의 인정을 구해야 합니다. 믿음이 깊은 자들이나 오래된 자들도 언제든지 외식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갈 2:11-13). 참된 복음이나 경건은 외식이 아닙니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진실합니다. 위선적이고 외식적인 종교성은 나도 죽이고 다른 사람도 죽일 수 있습니다. 우린 말씀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사람들이나 교회에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면 안됩니다. 자기 잘난체 하면 안됩니다. 늘 겸손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외식의 누룩을 조심함으로 우리 영혼이 병들거나 망하지 않고 항상 영적으로 건강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열린다 성경』의 ‘회칠한 무덤’ 해석, 유감

류모세, ‘열린다 성경: 절기 이야기’ 다시 읽기

감람산에 자리한 유대인 공동 묘지가 확장되고 있다.

때때로 하나의 글과 말 안에서 맞는 이야기, 맞는 것 같은 이야기, 맞을 것 같은 이야기, 맞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 사실 등이 뒤엉켜져 있는 경우를 본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에 의심과 회의가 다가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새로운 깨달음이 다가오는 말이나 글이라고 하여 그것을 검토 없이 받아들이거나 반대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을 갖고 읽어야 한다. 그렇지만 합리적 의심을 품고 누군가의 글과 말을 대하는 것은 번거롭지만 필요한 작업이다.

이 주제를 다루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얼마 전 읽은 ㄱ 일보(2018년 2월 28일)에서 이스라엘을 여행 중(?)인 A 대학의 신 모 교수의 독특한 해석을 접했다.

“신 교수는 “1세기 유대인의 무덤 양식은 평토장 동굴 무덤 바위 무덤으로 나뉘는데 나사로의 것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무덤인 평토장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땅을 파서 시신을 두고 양쪽에 돌을 놓는 형태인데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찾아와 ‘돌을 옮기라’고 하신 것은 이 구멍을 막기 위해 올려둔 돌을 치우고 나사로가 나올 수 있게 하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감람산의 유대인 무덤들

그런데 이 주장은 낯설다. 그 녹특하게 다가온 신 교수의 주장을 바탕으로, 예수 시대의 장례 문화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 결과가 이번 꼭지글이다. 예수 시대에 땅을 파서 시신을 안치하는 장례 의식이 있었는지 필자는 쉽게 확인할 수가 없다. 자연 동굴을 이용하거나 인위적으로 바위를 파서 무덤으로 사용했다는 자료들은 넘쳐난다. 그렇지만 땅을 파서 시신을 안치했다는 주장은 찾기가 어렵다.

위에서 인용한 기사에서 신 모 교수가 말하고 있는 그 장례 장면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사람들이 땅을 파고 시신을 안치하고 흙으로 덮고 시신의 양쪽(오른쪽과 왼쪽? 아니면 발치와 머리 쪽?)에 돌을 놓았다? 어떤 돌? 둥근 돌? 바위? 시신이 안치된 곳에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을 막기 위해 둘을 올려두었다는 주장인가? 나사로는 흙 속에 묻혀있었던 것인가? 땅속 구멍 속에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여러가지 궁금한 장면이 떠올랐다.

기드론 골짜기의 고대 무덤

일단 나사로 장례 이야기의 무대는 베다니였다. 그 베다니, 벳바게, 감람산, 기드론 골짜기 할 것 없이 예루살렘 주변 산지는 주로 석회암 산지이다. 그곳에는 자연 동굴도 있었다. 그런 곳에 시신을 안치하거나, 경제 능력이 있는 경우는 별도로 석회암 바위를 깎고 파서, 멋지게 무덤을 만들기도 했다. 위의 주장과 연결되는 정보는 아래 출처에서도 엿볼 수 있다.

회칠한 무덤은 무엇일까?

류모세, 열린다 성경: 절기 이야기, 두란노, 2009년 “유월절 한 달 전(아들 월 15일)부터 성전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준비에 들어간다. 성전에서 파견된 사람들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올라오는 모든 길을 보수한다. 이것은 오늘날의 ‘도로 보수’와는 다른 개념이다. 성서 시대의 가난한 자들은 땅을 대충 파서 시체를 묻었는데,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유대 산지는 흙을 조금만 파도 석회암 바위가 나오기 때문에 땅을 깊게 팔 수 없었다. 이들의 무덤은 아무런 표시가 없는 ‘평토장한 무덤’(unmarked grave)이었고 깊이 파서 묻지 않았기 때문에 때로 뼈들이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했다. 순례자들의 몸이 무심코 무덤이나 시체에 닿았다가는 레위기적으로 일주일 동안 부정하게 되고, 그런 상태로는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성전 파견단은 순례자들이 다니는 길에서 이러한 평토장한 무덤을 찾아 회칠로 표시하는 일을 했다. 순례자들은 이 표시를 보고 길을 우회해서 갔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시체 접촉으로 인한 부정을 피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돌아가시기 마지막 주간을 성전에서 힘 있게 가르치셨다. 때로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과 열띤 설전을 벌이기도 하셨는데, 예수님은 외식하는 이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이라고 비유하셨다. 참으로 시의적절하며 촌철살인의 풍자가 아닐 수 없다.” – 류모세, 열린다 성경 – 절기 이야기, 두란노서원, p.64

감람산과 기드론 골짜기. John P. Newman, from Dan to Beersheba(1892)

동굴 무덤 또는 판 무덤

그러나 이 주장은 적절하지 않다. 석회암 바위 산지는 겉면에 약간의 흙이 덮여 있을 뿐이다. 조금만 파도 바로 바위가 나온다. 그 바위는 단단하여 위에서 파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흙이 넉넉한 곳은 밭이었다. 그렇지만 예수 시대 유대인들은 시신을 밭에 매장하지도 않았다.

바위를 파서 만든 고대 무덤

고대 이스라엘의 장례 풍습과 무덤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면,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에도 유대인의 매장은 동굴, 바위를 깎아서 만든 무덤, 석관, 지하 석회암 묘지(카타콤)를 이용했다. 로마 문화를 누리던 유대 귀족층과 권력자들은 로마식 석관을 쓰기도 했으나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관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것은 막대한 비용과 관을 사용하지 않았던 종교적 전통 때문이다. 로마식 무덤 양식이 아니라면 유대인들은 자연 동굴 또는 깎은 바위 무덤을 사용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저자가 언급한 “성전 파견단은 순례자들이 다니는 길에서 이러한 평토장한 무덤을 찾아 회칠로 표시하는 일을 했다.”고 하는 주장의 근거와 배경을 더 검토해보고 싶다.

성문밖 무덤들

또한, 무덤의 위치이다. 예수 시대 무덤 지역은 주거 지역이나 도시 안에는 자리하지 않았다. 성 밖에 자리했다. 예수 시대에 도시(성) 밖 공간은 컨막과 동굴 거주가 일반적이었다. 도시 근처의 무덤 지역은 생활 공간과는 구별되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유대인들은 무덤 지역 근처를 가지 않았다. 자신의 그림자가 무덤 위를 덮는 상황이 벌어져도 부정 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일주일간 부정한 상태이므로 유월절을 지킬 자격이 박탈되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민수기 19:16)

감람산 유대인 공동 묘지

‘회칠한 무덤’ 같은 자

예수의 비유에 등장하는 ‘ 회칠한 무덤’은 신약의 표현일까? 아니면, 고대 이스라엘에서부터 내려오던 그림 언어일까? 땅에 시신을 매장하고 그 시신을 덮은 흙 위에 분을 칠한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도시 밖 들판과 산지에 무덤들은 존재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 가까운 골짜기에도 무덤은 있었다. 시신을 덮은 땅(흙)위가 아니라 그 동굴이나 석회암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 겉에 분칠한 것으로 이해해도 무난하다. 회칠을 하는 것은 다른 이들을 위한 배려 차원도 있을 수 있지만, 남은 가족들이 무덤을 표시한 것이기도 했다. 또한 ‘회칠한 무덤’은 무덤 자체의 어떤 형식이나 구조가 아니다.

예루살렘

다음 세 본문을 짚어보자. 에스겔 선지자가 멸망할 예루살렘을 두고 예언하기를 평안함이 없으나 평안의 묵시를 보았다고 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향하여 “회칠한 담”(에스겔 13:14)이라고 외친다. 예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비난하면서 말한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은 (자)!(마태복음 23:27) 사도 바울이 대제사장에서 말한다. “회칠한 담이여“ (사도행전 23:3)이라고 비난한다. ‘회칠한 담’(에스겔 13:10-16), ‘회칠한 무덤’(마태복음 23:27), ‘회칠한 담’(사도행전 23:3)으로(사도행전 23:3) 이 그리고 있는 것은 어떤 사람들과 행동이다.

베다니 -> 벳바게 -> 예루살렘

예수의 기이한 발걸음

그런데 이상스러운 것은 예수님의 마지막 행적이다. 예수의 마지막 유월절 여정에 베다니를 지나 벳바게를 거쳐 감람산을 지나갔다. 게다가 나사로의 무덤을 방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루살렘 성 동편에 자리한 감람산 지역과 그 사이의 기드론 골짜기는 전통적인 무덤 지역이었다. 이곳은 명절전의 정결을 유지하려는 이들은 피해야할 장소들이다.

베다니. John P. Newman, from Dan to Beersheba(1892)

그런 점에서 예수의 마지막 유월절 예루살렘으로 가는 경로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월절을 지키려는 상식적인(?) 유대인들이 회피할 행동을 예수는 서슴없이 저지른 것이다.

예수의 비유에 등장하는 ‘ 회칠한 무덤’이 그리고 있는 것은 단순할 수 있다. 무덤 자체가 아니다. 회칠한 무덤 같은 자는, 외식, 거짓으로 진실을 덮는 행위를 하는 자, 입만 살아있는 자를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말의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자’나’식언하기를 밥 먹듯 하는 자’ 정도였을까? 아니면 그보다 더 험한 말을 듣는 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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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있을 진저 회칠한 무덤 같고 선지자의 비석꾸미는 자들.

1. 화 있을 진저 회칠한 무덤 같은 바리새인들이여!

(마 23:27-28)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곳 모습과 속마음을 비유한 말씀이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것 보기에는 거룩하게 보이지만 속마음은 외식(外式) 법 밖으로 벗어남, 알람(םלַעָ) 휘포크리스(ὑποκρις)위선 가장 연극배우 속임 속과 것이 다름.이다. 불법 아윈(ןוֹעָ) 죄 계명을 거스림 아노미아(ανομια)무법 불법으로 가득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인격을 한 마디로 회칠 한 무덤 같은 자들이라고 했다. 회칠하다는 코나이오 (κοναιω) 회칠하다 인데 페인트가 발달하기 전 쓰였던 흰색 돌가루 도색이다. 무덤을 깨끗하게 보이기 위해 꾸미는 회칠이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의식중에이든 무의식중이든 사체(死體)접하면 부정하다하여 성전에 올라갈 수 없다. 반드시 속죄제를 들려 속죄되어야 성전에 들어 갈 수 있다.

(민 19:16-20)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이운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칠일 동안 부정하리니 17)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취하여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18)정한 자가 우슬초를 취하여 그 물을 찍어서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19)그 정한 자가 제 삼일과 제 칠일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제 칠일에 그를 정결케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정하리라 20)사람이 부정하고도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총회 중에서 끊쳐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케 하는 물로 뿌리움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나라 전역에 흩어져 살기에 명절이면 예루살렘에 와서 명절을 지켜야 하는데 여러 날을 여행하다보니 부지중에 무덤을 접할 수 있고 사체를 접할 수 있다. 오래된 무덤은 잘 구분이 안 되어 부지중에 접할 수 있다. 그래서 무덤이 눈에 잘 띠도록 하얀 회칠을 해 놓는다. 그래서 순례자들을 돕는다. 회칠한 무덤은 희어서 분별하기 쉬울 뿐더러 아름답기도 하다 무덤 안에는 죽은 사체로 시작하여 썩은 사체 곤충 벌레들 곰팡이 습기 때문에 나는 냄새로 가득하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마음이 회칠한 무덤 같이 겉으로 보기에는 깨끗하게 보이지만 그들이 마음은 무덤 속같이 더러워 부정하다.

바리새인들의 의상이나 걸음걸이나 말이나 그리고 사소한 의식생활로 거룩하게 보이지만 그들의 속마음에는 무덤 속 같이 외식과 불법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의를 행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는 행위 입으로만 의인 겉으로만 경건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기 위해서 경건한 척 하는 생활 과 행동을 지적하신 것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인격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죽음 사람의 뼈와 같은 것이다. 죽은 뼈는 보기 흉하고 극한 냄새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가까이 하거나 친근해 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결코 집에 들이지 않는다. 마찬 가지로 외식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께서 용납할 수 없는 자들이다. 그러기에 불로 태우듯이 지옥불에 던져야 할 자들이기 때문에 화있을 진저! 하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사체를 집안으로 들여오는 사람 없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용납할 수 없는 자들이기에 화있을 진저 하고 저주의 심판을 선언 하신 것이다.

2.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는 자들.

(마 23:29-32)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30)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32)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했다 반하여 핍박을 하는 자는 저주가 임한다고 선언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선지자들의 무덤을 치장했다. 지금도 스가랴 압살롬 여호사밧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 의인이요 선지자였던 세례요한을 죽인 자들이고 그리스도까지 죽이려 한 자들이다.

이들이 무덤을 치장하는 것은 죽은 선지자들의 신앙 정신을 존경하고 기념하여 그들의 신앙을 지키면 산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선지자들의 피를 흘린 조상들을 정죄하면서 자신들이 그 시대에 살았었으면 그렇게 악한 범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며 조상들을 정죄했다.

현재 자신들은 그 조상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자신들의 그릇된 신앙을 무덤을 회칠하고 비석을 꾸미는 행동으로 포장하기 때문에 주님이 책망한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바로 너희들이 그 조상의 후손들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상대대로 선지자들을 핍박하는 후손임을 자인한 것이다.

3. 너희 조상들이 못 다한 죄를 채우라 했다.

이 말씀은 핍박의 형태를 포도주 잔으로 비유했는데 유대인들은 포도주 잔을 한꺼번에 가득 따르지 않고 조금씩 따라서 마신 후에 마지막에 잔을 가득 채운다. 이 말씀은 조상들이 진노의 포도주 잔을 따르기 시작했으니 너희들이 잔을 가득 채우라 하신 것이다. 조상들이 진노의 잔을 따르기 시작했고 남은 자을 가득 채우라는 말씀이니 조상들이 못 다한 악행을 마무리 하라는 말씀이다. 또한 세상 마지막 때까지 죄악을 가득 채우라 하신 것이다.

성경은 심판 받을 죄악을 진노의 포도주로 비유하셨다.

(계 14:8-10)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계 14:19-20)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악심과 악행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계속적으로 자행할 자들이기 때문에 조상들의 대를 이어 악형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장차 이들은 메시아 하늘의 선지자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죽일 자들이고 장차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나 그리스도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일 자들이기에 계속 행하라 책하신 말씀이다.

4.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마 23:33-36)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35)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마 23:33)뱀(שׁחָנָ)들아 독사(העָפְאָ οϕις)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뱀 나하쉬(שׁחָנָ) 독사 아페아(העָפְאָ) 오피스(οϕις) 뱀 살모사 무서운 독주머니를 가진 뱀 사탄 이다.

뱀의 자식 독사의 새끼는 사탄의 후예들이란 말이다.

(창 3:1-3)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שׁחָנָ)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이 말씀은 아담을 타락 시켰던 사탄의 본질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피를 이어 받았기에 독사의 세끼들이라 한 것이다. 사탄은 용서받지 못한 천사이다. 그러므로 그 사탄의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버린 자들이기 때문에 회개하지 아니하기에 세상 끝날 까지 악행을 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장차 보낼 주의 제자들을 죽이고 핍박하고 채찍질하고 따라 다니며 박해 할 것을 말씀하신다.

(마 23:3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그대로 의인들을 박해했다.

스데반을 그들의 조상들처럼 돌로 쳐 죽였다.

(행 7:54-60)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57)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58)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세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들의 박해 때문에 추방당하고 또 피신하였다.

(행 8:1-3)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새 각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제사장들은 사울을 앞세워 쫓아다니며 박해했다.

(행 9:1-3)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 제사장에게 가서 2)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3)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스데반을 죽인 이들은 그 기세를 몰라 더욱 거세게 핍박했다. 그 핍박을 피하여 예루살렘 교회 신도들은 유대 지역을 떠나 다메섹에 안디옥 그리고 타국으로 피신했다.

5. 선지자들이 흘린 피값은 너희에게 모두 돌아가리라 했다.

(마 23:35)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아벨은 인류 역사의 최초의 순교자이고 사가랴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이전 모든 선지자들이 흘린 파 값을 이들에게 갚으시겠다는 말씀이다.

역사의 최초의 순교자 아벨은 가인에게 순교를 당했다.

(창 4:4-10)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아벨이 순교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고 가인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았기에 시기하여 돌로 쳐 죽였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받으실 수가 없었다. 왜냐 하면 진정한 제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인의 제사를 불순종의 제사였기 때문이다. 제사의 제도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셨다.

가인과 아벨은 아버지 아담에게 배웠다. 한 아버지에게서 배웠는데 아벨의 제사와 가인의 제사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아벨은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말씀대로 순종의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편한 대로 불순종의 제사를 드렸다. 아벨은 영적제사 생명의 제사로 양의 피를 흘려 영혼을 위한 희생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가인은 영혼을 위한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 제사는 생명을 위해 주신 제도이다. 가인은 그 하나님의 뜻대로 육신 적인 감사제사만 드렸다. 아벨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 믿음의 제사로 첫 새끼를 드렸다. 첫 새끼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것이다. 아벨은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믿기에 첫 새끼로 드린 것이다. 그러나 가인은 곡식을 드렸다. 아벨은 기름으로 성결의 제사를 드렸다. 기름은 성결하게 하는 방편이다. 그래서 구약에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것을 기름을 바르거나 뿌리거나 머리에 부었다. 가인은 기름을 드리지 않았다. 아벨은 좋은 양 살진 것으로 사랑의 제사를 드렸다. 좋은 것을 드린다는 것은 높인다는 듯이 있고 사랑한다는 의미가 있다. 인간도 좋은 것은 사랑하는 자에게 주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제사가 아니었다. 그러기에 받으실 수 없었다. 그런데 가인은 자신의 불신앙과 죄를 생각하지 않고 아벨을 시기하여 아벨을 돌로 쳐 죽인 것이다. 아벨은 하나님의 뜻대로 제사 드렸다는 것 때문에 가인에게 순교를 당했다.

구약역사에 마지막 순교자 스가랴는 우상숭배를 책망하다가 성전 뜰에서 돌로 맞아 죽었다.

(대하 24:20-21)이에 하나님의 신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저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 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21)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을 좇아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였더라

요아스는 유다 8대 왕(B.C. 835년-796년)왕이다. 유다왕 아하시야의 아들이다. 아하시야 왕이 죽게 되자 그의 왕비 아달랴가 아들인 아하시야가 죽자 왕족의 씨를 멸하려 했다. 그때에 아하시아의 딸 여호사브앗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였는데 왕의 아들 요아스를 성전에 숨겨 양육했다. 그리고 제사장 여호야다로 하여금 7세 된 요아스를 왕으로 제위 시켰고 40년간 유다를 통치했다. 요아스 왕은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황폐하다가 아달랴의 우상숭배로 인하여 파괴된 여호와의 전 수리 계획을 세웠다. 레위인 들은 게을리 했으나 일반 백성은 기꺼이 솔선 헌금하여 수리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후 요아스 왕과 백성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기 시작하였다. 여호야다에게 불만을 품었던 방백들이 왕에게 아부할 때에 왕은 그들의 말을 듣고 타락하여 우상숭배로 돌아선 것이다. 그래서 성전에서 아세라(아스타롯 여신)을 섬기고 여러 우상을 섬겼다. 이것을 스가랴가 책망하기를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니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리라 하자 바알을 따르는 무리들이 요아스 왕을 꾀어 그의 명령으로 스가랴를 성전 뜰에서 돌로 쳐서 죽여 순교하게 되었다. 요아스 왕은 1년 후 아람의 침입을 받아 죽게 되었다.

6. 이것이 이 세대에 그 피가 돌아가리라 했다.

(마 23:36)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선지자들을 박해한 죄 값으로 영혼과 육체까지 망할 것은 당연하지만 그들의 당대에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 예언대로 A.D. 65년-70년에 이스라엘 나라는 로마에게 망하게 되었다.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여러 지역 중에 오직 유대 지역만이 적대감을 가지고 불 충성 했다. 이유는 자기 민족에 메시아가 와서 로마를 정복하고 또 세계를 통치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로마 황제는 이들을 반국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기독교가 유대에서 발생하고 보니 자연이 이들과 동일한 자들로 보기에 박해를 가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로마의 박해를 견디지 못해 결국 주 후 66년 엘리 아자르 벤 야이로의 지휘아래 유대인들이 반기를 들고 가망이 전혀 없는 전쟁을 일으켰다. 메시아가 도우리라는 슬로건을 걸고 로마를 대항했다. 전쟁에 훈련이 전혀 없는 극소수의 유대 군인들과 1억 2천만의 인구를 가진 로마, 그리고 전쟁에 훈련된 25만의 군대를 대항한다는 것은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로마의 장수 베시파시우스 는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침입하여 포위하였다. 그러나 네로 황제가 죽게 되므로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로 추대되어 귀환하게 되었다. 네로는 로마인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났다. 그 중에 자신의 친위대의 반란으로 피신하게 되고 죽을 무렵에는 어느 농가에 숨어 있다가 자살하였다.

누가복음 (70) 회칠한 무덤과 평토장한 무덤

▲ 김경진교수·백석대 신약학

바리새인들에 대한 비판 가운데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부분은 주님이 그들을 무덤에 비유하여 비판하되 마태는 “회칠한 무덤”(마 23:27)이라 표현하는 것과는 달리 누가는 “평토장한 무덤”(눅 11:44)이라고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동일한 무덤을 표현하되 두 사람은 이처럼 다르게 묘사하고 있을까? 과연 그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답으로써 마태와 누가가 각기 다른 전승을 사용하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설명은 각 복음서 기자가 그 배경이 되는 신앙공동체의 상황을 고려하여 변화를 주었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각 복음서는 우선적으로 당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염두에 둔 채 기록되었으므로, 그 차이는 각 복음서의 배경이 되는 공동체의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유대적 정서가 지배적인 마태공동체의 경우 종교적 결례(purification)를 대단히 중시하는 유대인들의 정서에 맞게 “회칠한 무덤”이 사용되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은 죽은 사람의 시체나 뼈를 부지중(不知中)에 접촉하게 되면 부정하게 되어 제사나 예배에 참석할 수 없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무덤에 회를 칠하여 표시하게 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2:30-37)에서 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나 거의 죽게 된 불쌍한 이웃을 길가에 버려두고 도망쳤던 것이다. 사실 그 피해자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나, 그 절차를 생략한 채 현장을 피해간 것은 결국 종교 혹은 경건이라는 미명 하에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무를 포기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경우, 유대인들의 종교적 결례와 무관한 헬라인 중심의 누가공동체를 위하여는 그리스-로마 문화에 걸맞게 “평토장한 무덤”이 사용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동일한 주님의 교훈을 전달함에 있어서 각 저자는 그 대상이 되는 청중 및 독자에게 적절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와 관련된 또 다른 증거를 우리는 교훈에서 찾을 수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을 주라고 되어 있는 반면에(마 5:40), 누가복음에서는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을 주라고 기록되어 있다(눅 6:29). 동일한 교훈인데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일까? 그 이유는, 누가공동체의 주 구성원들은 헬라인으로서, 그리스-로마 문화에 익숙한 그들에게는 겉옷보다는 속옷이 더 중요하였다. 반면에 유대인 중심의 마태공동체의 경우 중동 지역 특유의 광야 및 사막 기후에 익숙한 그들에게는 속옷보다는 겉옷이 더욱 중요하였다.

이런 상이한 상황에서 복음서 저자들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을 요구하는 이에게 더 중요한 것을 기꺼이 주라는 취지의, 주님께서 본래 말씀하고자 하였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그 복음서를 받아 읽거나 듣게 될 독자 및 청중의 문화적 상황에 적합한 전승을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서 저자들이 복음의 진리를 소개함에 있어서 저술하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제시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정서 및 문화에 적합한 표현을 선택하여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회칠한 무덤 같으니 (마23) – 정광교회 박승현

회칠한 무덤 같으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23:27-28)

겉사람을 꾸미지 말고 속사람을 날마다 새롭게 하자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기 내면을 신의 성품에 이르게 하며, 이로써 성령의 열매가 맺도록 하는 것이다. 신의 성품은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할 수 있는 성품이다.(벧후1:4-7) 성령의 열매란 사랑과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같은 기쁨과 감사와 평안의 상태가 끝없이 샘솟는 것이라 할 수 있다.(갈5:22)

이를 누리지 못하는 자들이 자기의 추악한 이면을 꾸미기 위해 양의 옷을 입고 백성에게 나아가 노략질하는 이리처럼 거짓 선지자의 역할을 한다.(마7:15). 산 무덤(육체 무덤) 같은 자기의 존재를 꾸미려고 신앙생활을 한다.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한 너희 바리새인들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하신다.

신앙의 본질을 놓친 채 외식하는 바리새인들 같았던 바울이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겉사람, 세상에서 자랑거리)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 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3:4-6)가 그것이다.

외식하는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이 진정 하나님 말씀의 본질을 알고 난 뒤에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라고 하였다.

진정한 가치를 모르면 명품 도자기를 개 밥그릇으로 삼을 수 있고 명화나 귀한 책을 찢어 얼마가지 않아 허물어질 흙벽에 도배를 할 수도 있다. 참된 신앙은 무덤(육체)을 회칠하는 것이 아니다. 무덤(육체)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나를 죽여 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다. 그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용서와 자비를 구하시고, 그것을 지켜보던 백부장과 지키던 자들, 자던 성도들이 일어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노라 고백하는 사건을 말함이다.(마27:50-54) 그 과정에서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눅13:32)함과 같다.

회칠한 무덤 같은 자에게 화가 있으리라!

마 23:27-28

회칠한 무덤 같으니!

오늘 여섯 번째 저주 선언문에는 ‘회칠한 무덤’이 나옵니다. 회칠한 무덤은 당시 들판이나 길옆에 있는 가난한 자들의 무덤입니다. 길가 무덤에 ‘회’를 칠하는 이유는 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유월절 순례자들이 지나가며 쉽게 무덤을 식별하고 피해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을 비유로 설명하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 예수님이 경계하며 말씀하시는 것은 누군가의 안전을 위해 ‘회’를칠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운 것을 감추고 아름답게 보이기위한 다른 목적으로 ‘회’를 칠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티끌만한 오점이 하나라도 드러나지 않도록 숨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짙게 회를 칠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죠. 계속 칠하고 또 덧칠하니 더욱 속이 썩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적용 – 너희를 돌아보아라!

오늘 여섯 번째 말씀에서는 이전 것들과 조금 다른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28절 말씀에 나오는 ‘너희도’라는 말에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준엄하게 꾸짖고 계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확실해집니다. 이들의 잘못된 행위를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것 입니다. 중요한 것은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썩었다는 말입니다. 또한 오늘 말씀 가운데 중요한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이유를 분명하게 지적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라는 부분입니다.

우리 안에 외식과 불법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행동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들은 우리의 겉모습을 봅니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겉모습만 치장하면 됩니다. 문제는 겉모습을 치장하고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짙게 덧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옳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내면에서 외식과 불법을 제거해 나가지 않을까요? 사람들을 신경 쓰면 우리의 더러운 것을 가리기 위해 애쓰게 되지만, 하나님을 신경 쓰면 우리의 연약하고 더러운 부분이 더 잘 보이도록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고뇌하며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이 때로 우리의 비겁함으로 인해 회칠한 무덤과 같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럼 우리는 오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우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요?

키워드에 대한 정보 회칠 한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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