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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17세쯤 되었을 때, 그는 밭에서 형들과 함께 곡식을 거두는 영감 받은 꿈을 꾸었어요. 요셉의 곡식 다발은 높이 서 있었지만, 형들의 곡식 다발은 요셉의 곡식 다발에게 절을 하고 있었어요. 요셉이 그 꿈에 대해 형들에게 말하자, 형들은 그에게 화가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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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꿈풀이\”
성경구절 듣기 (창세기 37:36-40:23)
[구약] 창세기 (Genesis) 전체듣기, CBS 박명규 아나운서가 읽어주는 성경
https://youtube.com/watch?v=bQVGohpTBJQ\u0026feature=share\u0026t=1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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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세 가지 꿈에 대한 묵상 1

창세기 37장을 통하여, 요셉이 자다가 꾼 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요셉의 꿈은 밤에 꾼 꿈일까요, 하나님의 뜻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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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요셉 의 꿈

  • Author: 알럽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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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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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받은 요셉의 꿈

“영감 받은 요셉의 꿈,” 구약전서 이야기 (2022)

“영감 받은 요셉의 꿈,” 구약전서 이야기

이미지 구약전서 이야기: 영감 받은 요셉의 꿈

라헬과 야곱은 여러 해 동안 아들을 낳기를 바라며 기도했어요. 그들이 주님께 드린 기도는 요셉의 출생으로 응답되었어요. 요셉은 야곱이 가장 아끼는 아들이었어요. 그래서 야곱은 요셉에게 특별한 외투를 주었어요. 야곱에게는 요셉보다 나이가 많은 아들 10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요셉을 질투했어요.

창세기 30:22~24; 37:1~4

이미지 구약전서 이야기: 영감 받은 요셉의 꿈

요셉이 17세쯤 되었을 때, 그는 밭에서 형들과 함께 곡식을 거두는 영감 받은 꿈을 꾸었어요. 요셉의 곡식 다발은 높이 서 있었지만, 형들의 곡식 다발은 요셉의 곡식 다발에게 절을 하고 있었어요. 요셉이 그 꿈에 대해 형들에게 말하자, 형들은 그에게 화가 났어요.

창세기 37:2, 5~8

이미지 구약전서 이야기: 영감 받은 요셉의 꿈

후에 요셉은 또 다른 영감 받은 꿈을 꾸었어요. 그 꿈에서는 해와 달과 열한 개의 별이 그에게 절을 했어요. 요셉은 가족에게 꿈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이 꿈은 요셉이 가족을 다스리게 된다는 말처럼 들렸어요. 요셉의 형들은 요셉에게 더욱 화가 났어요. 형들은 요셉의 꿈이 달갑지 않았어요.

창세기 37:9~11

이미지 구약전서 이야기: 영감 받은 요셉의 꿈

어느 날 요셉의 형들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양을 먹이고 있었어요. 야곱은 요셉을 보내 그들을 살펴보게 했어요.

창세기 37:12~19

이미지 구약전서 이야기: 영감 받은 요셉의 꿈

요셉의 형들 중 몇 명은 그를 죽이려 했어요. 그들은 요셉의 외투를 빼앗고,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었어요.

창세기 37:20~24

이미지 구약전서 이야기: 영감 받은 요셉의 꿈

요셉이 구덩이에 있는 동안, 형들은 애굽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았어요. 형들은 요셉을 여행자에게 노예로 팔기로 하고, 은 이십 냥을 받고 요셉을 팔았어요.

창세기 37:25~28

이미지 구약전서 이야기: 영감 받은 요셉의 꿈

그 후 형들은 요셉의 옷에 염소의 피를 묻혔어요. 형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가서 요셉의 외투를 보여줬어요. 형들은 들짐승이 요셉을 죽였다며 야곱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창세기 37:31~33

이미지 구약전서 이야기: 영감 받은 요셉의 꿈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슬피 울었어요.

창세기 37:32~35

이미지 구약전서 이야기: 영감 받은 요셉의 꿈

그러나 요셉은 살아 있었어요. 그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애굽에서 노예로 살고 있었어요.

창세기 37:36

요셉의 세 가지 꿈에 대한 묵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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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말씀 중에도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요셉의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과연 내가 밤에 자다가 꾸게 되는 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인가, 아니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 중의 하나가 무의식 속에서 꿈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혹은 미래에 대한 나의 소망이 꿈으로 투영되는 것일까?

정확하게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잘 알지도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에 대한 해석이나 답을 알고 싶어 하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창세기 37장을 통하여, 요셉이 자다가 꾼 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요셉의 꿈은 밤에 꾼 꿈일까요, 하나님의 뜻이 담긴 꿈일까요?

목동 집안의 요셉이 곡식 단과 해달별 꿈을 꾸다

목차

요셉의 세 가지 꿈에 대한 묵상 1

1. 들어가며

창세기 37장부터 시작하는 창세기 37장의 주인공은 요셉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이야기에서 계속적으로 흐르는 사건들의 연관점은 “꿈”에 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에는 3번의 꿈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각 꿈을 꾼 이후에 극적인 상황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 꿈의 흐름을 따라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을 통해 흐르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2. 세 번의 꿈들

(1) 요셉의 꿈

1) 성경의 이야기

요셉과 관련한 세 번의 꿈들 중에 첫번째 꿈은, 당연히 요셉이 직접 꾼 꿈입니다. 창세기 37:5-11까지의 말씀에 등장하는 첫 번째 꿈 사건은, 요셉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요셉이 꾼 꿈에 대한 성경의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창세기 37:7, 개역개정 성경)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창세기 37:9, 개역개정 성경)

12아들 중 11번째인 요셉의 입장에서는, 이 꿈이 매우 신기하고도 즐거운 꿈이었지도 모릅니다. 비록 아버지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었지만, 형들에게는 여전히 막내 동생과도 같은 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 번이나 연속해서 형들에게 절을 받는 꿈을 꾸었으니 얼마나 통쾌하고도 흥분했겠습니까?

약 17세의 소년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즐거운 일이겠지만, 형들의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상황입니다. 평소에도 아버지의 편애 때문에 불만이 있었는데, 이제는 요셉이 자기 입으로 온 가족의 절을 받는다고 하니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그래서 형들이 보인 반응은 요셉에 대한 “미움”(사네, שָׂנֵא)이었습니다(5절, 8절).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 주로 ‘적대적이고 혐오적인 사람’, ‘부정한 물건’ 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형들은 요셉을 적대적이고도 부정한 존재, 자신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겼다는 의미입니다.

채색옷을 입은 요셉과 곡식단이 절하는 꿈을 꾸는 요셉

2) 특별히 생각할 부분 – 목자에게 곡식 단과 해달별의 꿈이라니?

단,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요셉이 꾼 꿈이 곡식과 해달별과 관련된 꿈이라는 부분입니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대대로 양을 치는 집안입니다. 그런데 양을 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곡식 단”에 대한 꿈과 농사와 관련 깊은 “해달별”의 꿈을 꾸었다는 것은, 흔히 꿀 수 있는 꿈이 아닙니다. 요셉의 경험을 투영하거나 요셉이 갈망하는 부분이 꿈으로 표현되어야 하는데, 요셉과는 상관이 없고 야곱의 집안과도 크게 상관없는 것들이 꿈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요셉의 꿈에 나온 곡식단과 해달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요셉의 경험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들이 꿈에 나왔다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뜻으로 생각해 보면 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섭리를 통하여, 요셉에게 미리 알려 주신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해 보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됩니다.

3) 생애의 가장 큰 전환점과 그 해석

하지만 이 꿈을 통하여 요셉의 일생에 가장 큰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 머나먼 타국으로 억지로 팔려 가며, 그 곳에서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종의 일과 가보지 않았던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꿈 사건은,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환점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습니다.

4) 더 읽어볼 글 : 창세기 37장 설교

2020/08/31 – [나의 설교/새벽예배 설교 – 매일성경] – 창세기 37:1-17, 꿈, 야망 그리고 비전 Dream, Ambition or Vision 매일성경

2020/09/01 – [나의 설교/새벽예배 설교 – 매일성경] – 창세기 37:18-36,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

두 관원장에게 꿈을 해석하는 중세풍의 요셉

(2) 두 관원장의 꿈

1) 성경의 이야기

보디발의 집안에서 가정 총무로 성실하게 일하던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계략으로 인하여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사형을 당하거나 즉결처형을 당해도 무방한 사건이지만, 어쩐 일인지 요셉은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창세기 39:20, 개역개정 성경)

이 곳에서 요셉은 왕의 두 관원장을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 모두 왕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의 음식과 관련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근동의 사회에서는, 왕을 암살하려는 무리들이 많았고, 가장 빈번하게 일어났던 암살의 방법이 바로 독살이었습니다.

왕의 음식에 독을 넣어 왕을 살해하는 일들이 많음으로 인해, 왕궁에서는 왕의 최측근을 왕의 음식과 관련된 직책에 임명하였습니다. 왕의 음식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요셉과 같은 감옥을 쓰게 된 두 명의 감방 동료들이 아니겠습니까?

고대의 이집트 사회에서는, 빵을 굽기 위해서는 빵을 맡은 주방장이 머리를 화덕 속에 집어넣어서 빵을 화덕 벽에 붙였다고 합니다. 이때 주방장의 다리를 아들이 붙잡아 주는데, 가끔씩 아들이 아버지의 다리를 놓쳐서 아버지가 불 속으로 빠졌다는 글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로 왕의 신임을 받고 특별한 기술을 가진 관원장들이 하필 요셉의 감옥에 같이 있었고, 그들이 동시에 비슷한 꿈을 꾸게 됩니다.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창 40:5, 개역개정 성경)

이들의 꿈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그 내용이 다르고 결과도 정반대였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창세기 40:11, 개역개정 성경)

라고 하였으며, 떡 맡은 관원장은

맨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창세기 40:17, 개역개정 성경)

라고 합니다.

2) 특별히 생각할 부분 – 두 관원장의 차이가 뭐길래?

세 포도가지와 세 광주리는 모두 3일을 뜻하는 것이며, 3일 후에 한 사람은 복직이 될 것이지만 다른 한 사람은 사형을 당할 것임을 요셉이 해석해 줍니다. 요셉의 해석대로, 3일 후에 두 관원장은 모두 ‘머리를 들게’ 되지만, 한 사람은 복직을 위하여 또 다른 한 사람은 죽음을 위하여 머리를 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창세기 40:10-11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창세기 40:10-11, 개역개정 성경)

술 맡은 관원장의 꿈에서, 포도가지의 세 가지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정상적인 포도열매가 열리는 과정입니다. 정상적인 과정 속에서 술 맡은 관원장이 직접 열매들을 따서 즙을 짜고 그 잔을 바로에게 직접 드립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특별히 문제점이 있을까요? 자연스러운 순서를 따라갑니다. 자연스럽게 자라고 익어가고 즙을 생산합니다. 그의 꿈에는 생명의 성장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술 맡은 관원장은 복권이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떡 맡은 관원장은 어떠합니까?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맨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창세기 40장 16-17, 개역개정 성경)

떡을 만드는 일련의 생산적인 과정은 없고, 이미 만들어진 떡이 자신의 머리 위의 광주리에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떡 맡은 관원장이 한 일이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떡은 이미 있었으며, 생산이 아닌 소비적인 의미로써 그 떡을 새들이 먹었습니다. 있던 것을 새에게 빼앗기는 이러한 꿈을 통하여, 어떤 생명과 회복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3) 요셉을 잊은 관원장과 그 해석

실제로 요셉이 해석한 대로 일들이 벌어집니다. 이미 해석 후에 요셉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자신의 무죄함도 밝혔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잊지 말고 감옥에서 건져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아마도 해석을 들은 직후에는 술 맡은 관원장이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무엇이든 해 주겠다고 흔쾌히 대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가 잊어버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창세기 40:23, 개역개정 성경)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았든, 요셉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을 것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을 통하여 감옥에서 나가고 무죄도 밝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술 맡은 관원장이 기억하여 요셉을 건져 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요셉은 극적으로 고향에 돌아갔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요셉이 고향으로 돌아갔다면, 요셉이 꾼 꿈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버림받고 잊힌 요셉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꿈의 과정 속에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4) 더 읽어볼 글 : 창세기 40장 설교

2020/09/04 – [나의 공부/창세기 주석] – 창세기 40장 주석, 설교를 위한 자료

2020/09/04 – [나의 설교/새벽예배 설교 – 매일성경] – 창세기 40:1-23 내 삶의 해석자 – 성서유니온 매일성경

(3) 바로의 꿈

2020/09/04 – [나의 공부/내 마음대로 공부하기] – 요셉의 세 가지 꿈에 대한 묵상 2

바로 위의 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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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꿈, 하나님의 큰 그림 (창 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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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꿈, 하나님의 큰 그림 (창 45:4-5)

설교에서 ‘꿈’하면 단골로 등장하는 성경인물이 있다. 바로 요셉이다. 아마 여러분들도 한 번쯤은 “요셉의 꿈” “꿈꾸는 자 요셉”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이런 설교 제목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오늘 이 시간 요셉의 인생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야곱은 늘그막에 요셉을 낳았다. 요셉은 늦둥이이자 막둥이였다. 그러니 얼마나 사랑스러웠겠는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주들을 얼마나 예뻐하는지 떠올려 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요셉은 하는 짓도 애비랑 쏙 빼 닮았다. 야곱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창 25:27)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야곱은 요즘 하는 말로 집돌이였다. 온종일 집에 머물면서 엄마 아빠랑 도란도란 얘기 나누고, 살림살이를 도와 주는게 야곱의 행복이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가정적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요셉도 똑같았다. 심지어는 야곱이 형 에서에게 했던 것처럼 형들에게 얄미운 짓을 하는 것 까지도 어쩜 그렇게 쏙 빼다 박았다.

(창 37:2)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이렇게 요셉은 형들의 크고 작은 잘못들을 사사건건 아버지께 고자질 했다. 보통 형제지간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아버지는 잘못 저지른 쪽을 혼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자질 한 쪽을 꾸중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어느 한 쪽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양쪽 모두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지간히 큰 잘못을 저지른게 아닌 이상 형제간에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도록 유도하기 보다는,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면서 화합해 나가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야곱의 마음은 철저하게 요셉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요셉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다 믿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요셉은 날이 갈수록 더욱 기고만장해지고, 안하무인이 되어갔다. 쉽게 말해서 요셉은 응석받이 특유의 당돌함이 있었다. 야곱의 편애는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야곱이 어찌나 요셉을 편애했던지, 열두 아들 중에서 오직 요셉에게만 채색 옷-지금으로 치면 명품 옷을 입혔다.

(창 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채색 옷은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면서 동시에 요셉의 유악함을 나타내 주는 상징이었다. 생각해보라. 채색옷 씩이나 입고 뭘 할 수 있겠는가? 농사를 짓겠는가? 양떼를 치겠는가? 사냥을 하겠는가? 채색 옷을 입고서는 이런 일을 할 수 없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일 따위는 하지 말라고 채색 옷을 지어 입힌 것이다.

형들이 하루 종일 땡볕에서 농사짓고 양을 치는 동안 요셉이 하는 일이라고는 채색 옷을 입고서 보란 듯이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면서 형들 잘못이나 고자질 하고, 집 안에 틀어박혀서 부모님께 어리광을 부리는 것 밖에 없었다. 부모 눈에는 이런 모습마저도 그저 마냥 사랑스러울지 모르겠지만 형들에게는 꼴불견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형들은 요셉을 대놓고 미워하기 시작했다.

(창 37:4, 쉬운성경)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자기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는 것을 알고 동생 요셉을 미워하여 요셉에게 인사말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었다. 아마 요셉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떻게 그걸 눈치 채지 못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요셉은 여기에 쐐기를 박아 버렸다. 괜히 쓸데없이 꿈 얘기를 한 것이다.

(창 37: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형들이 자기 발아래에 엎드리게 된다는 뜻이었다. 안 그래도 평소부터 벼르고 있었는데 이 따위 소리를 하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심지어 요셉은 꿈 얘기를 두 번씩이나 했다. 형들은 요셉의 꿈 얘기를 듣고 단순히 미워하는 감정을 넘어서서 증오심을 불태우게 된다.

(창 37: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그러다가 결국 일이 벌어지고 만다. 형들이 홧김에 요셉을 종으로 팔아넘긴 것이다. 사실은 그나마 이것도 꾹꾹 눌러 참아서 이 정도였지, 원래는 죽이려고 했었다.

(창 37: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창 37: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이렇게 해서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가게 된다. 그런데 형들이 요셉에게 손을 대기 전에 자기들 끼리 쑥덕거린 말이 있다.

(창37:19)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창37:20) 자, 그를 죽여…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형들은 요셉을 ‘꿈꾸는 자’라고 불렀다. 비아냥이었다. 쪼그만게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엄마 품에 안겨서 조잘거리는 거 밖에 없으면서 감히 형들을 자기 발밑에 두는 그런 꿈이나 꾸고 있으니, 형들 눈에는 요셉이 얼마나 가잖고 아니꼬웠겠는가? 그래서 “꿈꾸는 자? 그래, 니가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보자”는 심뽀로 일을 벌인 것이다.

“우리가 너를 없애 버려도 니 꿈이 이뤄지는지, 노예로 팔아 넘겨도 니 꿈이 과연 그대로 남아 있을지 한번 두고 보자”는 것이었다. 요셉의 꿈은 그렇게 형들의 발길질에 짓밟히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성경에서 요셉의 꿈 얘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창37:28) 자신의 꿈을 떠올리면서 밑그림을 그려 나갔을까? “자고로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지, 가나안은 너무 좁아. 아무렴 애굽 정도는 돼야지. 용이 개천에서 놀 수 있나”, “가만있어 보자, 지금 애굽으로 팔려가고 있으니까, 일단 거기서 종살이부터 한 5년 정도 하다가, 주인한테 인정받아서 애굽 시민권을 획득하고, 그 다음에 관직에 진출하면 대충 20대 중반, 여기서 좀만 더 출세하면 그 때부터는 슬슬 형들을 발아래 둘 수 있겠다” 이렇게 인생을 설계해 나갔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성경 그 어디에도 요셉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인생을 계획해 나갔다는 기록이 없다. 요셉은 그럴 정신이 없었다. 그냥 울고불고, 살려 달라고 애원하면서 그렇게 팔려갔다. 이 판국에 꿈은 무슨 꿈인가? 아마 여기서 인생 종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 후로 요셉의 인생은 악화일로를 거듭하게 된다.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없었다.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 까지 한다.

(창 37:36)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창 39:19-20) 그의 주인이…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이런 일을 겪는 동안 요셉은 고향에서 꾸었던 꿈을 새까맣게 잊고 지냈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는가? 이 판국에 꿈이 웬 말인가? 일은 자꾸 꼬여만 가고,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가는데, 여기서 어떻게 꿈을 품고, 무슨 수로 인생을 설계하고 큰 그림을 그려 나갈 수 있겠는가? 요셉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요셉은 꿈을 잃었다. 아니, 꿈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그 와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여전히 함께 하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할 때도 함께 계셨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할 때도 함께 계셨다.

(창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 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해주신 덕분에, 요셉은 형통을 누릴 수 있었다.

(창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창 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형통이 무엇인가? “온갖 일이 뜻대로 되는 것”이다. 그러면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종살이 하고 있는 사람에게 형통이 뭐겠는가? 당연히 종살이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옥살이를 하는 사람에게 형통이 뭐겠는가? 출옥하는 것이다. 이게 형통이다. 그런데 요셉은 그게 아니었다.

요셉은 여전히 보디발의 종이었고, 감옥에 갇힌 죄수였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면서 허락하신 형통이라는게 기껏해야 ‘종으로서’ 형통한 것이었고 ‘감옥에서’ 형통한 것이었다.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놀랍게도 ‘고작’ 이 정도의 형통이 요셉을 상상 할 수 없는 곳으로 이끌었다. 중간 과정은 생략하기로 하고, 요셉은 마침내 애굽의 총무가 된다.

(창 41:38-39)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창 41: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그 후에 요셉은 결혼을 해서 아들 둘을 낳았다. 첫째 아들의 이름은 므낫세이고 둘째는 에브라임이다. 므낫세는 “하나님이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에서 일어난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뜻이고(창41:51), 에브라임은 “하나님이 나를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는 뜻이다(창41:52).

무슨 말인가? 형들에게 팔려서 여기까지 오게 된 지난 세월들은 이제 다 잊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새 출발 하겠다는 말이다. 뒤집어 말하면 사실 요셉은 그동안 지난 과거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형들의 미움이고, 꿈이고 뭐고 아예 그냥 싹 다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저 애굽의 총리로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형통을 누리면서 살고 싶었다. 자, 그렇다면 요셉은 꿈을 이룬 사람인가, 이루지 못한 사람인가?

그렇게 요셉이 애써 지난날의 상처와 아픔을 덮어두고 총리로서 애굽을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자그마치 7년 동안 엄청난 풍년이 들었고, 8년 째 부터는 가혹한 흉년이 시작되었다. 흉년이 어찌나 심했던지 애굽은 말할 것도 없고, 인근 국가들도 양식이 없어서 쩔쩔 맬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애굽에는 비축해둔 양식이 있었다. 요셉이 지난 7년간 풍년이 들었을 때 미리미리 잘 예비해 두었기 때문이다.

(창 41:47-49)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각 성읍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읍 중에 쌓아 두매 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창 41:53-54)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창 41: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바로 이 시기에 요셉의 형들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찾아 갔다. 이때 요셉은 형들을 한 눈에 알아 봤지만,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긴, 20여 년 전에 노예로 팔아넘긴 동생이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제 둘의 입장은 완전히 정 반대가 되었다. 그때는 형들이 요셉을 살리고 죽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요셉이 형들을 죽이고 살릴 수 있다. 그때는 형들이 위에 있었고 요셉은 구덩이 아래에 있었지만 지금은 요셉이 갑이고-그것도 슈퍼갑이고 형들은 철저하게 을이다. 요셉은 권좌에 꼿꼿하게 앉아 있고, 형들은 그 앞에 납작 엎드린 채로 바짝 얼어 있다.

(창 42:3, 우리말성경) 요셉의 형들 열 명이 곡식을 사러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창 42:6, 우리말성경) 그때 요셉은 그 땅의 총리가 돼 그 땅의 모든 백성들에게 곡식을 팔고 있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그에게 절을 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요셉이 꿨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얼마나 짜릿했을까? 얼마나 통쾌했을까? 나 같으면 “네 이놈들!!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하면서 호통부터 쳤을 것 같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을 바라보면서 “마침내 내 꿈이 이루어졌다”고 말하지 않았다. 형들을 상대로 지난날의 아픔을 한풀이 하며 보복하지도 않았다. 요셉은 형들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누가 요셉을 애굽으로 보냈는가? 형들인가? 아니다. 하나님이었다. 누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웠는가? 바로 왕인가? 아니다. 하나님이었다. 요셉은 꿈을 이룬 사람일까? 아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요셉이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거나, 꿈을 이루기 위해서 계획하고 노력했다는 말이 없다. 요셉은 그냥 하루하루 살아갔을 뿐이다. 꿈을 잃어버린 채, 꿈도 없이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요셉 이야기의 핵심은 “요셉이 꿈을 이루었다”는게 아니다. 핵심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셨다는데 있다. 요셉이 자기 발 앞에 엎드려 있는 형들을 보면서 깨달은게 무엇인가? “드디어 올 것이 왔다”였는가? 아니다. “아, 이래서 하나님이 그때 그런 꿈을 꾸게 해주신 거구나”였다.

그렇다. 요셉은 어렸을 때 꿨던 꿈을 기억하고, 꿈을 가슴에 품고 꿈을 꾸며 살았던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 반대로 현재를 통해 과거의 꿈을 해석해낸 사람이었다. 요셉은 꿈을 꿨다. 하지만 그 꿈의 진정한 의미는 모르고 살았다. 한동안은 꿈을 잃고 살았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꿈이 이뤄져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요셉이 꾼 꿈의 의미가 무엇인가? 형들 위에 군림하고, 그들을 지배하는 것이었는가? 아니다. 지배가 아니라 섬김이었고,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었고, 적대감이 아니라 위로와 평안이었다.

잊지 말라. 요셉은 꿈을 이룬 사람이 아니다. 꿈이 이루어진 사람이다. 그 꿈은 요셉의 꿈이기 전에 하나님의 꿈이었고,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 당신의 꿈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요셉 이야기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여러분은 꿈이 있는가? 만약 여러분들에게 꿈이 있고, 그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다면, 그래서 꿈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반대로 만약 여러분들에게 꿈이 없고, 그래서 지금 내딛고 있는 이 발걸음이 도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갈지 종잡을 수가 없다면, 심지어 애초에 꿈이라는 것도 없었지만, 아무튼 꿈과는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해야 할까?

어느 누가 속단 할 수 있겠는가? 나 역시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꿈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와 똑같은 길을 걸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애굽의 총리가 되는게 요셉의 꿈이었던 것도 아니다. 요셉은 총리를 꿈꾸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결과를 다 알고 있으니까 요셉의 꿈, 그리고 총리가 된 것이 연결고리로 보인다. 하지만 요셉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총리가 된 건 총리가 된 것이고, 형들과 재회 한 것은 재회한 것이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면서 뭐라고 했는가? “이제 고지가 코앞이다”라고 했는가? 아니다. “지난날은 잊겠다, 여기서 새 출발 하겠다”고 했다. 요셉은 결코 총리가 된 것과 자신의 꿈을 연결시키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요셉은 꿈을 이룬 사람이 아니었다. 꿈을 꾸며 산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 겨우겨우 버텨내며 살았을 뿐이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살았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다. 그래서 형통했고, 그래서 꿈이 이루어졌다. 형들은 요셉을 보면서 말했다.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 그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요셉은 형들에게 말했다.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45:8)

형들은 그 꿈이 요셉의 몫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요셉을 없애면 꿈도 물거품이 될 줄 알았다. 요셉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꿈은 요셉의 것이기 전에 하나님의 것이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큰 그림의 일부였다. 그래서 꿈을 이룬 것도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요셉이 아닌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보라, 꿈꾸는 분이 오는 도다”

말씀을 맺겠다. 우리에게 가장 중대한 문제는 무엇일까? 꿈이 없는 것일까? 아직까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서 어느 대학에 지원해야 할지 갈팡질팡 하는 것일까? 진로는 정했는데 성적이 안 되서 고민하는 것일까? 맞다. 이것도 문제다. 하지만 이게 가장 크고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 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다. 그래서 요셉은 비록 종살이를 했지만 형통했고, 감옥에 갇혔지만 형통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형통이 요셉을 크나큰 형통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지금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어떤 형통을 누리고 있는가?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길 바란다.

비록 지금은 이렇다 할 만 한 꿈도 없고, 그래서 막막하고, 미로 속을 헤매는 것 같고, 되는게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그래서 마치 한참이나 뒤처진 인생인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형통을 누리길 바란다. 우리 삶 가운데 여전히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큰 그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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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내용이 교정되어야 우리가 꿈꿔야 할 하나님나라

꿈★은 이루어진다?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 축구팀을 응원하면서 등장했던 여러 구호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Be the Reds’, ‘꿈★은 이루어진다!’ 등이 그것이다. 그중 ‘꿈★은 이루어진다!’는 이후 치뤄진 대통령 선거전에서도 그대로 사용됐다. ‘꿈★은 이루어진다!’,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표현인가. 우리는 늘 꿈을 꿨고,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기독교가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끌었던 것도 기독교를 통하여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많은 사람이 기독교를 통하여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열심 있는 믿음이 성공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서점에서도 가장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책들은 대부분이 성공과 꿈을 이룰 수 있는 신앙적인 법칙을 설명해 주는 것들이다. 그런데 과연 기독교는 우리들의 꿈을 이루어 주는 종교일까.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무슨 꿈을 이루어 주게 할까. 오늘 우리는 모두 꿈을 이루기를 원한다. 무슨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꿈꾸는 사람, 요셉

꿈을 이룬다는 관점에서 꿈꾸는 사람의 대명사, 꿈의 실현자 요셉은 우리에게 인기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요셉이 이룬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어렸을 때부터 꿈꿔 왔던 그 꿈은 이루어진 것일까. 우리들도 꿈을 꾼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꿈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 인생의 승리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일까.

자신의 욕망을 향하는 꿈, 야망

요셉의 첫 꿈은 형들의 곡식 단이 자신의 곡식 단에게 절하는 꿈이었다. 두 번째 꿈도 비슷했다. 해와 달과 열한 개의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이었다. 이 꿈은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요셉 자신의 영달을 의미한다. 그가 모든 사람 위에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마 요셉은 어렸을 때부터 야망이 있었던 사람 같다. 그가 처음부터(태어나면서부터)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 야곱의 특별난 대접에 의해서 후천적으로 그런 욕망이 생겼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야망의 사람임이 틀림없다. 자신의 야망이 그런 꿈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우리도 많은 꿈을 꾼다. 그런데 많은 꿈 중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을 대변하는 꿈이 아니었던가. 자신의 영달을 위한 꿈, 야망은 결국 우리를 고립되게 만든다. 요셉도 마찬가지로 그런 고립을 경험했다. 요셉은 형제들로부터 고립되었다. ‘왕따’를 당하게 된 것이다. 야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야망은 우리로 하여금 이웃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야망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아름답고 귀한 것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야망은 우리들로 하여금 진정한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야망은 우리로 하여금 생의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야망으로 가득 찬 우리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을 향하는 야망을 갖도록 충동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 사회뿐 아니라 교회와 신앙생활에서도 우리는 모두 야망을 갖도록 유도되고 있지 않는가. 오늘 교회에서도 목회를 하는 사람들이나 교인들도 대형 교회라든지 유명해지는 것이라든지 하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은가.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열차’를 탄 사람들이 아닌가.

한국교회에서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목회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국교회가 얼마나 야망에 가득 차 있는가를 볼 수 있으며, 또 야망에 찬 젊은이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젊은이들이 한창 몰리는 교회나 인기를 끄는 설교자 중에서 한 사회나 한 역사의 한 부분에서 나름대로 정의를 외치거나 혹은 불의를 향하여 항거의 목소리를 높이다가 고난을 받았던 사람들이 있는가. 인기 설교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초라했던 위치를 벗어나 지금은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서 있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나름대로 야망을 성취한 사람들이 아닌가.

바로 여기에 오늘 한국교회의 위기가 있다. 교회가 사람들로 하여금 온통 야망이라는 꿈을 꾸게끔 만들고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설교를 통하여, 성경 공부를 통하여, 그리고 각종 신앙 강좌라는 미명 아래 열리고 있는 성공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구호에 매료되어 있다. 우리 모두는 성공이라는 야망과 그리고 그 ‘야망은 이루어진다!’에 몰두하고 있다.

누가 진정한 지도자인가

오늘 한국 사회의 경제·정치·문화·체육 등 거의 전 분야에서 기독교인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한국이 이제 불교 국가가 아니라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종교 인구통계면에서 이미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앞지르고 있고 경제·정치·사회적 활동면에서 다른 종교들은 기독교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차지하는 위치는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런 한국에서 이상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영적 스승을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영적 스승이라고 일컬음을 받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오늘 한국 사회에서 유명하다는 목사들이 과연 영적 스승으로 존경받고 있는가. 소위 한국 교계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개신교 목사들 대부분이 영적 스승보다는 큰 사역을 한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 대단한 사람들로 인정받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진정한 영적 스승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왜 그런가.

사실 종교인들은 자신이 이룩한 성공이 아니라 자신의 살아온 삶과 정신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기독교의 위대한 영적 스승들은 한결같이 어떤 큰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꿈을 꾸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야망의 꿈을 꾸지 않았다. 오히려 야망의 꿈을 줄이면서 다른 꿈을 꿔 왔던 사람들이다.

오늘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꿈★은 이루어진다!’의 희망을 불어넣어 주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 꿈이 야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과 진정한 꿈을 구별할 수 있도록 신앙의 능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 꿈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욕망과 야망은 이루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산다. 기독교 지도자들 중에서 진정으로 영적 스승으로 존경받는 분이 없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잘못된 꿈을 이루어 왔기 때문이 아닐까.

꿈을 이룬 요셉?

수 주 전에 한 교회에서 어떤 전도사의 간증 집회가 열렸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는 한국의 요셉과 같은 사람이라고 추앙받기도 하는 인물이다. 화제의 인물은 보수 기독교인에게 ‘믿음의 총리’로 불리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다. 기사에 의하면, 그 교회 담임목사는 어느 날 “믿음 좋은 요셉 같은 총리를 모시고, 간증 집회를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 그를 초청하여 집회를 열게 되었다.

언론이 보도하고 있는 그의 간증 요약을 보면 그는 분명 창세기의 요셉과 같은 인물로 간주되어도 좋을 듯하다. “무명의 소년은 예수를 믿으며 신앙생활을 했다. 이후 고시에 합격하고, 검사가 됐다. 신학교도 졸업했다. 28년간 공직 생활을 했다. 잠깐의 변호사 생활을 거쳐, 법무장관과 국무총리가 됐다.(박수) 다 하나님께서 해 주신 거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 믿고 나서 ‘무명한 자’가 ‘유명한 자’가 된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간증했다고 한다. “693일(2015.6~2017.5) 동안 국무총리를 지냈다. 매일매일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 정쟁이 될 수 있기에 지금 자세히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 당시에는 고난 같았는데,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런 은혜를 계속 받으려면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 궁하지 않아도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는 결국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서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룬 꿈이 무엇이었는가를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국무총리 재임 기간 중 발생한 국정 농단 사건,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대통령 탄핵과 대통령권한대행으로서 행한 일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과연 그가 과연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나라의 꿈을 이룬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야망을 이룬 것인지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꿈의 내용이 교정되어야

우리가 꿈꿔야 할 하나님나라

우리 모두는 꿈을 꾼다. 그러나 그 꿈의 내용은 반드시 교정되어야 한다. 우리의 꿈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꿈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요셉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꿈의 변화를 경험했다. 그는 야망에 가득 차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일생을 통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그의 꿈은 점차 변화되어 갔다.

야망은 이루어지지 않아야 좋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리고 진정한 꿈, 참된 꿈,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의 꿈이 교정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선물을 받는다. 오랫동안 헤어졌던 가족들과 다시 만나게 되고 화해하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된다. 아래의 성경 기록은 바로 이러한 요셉의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가치관이 변화된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이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크나큰 구원을 베푸셔서 형님들의 목숨을 지켜주시는 것이고 또 형님들의 자손을 이 세상에 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창 45:7-8)

야망이 사라지고 하나님나라를 향한 꿈을 갖게 되자, 그는 이러한 놀라운 신앙의 고백을 하게 되었다. 오늘 우리에게 어떤 꿈이 있는가. 우리의 꿈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야망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행복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꿈,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 우리 신앙 공동체는 어떤 꿈을 심어 주고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존 레논은 ‘imagine’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하늘나라가 없다고 상상해 봐요. 당신 노력한다면 그건 쉬운 일이에요. 발 아래는 지옥이 없고, 우리 위에는 오직 하늘만이 있겠죠. 모든 사람들이 이날을 살아가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봐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이념을 위해서) 살인이나 죽음도 없고 종교도 없는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소유가 없다고 상상해 봐요. 당신이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지만 탐욕과 굶주림에 대한 필요도 없고 인류애로 뭉치는 온 세상을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눈다고 상상해보세요. 내가 공상가라고 당신은 말할지 모르지만 나만이 그런 건 아니에요. 언젠가는 당신도 우리와 함께해서 세상이 하나 되어 살기를 바라요.”

존 레논도 이런 꿈을 꿨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우리가 야망에 불타 있어서야 되겠는가. 신앙을 자기 야망의 실현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어야 되겠는가.

“지금 예수를 믿은 지 50년이 됐다. 주일예배에 한 번도 빠진 적 없다. 행여 내가 잘못하면 교회를 공격할까 봐 처신에 신중을 기해 왔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라는 그의 간증이 오늘 이 아침에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가 이룬 꿈의 정체가 의심되기 때문이다.

홍인식 /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연합신학대학교(ISEDET)에서 해방신학을 전공했다.

[ #요셉의 꿈 ] 요셉의 꿈은 누가 준 꿈일까? 내 꿈일까 하나님이 주신 꿈일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을 좋게 만들어주신다 (요셉의 예)

로마서 8:28을 읽어보자.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을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글에서는 위의 로마서 구절에 구약의 요셉의 예를 적용해 그 내용을 깊이있게 생각해보고자 한다.

1.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먼저 창세기 37장에서 시작해 보겠다. 3절을 함께 읽어보자.

창세기 37:3-11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 서서 절하더이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창세기 42장을 읽으면 형제들에 관한 요셉의 꿈이 이루어짐을 볼 수 있다.

창세기 42:6, 9

“…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요셉의 꿈은 예언이었다는 것이 확실하다. 다시 말해, 한참 뒤1 미래에 일어날 일을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으로 보여주신 것이었다. 위 구절에서 처음에는 반응이 이상하지 않아 보이지만, 형들이 요셉의 꿈에 대해 보인 부정적인 반응을 기억한다면 이상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형들은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기 때문에 이미 요셉을 미워했고, 꿈 때문에 더 미워하게 되었다. 실제로, 형들은 요셉이 너무 미워서 그를 죽일 생각까지 하게 되고 (창세기 37:18), 애굽으로 가는 상인들에게 요셉을 팔아버린다.

창세기 37:25-28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형들은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동생을 아버지와 가족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애굽에 노예로 팔았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항상 요셉과 함께 계셨다.

창세기 39:1-6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와께서는 요셉과 함께 계셨고,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한 모든 일을 축복하고 확고히 해주셨다. 이 구절을 보면, 요셉의 주인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시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했다. 그러나 또 다른 큰 변화가 있었다.

창세기 39:6-15, 19-20

“요셉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자고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의 삶에 다시 안정이 찾아왔을 때, 또 다른 음모로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감옥에서도 함께 계셨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창세기 39:20-23

“이에 요셉이 주인이 그를 잡아 가두니 그 옥은 황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여호와께서는 감옥에서 요셉과 함께 하셨고, 보디발의 집과, 가나안 땅에서 그와 함께 하셨다.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인자와 은혜를 보여주셨다. 그러면 잠시 우리가 요셉의 입장이었다고 생각해보자.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아버지 집에서 쫓겨났다. 형들은 요셉을 에굽에 노예로 팔았지만, 주인의 아내의 거짓말로 옥에 갇히게 되었다. 요셉은 자신이 선택한 적이 없는 나라의 감옥에 갇혀 외로운 상태였다. 누가 봐도 “축복”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고 인자함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이것이 중요하다. 요셉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왜 그 곳에 있는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다. 그 분께서 말씀하셨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우리가 그 분을 사랑하면, “좋아” 보이지 않는 상황이나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다시 요셉에게로 돌아가 창세기 40장 1절에서 8절 말씀을 읽어보자.

창세기 40:1-8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그들의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며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나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요셉이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나이까?”라고 말했듯, 모든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 따라서 두 애굽인들은 요셉에게 자신들의 꿈을 이야기하고 요셉은 이를 해석한다. 이 의미는 하나님께로부터 꿈이 왔으니 (해석은 하나님께 있으니) 그 꿈을 해석한다는 의미이다. 이 해석에 의하면, 한 명은 처형을 당하고 다른 한 명은 복직하게 된다. 요셉은 복직될 관원장에게 자신을 기억했다가 바로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창세기 40:14-15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그 관원장은 복직된 후 요셉의 간청을 잊었다.

창세기 40: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위 내용을 요약해 보면, 요셉의 이야기는 악한 일을 하지 았았으나 받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오랜 시간을 수많은 거의 답을 알 수 없는“왜”라는 질문을 가지고 있을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의 형제들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꿈 때문에 그가 미워져 애굽에 노예로 팔았다. 애굽에서 그의 주인은 부인에게 속아서, 주인을 보호하려던 요셉을 감옥에 갇히게 했다. 복직이 된 관원장은 요셉을 잊었다. 이 상황에서 좋은 점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믿음 있는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이해 하기 힘들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믿었다.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 하나님이 두려워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는 두 애굽인에게 담대하게 여호와에 대해 이야기 했고, 성령의 힘으로 그들의 꿈을 해석했다. 이해는 부족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장애가 되지 않았다. 여러분도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이해 부족이 믿음의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확실히 요셉에게처럼 여러분에게도 진실이다.

2. 감옥에서 궁전을로 온 요셉

계속해서 창세기 41장의 바로 꿈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창세기 41:1-14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가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려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이 년이 흘러 마침내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해냈다. 어떤 이는 “왜 요셉을 바로 기억하지 못하고 2년 동안 감옥에서 있게 했을까?” 하고 물을 것이다. 그러나 답은 간단하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지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세대를 살고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최선으로 이루어지게 하기를 원하시지, 빠른 것이 최선일 까닭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바로가 여호와로부터 그 꿈을 받기까지 요셉이 감옥에서 2년을 보내야 했다. 후에 요셉이 해석을 하며,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그 분이 하실 일에 대해 보여주셨습니다”(창세기 41:25)라고 말했다. 바로에게 그 꿈을 주실 시점은 여호와께서 선택하셨다. 이제 시간을 되돌아가 보면, 2년 전 하나님께서 바로의 관원장들에게 두 가지 꿈을 주고 요셉을 통해 해석을 주셨다. 요셉을 보디발의 집에 보내신 것도 여호와이셨고, 그 곳에서 모든 일이 일어나게 하시고 마침내 그가 특정 감옥2에 보내신 것도 여호와이셨다. 형들이 싫어하게 만들어 요셉을 애굽으로 팔게 만든 두 가지 꿈을 요셉에게 주셨던 분도 여호와이셨다. 우리는 조금씩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 글을 읽을수록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의 성령을 통해 요셉은 바로에게 꿈에 대해 설명했다. 애굽은 7년 동안 풍년일 것이나 이 기간 후 7년은 흉년이 될 것이라며, 요셉은 바로에게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도 이야기했다. 마지막을 읽어보자.

창세기 41:37-45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요셉이 니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몇 분 이내에, 요셉은 감옥의 노예에서 총리가 되었다. 그는 갑자기 온 애굽을 다스리게 되었다. 이 일은 점차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매우 빠르게 일어났다. 여러분이 지금 벗어나고 싶은 불행한 상황에 있다면,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구해주실 것이다. 그 분은 단 몇 분 내에 그렇게 만들 수 있는 분이다. 예를 들어, 그 분은 우리를 단번에 황홀한 천국 같은 기분으로 만들어 주실 수 있다. 성경 말씀처럼 “순식간에”(고린도전서 15:51)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 몇 년 동안 매일 하던 일을 하다가 눈을 감는다. 눈을 떠보니 순식간에주 예수 그리스도와 모든 성인들과 하늘 나라에 있다!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할 능력이 있으시며, 꼭 맞는 시간에 그 일을 하실 것이다. 그 시간이 요셉에게도 온 것이다. 그는 많은 일을 겪었지만 여호와께서는 항상 함께 계셨다. 그가 겪었던 일들은 우연이 아니었다. 모두 여호와의 계획이셨고, 그 마지막은 요셉이 바로 앞에 가는 것이었다. 마지막을 빼면 (우리가 전혀 보지 못한 것처럼), 왜 요셉의 생에 일어난 일들이 좋은 결과를 낳을지 이해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을 알지 못했으면, 요셉은 이해하기는 어려웠겠지만 믿기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러분의 이해력은 약하지만 믿음은 약해지면 안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에, 이해 여부에 관계 없이 오늘날 우리가 살면서 모든 일에 대해 말씀을 믿는 마음은 약해지면 안된다.

다시 요셉의 이야기로 돌아와, 요셉은 애굽의 2인자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7년의 기근이 있는 동안, 요셉의 가족이 사는 땅에도 기근이 찾아왔다.

창세기 41:56-57, 42:1-3, 6-9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여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요셉의 형 열 사람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수년 전, 여호와께서 요셉에게 형들이 그에게 절하는 두 개의 꿈을 주셨다. 사실, 이 꿈 때문에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애굽으로 그를 팔았다. 그 때 이후, 그들은 꿈이 이루어진 시점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에게 바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모르는 척하고 형들이 정탐꾼이라는 혐의를 제기했다. 형들을 3일간 잡아둔 후, 요셉이 다시 형들에게 와서, 한 명을 애굽에 잡아둘 동안 가나안으로 돌아가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했다. 이 일은 형들을 슬프게 만들고, 오래 전 요셉에게 한 일로 인해 지금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자신들이 요셉 앞에 있는 줄 모르고,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고백했다.

창세기 42:21-23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그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요셉이 마지막으로 형들을 본 것은 그들 애굽으로 팔았던 오래 전이었다. 그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는 꿈이 이루어질 때가 되어, 형들은 요셉을 판 죄를 고백했다. 이제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판 일을 후회했다는 고백을 목전에서 듣게 된 것이다! 과거의 상처와 오해를 순식간에 낫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보라!

다시 요셉의 이야기로 가보면, 요셉은 형들이 베냐민을 데리러 가나안으로 돌아간 동안, 시므온을 붙잡고 있었다. 형들이 베냐민을 데리고 돌아온 후, 형들을 보내주면서 다시 돌아오게 할 목적으로 요셉은 베냐민의 베낭에 은잔을 숨겨 그들이 훔쳤다는 혐의를 받게 했다(창세기 44:2). 이 일 때문에, 베냐민은 애굽에 노예로 머물러 있어야 했다. 이 일을 듣고, 베냐민을 보내달라고 사정하기 위해 형들은 “요셉 앞에 엎드렸다”(창세기 44:14-34).

창세기 45:1-8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 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창세기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나는 위에서 이유를 나타내는”-ㄴ지라”에 밑줄을 그었다. 이 말은 답을 주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왜”라고 시작되는 질문에 답이 되는 말들이다. 요셉과 그의 의무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다 드러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요셉의 두 가지 꿈으로 형들에게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애굽으로 그를 판, 오래 전 가나안 땅에서 그 계획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형들과 그의 행동들은 하나님께서 그 분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신 도구에 불과했다. 요셉을 애굽에 보낸 것은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요셉을 보디발의 집에 보내고 그에게 은혜를 베풀고, 감옥에 가두신 것도 하나님이셨다. 바로의 두 관원장에게 꿈을 주시고 요셉을 통해 해석을 듣게 한 것도 하나님이셨다. 2년 뒤 바로에게 꿈을 주시고 관원장이 요셉을 궁으로 데려오게 한 것도 하나님이셨다. 요셉에게 꿈의 해석을 주시고 애굽의 2인자로 만드신 것도 하나님이셨다. 요셉의 형들을 애굽에 와서 절하게 하고 그 앞에서 죄를 고백하게 한 것도 그 분이셨다. 이스라엘의 생명을 구하신 것도 그 분이셨다. 이스라엘은 수 백년 동안 애굽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 방법도 성경의 출애굽기에 나와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처음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고 모든 계획이 다 드러나고 이해되는 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요셉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다.

각주

1. 창세기 37:2에서 요셉은 17세였고, 창세기 42:6, 즉 꿈이 이루어진 시점에 요셉은 39세였다 ((창세기 41:46) 요셉이 “파라오 앞에 섰을 때”, 그 나이가 30세였고, 형제들이 애굽으로 두 번째 왔을 때는 기근 두 번째 해였다(창세기 45:6)).

2. 이 감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이었다(창세기 39:20). 그것이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그곳에 보낸 이유이다.

19-3-4 요셉의 꿈이 현실로 나타나다

꿈은 이루어 진다 창 37:1-20 19. 3. 24

성경의 인물들 시작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데 우리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가를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이 이방의 객이 되어 400년 동안 종살이할 것(15:13)을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는 야곱과 요셉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다가 라반의 속임수로 인해 네 아내를 얻게 되어 12아들들을 두었지만 요셉과 라헬사이에 태어난 자식이 바로 요셉이었다. 창세기 37장부터는 50장까지는 38장을 제외하면 전부가 요셉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한 것인데 요셉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야곱이 어떻게 애굽에 내려가게 되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애굽에 노예로 있다가 출애굽을 하였는지를 알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선 요셉에게 꿈을 주셨는데 그 꿈은 요셉이 이스라엘 구원을 위하여 선택된 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요셉을 시기하던 그의 형들은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려고 요셉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다(창37:20).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살았던 요셉은 소년이었을 때 꿈을 꾸어 형들과 부모를 놀라게 했다

첫 번째 꿈 :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에게 경의를 표하였나이다(창37:7)..

두 번째 꿈 : 해와 달과 열한별이 내게 경의를 표하더이다(창37:9). 요셉이 꾼 두가지 꿈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에 충분한 꿈이었다.

​요셉 자신은 이 꿈이 형들에게 절 받는 것인 양 자랑삼아 형제들에게 떠들다가 도리어 형제들의 미움을 받았다. 요셉은 자신이 꾼 꿈의 비밀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너무 철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꿈이 이루어져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대로 네 후손이 이방에서 사백년동안 객이 되었다가 가나안에 돌아올 것을 이루어 나가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사람마다 꿈을 꾸며 그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 무단히 노력을 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꿈이 이루어진 것을 가리켜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노력없이는 성공하지 못하므로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는 요셉은 혹독한 역경의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역경을 이기고 애굽의 총리가 된 영광으로 그의 고난이 좀 묻혀 보일 수도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의 고난은 왠지 미화되고 좀 낭만적으로도 보이기 마련이죠. 그러나 그는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각종 고난의 쓴 맛을 다 맛 본 사람입니다.

1.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한 요셉

사람이 살아가면서 수많은 위기를 겪지만 생명의 위협을 겪는 것보다 더 무서운 위협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같은 아버지로부터 나온 형제들로서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같이 먹고 뒹굴고 자란 이복 형제들이었다면 그 위험은 더욱 놀라운 것이다. 요셉의 이복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하였던 것은 요셉이 꾸었던 꿈 때문이었다.

37:7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경배를 표하였나이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꾼 이야기를 합니다. 37:9 내가 또 꿈을 꾼 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경배하더이다.

이 꿈은 해몽이 필요없을 만큼 의미가 분명하다. 당시 꿈이 하나님의 의사전달 수단이며 모든 권리가 연장자 순으로 되어진다는 당시 통념을 믿었던 시대에 요셉의 꿈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이 꿈은 그 형제들의 말대로 8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네가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라고 말한 것처럼 의미는 확실하다는 것이다. 이 꿈으로 인해 요셉의 형제들의 마음속에 미움이 생겨 미움이 동생을 살인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 형제들의 생각은 20에 보듯이 요셉을 죽이면 그 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리라는 것입니다.

(1) 과연 형제들의 음모대로 될까?

요셉은 아버지 이스라엘이 형들이 양들을 잘 치고 있는지 그리고 안부도 전할 겸 요셉을 형들이 양들을 치고 있는 세겜으로 보냈는데 이미 형제들은 세겜에서 더 북쪽에 있는 도단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은 후 요셉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형들이 있는 도단까지 왔을 때 그 형제들은 요셉이 오는 것을 금방 알아 봤습니다. 저 꿈쟁이가 오는 것을 본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이는 요셉이 아버지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또 야곱이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혔다는 것은 그가 아버지의 상속자라는 것이므로 자신들이 상속을 받고자 요셉을 죽일려고 했던 것이다. 이는 마치 누가복음 20:9-16에 나오는 포도원의 일꾼들이 주인의 아들은 상속자니 죽이고 이 포도원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그 주인의 아들을 죽인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악한 사람들은 무모한 짓을 서슴지 않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을 죽이고자 모의했던 형제들 중에 루우벤이 다르게 제안했다. 야! 우리가 그의 생명을 해치지 말자. 그에게 피를 흘리지 말자. 바로 옆에 구덩이가 있는데 차라리 이 구덩이에 던져 넣자 하니 그들의 맘이 일치가 되어 그들은 형들에게 아버지 안부를 전해주러 온 요셉을 구덩이에 집어 던져 넣었는데 다행이도 그 구덩이 속에는 물이 없었다는 것이다. 여러분 시험이 와도 하나님은 시험을 피할 길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구덩이에서 며칠 지나면 굶어죽지요. 그 형제들은 살려달라는 요셉의 목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애굽으로 내려가는 미디안 상인들을 보면서 이번엔 유다가 제안을 했다. 여기서 피를 흘려 죽게 하는 것 보다 저 상인들에게 팔면 좋지 않을까? 하니 다 좋다고 말해 요셉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2) 고난중에도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

이복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린 요셉은 애굽왕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넘겨지게 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던 요셉이 어느 날 곤두박질 쳐 종이 되었을 때 요셉의 마음이 얼마나 곤고하고 외로웠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 길을 인도하실 때 형통할 때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두움에 던져질 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비록 종의 신분으로 주인을 섬겨야 했지만 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니 주인의 신임을 받아 그가 주인 집 가정 총무로 있으니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명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양떼나 쫓아다니던 양치기였는데 어느새 요셉이 이집트 바로왕의 친위대장 집에서 가정총무를 맡으며 장차 애굽의 총리가 될 경영 수업을 받게 된 것이 아닌가요? 우리가 가혹한 처지에서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그 일이 우리의 꿈을 이루어주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기초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환경이든 하나님을 의지하고 지혜를 구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생각지도 않게 미래의 큰 자산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요셉이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케 되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매사에 최선을 다한 요셉의 태도도 지나쳐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있든지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의 도움을 구하며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하나님께서 대신 해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하길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셉이 종의 신분으로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그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형통하게 하시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가정과 직장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충성된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할 때 인정과 사랑과 형통의 복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들이 잘 될 때는 넘어뜨리려 하는 악한 세력과 시험이 가까이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3)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되기 위한 시발점에서 시험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온지도 이제 10년이 되다보니 나이 27세로 어머니 라헬을 닮아서 외모가 준수하고 젊음이 넘치고 성실하다보니 주인집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합니다. 처음에는 눈짓으로 합니다. 남녀관계는 눈만 봐도 상대방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금방 알 수 있잖아요. 날이 갈수록 노골적으로 유혹합니다. 이제는 동침을 원한다는 신호까지 보냅니다. 그 시험을 이겨야 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욕죄는 자신과 싸워 이긴다는 것이 여기에 딱 맞는 말입니다. 이러한 유혹에 대해 요셉은 확실하게 거절을 합니다. 이집 주인이 이집의 모든 소유를 내게 다 맡겼지만 맡기지 않은 것은 당신뿐이니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까 하며 죄와 싸워 이겼습니다. 요셉이 이런 시험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이런 악을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악과 타협하고 하나님의 명백한 뜻을 떠나 본능적인 생각대로 행동하면 그것이 후에 더 큰 고난을 자초하게 됩니다. 죄악의 길과 하나님의 손길이 절대로 동시에 일하지 않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결국 어느 것을 더 신뢰하느냐에 따라 꿈이 이루어지느냐 아니면 물거품이 되느냐로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믿었고 반드시 그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었기에 그는 죄악의 길을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죄를 이기는 길은 믿음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로운 방법을 선택할 때 당장은 상황이 더 악화되고 더 망가지는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집요하게 요셉을 유혹하던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이 용무차 방에 들어왔을 때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이제는 요셉의 옷을 붙잡고 동침을 청했지만 요셉은 그녀의 손에 옷을 맡겨둔 채 도망쳐 나옵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욕망을 채우지 못한 보디발의 아내는 남편 보디발에게 말하길 저 히브리인 종인 요셉이 안방에 들어와서 자신을 겁탈하고자 했을 때 자기가 소리쳐서 이렇게 옷만 놓은 채 도망쳤다고 요셉의 옷을 보여주면서 말하니 결국 요셉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요셉이 또 한번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졸지에 주인집 아내를 겁탈하려다 미수에 그친 파렴치범이 되어서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감옥에 갇힌 죄수의 신세가 되버린 것입니다. 이 때의 상황을 시편105장18절에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들이 그의 발을 족쇄로 상하게 하고 그를 쇠안에 넣어 두되

쇠사슬에 꼼짝 못하게 매여 어두침침한 감옥에 던져지고 무거운 감옥 문이 철커덕 잠길 때 요셉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요셉같은 상황에서 유혹에 안넘어 가는게 이상할지 모르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주인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양심으로 이런 유혹을 물리친 것인데 그 댓가는 주인에 의해 옥에 같히는 것이었습니다.

다. 그렇게 의롭게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요셉에게 온 것은 부인을 겁탈할려고 하였다는 모함으로 인해 그는 왕의 죄수들이 갇히는 감옥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의롭게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남이 알아 주지도 않으며 더 힘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아멘. 왜 그럴까요?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가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요셉을 통해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즉 요셉이 몇 년전에 꾸었던 꿈 즉 형들의 곡식단이 자기를 향해 절한다는 것과 해와 달과 열한별이 자기를 향해 절한다는 그 꿈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바로 이 옥에서부터 시작이 되어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아십니까?

2. 요셉의 꿈 해몽

(1) 두 관원장의 꿈 해몽

억울하게 요셉이 옥에 같혀 있을 때 얼마 지나서 이번에는 왕의 신하 두 사람이 옥에 들어 왔는데 한 사람은 빵굽는 관원장이고 또 한사람은 술맡은 관원장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 두사람의 얼굴빛이 근심이 있는 모습이었다. 이유인즉 그들 두 사람이 같은 날 꿈을 꾸었는데 해몽을 하지 못해 근심하던 중 요셉이 그들의 꿈을 해몽하여 주었는데 술맡은 관원장은 요셉이 꿈을 해몽한 대로 사흘안에 복직이 회복되어 전에 하던대로 왕을 섬기게 되었고 빵굽는 관원장은 사흘안에 죽임을 당하였다는 것이다. 요셉의 꿈 해석은 하나님의 주신 해석이므로 요셉의 해몽대로 그처럼 정확한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꿈의 해석은 요셉이 앞으로 바로의 꿈을 해몽할 것을 예고하는 전초전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이 있은 후 만 2년이 지나서 이번에는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2) 바로의 꿈 해몽

어느날 밤 바로가 꾼 꿈은 보통 꿈이 아니었다. 꿈에서 본즉 자기가 나일강가에 서 있는데 살찐 일곱 암소가 강가에서 올라와 풀을 뜯어먹고 있었는데 뒤이어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올라와 살찐 일곱 암소를 잡아먹는 꿈이었다. 곧이어 다시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한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뒤이어 가늘고 마른 이삭이 나오더니 그 가는 일곱 이삭이 그 충실한 이삭을 삼키는 꿈이었다. 바로는 자기가 꾼 꿈으로 인해 번민하여 점술가와 현인들을 불러서 해몽해주기를 바랐는데 아무도 해석하는 자가 없었을 때 마침 요셉이 꿈의 해몽으로 복직된 술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요셉의 이야기를 합니다. 몇 년전 바로께서 우리를 옥에 가두었을 때 어느날 우리들이 하룻밤에 같이 꿈을 꾸었는데 친위대장 보디발의 종되었던 히브리 노예가 우리의 꿈을 해몽하였는데 그가 해몽한 대로 나는 복직하였고 그는 매달렸다고 말합니다. 이에 바로가 요셉을 부르니 요셉이 바로 앞에 나가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바로의 꿈이야기를 듣더니 그 꿈은 하나인데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바로에게 먼저 보이신 것이니 살찐 일곱 암소는 7년 풍년이고 파리하고 메마른 일곱 암소는 7년 흉년이니 애굽 땅에 일곱해 풍년이 있은 후 일곱해 큰 흉년이 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로께서는 지혜롭고 명철한 관리를 택하여 풍년 때 곡식을 창고에 보관하였다가 흉년에 대비하면 백성들이 굶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을 합니다. 이말에 바로는 감동되었고 그 자리에서 너처럼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내가 너를 이나라의 총리로 임명하니 누구든지 네 허락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여 그날 그 자리에서 요셉은 죄수의 옷을 벗은 후 총리의 옷을 입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바로의 반지를 요셉에게 끼워주니 요셉은 하루 아침에 명실상부 애굽의 총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3) 30세에 국무총리가 된 요셉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되었을 때 30세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41:46). 누가 히브리 노예인 30세의 젊은이를 애굽의 총리로 세웠겠는가? 인류역사상 노예신분인 이방인을 그것도 최연소 나이로 총리를 한 사람은 요셉말고 누가 있었을까?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을 요셉을 통해 이루어 주신 것이며 요셉에게 주셨던 꿈을 만민이 보는 앞에서 성취시켜 주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요셉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전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계획 속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3. 하나님의 섭리로 애굽에 왔다는 요셉

요셉의 형제들은 죄없는 요셉을 죽일려고 음모하였다가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 버린 후 늙은 아버지에게는 악한 짐승에게 잡혀 먹었다고 거짓말 하면서 여러 해를 보낸 그들은 죄의식에 고통스러웠고 마음 편안한 날 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 바로왕의 꿈을 해몽한 요셉은 그가 예언대로 풍년이 온 이후에는 애굽을 비롯하여 가나안 까지 흉년이 몰아닥쳤다. 야곱은 그 아들들에게 말했다. 어찌 앉아서 굶어 죽을 수 있단말이냐? 내가 듣기로는 애굽에 가면 양식을 사올 수 있다는데 가서 사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애굽에 갔고 애굽의 총리로 있는 요셉을 만나게 되는 것으로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는 실제상황이 벌어집니다.

애굽에 곡식사러 갔을 때 그들은 애굽총리인 요셉에게 엎드려 절하면서 곡식사러 왔다고 할 때 요셉은 자기가 소년이었을 때 꾼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 형제들을 한눈에 알아 보았지만 그들은 애굽의 총리가 자기들이 노예로 팔아버린 요셉인 줄 전혀 몰랐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셉은 그 형제들이 자기의 아버지를 정말 공경하고 있는가를 시험한 후 자신이 당신들이 팔아버린 동생 요셉이라고 밝히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합니다.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앞서 보내셨나이다. 계속하여 말합니다. 이땅에 흉년이 끝날려면 아직도 오년이 남았으니 하나님이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곳에 보내신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이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총리로 세우셨으니 지체하지 말고 아버지와 아버지께 속한 가족들이 이리로 내려와 흉년의 때를 면할 것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이곳에 노예로 팔려온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섭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것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은밀한 활동을 말한다. 요셉은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흉년의 때를 대비하여 이스라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형들로 하여금 요셉을 애굽에 팔도록 한 것이라는 것이다(37:28). 따라서 요셉을 애굽에 보낸 것은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요셉의 생애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4. 요셉의 생애중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요셉의 증언을 통해 형들이 요셉을 이곳에 노예로 판 것은 요셉이 꾸었던 꿈을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닥쳐 올 흉년을 대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형들을 통해서 자신을 노예로 팔도록 역사하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요셉은 형들앞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는 은혜를 베풀기 위해 하신다는 것이다. 은혜란 거저 주시는 구원을 말합니다. 어떤 구원입니까 흉년으로부터 굶지 않고 구원하시는 것을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를 행하시기 위해 택함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택함 받지 못한 사람들까지도 사용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기 위해 형제들과 미디안상인들을 이용하셨고 요셉을 총리로 앉히기 위해 주인 보디발의 아내와 술맡은 관원장을 만나게 하셨고 그리고 바로에게 특별한 꿈을 꾸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들이 깨닫지 못하는 세밀한 부분까지 진행되며 그 대상은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섭리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수년전에 꾸었던 꿈을 통해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을 보고 애굽으로부터 곡식을 가지고 와서 아버지에게 요셉이 부탁한 것을 다 전합니다. 야곱은 요셉이 살아있으며 그것도 애굽의 총리로 있다는 말을 들었 때 얼마나 기뻤을까?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45:28). 이제 죽어도 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셔서 오늘 이처럼 자기 생애 중 가장 복된 소식을 듣게 하니 하나님께 뭐라고 감사의 말을 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히브리노예인 요셉이 고대문명이 화려하게 꽃피웠던 이집트의 총리가 된 4천년전 이야기가 정말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요.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1) 요셉이 애굽총리가 되었다는 증거

2009년 9월 25일 이집트에서 요셉이 살던 시대의 많은 동전들이 발굴되었다는 뉴스가 보도 된 것을 기억하는 분들 있을지 모릅니다.

실제로 일부 동전에는 성경대로 요셉의 이름과 그의 초상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이집트에서 창세기의 요셉에 대한 증거를 발견할 수도 있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The Jerusalem Post. 2009. 9. 25).

예루살렘 포스트(Jerusalem Post)지는 이집트에서 성경에 등장하는 요셉의 이름과 형상이 새겨진 동전(coins)들이 발견되었다고 보도하였다. 그 뉴스는 이집트의 알-아흐람 신문이 보도했던 것으로, MEMRI(2009. 9. 24. 동전들을 볼 수 있음)에 의해서 번역되었다. 연구 팀의 리더인 무하마드 타베트(Sa‘id Muhammad Thabet)는 요셉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던 동안에 여러 지하실에서 5백여 개의 동전들 을 발견했다. 그 동전들은 사실상 둥글었는데(또는 거의 원형), 한 쪽 면에는 문자가, 다른 쪽 면에는 형상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동전의 문자가 새겨져 있는 면은 이집트 이름, 날짜, 값어치가 새겨져 있었고, 반면에 다른 쪽 면은 이집트 파라오의 얼굴 형상과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또한 유사한 동전들이 여러 고고학적 장소들에서 발견되어져 왔는데, 동전들은 이집트 역사의 여러 시대들의 것으로 평가되어졌는데, 매우 흥미로운 것은 창세기 41장의 기록과 일치하는 한 동전이었다. 그 동전에는 ”바로가 꿈에서 보았던 살진 일곱 암소와 파리한 일곱 암소들을 상징하는 한 암소의 형상과 충실한 일곱 이삭과 마른 일곱 이삭에 대한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연구자들은 동전에 새겨진 문자들을 해독할 수 있었는데 판독해보니 요셉의 이미지 뿐만 아니라 요셉의 이집트식 이름을 판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고학자 타베트 박사는 동전 앞 뒤에 서로 다른 두 가지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앞 면에는 요셉, 뒷 면에는 사브낫바네아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만약 타베트의 연구가 정확하다면, 우리는 창세기 역사의 사실성에 대한 또 하나의 매력적인 증거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제 계속되는 고고학적 발견들로 창세기 기록의 신뢰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41장4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고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의심할 여지없이 요셉의 이야기는 실제임이 입증된 것이다. 다만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이룬 성공이야기 속에서 고난만 좀 빠져 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에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게 고난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고난 중에도 도우시고 마침내 뜻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바라는 우리에게 믿음과 용기를 더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5. 요셉의 꿈이 주는 교훈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가족들을 구할 지도자로 형제 중에 요셉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그것을 알아 차리도록 어린 시절 곡식단들이 자기에게 절하고 그 후 꾼 꿈에서는 별들과 해와 달까지 자기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실은 그 꿈으로 형들에 의해 미움을 받고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요셉 뿐 아니라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꼭 맞는 인생 계획을 갖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에게 꿈을 주셨듯이 우리에게도 어렴풋이나마 이 꿈의 그림을 마음에 그려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모르는 새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 꿈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부모라면 자녀들이 장차 어떤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 갖게 됩니다. 부모는 그래도 자기 자식에 대해 장단점을 제일 많이 알고 재능도 잘 압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자식들이 그 꿈을 갖도록 은근히 강요도 하기 마련입니다. 자식들이 커지면 대개 자기 주장이 생기며 부모와 충돌하게 되는 일이 많이 있지요. 우리가 부모라도 판단이 불완전하고 자녀들은 아직 어려 편한 길을 원하니 자녀들 인생이 대개는 부모가 원했던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향해 가지신 꿈은 실수가 없고 잘못 판단 할 수가 없는 줄 믿습니다. 내게 가장 알맞은 인생과 일을 하나님은 이미 계획해 두셨고 거기에 맞는 재능과 성격과 환경도 주셔서 이 땅에 보내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주신 능력으로 꿈을 성취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이 최우선의 꿈이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 수 있는 영광의 기회를 주시 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일찍이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꿈을 통해 깨닫고 그 꿈을 주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습니다. 환경과 여건이 불리하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따라간다면 반드시 성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도 반드시 목회에 성공할 것을 소망하며 달려가고 있으니 우리 성도님들도 반드시 경영하는 모든 일에서 성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요셉은 모든 역경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주님이 주신 위대한 계획을 성취할 수 있었던 줄로 믿습니다. 우리 가는 길이 힘들고 고될지라도 이것을 이기고 마침내 축복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는 시간이 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은 한 분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1)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강영우 박사

어느 날 영양실조에 누렇게 뜬 14살 소년이 교회를 찾아 왔다. 다 닳아빠진 얇은 옷을 입고 벌벌 떠는 소년의 손에는 까치집 처럼 지저분한 머리에 콧물을 질질 흘리는 여동생이 붙들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소년이 시력까지 잃어 거의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라는 걸 알았다. 그 소년은 교회가면 눈을 뜰 수 있다는 소망을 갖고 나왔으나 눈을 고치지 못했지만 교회에 다니면서 영적인 눈이 뜨이게 되어 그 소년은 결국 하나님의 손을 잡고 그 꿈을 쫓아 미국으로 건너가서 꿈을 이루었는데 그는 장애인으로서 부시대통령 때 최초로 백악관 정책차관보가 되었던 강영우 박사님입니다.

1975년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어느 날 미국 전 법무장관 손버그는 우산을 쓰고 하얀 지팡이에 간신히 의지해 학교로 향하던 낯선 한국인 `맹인’ 유학생을 차에 태워주게 됩니다. 그날 그들의 30년 우정이 시작되었고 그가 강영우박사를 부시대통령에게 추천 해 백악관 차관보에 오르게 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한국인으로서 미국정부 최고 고위직까지 오른 분이 아닌가 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역경 속에 이겨나갈 방법과 도움의 손길도 예비하시는 줄 믿습니다.

혹시 내겐 꿈이 없다고 말하지 않길 바랍니다. 이런 분도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고 나를 복된 인생으로 설계하셨다는 것을 믿고 우리가 더 나은 인생을 꿈꾸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은 어떤 형태이든 축복 된 인생을 우리들에게 계획하신 줄 믿습니다. 꿈을 갖고 있는 사람과 갖지 않는 사람들은 미래에 가보면 분명 차이가 납니다.

한 세상 살아가면서 자신의 인생목표를 구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차이점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꿈이 있으면 꿈을 이루기 위하여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되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선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 꿈은 더 확실하게 더 위대하게 이루어 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물며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비전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룰 때까지 노력한다면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2) 주님안에서 꿈은 이루어 진다

요셉을 이야기 할 때 꿈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요셉이 가나안의 헤브론골짜기에서 살면서 어떻게 이집트의 총리가 될 수 있었고 꿈을 꾼 그대로 그 형제들이 자기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을 볼 수 있었겠습니까? 이는 오직 하나님이 주셨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어떤 고난이 와도 그 고난을 극복하고서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 줄 믿습니다.

지금 내 처지가 바라는 것을 이룰 아무 조건도 갖추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는 내가 꿈꾸는 것을 이루실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무작정 사는 삶에는 더 나은 소망이 없습니다. 기도하며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을 묻고 미래의 그림을 그리면서 믿음으로 전진한다면 반드시 그 꿈은 이루어 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정을 위한 성공적인 꿈을 꾸시길 축복합니다. 우리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있음을 믿고 기도로 축복하시길 바랍니다. 인생은 그럭저럭 살아가는 게 아님을 갈수록 느끼실 것입니다. 꿈을 갖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밥먹기 살기도 힘겨운 세상입니다.

교회도 가정도 우리 자신도 꿈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길을 묻고 매일 인도를 구하십시오.

반드시 우리의 길을 비춰주시고 안개와 같이 불투명한 미래에 우리가 좇아 갈 축복 된 꿈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 비전을 받아 하나님의 도우심을 따라 요셉과 같이 꿈을 이루시는 성도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6 고난없는 영광은 없다

우리가 조금만 남에게 오해를 받아도 잠 못이루고 가슴이 진정이 안되는 데 억울한 누명을 쓴 요셉의 심정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이 이런 억울함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얼마 전 40년만에 살인 누명을 벗게 된 정원섭목사 이야기가 보도되었었죠. 살인누명 40년… 옥살이 15년… 77세에 무죄

그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박정희대통령이 5.16혁명 직후 정목사님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가락동에서 전도사생활을 시작했다. 그 때 여름성경학교 현수막을 직접 제작했는데 주제가 모여라 동무야 여름성경학교로 였다. 동무라는 말 때문에 다음 날 파출소로 불려가서 취조를 받고 왕십리 분소로 끌려가 엄청나게 매를 맞고 풀려났다. 지금같아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그 충격으로 전도사생활을 접고 한 동안 사진 활동만 했다.

그 후 돈을 벌어 목회를 하기 위해 춘천으로 가 만화가게를 시작했다. 당시 TV가 흔치 않아서 시청권을 팔고 아이들에게 여로란 드라마나 동물의 세계 같은 인기있는 프로그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의 경찰서장의 열 한살 먹은 딸이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공교롭게도 아이의 주머니속에서 만화가게의 시청권이 나온 것이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박정희대통령은 이런 악질적인 범죄는 뿌리를 뽑아야 한다며 정해 놓은 시한 내에 반드시 범인을 잡으라고 지시합니다. 당연히 정목사가 용의자로 잡혀가게 되었죠. 그리고 온갖 폭행과 고문을 견디지 못해 5일 만에 거짓 자백을 하게 됩니다. 범인의 혈액형이 A형이라 판명 되었는데도 B형인 목사님을 범인으로 확정하고 무기형이 선고된 것입니다. 1973년 3월 30일 강간치사·살인 혐의로 무기징역 선고 받고 그러나 목사님은 감옥 안에서 죄수들에게 검정고시 공부도 가르치며 모범수로 생활하다 모범수로 20년 감형 이후, 15년 7개월 8일을 복역하고 1987년 12월 24일 성탄 특사로 석방, 이후 20년 동안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외로운 싸움 끝에 2008년 11월 28일 춘천지방법원서 무죄판결을 받습니다.

참으로 긴 세월이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 아닌지? 방금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고 말한 것 맞지?” 27일 오후 2시 반 무죄 확정 판결을 받고 대법원 1호 법정 밖으로 나온 정원섭 씨(77·목사·사진)는 변호사와 지인들의 손을 잡은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1972년 10월 파출소장의 딸을 살해한 범인으로 지목돼 15년간 옥살이까지 했다가 39년 만에 누명을 벗은 그의 입술은 감격과 회한으로 떨리고 있었다.

정말 인생에서 이런 덫에 걸리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이런 일도 벌어질 수 있는 게 인생인가 봅니다. 이런 상황이 오늘 요셉에게 닥친 것입니다. 요셉의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옥에 갇히게 된 것이야 말로 분명히 절망은 더 깊어지고 환경은 더 어려워진 것 같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곳으로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옥에서 만난 왕을 모시던 두 관원장 꿈을 해몽하였던 것이 훗날 바로의 꿈을 해몽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되어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되고 마침내 애굽의 총리에 오르게 되며 그의 꿈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 가장 빨리 꿈을 이루는 지름길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 방법이 아니라면 언제 요셉이 애굽에 유학 와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고 진급시험을 보고 등용되어 언제 총리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모든 고난을 통해 요셉을 속성으로 훈련시키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혹독한 시련 가운데 있다하더라도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이 고난은 우리를 연단시켜 반드시 더 나은 축복의 길로 인도하실 줄을 확신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고난이 주는 의미가 너무 많아 때마다 원인도 다르고 목적도 다릅니다. 확실한 것은 모든 고난은 우리의 영혼과 인생에 유익을 주기 위해 허락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감당할 못할 고난을 주시지 않으시는 분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요셉이 어떻게 이런 고난을 이겨냈을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물론 우리 하나님의 은혜죠. 하나님은 절망 중에 우리가 쓰러져 있는 자녀들을 죽게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을 의지해서 낙망하지 않고 견디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은 주님과의 교제에서 나옵니다. 알지 못하는 대상을 절대로 신뢰할 수 없는 것이죠. 요셉이 혹독한 시련 가운데 절망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는 교제가운데 있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요셉이 고난 중에도 하나님과 깊이 교제했던 것을 어디서 알 수 있습니까? 창40: 8절에서 요셉이 관원들에게 해석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 아니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그 꿈들을 고하소서 라고 당당하게 얘기하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없다면 뭘 믿고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과의 교제는 성경 말씀을 통해 듣고 기도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이런 신령한 지혜와 명석함도 주시는 줄 믿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소홀하면 삶에 대한 판단력도 흐려지고 미래도 더욱 막막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발에 등이요 빛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꾸준히 읽으며 기도를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성도들에겐 어느 덧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남다른 지혜와 통찰력이 생깁니다. 학력이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매일의 경건을 통해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의 지혜와 통찰력과 능력이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요셉이 얼마나 예지력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는 죽을 때 유언하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이스라엘백성들을 가나안으로 돌려보내실 것이니 그 때 자기의 유골을 메고 가나안에다 안장해 달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인류 구원의 그림을 보고 있었고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켰다. 요셉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룰 수 있었고 결국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인도하심처럼 출애굽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애굽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요셉의 해골은 출애굽과 함께 애굽을 떠났다(출13:19). 죽음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을 사모했던 것 같다. 성경 창세기는 요셉의 죽음으로 마무리했고 출애굽은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는 애굽의 왕들로 시작되었다. 여호수아서의 마지막도 요셉의 뼈를 가나안에 매장한 것으로 마무리된다. 정말로 요셉이야 말로 성경에서 너무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다. 정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품고 끝까지 인내하며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다 보면 꿈은 이루어 진다는 것을 요셉의 생애를 통해 알게 되었다. 고난가운데도 혹은 우리의 평범한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가 문제의 열쇠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을 가지시길 부탁합니다. 어려운 환경과 시련의 인생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이 모든 두려움과 고난을 이기고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믿음을 갖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곧 주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곧 때가 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만 고난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여러 가지 모양으로 닥치는 시련의 의미를 다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지만 시편119장71절은 고난받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리고 로마서8장 18절의 말씀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 성도님들이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뜨거운 교제를 더욱 사모하며 지혜와 총명으로 모든 시험을 이기시고 꿈을 이루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89강) 요셉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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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5.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설교>

야곱의 족보는 요셉 이야기로 시작되고 요셉의 이야기는 요셉의 꿈으로 시작합니다. 요셉이 꿈을 꾼 것은 요셉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것입니다. 즉 요셉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고자 하신 것이 요셉의 꿈이 지니고 있는 의미이고 요셉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도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가령 야곱이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갈 때나 하란에서 돌아올 때 꿈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도 역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것입니다. 따라서 꿈을 꾸었다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께 어떤 증거를 받은 것처럼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계시가 완결된 지금에 있어서는 꿈이 계시 전달의 방편으로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꿈은 하나님의 계시라는 미명 아래 교회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기도 합니다. 꿈을 통해 하나님께 직통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이 등장하는가 하면 꿈을 하나님의 뜻과 연결하여 해석하고 해석해 줌으로써 결국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과 계시에 대해 큰 오해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지금의 시대에 꿈은 하나님의 계시와 무관합니다. 따라서 어떤 형태의 꿈이라 해도 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임을 잊고 있는 것이고 자기체험에 매몰되는 잘못된 신앙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요셉의 꿈을 비전(vision)으로 연결하여 말하기도 하는데 그 또한 성경과 무관한 말일 뿐입니다. 비전의 의미를 가진 꿈은 ‘실현시키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요셉에게 평소 형제들의 절을 받는 위치에 있고자 하는 비전이 있었기에 그런 꿈을 꾸게 된 것입니까? 누구든 요셉의 꿈을 이런 의미로 이해하고 말한다면 그는 성경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고 오직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 자신의 말을 하는 자일뿐입니다.

요셉이 꾼 꿈은 두 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요셉이 형들과 곡식 단을 묶고 있을 때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그 꿈을 요셉이 자신들의 왕이 되고 다스리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더욱 미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꿈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야곱과 형들에게 말하자 야곱이 요셉을 꾸짖으며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과연 요셉의 꿈대로 되어졌을까요? 형들이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갔을 때 국무총리가 된 요셉에게 절을 한 적은 있지만 야곱이 절한 것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그 명단에 이름이 없는 것을 보면 야곱의 부인들은 애굽으로 가기 전 이미 죽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과 야곱의 부인들은 요셉에게 절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때문에 요셉의 꿈은 단순히 요셉이 국무총리라는 높은 자리에 앉아서 부모와 형제를 다스리게 된다는 의미는 아닌 것입니다.

요셉의 꿈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야곱의 축복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 27:29절을 보면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

야곱의 형제는 에서뿐인데 형제들의 주가 된다고 축복하는 것은 이 축복이 야곱 개인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즉 요셉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에게 하신 약속에서도 드러납니다.

창 35:10-12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 역시 야곱이 이룰 축복의 내용으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시겠다는 약속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약속을 주신 것은, 야곱 때에는 복을 받기 위해 자신의 힘과 수단을 동원하는 속성으로 살았다면, 이스라엘의 속성은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을 이루심을 믿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셉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을 증거 하는 역할자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절을 하게 되는 것은 사회적 지위가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요셉에게서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보게 됨으로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요셉만을 본다면 요셉을 미워할 수밖에 없지만 요셉을 세워서 행하신 하나님의 일을 본다면 요셉에게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셉의 존재 의미이며 오늘날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의 힘으로 뭐가 이룰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신자는 그 같은 사실을 자신의 삶에서 깨닫고 확인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장담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헌금하겠습니다’‘주일지키겠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전부가 내 뜻과 힘으로 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하고 교회를 나오고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하나님이 그러한 여건과 형편을 허락하신 결과이지 우리의 뜻과 의지의 결과가 아닌 것입니다.

요셉의 꿈에 대한 형들의 반응은 요셉을 더욱 미워하게 되는 것이었고 야곱 또한 화를 내었습니다. 어린 요셉에게 모든 가족이 절을 하게 된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고 부모와 형으로써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우린 이러한 반응에서 오늘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대한 세상의 반응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계시라고 했습니다. 아마 요셉도 야곱도 형들도 요셉의 꿈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요셉의 꿈이 하나님의 계시라고 말해줬다면 꿈의 내용을 받아들였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꿈 내용 자체가 형들에게 불만이었기 때문에 설사 계시라는 말을 들었다 할지라도 인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반응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 그대로 증거 되었을 때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반응은 반발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로 드러난 인간의 본래 모습입니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며 지금까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모든 삶을 부정할 때 반발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말씀 그대로 증거 되면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십자가이며 따라서 예수님을 못 박은 자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을 꾼 것으로 인해서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버림을 받아 애굽으로 종으로 팔리게 되고 그곳에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는 등 고난을 받다가 국무총리가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요셉의 인생에서 국무총리가 되었다는 사실에만 관심을 둡니다. 고난을 받았으나 꿈의 내용대로 절을 받는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요셉의 인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계시가 우리를 고난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계시를 미워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를 품고 살아간다면 당연히 고난을 받게 됩니다. 즉 십자가를 믿는 신자가 예수님이 가신 그 길로 가고자 하는 것 자체가 고난인 것입니다. 이 길을 세상의 복으로 희석시키고자 한다면 그가 바로 거짓선지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믿음의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꾸는 꿈이라는 것 자체가 헛된 것일 뿐입니다. 믿음의 길은 우리가 원하는 꿈이 버려지고 대신 하나님의 계시에 마음에 붙들리고 계시가 이끌어 가는 길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길을 소망하며 그 길에 순종하게 되기를 소원하는 그가 하나님의 계시에 순종하는 신자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이러한 순종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하나님의 계시가 그 속에 살아있는 신자에게만 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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