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과 바다 해석 | 노인과 바다 : 이 단순한 소설이 세계적인 명작이 된 이유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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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고기를 잡았다가 상어떼에게 다 뜯겼다.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입니다. 이 단순한 줄거리의 소설, 노인과 바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최고 소설 중의 하나이며, 헤밍웨이가 퓰리처상,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이유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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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에서 찾는 인간 내면의 가치: 산티아고와 마놀린에 …

문학 작품의 해석은 독자들의 배경지식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데, 독자들의 삶의 모습이 모두 다른 만큼 그들의 지식과 생각도 모두 다르기 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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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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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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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0/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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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해설하며—. – 다음블로그

도서 출판 <하서>에서 명작 시리즈를 내면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최근 출간하였습니다. 출판 기획 중에 해설을 부탁하여서 몇 자 보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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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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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 작가소개 / 결말포함 줄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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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순한 소설이 세계적인 명작이 된 이유 인기 답변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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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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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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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 이 단순한 소설이 세계적인 명작이 된 이유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노인 과 바다 해석

  • Author: 시한책방 Sihan Books
  • Views: 조회수 113,44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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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8. 1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ddY-Ny0fwYw

‘노인과 바다’에서 찾는 인간 내면의 가치: 산티아고와 마놀린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1952)는 85일간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하다 엄청난 크기의 청새치를 건져올리는 데 성공하지만 그것을 상어에게 모두 빼앗기고 마는 한 노인의 이야기이다. 많은 평론가들은 이 작품에서 인간의 욕망과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한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을 찾아볼 수 있으며, 긍정적인 사고와 희망 역시 이 작품의 중요한 테마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노인에게서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인간의 노력과 희망의 중요성을 찾아내며, 작품의 교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년을 비롯한 노인 외의 다른 인물들의 역할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이 해석은 ‘노인과 바다’의 작품 전반에 드러난 주제의식을 고려해 볼 때 타당하다. 그러나 다른 문학 작품들처럼 ‘노인과 바다’ 역시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문학 작품의 해석은 독자들의 배경지식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데, 독자들의 삶의 모습이 모두 다른 만큼 그들의 지식과 생각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처럼 나 역시 이 작품을 일반적 해석과 다소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였다. ‘노인과 바다’의 전개를 이끌어나가면서 작품의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두 주요 인물, 산티아고와 마놀린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1) 산티아고

산티아고는 여느 노인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어부이다. 이는 그가 젊은 시절부터 ‘쿠바의 도시 하바나에 있는 작은 어촌’에서 어업에 종사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산티아고의 이러한 평범함은 작품의 의미를 더욱 배가시킨다. 작품이 평범한 인물에 의해 평범한 삶 속에서 전개되는 만큼, 작품이 주는 교훈이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가 평범하기 때문에 그가 겪는 일들이 역설적으로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범인(凡人)들처럼 보잘것없어 보이고 그의 긴 삶 동안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불운에 체념하지 않으며,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에도 개의치 않는다. 자신을 조롱하고 심지어 ‘운이 다한 사람’으로 단정짓는 이웃들을 원망하거나 야속해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에 대해 수군거리는 마을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그의 조수였던 소년 마놀린이 부모님의 요구 때문에 그를 떠난다고 했을 때 그가 한 말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아이는 부모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그러니 내 생각 하지 말고 부모님의 말씀에 따르거라.”고 말하면서 마놀린에게 서운해하는 대신 그의 입장을 이해한다.

산티아고는 계속되는 고통과 시련을 인내하며 자신을 믿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마침내 그의 기다림은 그에게 그의 배보다도 더 큰 청새치라는 결실을 맺는다. 노인은 이를 ‘행운’이라고 일컫지만, 사실 그가 큰 청새치를 낚아올린 것은 그의 인내와 끈기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는 상어의 습격과 뼈만 남은 청새치라는 더 큰 시련을 겪는데, 이때도 그는 뭇 사람들처럼 좌절하거나 신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인 채 다음 번 고기잡이를 위해 쌓인 피로를 달래야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이처럼 산티아고는 자기 자신에 대한 굳은 믿음을 바탕으로 어려운 상황을 꿋꿋이 견뎌내는 끈기, 열정, 그리고 인내의 소유자이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옳다는 신념 아래 물질적 빈곤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힘쓴다. 그를 편안하게 하는 꿈 속 행복한 사자들의 웃음과 아프리카의 바다에서 파도 소리가 그의 이러한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작품에 드러나 있듯이 사자와 바다 꿈, 즉 그가 추구하는 내면적 성숙은 그가 고된 하루를 보낸 후에도 웃을 수 있고 다음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2) 마놀린

마놀린은 산티아고의 어구(漁具)를 손질하고 그에게 미끼를 가져다주는 등 산티아고의 낚시를 돕는 조수이다. 그는 가시적 성과를 원하는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산티아고보다 고기를 더 잘 잡는 다른 낚시꾼의 배에 탐으로써 현실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산티아고의 마음가짐을 이해하며, 초라한 외면에 가려진 산티아고의 훌륭한 내면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래서 마놀린은 내면적 성숙을 이룬 산티아고를 역할 모델(role model)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산티아고가 배를 곯지는 않는지, 아픈 것은 아닌지 늘 걱정하면서 그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현하고, 진심어린 존경심을 담아 산티아고와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다.

또 마놀린은 산티아고와 공감하면서 그와 뜻을 같이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마놀린이 현실적 이유로 산티아고의 배를 떠나 다른 배를 타야 하는 상황에서도 산티아고를 생각하면서 그를 따르고 그를 돕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마놀린은 자신이 타고 있는 배에서 거둘 수 있는 더 큰 물질적 성과의 유혹에 빠져 산티아고를 등한시하지 않는다. 그는 노인이 추구하는 내면적 가치가 그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하고 본질적인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놀린은 현실적 삶을 살아가면서도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망각하지 않고 항상 되새기는, 산티아고에 버금가는 ‘된 사람’이다. 이것이 마놀린이 스스로 ‘노인과 바다’의 주제의식을 표현함은 물론 산티아고의 아름다움을 더욱 구체화·극대화할 수 있는 이유이다. 노인을 우러러보는 마놀린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산티아고의 성숙미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놀린은 노인의 초라한 겉모습과 그를 비웃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 가려진 산티아고의 훌륭한 내면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산티아고는 그가 겪는 고난과 역경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으면서 꿋꿋이 자신의 내면을 가꾸고 있으며, 마놀린은 산티아고의 훌륭함을 부각시킴으로써 산티아고가 걷고 있는 일이 참된 인생의 길임을 분명히 한다. ‘노인과 바다’는 인간의 열망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의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의 힘뿐만 아니라 내면적 성숙의 아름다움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노인과 바다’의 이러한 의미들은 사실 인간의 삶 그 자체를 함축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각자의 이상을 품고 있으며, 살아가면서 도전과 실패, 시련의 극복과 새로운 도전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노인과 바다’를 읽은 후 산티아고처럼 훌륭한 내면을 갖고 마놀린처럼 서로의 장점을 부각시키면서 함께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 그것이 헤밍웨이가 진정 바라던 것이 아닐까.

하늘이와 소풍을, 함께 니르바나의 바다로

도서 출판 <하서>에서 명작 시리즈를 내면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최근 출간하였습니다.

출판 기획 중에 해설을 부탁하여서 몇 자 보탰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라는 뜻에서 일부를 여기에 그림과 함께 올립니다.

저자의 전반적 문학세계와 일대기도 첨부되어 있습니다.

책이요?

번역도 좋고 참 잘 만들었군요—^^.

퓰리처상 수상작품이며 헤밍웨이가 노벨상을 받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현대의 고전, <노인과 바다>를

읽으며 처음부터 재미를 느낀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인터넷 시대에 난무하는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 콘텐츠의 박진감 넘치는 줄거리에 도취한 젊은이들이라면

이 작품의 가치에 회의가 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이 드라마틱한 쇼크로 가득하지 않고 삶의 가치는 대체로 오리무중이듯이, 진정한 문학 작품은

순전히 재미 위주로 사람을 몰아가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애매한 상태로 존재하는 삶의 가치체계를 함께 진득이 근심한다는 듯이 위대한 문학은 느리게,

그러나 차분하게 우리를 사유의 큰 바다로 이끌고 나아간다.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가 바로 그러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실은 “깊이 생각하고 느끼는 만큼” 세상은 우리에게 그 참 모습을 드러낸다.

<노인과 바다>가 위대한 고전 작가들의 대 로망에 비하여 조금 짧은 중편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있을 수 있다.

작가가 만년에 완성코자 했던 “해양 3부작”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미완의 원고로 남았다고 보는

평론가들의 추측은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그런 사연 때문에 바다라고 하는 거대한 자연 속에서 분투한 주인공 어부의 모습이 훼손 될 이유는 없다.

‘파괴될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다’는 노인의 불패 정신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초극할 수

있는 용기를 주며 인간 승리의 철학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때로 삶이란 인간에게 허무의 모습으로 나타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서 인간은 초라하게 살아갈 이유나 권리가 없다.

오로지 행동하는 자세로 인간조건을 초극해야 한다고 헤밍웨이는 메시지를 보낸다.

왜냐하면 인간은 존엄하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헤밍웨이도 생애를 통하여서 상승과 하강, 승리와 좌절의 곡선을 그으며 살았다.

특히 만년에 저작한 <강을 건너 숲으로>는 독자와 비평가들로부터 매우 냉담한 반응을 받았다.

그러나 단지 2년 후인 1952년에 <노인과 바다>가 나오자 큰 반향을 받으면서 창작의 활력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 작품으로 그해의 퓰리처상을 받고 그다음 해에 노벨상을 받는 바탕이 되었다.

중편 소설 분량의 이 작품은 플롯도 쿠바의 늙은 어부 산차고(Santiago)의 삶 속에서 생긴 복잡하지 않은 하나의

사건에 토대를 두었을 따름이다.

등장인물도 이 늙은 어부와 그를 따르는 소년 마놀로(Manolo)만 집중적으로 묘사 될 따름이다.

산차고 노인은 84일간이나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 마침내 행운이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안고 그는 이른 새벽에 쪽배를 저어 하바나 항을 떠난다.

이제껏 그나 다른 어부들이 감히 나가지 못했던 먼 바다로 그는 나갈 작정을 한다.

큰 물고기를 낚아서 돈도 많이 벌고 그동안 구겨진 인간적 체면도 회복하기를 꿈꾸며 그는 배를 저어 나아간다.

마침내 노인은 거대한 마알린을 낚게 되지만 이 물고기는 작은 쪽배를 끌고 먼 바다로 마구 도망쳐 달린다.

물고기는 좀체 바다위로 올라오지 않지만 노인은 쪽배를 끌고 가는 속도와 힘으로 보아 이 녀석이 예사롭지 않은

존재임을 파악한다.

이틀이 지난 후 마알린은 마침내 자신을 잡고 있는 낚시를 잡아챌 심산으로 바다 위에 높이 솟아오른다.

노인은 평생 닦아 온 힘과 기술과 꾀를 다하여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데 자신과 대적하는 이 물고기가 밉지않고

오히려 선의의 경쟁자처럼 정이 느껴진다.

사흘째 되던 날 마알린은 힘이 빠져서 쪽배 주변을 빙빙 돌고 산차고 노인은 물고기를 배 가까이로 끌어당길 수

있게 된다.

드디어 물고기가 배 옆으로 오자 노인은 작살로 찔러서 죽이며 미안해한다.

그는 쪽배 보다 거대한 물고기를 마침내 뱃전에 묶어서 돌아가는 데, 상어 떼가 들이 닥쳐서 노인의 필사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마알린의 살점을 모두 뜯어 먹는다.

쪽배가 해안에 당도했을 때는 오직 마알린의 뼈만 남아있을 따름이다.

노인은 돛을 어깨에 짊어지고 언덕을 비틀거리며 올라가서 자기의 오두막집 으로 들어가 잠이 든다.

이 작품에 나오는 노인의 이야기는 작가의 성숙한 비극적 인생관을 표출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삶에 대한 비극적 비전 못지않게 긍정적인 가치와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헤밍웨이는 우리의 삶 속에 있는 사악과 변덕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우주의 원초적 생명력에 경의를 표하고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공동체 의식을 통감한다.

비록 산차고 노인은 물고기를 죽이고자 하지만 물고기에 대한 존경심을 느끼며 훌륭한 적수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과 존경의 연대감을 느낀다.

인간과 물고기 사이의 투쟁은 경이감과 동정심을 자아내는 정정당당한 시합이다.

상어가 공격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이 고개를 드는 것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노인은 물고기에게

사과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러나 노인과 마알린이 악에 의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패배자만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기에 함께 승자이기도 한 것이다.

<노인과 바다>는 도덕이나 종교적 원칙을 함축하고 있는 우화의 일종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성서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도덕적 설교를 우화의 형식으로 표현 하였다.

이럴 때는 자질구레한 설명적 요소는 절제된다.

그러므로 문체상으로 보아서도 이 작품은 성서의 우화와 매우 비슷하다.

평소 헤밍웨이가 쓰던 흔히 ‘하드보일드’ 기법이라고 하는 매우 간결한 표현기법과 구문의 특징이

이 작품에도 아낌없이 투영되어서 성서 속 우화와의 유사성이 더욱 돋보인다.

인물 묘사도 스케치처럼 절제되어있고 사람의 이름도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바다에서 거대한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노인은 외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육지에 있는 인간과 끈끈히 연결되어 있다.

우선 마놀로라는 이름의 소년이 있다.

이 소년은 그의 부모로부터 노인과 함께 배를 타는 것이 금지되어있다.

왜냐하면 이제 운이 다한 노인과 함께하면 소년의 운도 다 할 것이라는 부모의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끝에 가서 소년은 자기의 스승인 이 노인과 재결합한다.

소년의 생각에 이 스승은 너무나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이기 때문이다.

소년은 노인에게 먹을 것과 약을 갖다 주면서 어부이자 영웅인 노인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는

것이다.

헤밍웨이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심지어 존경까지 받는 인물들이다.

다른 작품에서는 사랑을 표하는 사람들이 여성이라면 이 작품에서는 그 인물이 소년이다.

이제 인간관계에서의 사랑이 남녀간의 관계가 아니라 세대를 잇는 승화된 유대감이며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력의 끈으로 대치된 것이다.

노인은 결혼생활도 원만했었으나 이제 부인은 죽고 없다.

그가 사는 언덕의 오두막집에는 예수의 상과 성모 마리아의 상이 걸려있다.

이것들은 모두 부인의 유물이다.

한때는 벽에 부인의 빛바랜 사진도 있었으나 이제는 떼내어서 붙어있지 않다.

그림을 볼 때마다 노인은 너무나 부인 생각이 나서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 이었다.

이제 그 사진은 노인의 깨끗한 셔츠 밑에 보관되어 있다.

산차고 노인은 과거와도 깊은 유대감을 갖고 있다. 젊었을 때 그는 힘이 장사였다.

이제는 전설이 된 팔씨름에서 그는 경이적인 힘을 가진 도전자를 꺾은적도 있다.

이제 그는 오래전에 뱃전에서 보았던 아프리카 해안의 사자를 꿈속에서 본다.

노인이 꿈속에서 본 사자 이야기를 하면 소년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듣는다.

사자의 꿈은 수많은 상징의 뜻을 갖고 있다. 모험과 정열과 긍지의 의미가 있는가 하면 존재에 대한 사랑과

생명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시련이 끝난 노인은 침대에 눕는데 그 모습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보인다.

그는 담요를 끌어당겨서 어깨에 두르고 등과 다리도 덮는다.

그러고 나서 손바닥을 위로하여 팔을 쭉 뻗은 다음 신무지 위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든다.

이러한 모습을 기도교적 심상으로 보는 데에는 무리가 따를지도 모르겠으나 인성으로서 고난을 받는 예수의

모습을 이 장면에서 떠올려 보는 것은 작품의 주제를 이해하는 데에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인성으로 고통 받는 그리스도의 심상은 헤밍웨이의 비극적 인생관과 여러모로 합일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산차고 노인은 마알린과 사투를 벌이면서 몇 차례 하나님을 찾지만 자신이 신앙인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렇게 고통 받고 고뇌하고 또 회의하는 모습은 바로 헤밍웨이의 모습에 다름 아니라고 하겠다.

<노인과 바다>가 헤밍웨이의 최고 걸작은 아닐는지 모르나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상황과 조건에 대하여

성숙하고 균형 잡힌 통찰력이 가장 원숙하게 투영된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이론이 없다.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생전에 출판한 마지막 주요 소설작품이었다.

이후 죽는 날 까지의 9년이란 기간 동안 그는 병마와 노쇠와 사라져가는 창작력이라는 인간의 한계성과

철저하게 투쟁을 하며 살아갔다.

1953년에 그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원래 이 상은 ‘이상적 경향의 문학작품’에 수여되도록 정관에 명시되어 있는데 헤밍웨이의 작품은 어쨌든

이 기준에 맞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어 왔었다.

그런데 <노인과 바다>는 이런 견해를 바꾸어 놓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노벨상의 수여문에는 ‘폭력과 죽음으로 가득한 현실 세계에서 의로운 투쟁을 전개한 모든 사람에게 의당한

존경심’을 표현한 헤밍웨이의 공적이 명기되어 있다.

하지만 그가 쓴 이전의 작품들은 ‘거칠고 냉소적이며 냉담한’ 면이 있었다는 점도 특별히 덧붙여져 있다.

헤밍웨이의 작품에 대한 일반적 오해가 다 풀리지는 않았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헤밍웨이가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 의미에 대해서는 많은 해설이 이어져오고 있다.

어떤 시각으로 보면 작가가 초기 작품에서 보인 허무주의를 마침내 초극 해내고 새로운 성취를 이룬 문학과

인생 여정에 비추어 자살이란 너무나 책임 없는 돌발적 행위하고 개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또 어떤 시각으로 보면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은 작가가 인생의 황혼기에 이러한 인생관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자 이에 저항하여 용기 있는 최후의 도전을 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물론 죽음의 이유를 밝히는 유서 같은 것은 애초에 남아있지 않았다.

출처 : 허구 속에 갇힌 현실/팩션 소설

글쓴이 : 청담 원글보기 : 청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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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고기를 잡았다가 상어떼에게 다 뜯겼다.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입니다. 이 단순한 줄거리의 소설, 노인과 바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최고 소설 중의 하나이며, 헤밍웨이가 퓰리처상,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이유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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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줄거리 및 내용 해석

오늘은 그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 중에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작품은 130페이지 정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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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9/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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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 나무위키:대문

요루시카의 노래에 대한 내용은 노인과 바다(요루시카) 문서 … 또한 저 문장에서 man이라는 단어는 ‘인간’으로 많이 해석되지만, ‘남자’로 해석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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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9/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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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에서 찾는 인간 내면의 가치: 산티아고와 마놀린에 …

문학 작품의 해석은 독자들의 배경지식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데, 독자들의 삶의 모습이 모두 다른 만큼 그들의 지식과 생각도 모두 다르기 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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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4hlrs.com

Date Published: 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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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헤밍웨이의 를 해설하며—. – 다음블로그

도서 출판 에서 명작 시리즈를 내면서 헤밍웨이의 를 최근 출간하였습니다. 출판 기획 중에 해설을 부탁하여서 몇 자 보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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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0/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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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 작가소개 / 결말포함 줄거리 …

d여기에서 [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 작가소개 / 결말포함 줄거리 / 작품해석 / 사월이네 북리뷰 / the old man and the sea – 노인 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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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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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상(上)편 – 브런치

작가의 감정과 그 시대의 분위기 등을 살펴서 해석하는 건 전문가들의 몫이다 … 모든 배경이 되는 바다보다는 ‘노인과 고기’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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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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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에서 강한 의지력을 배우자 – 어업in수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작품의 주인공인 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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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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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노인과 바다’를 잘못 읽었다 – 인천일보

그러나 실상 작품 속 소년의 나이는 17~18세다. 이번 책은 의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주는 해설과 동시에 영어 원문 전체를 함께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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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incheonilbo.com

Date Published: 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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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_인간은 패배하는가 파괴되는가 – deadPXsociety

이 소설을 해석하는 틀은 노인을 고난 받는 예수 그리스도로, 고군분투 작품을 창조하는 소설가로, 산티아고 노인을 죽음의 신으로, 그에게 걸려든 청새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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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iredhusky.tistory.com

Date Published: 1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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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노인과 바다 ② – 청새치, 오역, 느낀점 – 3시간 전

이전 포스팅에 이어 《노인과 바다》를 읽고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과, 이 소설을 읽고 느낀 점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노인과 바다 줄거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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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ialog.tistory.com

Date Published: 9/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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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 이 단순한 소설이 세계적인 명작이 된 이유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노인 과 바다 해석

Author: 시한책방 Sihan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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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018. 8. 10.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ddY-Ny0fwYw

[서평]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줄거리 및 내용 해석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분량이 많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13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라 저도 대출한 당일에 다 읽었어요. 평소에 느리게 읽는 제가 이 정도로 읽을 정도면 여러분들은 더 빨리 읽을 수 있을 거에요. ​ 노인과 바다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1. 어부인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그를 믿고 따르는 소년이 한 명 나옵니다. 이들은 고기잡이를 천직으로 여기며 자신들의 직업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 2. 그러던 중 노인은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 멀리 항해를 나갑니다. 바다 한가운데까지 들어간 노인은 거기에서 작은 고래라고 봐도 좋을 거대한 물고기와 조우합니다. ​ 3. 노인은 거대한 물고기가 자신의 운명임을 직감하고 오랜 시간 동안 물고기와 사투합니다. 그리고 결국 노인은 결투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 4. 하지만 죽은 고기에서 쉼 없이 나오는 피가 상어들을 유혹해 고기가 다 뜯겨나가고 맙니다. 노인은 오랜 시간 동안 노력했지만 정작 항구에 도착한 그에게 남은 건 물고기의 뼈와 지느러미뿐이었습니다. ​ 5. 노인은 실망하지만 주변 사람들, 관광객들은 노인이 잡은 물고기에 감탄합니다. 노인은 안타깝게 그런 주변 반응들을 보지 못한 채 기력이 쇠해 긴 잠에 빠지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노인과 바다’에서 찾는 인간 내면의 가치: 산티아고와 마놀린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1952)는 85일간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하다 엄청난 크기의 청새치를 건져올리는 데 성공하지만 그것을 상어에게 모두 빼앗기고 마는 한 노인의 이야기이다. 많은 평론가들은 이 작품에서 인간의 욕망과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한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을 찾아볼 수 있으며, 긍정적인 사고와 희망 역시 이 작품의 중요한 테마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노인에게서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인간의 노력과 희망의 중요성을 찾아내며, 작품의 교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년을 비롯한 노인 외의 다른 인물들의 역할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이 해석은 ‘노인과 바다’의 작품 전반에 드러난 주제의식을 고려해 볼 때 타당하다. 그러나 다른 문학 작품들처럼 ‘노인과 바다’ 역시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문학 작품의 해석은 독자들의 배경지식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데, 독자들의 삶의 모습이 모두 다른 만큼 그들의 지식과 생각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처럼 나 역시 이 작품을 일반적 해석과 다소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였다. ‘노인과 바다’의 전개를 이끌어나가면서 작품의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두 주요 인물, 산티아고와 마놀린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1) 산티아고 산티아고는 여느 노인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어부이다. 이는 그가 젊은 시절부터 ‘쿠바의 도시 하바나에 있는 작은 어촌’에서 어업에 종사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산티아고의 이러한 평범함은 작품의 의미를 더욱 배가시킨다. 작품이 평범한 인물에 의해 평범한 삶 속에서 전개되는 만큼, 작품이 주는 교훈이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가 평범하기 때문에 그가 겪는 일들이 역설적으로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범인(凡人)들처럼 보잘것없어 보이고 그의 긴 삶 동안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불운에 체념하지 않으며,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에도 개의치 않는다. 자신을 조롱하고 심지어 ‘운이 다한 사람’으로 단정짓는 이웃들을 원망하거나 야속해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에 대해 수군거리는 마을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그의 조수였던 소년 마놀린이 부모님의 요구 때문에 그를 떠난다고 했을 때 그가 한 말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아이는 부모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그러니 내 생각 하지 말고 부모님의 말씀에 따르거라.”고 말하면서 마놀린에게 서운해하는 대신 그의 입장을 이해한다. 산티아고는 계속되는 고통과 시련을 인내하며 자신을 믿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마침내 그의 기다림은 그에게 그의 배보다도 더 큰 청새치라는 결실을 맺는다. 노인은 이를 ‘행운’이라고 일컫지만, 사실 그가 큰 청새치를 낚아올린 것은 그의 인내와 끈기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는 상어의 습격과 뼈만 남은 청새치라는 더 큰 시련을 겪는데, 이때도 그는 뭇 사람들처럼 좌절하거나 신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인 채 다음 번 고기잡이를 위해 쌓인 피로를 달래야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이처럼 산티아고는 자기 자신에 대한 굳은 믿음을 바탕으로 어려운 상황을 꿋꿋이 견뎌내는 끈기, 열정, 그리고 인내의 소유자이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옳다는 신념 아래 물질적 빈곤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힘쓴다. 그를 편안하게 하는 꿈 속 행복한 사자들의 웃음과 아프리카의 바다에서 파도 소리가 그의 이러한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작품에 드러나 있듯이 사자와 바다 꿈, 즉 그가 추구하는 내면적 성숙은 그가 고된 하루를 보낸 후에도 웃을 수 있고 다음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2) 마놀린 마놀린은 산티아고의 어구(漁具)를 손질하고 그에게 미끼를 가져다주는 등 산티아고의 낚시를 돕는 조수이다. 그는 가시적 성과를 원하는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산티아고보다 고기를 더 잘 잡는 다른 낚시꾼의 배에 탐으로써 현실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산티아고의 마음가짐을 이해하며, 초라한 외면에 가려진 산티아고의 훌륭한 내면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래서 마놀린은 내면적 성숙을 이룬 산티아고를 역할 모델(role model)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산티아고가 배를 곯지는 않는지, 아픈 것은 아닌지 늘 걱정하면서 그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현하고, 진심어린 존경심을 담아 산티아고와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다. 또 마놀린은 산티아고와 공감하면서 그와 뜻을 같이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마놀린이 현실적 이유로 산티아고의 배를 떠나 다른 배를 타야 하는 상황에서도 산티아고를 생각하면서 그를 따르고 그를 돕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마놀린은 자신이 타고 있는 배에서 거둘 수 있는 더 큰 물질적 성과의 유혹에 빠져 산티아고를 등한시하지 않는다. 그는 노인이 추구하는 내면적 가치가 그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하고 본질적인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놀린은 현실적 삶을 살아가면서도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망각하지 않고 항상 되새기는, 산티아고에 버금가는 ‘된 사람’이다. 이것이 마놀린이 스스로 ‘노인과 바다’의 주제의식을 표현함은 물론 산티아고의 아름다움을 더욱 구체화·극대화할 수 있는 이유이다. 노인을 우러러보는 마놀린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산티아고의 성숙미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놀린은 노인의 초라한 겉모습과 그를 비웃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 가려진 산티아고의 훌륭한 내면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산티아고는 그가 겪는 고난과 역경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으면서 꿋꿋이 자신의 내면을 가꾸고 있으며, 마놀린은 산티아고의 훌륭함을 부각시킴으로써 산티아고가 걷고 있는 일이 참된 인생의 길임을 분명히 한다. ‘노인과 바다’는 인간의 열망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의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의 힘뿐만 아니라 내면적 성숙의 아름다움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노인과 바다’의 이러한 의미들은 사실 인간의 삶 그 자체를 함축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각자의 이상을 품고 있으며, 살아가면서 도전과 실패, 시련의 극복과 새로운 도전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노인과 바다’를 읽은 후 산티아고처럼 훌륭한 내면을 갖고 마놀린처럼 서로의 장점을 부각시키면서 함께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 그것이 헤밍웨이가 진정 바라던 것이 아닐까.

하늘이와 소풍을, 함께 니르바나의 바다로

도서 출판 에서 명작 시리즈를 내면서 헤밍웨이의 를 최근 출간하였습니다. 출판 기획 중에 해설을 부탁하여서 몇 자 보탰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라는 뜻에서 일부를 여기에 그림과 함께 올립니다. 저자의 전반적 문학세계와 일대기도 첨부되어 있습니다. 책이요? 번역도 좋고 참 잘 만들었군요—^^. 퓰리처상 수상작품이며 헤밍웨이가 노벨상을 받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현대의 고전, 를 읽으며 처음부터 재미를 느낀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인터넷 시대에 난무하는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 콘텐츠의 박진감 넘치는 줄거리에 도취한 젊은이들이라면 이 작품의 가치에 회의가 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이 드라마틱한 쇼크로 가득하지 않고 삶의 가치는 대체로 오리무중이듯이, 진정한 문학 작품은 순전히 재미 위주로 사람을 몰아가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애매한 상태로 존재하는 삶의 가치체계를 함께 진득이 근심한다는 듯이 위대한 문학은 느리게, 그러나 차분하게 우리를 사유의 큰 바다로 이끌고 나아간다. 헤밍웨이가 쓴 가 바로 그러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실은 “깊이 생각하고 느끼는 만큼” 세상은 우리에게 그 참 모습을 드러낸다. 가 위대한 고전 작가들의 대 로망에 비하여 조금 짧은 중편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있을 수 있다. 작가가 만년에 완성코자 했던 “해양 3부작”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미완의 원고로 남았다고 보는 평론가들의 추측은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그런 사연 때문에 바다라고 하는 거대한 자연 속에서 분투한 주인공 어부의 모습이 훼손 될 이유는 없다. ‘파괴될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다’는 노인의 불패 정신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초극할 수 있는 용기를 주며 인간 승리의 철학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때로 삶이란 인간에게 허무의 모습으로 나타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서 인간은 초라하게 살아갈 이유나 권리가 없다. 오로지 행동하는 자세로 인간조건을 초극해야 한다고 헤밍웨이는 메시지를 보낸다. 왜냐하면 인간은 존엄하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헤밍웨이도 생애를 통하여서 상승과 하강, 승리와 좌절의 곡선을 그으며 살았다. 특히 만년에 저작한 는 독자와 비평가들로부터 매우 냉담한 반응을 받았다. 그러나 단지 2년 후인 1952년에 가 나오자 큰 반향을 받으면서 창작의 활력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 작품으로 그해의 퓰리처상을 받고 그다음 해에 노벨상을 받는 바탕이 되었다. 중편 소설 분량의 이 작품은 플롯도 쿠바의 늙은 어부 산차고(Santiago)의 삶 속에서 생긴 복잡하지 않은 하나의 사건에 토대를 두었을 따름이다. 등장인물도 이 늙은 어부와 그를 따르는 소년 마놀로(Manolo)만 집중적으로 묘사 될 따름이다. 산차고 노인은 84일간이나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 마침내 행운이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안고 그는 이른 새벽에 쪽배를 저어 하바나 항을 떠난다. 이제껏 그나 다른 어부들이 감히 나가지 못했던 먼 바다로 그는 나갈 작정을 한다. 큰 물고기를 낚아서 돈도 많이 벌고 그동안 구겨진 인간적 체면도 회복하기를 꿈꾸며 그는 배를 저어 나아간다. 마침내 노인은 거대한 마알린을 낚게 되지만 이 물고기는 작은 쪽배를 끌고 먼 바다로 마구 도망쳐 달린다. 물고기는 좀체 바다위로 올라오지 않지만 노인은 쪽배를 끌고 가는 속도와 힘으로 보아 이 녀석이 예사롭지 않은 존재임을 파악한다. 이틀이 지난 후 마알린은 마침내 자신을 잡고 있는 낚시를 잡아챌 심산으로 바다 위에 높이 솟아오른다. 노인은 평생 닦아 온 힘과 기술과 꾀를 다하여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데 자신과 대적하는 이 물고기가 밉지않고 오히려 선의의 경쟁자처럼 정이 느껴진다. 사흘째 되던 날 마알린은 힘이 빠져서 쪽배 주변을 빙빙 돌고 산차고 노인은 물고기를 배 가까이로 끌어당길 수 있게 된다. 드디어 물고기가 배 옆으로 오자 노인은 작살로 찔러서 죽이며 미안해한다. 그는 쪽배 보다 거대한 물고기를 마침내 뱃전에 묶어서 돌아가는 데, 상어 떼가 들이 닥쳐서 노인의 필사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마알린의 살점을 모두 뜯어 먹는다. 쪽배가 해안에 당도했을 때는 오직 마알린의 뼈만 남아있을 따름이다. 노인은 돛을 어깨에 짊어지고 언덕을 비틀거리며 올라가서 자기의 오두막집 으로 들어가 잠이 든다. 이 작품에 나오는 노인의 이야기는 작가의 성숙한 비극적 인생관을 표출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삶에 대한 비극적 비전 못지않게 긍정적인 가치와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헤밍웨이는 우리의 삶 속에 있는 사악과 변덕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우주의 원초적 생명력에 경의를 표하고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공동체 의식을 통감한다. 비록 산차고 노인은 물고기를 죽이고자 하지만 물고기에 대한 존경심을 느끼며 훌륭한 적수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과 존경의 연대감을 느낀다. 인간과 물고기 사이의 투쟁은 경이감과 동정심을 자아내는 정정당당한 시합이다. 상어가 공격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이 고개를 드는 것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노인은 물고기에게 사과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러나 노인과 마알린이 악에 의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패배자만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기에 함께 승자이기도 한 것이다. 는 도덕이나 종교적 원칙을 함축하고 있는 우화의 일종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성서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도덕적 설교를 우화의 형식으로 표현 하였다. 이럴 때는 자질구레한 설명적 요소는 절제된다. 그러므로 문체상으로 보아서도 이 작품은 성서의 우화와 매우 비슷하다. 평소 헤밍웨이가 쓰던 흔히 ‘하드보일드’ 기법이라고 하는 매우 간결한 표현기법과 구문의 특징이 이 작품에도 아낌없이 투영되어서 성서 속 우화와의 유사성이 더욱 돋보인다. 인물 묘사도 스케치처럼 절제되어있고 사람의 이름도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바다에서 거대한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노인은 외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육지에 있는 인간과 끈끈히 연결되어 있다. 우선 마놀로라는 이름의 소년이 있다. 이 소년은 그의 부모로부터 노인과 함께 배를 타는 것이 금지되어있다. 왜냐하면 이제 운이 다한 노인과 함께하면 소년의 운도 다 할 것이라는 부모의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끝에 가서 소년은 자기의 스승인 이 노인과 재결합한다. 소년의 생각에 이 스승은 너무나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이기 때문이다. 소년은 노인에게 먹을 것과 약을 갖다 주면서 어부이자 영웅인 노인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는 것이다. 헤밍웨이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심지어 존경까지 받는 인물들이다. 다른 작품에서는 사랑을 표하는 사람들이 여성이라면 이 작품에서는 그 인물이 소년이다. 이제 인간관계에서의 사랑이 남녀간의 관계가 아니라 세대를 잇는 승화된 유대감이며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력의 끈으로 대치된 것이다. 노인은 결혼생활도 원만했었으나 이제 부인은 죽고 없다. 그가 사는 언덕의 오두막집에는 예수의 상과 성모 마리아의 상이 걸려있다. 이것들은 모두 부인의 유물이다. 한때는 벽에 부인의 빛바랜 사진도 있었으나 이제는 떼내어서 붙어있지 않다. 그림을 볼 때마다 노인은 너무나 부인 생각이 나서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 이었다. 이제 그 사진은 노인의 깨끗한 셔츠 밑에 보관되어 있다. 산차고 노인은 과거와도 깊은 유대감을 갖고 있다. 젊었을 때 그는 힘이 장사였다. 이제는 전설이 된 팔씨름에서 그는 경이적인 힘을 가진 도전자를 꺾은적도 있다. 이제 그는 오래전에 뱃전에서 보았던 아프리카 해안의 사자를 꿈속에서 본다. 노인이 꿈속에서 본 사자 이야기를 하면 소년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듣는다. 사자의 꿈은 수많은 상징의 뜻을 갖고 있다. 모험과 정열과 긍지의 의미가 있는가 하면 존재에 대한 사랑과 생명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시련이 끝난 노인은 침대에 눕는데 그 모습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보인다. 그는 담요를 끌어당겨서 어깨에 두르고 등과 다리도 덮는다. 그러고 나서 손바닥을 위로하여 팔을 쭉 뻗은 다음 신무지 위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든다. 이러한 모습을 기도교적 심상으로 보는 데에는 무리가 따를지도 모르겠으나 인성으로서 고난을 받는 예수의 모습을 이 장면에서 떠올려 보는 것은 작품의 주제를 이해하는 데에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인성으로 고통 받는 그리스도의 심상은 헤밍웨이의 비극적 인생관과 여러모로 합일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산차고 노인은 마알린과 사투를 벌이면서 몇 차례 하나님을 찾지만 자신이 신앙인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렇게 고통 받고 고뇌하고 또 회의하는 모습은 바로 헤밍웨이의 모습에 다름 아니라고 하겠다. 가 헤밍웨이의 최고 걸작은 아닐는지 모르나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상황과 조건에 대하여 성숙하고 균형 잡힌 통찰력이 가장 원숙하게 투영된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이론이 없다. 는 헤밍웨이가 생전에 출판한 마지막 주요 소설작품이었다. 이후 죽는 날 까지의 9년이란 기간 동안 그는 병마와 노쇠와 사라져가는 창작력이라는 인간의 한계성과 철저하게 투쟁을 하며 살아갔다. 1953년에 그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원래 이 상은 ‘이상적 경향의 문학작품’에 수여되도록 정관에 명시되어 있는데 헤밍웨이의 작품은 어쨌든 이 기준에 맞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어 왔었다. 그런데 는 이런 견해를 바꾸어 놓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노벨상의 수여문에는 ‘폭력과 죽음으로 가득한 현실 세계에서 의로운 투쟁을 전개한 모든 사람에게 의당한 존경심’을 표현한 헤밍웨이의 공적이 명기되어 있다. 하지만 그가 쓴 이전의 작품들은 ‘거칠고 냉소적이며 냉담한’ 면이 있었다는 점도 특별히 덧붙여져 있다. 헤밍웨이의 작품에 대한 일반적 오해가 다 풀리지는 않았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헤밍웨이가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 의미에 대해서는 많은 해설이 이어져오고 있다. 어떤 시각으로 보면 작가가 초기 작품에서 보인 허무주의를 마침내 초극 해내고 새로운 성취를 이룬 문학과 인생 여정에 비추어 자살이란 너무나 책임 없는 돌발적 행위하고 개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또 어떤 시각으로 보면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은 작가가 인생의 황혼기에 이러한 인생관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자 이에 저항하여 용기 있는 최후의 도전을 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물론 죽음의 이유를 밝히는 유서 같은 것은 애초에 남아있지 않았다. 출처 : 허구 속에 갇힌 현실/팩션 소설 글쓴이 : 청담 원글보기 : 청담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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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에서 강한 의지력을 배우자

전웅주 충남해양과학고등학교 교장 노인은 멕시코 만류를 따라 84일 동안 고기잡이를 나서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노인을 따르던 어린 소년마저 소년 가족들의 반대로 노인은 홀로 고기잡이를 해야 했다. 노인을 따라다녀 봤자 고기도 잡지를 못하고 아무런 소득이 없기에 미래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소년의 가족은 소년이 헛수고를 하고 있다고 판단해 노인과 함께 고기 잡는 일을 포기하라고 소년에게 말한다. 노인은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 혼자 84일 동안 고기잡이를 한 후 마침내 자신의 조각배보다도 더 큰 청새치(marlin)를 한 마리 잡게 된다. 노인은 오랜 만에 잡을 고기를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 쏟고 고기는 잡히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며 어부와 물고기는 망망대해에서 외롭고도 길고 긴 사투를 벌인다. 노인의 손에 쥐가 나고 온 몸에 경련이 일어난다. 고기를 잡기 위해 줄을 당기는 노인의 손은 줄에 베어 상처가 나고 상처 위에 바닷물이 튀어 몹시 쓰리고 아프지만 결코 줄 당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노인은 큰 고기를 잡게 된다. 하지만 고기를 잡아 집에 돌아오는 도중 상어 떼의 습격을 받아 물고기 살점은 다 없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된다. 이것은 인생의 허무주의를 상징한다고 한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은 모두 최종적으로 죽음의 종착지에 도착하게 되기에 모든 일은 헛되고 헛된 일이라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산티아고 노인이 기워붙인 범포(帆布)가 영원한 패배의 깃발(the flag of permanent defeat)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상어와의 싸움에서 노인이 승리를 하고 사자의 꿈을 꾸는 것은 영원한 승리(permanent victory)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노인은 집에 도착해서 피곤함을 견디지 못하고 잠이 든다. 잠을 자면서 노인은 사자의 꿈을 꾼다. 사자가 상징하는 것은 강한 의지력(意志力), 인내력(忍耐力) 등 이다. 노인과 바다는 인간과 인생의 메타포(은유)로 볼 수 있다. 우리네 인생살이는 마치 거칠고 험난한 바다와 같고 그런 거친 항로를 헤쳐 나가야 한다. 생물은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생물을 잡아먹어야 하는 것이 우주적 질서이고 인생이라는 바다인 것이다. 인간은 산티아고 노인처럼 강인하고 굳은 의지력을 지녀야 거친 바다와 같은 인생의 모든 험난함을 극복할 수 있고 인생의 고투에서 승리하는 인간이 될 수 있고 인간 영혼의 강인함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산티아고 노인은 어부로서의 자부심은 바로 고기를 잡는 것임을 보여 주고 있고 거친 인생의 시련들을 극복하는 과정이 정말 멋지고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 ‘The Old Man and the Sea’에서 산티아고 노인이 말하는 주제 문장을 살펴보자.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헤밍웨이는 이 작품의 주제를 두 문장으로 압축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패배를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그러나 패배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물리적으로 파괴될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결코 패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거룩하고 강인한 인간 영혼의 위대한 강인함과 강한 의지력을 역설하고 있기에 이 작품의 가치는 높이 평가되고 시공을 초월하여 독자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자리 잡고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저작권자 © 어업in수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은 ‘노인과 바다’를 잘못 읽었다

▲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해움, 276쪽, 1만3800원 는 쿠바해협에서 거대한 물고기를 잡지만, 그 물고기를 상어에게 뜯어 먹힌다는 한 노인의 단순한 이야기다. 영미권에서 이 간결한 소설을 20세기 문학의 백미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이 책으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독자들 역시 그만큼의 감동을 받았을까? 우리나라 번역본이 작가의 원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비판 의식에서 새롭게 번역된 책이 나왔다. 새움 출판사의 개정판은 작가가 쓴 서술 구조 그대로의 직역에 충실했다. 역자는 책에서 그동안의 오역 문제를 짚으며 그 일례로 노인과의 우정을 보여준 소년의 나이를 들춘다. 기존 번역을 읽은 독자들은 ‘소년’의 나이를 열한두 살 쯤으로 추정하게끔 의역이 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작품 속 소년의 나이는 17~18세다. 이번 책은 의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주는 해설과 동시에 영어 원문 전체를 함께 수록했다. 번역이 잘못됐다는 주장이 단지 역자의 개인 의견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새로운 를 접한다면 그동안 우리가 헤밍웨이를 얼마나 잘못 읽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에 관한 몇가지 오해(253~272쪽 요약) 1)’Boy’의 나이 수십년간 읽혀 온 번역서 속 소년 ‘마놀린’의 나이는 열두어살쯤. 번역된 소년의 말투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번역자들이 오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대한 시슬러의 아버지는 결코 가난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사람은 … 그 아버지는, 내 나이때 빅리그에서 경기를 했어요.” 부분을 보면 그의 나이가 17세 즈음임을 알 수 있다. 1911년 야구천재 조지 시슬러가 17세 때 센트럴리그 소속 구단 애크론과 계약했기 때문이다. 2)’물고기’의 정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청새치’라는 것에 의심을 품지 않지만, 책을 읽었다면 ‘상어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작품 말미에 식당 손님이 뼈만 남아 배에 묶여 있는 물고기 잔해에 대해 묻자, 웨이터가 ‘상어’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헤밍웨이는 앞서 청새치의 특징인 ‘물고기의 창’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한다. 3)헤밍웨이 문체는 단문으로 ‘하드보일드’하다 실제로 그는 문장에 형용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번역되면서 역자 임의대로 쪼개고 더하고, 쉼표와 마침표를 무시하고, 대명사를 임의로 해석한 것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장지혜 기자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인천일보-수도권 지역신문 열독률 1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간은 패배하는가 파괴되는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찌 를 건너 뛸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노인의 시선을 외면해왔다. 그가 청새치를 잡든 말든, 상어에게 먹히든 말든. 도서 정가제 이후 신중하게 구간을 골라 5만원을 채우고 할인 쿠폰을 적용 받고 2,000원 추가 마일리지를 받을 수 없는 탓에 회사 근처 서점에서 한 권 한 권 야금 야금 책을 샀는데, 이게 은근한 맛이 있다. 쓱 훑어보다 괜찮은 책 한 권을 들고 첫 문장을 읽는다. 선택은 대개 여기서 판가름 난다. 그 때 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걸프 해류에서 조각배를 타고서 혼자 낚시하는 노인이었고, 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날이 이제 84일이었다. 고기를 못 잡은 처음 40일 동안에는 한 소년이 그와 함께 배를 탔다. 하지만 고기를 못 잡은 지 40일이 지나자 소년의 부모는 노인이 틀림없이 가장 불길한 살라오일 거라고 말했다(p.9). 는 이 가장 불길한 살라오가(재수 없는 자) 마침내 그 어떤 어부도 잡아 본 적 없는 거대한 청새치를 낚고 배에 실을 수도 없는 그 물고기를 끌고 오는 동안 상어떼의 습격을 받아 모조리 뺏기고 만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을 해석하는 틀은 노인을 고난 받는 예수 그리스도로, 고군분투 작품을 창조하는 소설가로, 산티아고 노인을 죽음의 신으로, 그에게 걸려든 청새치를 헤밍웨이 자신으로 보는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 가장 공감이 가는 건 역시 노인을 소설가로 해석하는 것이다. 노인이 소설가라면 청새치는 소설, 무자비하게 물고기를 뜯어 먹는 상어는 여지없이 비평가가 된다. 1950년 헤밍웨이는 십년 만에 라는 작품을 내놨지만 “이제 헤밍웨이는 끝났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혹독하고 끔찍한 비평에 시달려야했다. 그 후 2년을 절치부심한 끝에 탄생한 소설이 다. 그러니 어찌 저 해석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헤밍웨이는 1954년 그러니까 이 소설을 출간한 2년 뒤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두 주먹을 불끈 쥐었을 것이다. 돌팔매를 이겨내고 꿋꿋이 일어서 자신을 둘러싼 불한당, 고기를 스스로 잡지는 못하면서 남이 공들여 잡은 고기만을 탐욕스럽게 뜯어 먹는 비평가들을 하나 하나 노려보며 꽉 쥔 두 주먹을 치켜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산티아고 노인을 헤밍웨이 자신으로 해석하는 건 1961년까지만 유효하다. 이 남자는 그 해 엽총으로 자살한다. 헤밍웨이의 삶과 의 정수는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 거야’라는 문장으로 압축될 수 있다. 이 말은 인간은 실패할 수는 있지만 포기하지는 않는 거야 라는 진부한 진리를 해밍웨이 식으로 표현한 것일테다. 그렇다면 자살은 어디에 속하는 걸까? 헤밍웨이는 파괴된 걸까, 아니면 패배한 걸까? 그의 막내 아들 그레고리는 “아버지는 그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을 감행함으로써 자신의 용기를 보여주었다”라고 했고 역자는 이 해석에 동의한다고 했다(p. 302). 헤밍웨이는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불길한 살라오였고 마침내 거대한 청새치를 낚은 위대한 어부일 수는 있겠지만 상어떼에게 고기를 모조리 뺏긴 뒤에 또다시 바다로 나가는 산티아고 노인은 아니었다. 그는 대작을 써야 한다는 부담과 초조에 시달리다 엽총을 입에 넣고 방아쇠를 당겼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에겐 자살을 패배에서 파괴로 비약시킬 용기가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소설이 지루했다. 나에게 는 딱 거기, 그러니까 산티아고 노인이 84일째 고기를 잡지 못한 가장 불길한 살라오일때까지였다.

[도서] 노인과 바다 ② – 청새치, 오역, 느낀점

반응형 이전 포스팅에 이어 《노인과 바다》를 읽고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과, 이 소설을 읽고 느낀 점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노인과 바다 줄거리를 보시려면 제 이전 포스팅을 참고해주세요! 2020/04/09 – [도서 정보 & 리뷰] – [도서] 노인과 바다 ① – 줄거리, 저자, 인상깊은구절 책 정보 노인과 바다 국내도서 저자 :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 이인규역 출판 : 문학동네 2012.03.28 상세보기 노인과 바다 청새치 노인이 사투를 벌여서 잡은 거대한 청새치가 어떤 물고기인지 많이들 궁금하실 텐데요. 저도 책을 읽으며 너무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청새치는 돛새치목 > 돛새치과 > 청새치속의 한 종으로 인도양에서 태평양까지 따뜻한 열대 바다에서 산다고 합니다. 청새치과에 속한다는 설명들을 간혹 찾아볼 수 있는데, 청새치과라는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강하고 긴 창 모양의 턱이 특이하며, 몸길이는 4.5m, 몸무게는 900kg까지도 나간다고 합니다. 영국인 케빈 가드너가 낚은 599kg 청새치 (사진 출처: Eastern Daily Press) 2013년 대서양에서 잡힌 599kg의 거대한 청새치 사진인데요.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크기가 압도적이네요.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영국 노퍽 콜티셜에서 술집을 운영하고 있는 케빈 가드너(Kevin Gardner)가 이 청새치를 낚았다고 합니다. 그는 25년간 ‘괴물 물고기’를 낚으려고 틈틈이 바다에 나갔고, 마침내 이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 청새치는 세계에서 잡힌 청새치 중 네 번째로 큰 것이라고 하는데요, 과연 가장 큰 청새치는 얼마나 클지 상상도 안가네요. 왜 웨이터는 청새치의 뼈를 상어라고 했나? 《노인과 바다》의 마지막 장면은 바닷가 식당의 손님들이 거대한 청새치의 뼈를 보고 놀라워하며 이것이 ‘상어’라고 오해를 하며 끝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 장면 때문에 노인이 잡은 것이 사실은 청새치가 아니라 상어였다고 오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노인 같은 베테랑 어부가 상어와 청새치를 헷갈릴 일은 만무합니다. 그렇다면 왜 마지막에 웨이터는 관광객들에게 이 뼈가 ‘상어’라고 알려준 것일까요? 이것은 다소 잘못된 번역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한국어 번역본과 영어 원문을 보시면 아래와 같습니다. (문학동네 번역본 기준이지만, 사실 다른 출판사의 번역본도 문맥상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게 뭔가요?” 웨이터에게 물으며 여자는 이제 한낱 바다 쓰레기가 되어 물결에 실려 떠내려가기만을 기다리는 그 거대한 물고기의 긴 등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티뷰론입니다.” 웨이터가 대답했다. “상어의 일종이지요.” 웨이터는 일어난 일을 나름대로 설명해주려고 했다. “상어가 저렇게 멋지고 아름답게 생긴 꼬리를 가지고 있는 줄 미쳐 몰랐어요.” “나도 몰랐는 걸.” 그녀와 함께 온 남자가 말했다. “What’s that?” she asked a waiter and pointed to the long backbone of the great fish that was now just garbage waiting to go out with the tide. “Tiburon,” the waiter said. “Eshark.” He was meaning to explain what had happened. “I didn’t know sharks had such handsome, beautifully formed tails.” “I didn’t either,” her male companion said. 영어 원문을 보면 웨이터가 “Tiburon(티뷰론),” 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사실 이 장면에서 웨이터는 그 뼈를 상어의 뼈라고 잘못 안 것도 아니고(바닷가 사람이 그 정도도 몰라볼 리가 없겠죠), 관광객들에게 잘못 알려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는 관광객들이 ‘저 뼈가 무슨 뼈인지?’ 궁금한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한다고 오해 했던 것이죠. 그래서 웨이터는 “티뷰론이 거대한 청새치를 물어뜯어서 저렇게 뼈만 남았어요!!”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웨이터는 듣는 이들이 외국인 관광객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티뷰론’이 ‘샤크’라고 다시 고쳐서 말한 후 일어난 일들을 설명해주려 하는데, 그들은 끝까지 듣지 않고 그냥 “저 뼈가 상어구나!!”라고 오해해버린 것이죠. (Shark가 아닌 Eshark라고 되어 있는 이유는 웨이터가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이라 영어가 능숙하지 않음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입니다.) 따라서 저 부분만 다시 번역해보자면, 아래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번역가는 아니지만 최대한 원래 의미와 비슷하게 살려보았습니다.) “Tiburon,” the waiter said. “Eshark.” He was meaning to explain what had happened. “티뷰론이, ” 웨이터는 대답했다. “아, 상어의 일종인데요.” 그는 일어난 일을 설명해주려 하고 있었다. 이 장면은 노인의 엄청난 노력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는 관심 갖지 않고 단편적인 부분만 바라보는 외부인의 시선 을 조금은 씁쓸하게 담아낸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해설은 제가 어떤 블로거분께서 해설해주신 것을 보고 가장 납득이 되었던 해설입니다. (그 블로그는 지금은 폐쇄 상태라 링크를 드릴 수가 없네요..) 그리고 영문으로 된 해설도 많이 찾아보았는데, 영어권에서는 저 의도로 해설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노인이 잡은 것이 상어냐 청새치냐 논쟁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노인과 바다 느낀점 사실 《노인과 바다》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채로 읽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이 왜 헤밍웨이 최고의 작품이라 불리는지도 알 것 같았습니다. 우선 이 소설은 어촌 풍경과 노인 그리고 고기 잡는 과정 등의 묘사 가 아주 잘되어 있습니다. 과한 꾸밈말 없이 아주 간결하면서도 눈에 보이듯이 그려나가는 방식이라서 영화를 보는 것처럼 편하게 읽힙니다. 노인이 물고기를 잡기 위해 사투하는 부분이 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아주 길어 자칫하면 지루해질 수도 있는데, 노인의 회고, 상상, 혼잣말, 상황의 변화 등으로 인해 지루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저는 감정을 이입하여 읽다 보니 노인이 오랜 사투 끝에 물고기를 잡았을 때는 함께 승리감이 느껴졌고 물고기가 상어에 뜯겨나갈 때는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나중에 물고기가 너무 많이 뜯겼을 땐 속상해서 그쪽을 쳐다도 안 본 노인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갔습니다. 며칠 밤을 새워 멋진 PPT를 완성했는데 저장을 못 시키고 날려버린 기분이었을까요? 힘들게 잡은 청새치를 온전히 누군가에게 보여주지도 못하고 뜯겨버렸지만, 그래도 저는 이 소설에서 참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에게는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 주위 아무도 그것이 이루어질 거라 생각하지 않지만, 저는 묵묵히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인의 고독한 싸움이 꼭 저의 모습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저만의 이야기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이루고자 하는 꿈은 있으니까요. 어린 시절에는 너도 나도 자신의 꿈을 드러내지만, 나이가 들어 현실에 부딪히니 ‘꿈’이 있다는 걸 입 밖으로 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노인과 바다는 이렇게 마음 속 꿈을 지닌 우리 모두에게 헤밍웨이가 보내주는 응원 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록 청새치는 뜯겨버리고 말지만 꼭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내 인생에서 나만의 역사로 남을만한 사건을 하나쯤은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반응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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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노인과 바다 ② – 청새치, 오역, 느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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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9 – [도서 정보 & 리뷰] – [도서] 노인과 바다 ① – 줄거리, 저자, 인상깊은구절

책 정보

노인과 바다 국내도서 저자 :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 이인규역 출판 : 문학동네 2012.03.28 상세보기

노인과 바다 청새치

노인이 사투를 벌여서 잡은 거대한 청새치가 어떤 물고기인지 많이들 궁금하실 텐데요. 저도 책을 읽으며 너무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청새치는 돛새치목 > 돛새치과 > 청새치속의 한 종으로 인도양에서 태평양까지 따뜻한 열대 바다에서 산다고 합니다. 청새치과에 속한다는 설명들을 간혹 찾아볼 수 있는데, 청새치과라는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강하고 긴 창 모양의 턱이 특이하며, 몸길이는 4.5m, 몸무게는 900kg까지도 나간다고 합니다.

영국인 케빈 가드너가 낚은 599kg 청새치 (사진 출처: Eastern Daily Press)

2013년 대서양에서 잡힌 599kg의 거대한 청새치 사진인데요.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크기가 압도적이네요.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영국 노퍽 콜티셜에서 술집을 운영하고 있는 케빈 가드너(Kevin Gardner)가 이 청새치를 낚았다고 합니다. 그는 25년간 ‘괴물 물고기’를 낚으려고 틈틈이 바다에 나갔고, 마침내 이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 청새치는 세계에서 잡힌 청새치 중 네 번째로 큰 것이라고 하는데요, 과연 가장 큰 청새치는 얼마나 클지 상상도 안가네요.

왜 웨이터는 청새치의 뼈를 상어라고 했나?

《노인과 바다》의 마지막 장면은 바닷가 식당의 손님들이 거대한 청새치의 뼈를 보고 놀라워하며 이것이 ‘상어’라고 오해를 하며 끝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 장면 때문에 노인이 잡은 것이 사실은 청새치가 아니라 상어였다고 오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노인 같은 베테랑 어부가 상어와 청새치를 헷갈릴 일은 만무합니다. 그렇다면 왜 마지막에 웨이터는 관광객들에게 이 뼈가 ‘상어’라고 알려준 것일까요? 이것은 다소 잘못된 번역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한국어 번역본과 영어 원문을 보시면 아래와 같습니다. (문학동네 번역본 기준이지만, 사실 다른 출판사의 번역본도 문맥상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게 뭔가요?” 웨이터에게 물으며 여자는 이제 한낱 바다 쓰레기가 되어 물결에 실려 떠내려가기만을 기다리는 그 거대한 물고기의 긴 등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티뷰론입니다.” 웨이터가 대답했다. “상어의 일종이지요.” 웨이터는 일어난 일을 나름대로 설명해주려고 했다.

“상어가 저렇게 멋지고 아름답게 생긴 꼬리를 가지고 있는 줄 미쳐 몰랐어요.”

“나도 몰랐는 걸.” 그녀와 함께 온 남자가 말했다.

“What’s that?” she asked a waiter and pointed to the long backbone of the great fish that was now just garbage waiting to go out with the tide.

“Tiburon,” the waiter said. “Eshark.” He was meaning to explain what had happened.

“I didn’t know sharks had such handsome, beautifully formed tails.”

“I didn’t either,” her male companion said.

영어 원문을 보면 웨이터가 “Tiburon(티뷰론),” 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사실 이 장면에서 웨이터는 그 뼈를 상어의 뼈라고 잘못 안 것도 아니고(바닷가 사람이 그 정도도 몰라볼 리가 없겠죠), 관광객들에게 잘못 알려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는 관광객들이 ‘저 뼈가 무슨 뼈인지?’ 궁금한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한다고 오해 했던 것이죠. 그래서 웨이터는 “티뷰론이 거대한 청새치를 물어뜯어서 저렇게 뼈만 남았어요!!”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웨이터는 듣는 이들이 외국인 관광객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티뷰론’이 ‘샤크’라고 다시 고쳐서 말한 후 일어난 일들을 설명해주려 하는데, 그들은 끝까지 듣지 않고 그냥 “저 뼈가 상어구나!!”라고 오해해버린 것이죠. (Shark가 아닌 Eshark라고 되어 있는 이유는 웨이터가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이라 영어가 능숙하지 않음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입니다.)

따라서 저 부분만 다시 번역해보자면, 아래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번역가는 아니지만 최대한 원래 의미와 비슷하게 살려보았습니다.)

“Tiburon,” the waiter said. “Eshark.” He was meaning to explain what had happened.

“티뷰론이, ” 웨이터는 대답했다. “아, 상어의 일종인데요.” 그는 일어난 일을 설명해주려 하고 있었다.

이 장면은 노인의 엄청난 노력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는 관심 갖지 않고 단편적인 부분만 바라보는 외부인의 시선 을 조금은 씁쓸하게 담아낸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해설은 제가 어떤 블로거분께서 해설해주신 것을 보고 가장 납득이 되었던 해설입니다. (그 블로그는 지금은 폐쇄 상태라 링크를 드릴 수가 없네요..) 그리고 영문으로 된 해설도 많이 찾아보았는데, 영어권에서는 저 의도로 해설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노인이 잡은 것이 상어냐 청새치냐 논쟁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노인과 바다 느낀점

사실 《노인과 바다》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채로 읽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이 왜 헤밍웨이 최고의 작품이라 불리는지도 알 것 같았습니다.

우선 이 소설은 어촌 풍경과 노인 그리고 고기 잡는 과정 등의 묘사 가 아주 잘되어 있습니다. 과한 꾸밈말 없이 아주 간결하면서도 눈에 보이듯이 그려나가는 방식이라서 영화를 보는 것처럼 편하게 읽힙니다. 노인이 물고기를 잡기 위해 사투하는 부분이 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아주 길어 자칫하면 지루해질 수도 있는데, 노인의 회고, 상상, 혼잣말, 상황의 변화 등으로 인해 지루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저는 감정을 이입하여 읽다 보니 노인이 오랜 사투 끝에 물고기를 잡았을 때는 함께 승리감이 느껴졌고 물고기가 상어에 뜯겨나갈 때는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나중에 물고기가 너무 많이 뜯겼을 땐 속상해서 그쪽을 쳐다도 안 본 노인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갔습니다. 며칠 밤을 새워 멋진 PPT를 완성했는데 저장을 못 시키고 날려버린 기분이었을까요?

힘들게 잡은 청새치를 온전히 누군가에게 보여주지도 못하고 뜯겨버렸지만, 그래도 저는 이 소설에서 참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에게는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 주위 아무도 그것이 이루어질 거라 생각하지 않지만, 저는 묵묵히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인의 고독한 싸움이 꼭 저의 모습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저만의 이야기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이루고자 하는 꿈은 있으니까요. 어린 시절에는 너도 나도 자신의 꿈을 드러내지만, 나이가 들어 현실에 부딪히니 ‘꿈’이 있다는 걸 입 밖으로 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노인과 바다는 이렇게 마음 속 꿈을 지닌 우리 모두에게 헤밍웨이가 보내주는 응원 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록 청새치는 뜯겨버리고 말지만 꼭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내 인생에서 나만의 역사로 남을만한 사건을 하나쯤은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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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패배하는가 파괴되는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찌 <노인과 바다>를 건너 뛸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노인의 시선을 외면해왔다. 그가 청새치를 잡든 말든, 상어에게 먹히든 말든.

도서 정가제 이후 신중하게 구간을 골라 5만원을 채우고 할인 쿠폰을 적용 받고 2,000원 추가 마일리지를 받을 수 없는 탓에 회사 근처 서점에서 한 권 한 권 야금 야금 책을 샀는데, 이게 은근한 맛이 있다. 쓱 훑어보다 괜찮은 책 한 권을 들고 첫 문장을 읽는다. 선택은 대개 여기서 판가름 난다. 그 때 <노인과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걸프 해류에서 조각배를 타고서 혼자 낚시하는 노인이었고, 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날이 이제 84일이었다. 고기를 못 잡은 처음 40일 동안에는 한 소년이 그와 함께 배를 탔다. 하지만 고기를 못 잡은 지 40일이 지나자 소년의 부모는 노인이 틀림없이 가장 불길한 살라오일 거라고 말했다(p.9).

<노인과 바다>는 이 가장 불길한 살라오가(재수 없는 자) 마침내 그 어떤 어부도 잡아 본 적 없는 거대한 청새치를 낚고 배에 실을 수도 없는 그 물고기를 끌고 오는 동안 상어떼의 습격을 받아 모조리 뺏기고 만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을 해석하는 틀은 노인을 고난 받는 예수 그리스도로, 고군분투 작품을 창조하는 소설가로, 산티아고 노인을 죽음의 신으로, 그에게 걸려든 청새치를 헤밍웨이 자신으로 보는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 가장 공감이 가는 건 역시 노인을 소설가로 해석하는 것이다. 노인이 소설가라면 청새치는 소설, 무자비하게 물고기를 뜯어 먹는 상어는 여지없이 비평가가 된다.

1950년 헤밍웨이는 십년 만에 <강 건너 숲속으로>라는 작품을 내놨지만 “이제 헤밍웨이는 끝났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혹독하고 끔찍한 비평에 시달려야했다. 그 후 2년을 절치부심한 끝에 탄생한 소설이 <노인과 바다>다. 그러니 어찌 저 해석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헤밍웨이는 1954년 그러니까 이 소설을 출간한 2년 뒤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두 주먹을 불끈 쥐었을 것이다. 돌팔매를 이겨내고 꿋꿋이 일어서 자신을 둘러싼 불한당, 고기를 스스로 잡지는 못하면서 남이 공들여 잡은 고기만을 탐욕스럽게 뜯어 먹는 비평가들을 하나 하나 노려보며 꽉 쥔 두 주먹을 치켜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산티아고 노인을 헤밍웨이 자신으로 해석하는 건 1961년까지만 유효하다. 이 남자는 그 해 엽총으로 자살한다.

헤밍웨이의 삶과 <노인과 바다>의 정수는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 거야’라는 문장으로 압축될 수 있다. 이 말은 인간은 실패할 수는 있지만 포기하지는 않는 거야 라는 진부한 진리를 해밍웨이 식으로 표현한 것일테다. 그렇다면 자살은 어디에 속하는 걸까? 헤밍웨이는 파괴된 걸까, 아니면 패배한 걸까?

그의 막내 아들 그레고리는 “아버지는 그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을 감행함으로써 자신의 용기를 보여주었다”라고 했고 역자는 이 해석에 동의한다고 했다(p. 302).

헤밍웨이는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불길한 살라오였고 마침내 거대한 청새치를 낚은 위대한 어부일 수는 있겠지만 상어떼에게 고기를 모조리 뺏긴 뒤에 또다시 바다로 나가는 산티아고 노인은 아니었다. 그는 대작을 써야 한다는 부담과 초조에 시달리다 엽총을 입에 넣고 방아쇠를 당겼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에겐 자살을 패배에서 파괴로 비약시킬 용기가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소설이 지루했다. 나에게 <노인과 바다>는 딱 거기,

그러니까 산티아고 노인이 84일째 고기를 잡지 못한 가장 불길한 살라오일때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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