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이스라엘 남유다 | [5분 정리]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망하는 이야기 [성경 공부 일독 프로젝트 #45] 408 개의 새로운 답변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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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 왕국 (분열 왕국 당시의 이스라엘 주변국 통치자들) 남유다 왕국(기원전 931년경~기원전 587년경)은 연합 이스라엘 왕국이 기원전 931년 무렵 분열되어 12개 지파 가운데 두 지파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지지로 세워진 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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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사역 소개 https://youtu.be/vscb9Ofeu60​
02. 0주차 읽기 https://youtu.be/gpun1v360C8​
03. 창세기 개관 https://youtu.be/bAq05MvoSPw​
04. 4가지 주의사항 https://youtu.be/ymfaW6G3e0A​
05. 1주차 읽기 https://youtu.be/T80-uLx6Mjk​
06. 성경의 구조 https://youtu.be/6_z7_Ey1lP8​
07. 성경의 유익 https://youtu.be/qc1sdcqPvcU​
08. 2주차 읽기 https://youtu.be/3ny3p-RUUaM​
09. 성경의 주제 https://youtu.be/GYnfD7Qa2JY​
10. 출애굽기 개관 https://youtu.be/Iko0Yp044g4​
11. 3주차 읽기 https://youtu.be/rUOkFvd2n6c​
12. 구약 성경목록 https://youtu.be/k5JYP8yDAXw​
13. 성막 https://youtu.be/xKcFjL9fGWg​
14. 4주차 읽기 https://youtu.be/8_UGL1PEu_w​
15. 레위기 개관 https://youtu.be/AyWlDYe7cQE​
16. 5대 제사 https://youtu.be/imBgKkmjzK4​
17. 5주차 읽기 https://youtu.be/y8rC0ZmofaE​
18. 7대 절기 https://youtu.be/TuGKpq9q_rs​
19. 민수기 개관 https://youtu.be/wQSvsJWAmQs​
20. 6주차 읽기 https://youtu.be/23G4AZ0Y1cs​
21. 율법 준수? https://youtu.be/1OsA7xLGTZ4​
22. 7주차 읽기 https://youtu.be/P48DOAHGmCc​
23. 신명기 개관 https://youtu.be/voLD7iXjv8U​
24. 우리나라 성경역사 https://youtu.be/0qD3P645hK8​
25. 8주차 읽기 https://youtu.be/Xn8qnX6OidM​
26. 가나안 지리 https://youtu.be/pjMWkWHzr6A​
27. 여호수아 개관 https://youtu.be/tyU7wQbw8kk​
28. 9주차 읽기 https://youtu.be/lHFcK36bH4s​
29. 가나안 영토분배 https://youtu.be/OHc83KLkPFs​
30. 사사기 개관 https://youtu.be/AZh8b-lzrKQ​
31. 10주차 읽기 https://youtu.be/_qPilNG0bXY​
32. 열두사사 https://youtu.be/WLCWM7SAY8E​
33. 룻기 개관 https://youtu.be/Vd_nyymty04​
34. 11주차 읽기 https://youtu.be/2Ue6ghWgiEo​
35. 사무엘상 개관 https://youtu.be/F_Z6W8lLqS0​
36. 12주차 읽기 https://youtu.be/ym1AZpj8ej4​
37. 사무엘하 개관 https://youtu.be/CWvqkCyTDik​
38. 정경화 과정 https://youtu.be/g5MeUYuhoRw​
39. 13주차 읽기 https://youtu.be/QZk1XUIDjOU​
40. 열왕기 개관 1 https://youtu.be/uXZc1uvd728​
41. 성막과 성전 https://youtu.be/zQPuRRHTlxg​
42. 14주차 읽기 https://youtu.be/s5BXXKxFr6s​
43. 열왕기 개관 2 https://youtu.be/llafpA8IYu4​
44. 15주차 읽기 https://youtu.be/s1HKMLILxE0​
* Music: https://www.bensou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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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다 – 네이버 블로그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다. 솔로몬이 죽자 그 아들 르호보암은 왕위를 이어받고 이스라엘 전체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세겜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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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6/2/2021

View: 6720

신구약 중간사(2)_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 – 바른미디어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포함 19명의 왕이 다스리다 B.C.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남유다는 르호보암을 시작으로 20명의 왕이 통치하다 B.C. 586년, 바벨론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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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ami.kr

Date Published: 12/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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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왕국의 역사 |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왜 멸망했나?

우상 숭배와 죄악이 만연한 나라; 북 이스라엘의 멸망. 남 유다 왕국의 역사. 축복과 저주가 반복된 나라; 남 유다의 멸망.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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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hnsahnghong.com

Date Published: 8/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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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 멸망과 남유다 멸망과 관련된 역사 지식 – 개신교

1) 남 유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남유다의 르호보암 사이에 경계를 갖고 있던 베냐민지파의 영토는 남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그 경계선 상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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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6/22/2022

View: 6452

북이스라엘 왕조 및 남 유다 왕조

제목, [도표] 북이스라엘 왕조 및 남유다 왕조. 주제어, [이스라엘 왕조] 남유다 북이스라엘 [성경도표]. 자료출처, KCM, 성경본문.

+ 여기에 더 보기

Source: kcm.kr

Date Published: 12/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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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분열왕국 연대표 – Good4Joy

북이스라엘의 모든 왕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남유다는 다윗의 자손이 계속을 왕을 이어가지만 북이스라엘은 쿠데타가 자주 일어납니다. 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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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ood4joy.org

Date Published: 11/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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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국 – 나무위키

첫번째는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 왕국이 북이스라엘, 남유다로 분열했다는건데 문제는 순서가 솔로몬 사망-르호보암 즉위-선왕때 너무 고달팠으니 좀 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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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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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정리]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망하는 이야기 [성경 공부 일독 프로젝트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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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북 이스라엘 남유다

  • Author: 성경공부일독프로젝트
  • Views: 조회수 5,1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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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4. 1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3orSWGoBBYk

남유다왕국…북이스라엘 왕국 (분열 왕국 당시의 이스라엘 주변국 통치자들)

남유다 왕국(기원전 931년경~기원전 587년경)은 연합 이스라엘 왕국이 기원전 931년 무렵 분열되어 12개 지파 가운데 두 지파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지지로 세워진 왕국이다.

왕국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유다 지파의 이름을 따 유다 왕국이라 불렀고, 344년 동안 20명의 임금이 재위하였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히스기야, 여호사밧, 아사, 요시야, 요담 등 몇몇 외에는 유대교 신앙 외에 다른 신앙에 호의적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심지이자 수도는 예루살렘이었다.

기원전 587년 무렵 바빌로니아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임금 (개신교/가톨릭) 통치기간 성경 참고 르호보암/르하브암 (Rehoboam) 18년 기원전 931년경-913년경 열왕기상 14:21; 아비암/아비야 (Abijam / Abijah) 2년 기원전 913년경-911년경 열왕기상 15:1,2; 역대상 13:1 아사 (Asa) 41년 기원전 911년경-870년경 열왕기상 15:9,10; 역대하 16:13 여호사밧/여호사팟 (Jehoshaphat) 22년 기원전 870년경-848년경 열왕기상 22:41; 여호람 (Jehoram) 7년 기원전 848년경-841년경 열왕기하8:16; 역대하21:5 아하시야/아하즈야 (Ahaziah) 1년 기원전 841년경-841년경 열왕기하8:25; 역대하22:2 아달랴 (Athaliah) 6년 기원전 841년경-835년경 열왕기하11:3; 역대하22:12 요아스 (Joash) 39년 기원전 835년경-796년경 열왕기하12:1; 역대하24:1 아마샤/아마츠야 (Amaziah) 15년 기원전 796년경-781년경 열왕기하14:1; 역대하25:1 웃시야/우찌야 (Azariah) 41년 기원전 781년경-740년경 열왕기하15:1; 역대하26:1 요담/요탐 (Jotham) 4년 기원전 740년경-736년경 열왕기하15:32; 역대하27:1 아하스/아하즈 (Ahaz) 20년 기원전 736년경-716년경 열왕기하16:12; 역대하28:1 히스기야/히즈키야 (Hezekiah) 29년 기원전 716년경-687년경 열왕기하18:1; 역대하29:1 므낫세/므나쎄 (Manasseh) 45경 기원전 687년경-642년경 열왕기하21:1; 역대하31:1 아몬 (Amon) 2년 기원전 642년경-640년경 열왕기하21:19; 역대하33:21 요시야 (Josiah) 31년 기원전 640년경-609년경 열왕기하22:1; 역대하34:1 여호아하스/여호아하즈 (Jehoahaz) 3달 기원전 609년경-609년경 열왕기하23:31; 역대하36:1 여호야김/여호야킴 (Jehoiakim) 11년 기원전 609년경-598년경 열왕기하23:36; 역대하36:5 여호야긴/여호야킨 (Jehoiachin) 3달 기원전 598년경-598년경 열왕기하24:8; 역대하36:9 시드기야/치드키야 (Zedekiah) 11년 기원전 598년경-587년경 열왕기하24:18; 역대하36:11

북이스라엘 왕국(기원전 931년경~기원전 722년경)은 연합 이스라엘 왕국에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르우벤, 스불론, 시므온, 므낫세, 단, 잇사갈, 아셀, 에브라임, 납달리, 갓 등 이렇게 열 부족을 규합, 독립한 왕국이다. 209년간 존속해 19명의 임금이 나라를 다스렸다.

왕조의 교체가 빈번하여 정정(政情)이 불안하였다. 벧엘 이북을 영토로 하고 오므리 왕조 시대에 남쪽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에 대항하기 위하여 수도 사마리아를 건설하였다. 남부에 비하여 땅이 비옥하였으므로 농경적 성격이 강하고 종교적으로도 토착종교 또는 이민족의 신앙이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1]

구약 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예후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야훼의 계명을 잊고 우상 숭배를 하여 야훼의 분노를 샀다.

기원전 722년경에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아시리아는 단호하게 통혼 정책을 펴 ‘동화’시켰다.

파란색이 북이스라엘 왕국

노란색이 남유다왕국

이스라엘은 건국 초기부터 수많은 외세의 침입에 맞서야 했었고 특히 왕국이 분열된 이래 북왕국 이스라엘은 물론 남왕국 유다도 주변국들로부터 심각한 위협과 도전에 평안한 날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분열된 이스라엘 남북 왕국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가증한 우상들을 숭배함으로써 결국에는 앗수르와 바벨론에 각각 멸망하게 되는 비극적인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분열된 이스라엘 주변국들과 그 왕들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이라 하겠다.

Assyria

왕이름 통치연대(B.C.) 참조구절 비고 디글랏 빌레셀 3세 745-727 왕하 15:29; 대하 28:20 남북 이스라엘 영토 점령 살만에셀 5세 727-722 왕하 17:4-6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킴 사르곤 2세 721-705 2만7천 명을 사마리아로부터 강제 이주시킴 산헤립(샐나캐리브) 704-681 왕하 18:13-19:37

대하 32:1-23 유다 정복에 실패하고 아들 에살핫돈에게 살해됨 에살핫돈 681-669 왕하 21:1-9 속국들의 반란을 막기 위해 군신 조약을 맺어 충성을 맹세토록 함 앗술바니팔 669-633 왕하 23:29; 대하 33:11 유다 침공 앗술에텔일라니 633-622 신살이스쿤 621-612 앗술우발릿 2세 612-608 ※ 니느웨의 멸망 B.C. 612년 ※ 하란의 멸망 B.C. 610년 ※ 갈그미스의 멸망 B.C. 605년

Syria

Aram

왕이름 통치연대(B.C.) 참조구절 비고 르손(헤시온) 940-915 왕상 11:23-25; 15:18 다윗 때 집단을 이뤄 솔로몬 때에 활동 다브림몬 915-900 왕상 15:18 벤하닷 1세 900-860 왕상 15:18, 20 유다 왕 아사와 연합하여 북이스라엘을 대적함 벤하닷 2세 860-841 왕상 20장 북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 침공 하사엘 841-806 왕하 8:7-15 벤하닷 2세를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함 벤하닷 3세 806-770 왕하 13:3 북이스라엘을 징벌하는 하나님의 심판 도구 역할을 함 르신 750-732 왕하 15:37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에 의해 다메섹 멸망 ※ 수도를 다메섹(Damascus)으로 삼았기 때문에 다메섹의 통치자들로도 통한다.

Egypt

왕이름 통치연대(B.C.) 참조구절 비고 세송크 1세 945-924 왕상 14:25-28; 대하 12:2-12 유다 정복을 목적하고 침공 오소르콘 1세 924-888 대하 14:9-15 에티오피아와 연합하여 유다를 침공 • 타케롯 1세(888-865) • 오소르콘 2세(865-836) • 세송크 2세(836) • 타케롯 2세(835-811) 세송크 3세 811-772 22왕조 중 최장수 통치 페마이 772-766 세송크 4세 766-730 제23왕조 817-730 왕조(리비안스)가 바뀜 제24왕조 730-715 왕조가 바뀜 • 사바카(715-701) • 사바타카(701-690) • 디르하가(689-664) • 타누타만(664-656) • 프삼메티쿠스 1세(664-609) 느고 609-594 왕하 23:29

대하 35:20-24; 렘 46:1-5 블레셋 땅을 차지하려는 신흥 바벨론을 견제하고자 가사와 아스글론 점령. 므깃도 전투에서 유다 왕 요시야를 죽임. 그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패배해 힘을 잃고 유다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함 • 프삼메티쿠스 2세(594-588) • 아프리에스(호브라, 588-568) • 아마시스(568-526) • 프삼메티쿠스 3세(526-525) ※ 제22왕조 – B.C. 945-730년 ※ 제23왕조 – B.C. 817-730년 ※ 제24왕조 – B.C. 730-715년 ※ 제25왕조 – B.C. 715-656년 ※ 제26왕조 – B.C. 664-525년

Babylon

왕이름 통치연대(B.C.) 참조구절 비고 나보폴라살 625-605 앗수르 군대를 멸절시킴 느부갓네살 2세 605-562 왕하 24-25장; 다니엘서 바벨론 최고의 전성기를 이룸.

남왕국 유다를 멸망시킴 에윌므로닥 562-560 왕하 25:27-30; 렘 52:31-34 포로 된 남유다 왕 여호야긴을 회복시킴 네르갈사레셀 560-556 렘39:3, 13 느부갓네살의 고관 출신으로 왕의 딸과 결혼 후 처남인 에윌므로닥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호의적임 라바시마르둑 556 아라비아의 테이마에서 은퇴함 나보니두스(나부나이드) 556-539 벨사살 ?-539 단 5:1, 30 나보니두스의 아들로서 섭정함. 신바벨론을 다스린 갈대아인 왕으로 마지막 통치자.

메대-바사의 고레스에 의해 살해됨 ※ 갈대아인에 의해 세워진 신바벨론 제국은 B.C. 625년 나보폴라살이 왕권을 차지함으로써 시작되었고, 앗수르 군대를 멸절시킴으로써 제국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Persia

Mede

Persia

왕이름 통치연대(B.C.) 참조구절 비고 고레스 2세(큐로스) 539-530 스 1-3장 바벨론 포로민들의 귀환 조서를 내림.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귀환 캄비세스 2세 529-522 스 4장 예루살렘에서의 성전 건축 중단 바르디야 522 6개월 통치 느부갓네살 3세 522 3개월 통치 느부갓네살 4세 521 3개월 통치 다리오 1세 521-486 스 5-6장 제국 최고의 번성기. 학개와 스가랴가 예언함. 성전이 완공됨 아하수에로

(크세르크세스 1세) 486-464 에 1-9장 에스더서의 배경 벨-시만니 482 사마스-에리바 482 아닥사스다 1세

(롱기마누스) 464-424 스 7-10장

느 1-2장 에스라, 느헤미야의 귀환. 예루살렘 성벽 재건 허락. 말라기의 예언 다리오 2세 423-405 아닥사스다 2세(므네몬) 404-359 성경의 침묵기 아닥사스다 3세(오쿠스) 358-338 성경의 침묵기 아르세스 337-336 성경의 침묵기 다리오 3세 335-331 성경의 침묵기

〈앗수르() 제국의 통치자들〉〈수리아() 곧 아람()의 왕들〉〈애굽()의 바로들〉〈바벨론() 제국(갈대아 왕조)의 통치자들〉〈바사() 혹은 메대-바사() 제국의 통치자들〉

이스라엘 역사 용어 정리. 남유다, 북이스라엘 < 말씀 < 주사랑교회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지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여호수아 시대를 거쳐 가나안 땅에 정착합니다. 초기 이스라엘은 12지파의 사사를 중심으로 하는 부족연합체였다, BC 11세기 중엽 (한반도로 말하면 고조선 시대) 사울을 초대 왕으로 삼아 왕국이 됩니다.

사울은 40년을 통치하다 BC 1010년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그 후 다윗이 7년간 유다 지파의 왕으로 있다 BC 1003년에 모든 이스라엘 지파의 추대로 왕이 됩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처음부터 온 이스라엘의 왕은 아니었던 겁니다. ‘다윗(유다지파)+나머지 11지파 = 통일 이스라엘’인 겁니다. 그러나 통일 이스라엘 왕국은 겨우 70년 밖에 지속하지 못합니다. 통일 이스라엘 왕국은 솔로몬의 죽음과 함께 끝나고 남북의 두 왕국으로 나뉘어 집니다. 이 시대를 ‘통일 이스라엘 시대’와 구분해서 ‘분열 왕국 시대’라고 부릅니다.

통일 이스라엘이 분열한 이유는 종교적인 타락과 사회, 경제적인 불평등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려면 나머지 지파의 승인이 필요했습니다. 이 때 백성들의 대표들이 노역과 무거운 세금을 가볍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솔로몬 통치 말기의 타락으로 국고가 탕진되고 백성들의 삶이 고통스러웠던 겁니다.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그러자 에브라임 출신의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열지파가 이스라엘 왕국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통일 이스라엘 왕국은 남쪽 유다 왕국과 북쪽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됩니다. 남유다 왕국은 다윗 혈통의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일부로 구성되었고, 그 나머지 10지파가 북이스라엘 왕국이 됩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북이스라엘의 주축이었기 때문에 북이스라엘을 에브라임이라고도 부릅니다. 또 남유다의 수도는 예루살렘이고, 북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여서, 두 왕국을 예루살렘, 사마리아로 부르기도 합니다. 또 북이스라엘에는 ‘이스르엘’ (이 단어는 이스라엘로 자주 잘못 읽습니다) 이라는 유명한 평야 지대가 있어서 북이스라엘을 이스르엘이라고도 부릅니다.

10월에 호세아서를 읽고 있는데 호세아 선지자는 북이스라엘 출신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호세아 5장 5절)

이 구절에서 맨 앞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의미하고 뒤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 왕국을, ‘유다’는 남유다 왕국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란 말은 어느 시대, 어떤 왕국 출신 선지자가 썼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분열 후 북이스라엘 왕국은 208년 동안 유지되다 BC 722년 앗수르 제국에 망하고, 남유다 왕국은 북이스라엘이 망한 뒤 136년동안 더 유지하다 건국 344년만인 BC 586년 바벨론 제국에 패망합니다. 두 왕국 모두 각각 20명의 왕이 다스렸는데 북이스라엘은 평균 10년, 남유다는 평균 17년이 재위기간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남유다 왕국의 왕권이 비교적 안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유다왕국이 더 오랫동안 존속하며 민족 정체성을 유지했습니다. 그래서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유대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정리하면

■ 북이스라엘 왕국 = 에브라임 (혹은 이스라엘) = 사마리아(혹은 이스르엘) = 앗수르 BC 722

■ 남유다 왕국 = 유다 = 예루살렘 ?= 바벨론 BC 586 = 유대인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다

솔로몬이 죽자 그 아들 르호보암은 왕위를 이어받고 이스라엘 전체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세겜으로 올라갔다. 어쩌면 솔로몬이 죽었을 때 북쪽 지파의 분위기들이 별로 좋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북쪽 지파들이 처음부터 르호보암의 왕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왕상 12:4).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올라갔을 때 북쪽 지파들은 한 가지 조건을 요구했다. 그것은 노역이나 세금 등을 비롯한 멍에를 줄여 달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르호보암의 아버지 솔로몬은 성전 건축에 7년, 자기 왕궁을 건축하는 데 13년뿐만 아니라 각종 성읍을 요새화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인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또한 남쪽 지역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다윗과 솔로몬을 왕으로 배출했던 유다 지파는 다른 지파에 비해서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고 나서 이스라엘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고 왕궁에 필요한 것을 원활하게 공급받기 위해서 이스라엘 전체를 열두 구역으로 나누었다. 우리가 흔히 예상하듯이, 그는 지파별로 나누지 않았다. 유다 지파는 그 의무에서 제외되는 특권을 누렸다(왕상 4:7-19). 이는 지파 간의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으면 르호보암이 세겜에 왔을 때 북쪽 지파들이 왜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요청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불행히도 르호보암은 멍에를 줄여 주라는 원로들의 권고를 무시하고 더 강력하게 억압하라는 젊은 친구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북쪽 지파들에게 대답했다가 분열을 자초했다(왕하 12:6-20). 하나님은 르호보암의 결정을 통해서 솔로몬의 죄악에 대한 심판으로 이스라엘을 둘로 나누는 계획을 이루어 가셨다.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왕하 12:15).

결국 르호보암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만으로 남유다 왕국을 이루게 되었고, 두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열 개 지파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여 북이스라엘을 건설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왕위에 있을 때 큰 용사로 건축을 감독했다. 그때 하나님은 선지자 아히야를 여로보암에게 보내셨는데, 아히야는 새 옷을 열두 조각으로 자른 후 열 조각을 여로보암에게 주어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을 열 개 지파의 왕이 되게 하심을 알려 주었다.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시면서 요구하신 것은 다윗이나 솔로몬에게 요구했던 것과 같았다.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왕상 11:38).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언약, 즉 다윗의 왕권을 영원하게 하겠다고 하신 약속을 저버리신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여로보암이 율법을 따라 북이스라엘을 잘 다스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다윗의 왕권과 연합되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셨을 것이다. “내가 이로 말미암아 다윗의 자손을 괴롭게 할 것이나 영원히 하지는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한지라”(왕상 11:39).

여로보암은 이렇게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북쪽 열 개 지파의 추대를 받아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세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의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곧 남유다로 가는 것을 불안해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북이스라엘의 가장 북단에 있는 단과 남단에 있는 벧엘에 산당을 세우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그곳에 설치해 북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대신에 금송아지를 숭배하게 만들었으며(왕상 12:25-31), 하나님이 정하신 시기가 아니라 임의로 정한 날짜에 맞추어 절기를 지키도록 했다(왕상 12:32-33).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금송아지가 설치되어 있는 벧엘로 보내서 다윗의 집안에서 나오는 요시야가 그 산당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왕상13:1-10). 이런 예고는 여로보암으로 시작된 북이스라엘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 주는 전조였다.

여로보암이 단에 만든 금송아지 제단. 철로 만든 제단 형태가 금송아지 제단의 크기를 보여 준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 – bareunmedia

편집자 주: 본 연재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부터 A.D. 70년 예루살렘 함락에 이르기까지 주요 왕조의 발흥과 쇠퇴를 중심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사울, 다윗, 솔로몬이 40년씩 통치함으로 120년간 유지된 통일 왕국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 때에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양분된다. 폴 존슨는 이 분열에 대해 “르호보암은 무력으로 통일 왕국을 유지할 군사 수단과 방편이 없었고, 북쪽 지역 사람들은 독자 왕조를 세우며 르호보암과 결별했다. 아시리아(앗수르)와 바벨로니아(바벨론) 제국이 연이어 부상하는 시대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두 왕국은 각자 파멸을 향해 나아갔다”1)라고 평가한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포함 19명의 왕이 다스리다 B.C.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남유다는 르호보암을 시작으로 20명의 왕이 통치하다 B.C. 586년, 바벨론에게 망하게 된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크고 작은 이방의 침입을 받았지만 각각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하기 전까지 국가로서의 주권을 상실한 적은 없었다.

앗수르에 의한 북이스라엘의 멸망

B.C. 8세기. 유프라테스강 넘기를 번번이 실패했던 앗수르가 역사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국 건설의 중심에는 디글랏빌레셀 3세(편집자 주: 성경에는 불로 기록)라는 강력한 왕이 있었다. 존 브라이트는 그를 “앗시리아 역사에서 이 시대의 막을 열고 진정으로 제국을 창건한 인물로 매우 활기차고 유능한 통치자”2)라고 평가한다. 폴 존슨은 디글랏빌레셀이 “호전적인 아시리아 민족을 제국주의자들로 바꾸어놓았다”3)고 전했다.

앗수르가 점점 강성해 지는 시기에 이스라엘의 상황은 참혹했다. 왕위를 찬탈하기 위한 암살이 이어졌고 10년 사이에 다섯 명의 왕이 교체되기도 했다. 북이스라엘의 16대 왕 므나헴은 앗수르가 침공하자 조공을 바쳐 왕좌를 지켰다. 요세푸스는 “므나헴은 앗수르군과 싸워서 이득이 될 것은 조금도 없다고 생각하고 은 천 달란트를 주어 전쟁을 종식시켰다. 므나헴은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각 사람당 인두세를 50드라크마씩 내도록 강요했다”4)고 기록했다. 므나헴에 이어 왕위에 오른 브가히야는 불과 2년 만에 부하 베가에 의해 암살당한다.

왕위에 오는 베가는 반앗수르 정책을 펼쳤다. 학자들은 베가의 반역이 친앗수르 정책에 대한 반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게오르크 포어러는 “베가가 그의 선임자들과는 다른 정치를 시작했는데 여기에 베가를 살해한 이유가 있을 것”5)이라며 “(친앗수르 정책은) 오히려 백성들과 국가를 많이 손상시켰다”6)고 전한다. 존 브라이트는 “다메섹의 왕 르신과 몇몇 블레셋인 군주들이 앗시리아에 대한 저항 세력을 조직하려다가 므나헴이 그들에게 합류하지 않으려는 것을 알고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그들의 계획에 호응할 것으로 생각된 베가를 밀어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7)고 밝힌다. 베가는 다메섹의 왕 르신, 수리아(아람)와 동맹을 맺고 앗수르에 대항할 준비를 했다. 블레셋과 에돔도 동맹군에 합세했다. 동맹군은 남유다도 함께 하길 원했지만 유다는 이를 거절했고 동맹군의 칼은 유다를 먼저 겨눴다. 당시 유다의 왕은 아하스였다.

동맹군은 예루살렘을 포위했지만, 생각만큼 빠르게 성을 정복하지 못했다. 아람과 다메섹은 성 인근의 도시와 수비대 정도만 무력화시킨 후 북이스라엘을 남겨두고 다메섹으로 돌아갔다. 아하스는 이스라엘을 꺾을 기회라고 생각해 남아있는 북이스라엘과 전투를 벌였지만 대패하고 만다. 요세푸스는 “예루살렘 왕은 수리아인들이 귀국했다는 소식을 이스라엘 왕쯤이야 한 번 싸워 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군대를 끌고 나와 대결하였다. 한바탕 접전을 벌였으나 그만 이스라엘 왕에게 패하고 말았다. … 그 날 이스라엘군에 의해 전사당한 자는 모두 120,000명이나 되었다”8)고 기록했다. 더 이상 왕권을 유지할 힘이 없었던 아하스는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 3세에게 바치면서 도움을 요청한다(왕하 16:7,8). 디글랏빌레셀 3세는 그 길로 수리아를 공격해 초토화 시킨 다음 다메섹을 점령하고 르신 왕을 죽였다. 또한 다메섹 백성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고 앗수르 인들을 이주시켰다(왕하 16:9).

이 와중에 북쪽 이스라엘에는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호세아는 자신의 친구 베가를 살해하고 북이스라엘의 19번째 왕에 오르게 된다. 호세아는 티글랏빌레셀 3세가 죽고 살만에셀 5세가 앗수르의 왕위에 오르자 바치던 조공을 중단하고 애굽에 도움을 요청한다. 존 브라이트는 이것을 자살 행위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자살 행위였다. 이때 이집트는 대단치 않은 군소 국가들로 나뉘어 각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도울 처지가 못 되었다.”9) 결국 호세아의 잘못된 판단은 역사가 그를 북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라고 기록하게 만들었다. 살만에셀 5세가 공격해왔다. 이스라엘은 사마리아성에서 약 3년을 버텼지만, 결국 함락 당했다. 사마리아를 함락한 살만에셀 5세에 이어 왕위에 오른 사르곤 2세가 북이스라엘을 철저히 짓밟았다. 폴 존슨은 “고고학 발굴 자료에서도 당시의 재앙을 확증해주는 증거가 충분히 나왔다. 사마리아 내의 왕실 구역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므깃도는 완전히 무너졌고 아시리아식 새 건물이 무너진 건물 더미 위에 세워졌다. 하솔의 성벽도 무너졌다. 세겜은 완전히 초토화 되었다”10)고 전했다.

북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이 혼합되어 사는 지역으로 변했다. 앗수르는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거주하게 만들었다(왕하 17:24).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그리고 남아있는 이스라엘은 이제 이방민족과 합쳐진 혼혈민족이 되고 말았다. ‘사마리아인’의 탄생이었다.

앗수르의 몰락과 바벨론의 급부상

앗수르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못했다. 앗수르는 속국들을 지나칠 정도로 강하게 다스렸다. 앗수르와 일대일로 맞설 나라는 없었지만, 공공의 적에 대한 증오로 힘을 합칠 나라들은 있었다. 존 브라이트는 “속국들의 복종을 강요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목을 조였기 때문에 앗시리아를 증오하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었다”11)고 알린다. 앗수르의 몰락은 사르곤 2세, 산헤립, 에살핫돈에 이어 왕위에 오른 아슈르바니팔 때에 본격화된다.

아슈르바니팔의 형 샤마이 슘 우킨은 앗수르의 속국인 바벨론의 지도자였다. 샤마이 슘 우킨은 리디아, 시리아, 애굽 등과 연합전선을 펼쳐 앗수르를 압박했다. 아슈르바니팔은 연합군을 물리쳤고 이 과정에서 샤아미 슘 우킨은 사망했지만 앗수르는 많은 힘을 소진했다. 이 와중에 아슈르바니팔 사망 후 아들 신 사르 이스쿤과 반란자 아슈르 에틸 일라니 사이에 일어난 수 년 간의 왕위 다툼은 앗수르의 쇠퇴를 가속화 시켰다.

바벨론은 다시 기회를 잡았다. 신바벨론의 창건자라 불리는 나보폴라살은 B.C. 612년 니느웨를 공격해 3개월 만에 점령했다. 앗수르는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앗수르 병력이 하란으로 도망가 항전을 펼쳤지만, 바벨론은 가볍게 그들을 제압했다. 어떤 열방의 신도 앗수르의 정복을 막은 적이 있었느냐고 큰 소리 치던(사 36:18∼20) 앗수르의 교만은 그렇게 꺾였다.

바벨론에 의한 남유다의 멸망

B.C. 609년, 애굽의 왕 느고 2세는 갈그미스에서 최후의 항쟁을 펼치는 앗수르로부터 도움을 요청받는다. 바벨론의 급부상에 위기를 느낀 애굽은 앗수르를 돕기 위해 원정길에 오른다. 남유다의 16번째 왕 요시야가 애굽의 원정길을 막아섰다. 존 브라이트는 “요시야가 공식적으로 바벨론인들의 동맹국이 되었는지 아니면 독자적으로 행동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집트–앗시리아의 연합군이 승리하게 되면 이집트의 야심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는 그 연합군의 승리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12)라고 밝힌다. 요시야는 애굽의 출정을 막기 위해 므깃도에서 전투를 벌였지만 패배하고, 본인도 전사한다. 애굽은 서둘러 갈그미스로 향해 앗수르와 합류했으나 전쟁은 바벨론의 승리로 돌아갔다. 화가 난 느고 2세는 애굽으로 돌아가며 요사야에 이어 왕위에 오른 여호아하스를 포로로 데려갔고, 여호아하스의 형인 엘리야김을 여호야김으로 개명시켜 왕으로 앉혔다.

B.C. 605년, 느고는 다시 한 번 갈그미스로 향한다. 이번에도 승자는 나보폴라살에 이어 왕위에 오른 느부갓네살의 바벨론 이었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으로 돌아가며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는데 이때 다니엘과 세 친구가 끌려가게 된다. 유다백성은 바벨론에 의해 세 차례에 거쳐 포로로 끌려가고 세 차례에 거쳐 귀환하게 되는데, 그 서막이 시작된 것이다.

유다 멸망의 결정적 요인은 18대왕 여호야김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B.C. 601년, 바벨론은 애굽과 다시 한 번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이 전투에서 애굽과 바벨론 모두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된다. 이때 여호야김은 바벨론을 배신하고 애굽과 손을 잡는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의 속국 이었던 모압, 암몬, 아람 등을 이용해 유다를 치고 이 과정에서 여호야김이 죽는다. 이후 왕위에 오른 여호야긴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데 이것이 2차 포로였고 이때 에스겔 선지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여호야긴은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37년 만에 풀려나 죽을 때까지 좋은 지위를 누리며 살게 된다(왕하25:27∼30).

▲미켈란젤로가 그린 예레미야

여호야긴에 이어 왕위에 오른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무시하고 바벨론에 반기를 든다. B.C. 587년. 바벨론은 유다로 진격해 18개월 동안 예루살렘 성을 둘러쌓다. 예루살렘성은 기근이 심하여 양식이 떨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왕하 25:1∼3) 더는 버틸 힘이 없었던 유다는 제대로 된 저항한 번 하지 못한 채 철저하게 짓밟힌다. 느부갓네살의 신복인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은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예루살렘 주위의 성벽을 헐고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왕하 25:8∼11).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히고 사슬에 결박당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된다(왕하 25:7). 시드기야는 죽는 날까지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다. 요세푸스는 시드기야가 죽자 바벨론은 “거창하게 장례를 치러주었다”13)고 전한다.

유다에 남은 자들

바벨론은 유대 땅에 일부 백성들을 남겨두었다. 주로 가난한 농민들이어서 반역은 생각지도 못했다. 바벨론은 남은 자들을 다스릴 총독으로 그달리야를 임명했다. 그달리야의 아버지 아히감은 예레미야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었다(렘 26:24).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에게 바벨론에서의 좋은 대우를 약속하며 동행하길 권했지만, 예레미야는 거절하고 황폐한 유대 땅에 남았다. 바벨론의 군대가 철수하자 바벨론을 피해있던 무리들이 다시 돌아오는데 그중 요세푸스가 사악하고 교활하다고 표현한 이스마엘이 그달리야를 암살한다. 그달리야가 총독이 된 지 불과 2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웠던 유다 백성은 대부분 애굽으로 피신하게 된다(왕하 25:25∼26). 이제 유다 땅은 텅 비어버렸다. 한편, 애굽으로 내려갔던 일부 유다 백성은 약 5년 뒤에 애굽으로 쳐들어온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다.

요세푸스는 남쪽 유다가 바벨론으로 끌려간 기간을 130년 6개월 10일 이라고 계산했다.14) 게오르크 포어러는 “주전 587년은 이스라엘의 삶에 있어서 가장 깊은 단절을 의미하였다. 그 뒤에 계속 되고 있는 것은 이전에 있던 ‘이스라엘의 역사’와는 다른 의미, 즉 이방통치 아래 강한 종교적인 토대를 가지고 살아갔던 한 민족사를 의미 한다”15)라고 평가했다.

1) 폴 존슨, 『유대인의 역사』(포이에마, 2014), 119.

2) 존 브라이트, 『이스라엘의 역사』(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368.

3) 폴 존슨, 『유대인의 역사』(포이에마, 2014), 126.

4) 요세푸스, 『요세푸스Ⅰ: 유대 고대사 』(생명의말씀사, 1987), 608.

5) 게오르크 포어러, 『이스라엘 역사』(성광문화사, 1986). 202.

6) 같은 책, 202.

7) 존 브라이트, 『이스라엘의 역사』(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371.

8) 요세푸스, 『요세푸스Ⅰ: 유대 고대사 』(생명의말씀사, 1987), 611.

9) 존 브라이트, 『이스라엘의 역사』(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376.

10) 폴 존슨, 『유대인의 역사』(포이에마, 2014), 127.

11) 존 브라이트, 『이스라엘의 역사』(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429.

12) 같은 책, 445.

13) 요세푸스, 『요세푸스Ⅰ: 유대 고대사 』(생명의말씀사, 1987), 646.

14) 같은 책, 651.

15) 게오르크 포어러, 『이스라엘 역사』(성광문화사, 1986). 249.

조믿음 기자 [email protected]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 |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왜 멸망했나?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B.C. 11세기에 사울이 초대 왕으로 등극하면서 시작된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는 남 유다가 멸망한 B.C. 6세기까지 약 500여 년 동안 이어진다. 구약성경 39권 중 무려 24권1이 이 시기에 기록되었을 만큼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역사서(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기상·하), 시가서(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예언서(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이스라엘 왕국의 태동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의 말년, 가나안에 정착해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듭되는 이방인의 침략에 대항해 앞장서서 싸워줄 왕을 세워주기를 요청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고 다스리신 왕은 하나님이었으나, 다른 나라들처럼 사람으로 왕을 삼기를 원했던 것이다. 사무엘은 그 요청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왕이 어떻게 다스릴 지를 엄히 경고한 후에 백성들의 바람대로 왕을 세우도록 하셨다. 그렇게 세워진 첫 번째 왕이 사울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허락하신 율법(모세 5경)에는 장차 등장할 왕이 백성을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지, 하나님이 이들에게 바라시는 모습은 무엇인지에 대해 기록되어 있었다(신 17:14~20). 왕이 된 자는 하나님의 율법서를 평생 가까이해서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며, 그 모든 규례를 지켜야 했다(신 17:18~19).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지에 따라 나라의 흥망성쇠가 결정될 것이라 하신 말씀은(신 28:1~68) 이후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 내내 그대로 실현된다.

다윗과 솔로몬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왕국의 전성기를 이끈 다윗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왕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었다. 하나님께 ‘내 마음에 합한 자’라 인정받은 그는 일평생 하나님의 계명을 정금보다 귀하게 여겼다(행 13:22, 시 19:7~10, 119:127). 하나님께 순종하면 잘 되리라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마음을 다해 지킨 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큰 성공이었다.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다윗은 그의 뒤를 이을 솔로몬에게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 지킬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왕상 2:1~3, 대상 22:12~13). 그리고 하나님께는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어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잘 지켜 행하게 하시기를 마지막으로 기도했다(대상 29:19).

다윗의 유언과 같이, 이후 등장한 이스라엘 왕국의 왕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는 축복을 받았으며, 이를 어기고 우상 숭배에 빠져 이방 신의 규례를 지킬 때는 외세로부터 고통을 받았다.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왕국의 세 번째 왕이 된 솔로몬은 일천 마리의 제물을 번제로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을 구했다.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지혜와 부와 영광을 주시며 “다윗의 행함같이 하나님의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축복의 날이 길 것”이라 말씀하셨다(왕상 3:14).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으며 성전 낙성식 날, 백성을 대표해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킬 것을 선언했다(왕상 8:58, 61). 이후 성전에서 하나님의 절기와 규례를 거룩하게 지켰고(대하 8:12~13),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다(왕상 10:21~23).

솔로몬의 우상 숭배로 분열된 이스라엘 왕국

그러나 솔로몬은 통치 말엽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고 타락의 길로 들어섰다. 솔로몬은 주변 나라들과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정략적으로 1천여 명의 후궁을 들였는데, 그가 늙었을 때 이 후궁들로 인해 그모스, 밀곰, 아스다롯을 비롯한 수많은 우상의 신전을 세우게 된 것이다(왕상 11:1~8). 이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셔서 다른 신을 좇지 말라고 경고하셨으나 솔로몬은 쉽게 마음을 돌이키지 못했다.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주변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솔로몬의 행동에 진노하셨지만 다윗을 생각해서 솔로몬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라를 빼앗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왕상 11:9~13).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 왕국은 솔로몬 사후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두 나라로 분열되어 힘없는 소왕국으로 전락했고, 다윗이나 솔로몬 시대와 같은 강성한 국력은 두 번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

북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

우상 숭배와 죄악이 만연한 나라

북 이스라엘(B.C.975~B.C.721) 왕조는 초대 왕 여로보암부터 마지막 왕 호세아 때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약 255여 년간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총 19명의 왕이 있었다. 북 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등 죄를 범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칭찬을 받은 왕은 없었다. 10대 왕인 예후가 ‘정직한 일을 잘 행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아합 왕조를 멸절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일 뿐, 그 역시 다른 계명들은 지키지 않았고 우상 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북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는 여로보암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백성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의 마음이 남 유다 왕에게 기울 것을 염려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장소가 아닌 곳에 제단을 세웠다. 또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은 제사장을 세우고 임의로 절기를 정해 제사하며, 금송아지를 세워 숭배했다(왕상 12:25~33). 여로보암 이후의 왕들도 그 선례를 따라 우상 숭배의 길을 걸었는데, 성경은 이를 ‘여로보암의 길’, ‘여로보암의 죄’라 일컫는다(왕상 16:19, 왕하 10:29).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린 북 이스라엘에는 고통이 끊이지 않았다. 반역자가 왕을 살해하고 자신이 왕으로 등극하는 반역의 역사가 수차례 일어났고, 왕이 저주받아 병에 걸리거나, 나라가 외세로부터 침략을 받았다. 그럼에도 북 이스라엘의 왕들은 권력 다툼에만 관심을 두었지 하나님을 경외하여 계명을 지키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우상 숭배를 권력 강화의 수단으로 삼기까지 했다.

북 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같이 악했지만 일곱 번째 왕 아합은 이전 왕들보다 더욱 악했다. 아합은 시돈의 공주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한 후 산당을 짓고 우상을 숭배해 하나님을 진노케 했다(왕상 16:30~32). 이세벨은 바알 신앙을 가진 우상 숭배자였는데, 북 이스라엘의 왕비가 된 후 아합은 물론 백성들까지도 우상을 섬기게 만들었다. 아합과 이세벨로 인해 백성들은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에 이어 이방의 우상까지 숭배하게 되었다. 이세벨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였을 뿐 아니라, 갈멜산 대결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회개하기는커녕 엘리야까지 죽이려 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 했던 백성에게 누명을 씌워 그를 죽이고 재산을 빼앗는 악행도 서슴지 않았다.

이후, 아합왕은 전쟁터에서 화살을 맞고 죽었다. 부하들은 아합의 피가 흥건한 병거를 사마리아의 연못에서 씻었는데 개들이 몰려와 그 피를 핥았다. 훗날 이세벨도 창밖으로 내던져지고 짓밟혀 시신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엘리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왕상 21:20~24).

북 이스라엘의 멸망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은 북 이스라엘은 시간이 지날수록 국력이 약화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통해 북 이스라엘을 징벌하셨다.

북 이스라엘의 국운이 기울어갈 때 남 유다로부터 구원의 기별이 왔다. 남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하며, 오랜 세월 동안 지키지 못했던 유월절을 다시 지키자고 북 이스라엘에 보발꾼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북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를 조롱하고 비웃었다(대하 30:1~10).

하나님의 손길을 끝까지 거부한 북 이스라엘은 결국 앗수르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앗수르군은 북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성을 3년 동안 포위 공격한 끝에 B.C.721년경 함락시켰다(왕하 18:9~12). 이로써 솔로몬 사후 나누어졌던 두 나라 중 남 유다만 남고 북 이스라엘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남 유다 왕국의 역사

축복과 저주가 반복된 나라

남 유다(B.C.975~B.C.586) 왕조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부터 시드기야 때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약 390년간 이어졌으며, 총 20명의 왕이 있었다. 이들 중 성경에서 “다윗의 행함같이”, “다윗의 길로 행했다”고 인정받은 왕은 아사,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4명뿐이었다. 이들은 다윗처럼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킴으로 나라에 하나님의 보호가 임하게 했다(왕상 15:11, 대하 17:3, 왕하 18:3~6, 22:2).

3대 왕 아사는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대로 행했고 당시 유다에 만연했던 우상 숭배를 금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사에게 평안을 허락하셨고, 구스 사람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위기 속에서도 승리하게 해주셨다(대하 14:9~15). 4대 왕 여호사밧은 아버지의 행적을 보며 하나님께 순종해야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켰으며 우상 숭배를 철저히 금했다(대하 17:3~9). 이후 암몬, 모압, 세알산 사람들의 연합군이 쳐들어온 큰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무 어려움 없이 전쟁에서 승리해 많은 전리품을 취해서 돌아오는 축복을 받았다(대하 20:1~30).

13대 왕 히스기야는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았던 유월절을 지키고 우상을 철저히 깨뜨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 그 결과,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강대국 앗수르가 남 유다도 정복하러 쳐들어온 국가적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왕하 19:30~35). 16대 왕 요시야 역시 유월절을 지킴으로 ‘이같이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왕은 전에도 후에도 없다’는 영광스러운 증거를 받았다(왕하 23:23~25).

그러나 나머지 왕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 우상 숭배의 길로 빠져 왕국을 위험에 빠뜨렸다. 아하스는 바알의 우상을 만들어 섬겼고 힌놈의 골짜기에서 자신의 아들을 태워 제물로 바치기까지 했다. 결국 아람, 북 이스라엘, 에돔, 블레셋 등 여러 민족으로부터 계속 침공을 받아 많은 백성이 죽고 포로로 잡혀갔으며 재물을 약탈당하고 성읍을 빼앗기는 고통을 당했다. 죽어서는 왕들의 묘지에 묻히지도 못했다(대하 28:1~27).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아버지가 없앤 산당과 바알의 제단을 다시 쌓았다. 그는 손수 우상을 만들어 성전에 세워 숭배했고 자기의 아들들을 힌놈의 골짜기에서 제물로 태웠다. 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보내 남 유다를 공격하게 하셨고 므낫세는 바벨론에 끌려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회개했다(대하 33:1~20).

이처럼 남 유다 왕국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할 때는 외세의 침략 등 끊임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고,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을 따를 때는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는 역사가 반복됐다. 하지만 남 유다의 많은 왕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우상 숭배를 하다가 저주받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했다.

남 유다의 멸망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역시 우상을 숭배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제사장들과 유다 백성들도 시드기야를 따라 우상을 숭배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 계속해서 경고하셨지만 그들은 이를 무시했다. 결국 바벨론이 쳐들어왔을 때 시드기야는 눈앞에서 바벨론 사람들이 자신의 아들들을 죽이는 광경을 봐야 했고, 두 눈이 뽑힌 채 사슬에 결박되어 포로로 끌려갔다. 유다의 성전과 건물은 불살라졌고 백성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종으로 잡혀갔으며 모든 재물을 약탈당했다(왕하 25:7~17). 하나님을 저버린 남 유다는 B.C.586년경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하나님께서는 남 유다에 처참한 멸망이 임한 이유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셨다(렘 16:10~11, 44:23).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례와 법도를 버린 백성들에게 선지자를 보내 임박한 멸망을 알리시며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끝내 구원의 기회를 놓치고 멸망을 당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 멸망한 북 이스라엘의 역사를 남 유다 역시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 속에 나타난 국가와 개인의 흥망성쇠는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이 얼마나 준엄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운다. 또 오직 다윗과 같이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 계명과 법도를 지킬 때라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북이스라엘 멸망과 남유다 멸망과 관련된 역사 지식

<남 유다, 기원전 605년부터 535년까지>

예루살렘은 605년 바벨론의 초대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1차 함락을 당했고 연이어 2차 3차의 공격을 받고 포로로 끌려갑니다. 예루살렘 폐허는 587년, 바벨론을 무너뜨린 나라는 페르시아, 왕은 고레스 입니다.

다니엘9장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

예레미야25장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내가 그 땅에 대하여 선고한바 곧 예레미야가 열방에 대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니 여러 나라와 큰 왕들이 그들로 자기 역군을 삼으리라 내가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의 행한대로 보응하리라 하시니라

1. 유대멸망 당시에는 신바빌로니아(바빌론), 이집트(에굽), 메디아(메데), 리디아 총 4개국이 있었다.

2. 신바빌로니아가 메디아(메데)와 페르시아(파사)에게 멸망 후에 유대인들은 본국으로 귀환한다.

olivier21 님의 답변 | 2006-06-08 09:25

| 추천 0 바벨론의 통치 연대가 기원전 605년에서 538년입니다.

예루살렘은 605년 바벨론의 초대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1차 함락을 당했고 연이어 2차 3차의 공격을 받고 포로로 끌려갑니다. 다니엘은 1차 포로이며… 에스겔은 2차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은 1차 함락때 바로 없어지지 않고… 바벨론은 자신들이 임명한 왕을 통해 유다를 다스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계속하여 유다가 애굽에 구원을 청하는 등 눈에 가시같은 행동을 계속하자 마침내 완전히 예루살렘을 폐허처럼 만들고 거의 모든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갑니다. 이 때가 기원전 586년입니다. 이 때가 예루살렘 멸망시기입니다. 그러나 포로기간은 1차 포로시기부터 계산을 해야 맞습니다.

기원전 605년부터 바벨론을 무너뜨린 페르시아왕 고레스가 귀환명령을 내린 기원전 535년까지가 성경이 예언한 70년간의 포로기입니다.

이후에도 예루살렘 중건령은 다시 3차에 걸쳐 내려집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70년에 대한 예언은 포로시기에 대한 예언이므로 기원전 605년부터 기원전 535년까지입니다.

내용출처 : 검색

프로마크5A 님의 답변 | 2006-06-08 09:34

먼저 북방이스라엘입니다. 기원전 722/721년에 앗시리아(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왕은 엘라의 아들 호세아였습니다. 이때 북방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의 왕은 살만에셀(5세) 입니다. 이 내용은 구약 열왕기하 17장에 나와 있습니다. 남방유다입니다. 기원전 598년에 바벨론(신바빌로니아)에 의해서 멸망했습니다. 멸망 당시 유다의 왕은 시드기야였으며, 바벨론의 왕은 느브갓네살이었습니다. 이 내용은 구약 열왕기하 25장에 나옵니다.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은 호세아인데 북이스라엘의 호세아 3년에 남 유다는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다

북이스라엘은 끝내 복음을 거절함으로 호세아 9년에 앗수르에 의해 철저히 짓밟혀 멸망을 당한다. 그러니까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남유다의 히스기야 6년에 되어졌다.(왕하18:10)

남유다는 지도상에서 어디고 북이스라엘은 어딘가요?

그리고 이 두나라는 원래 따로인가요? 아니면 분열된 나라인가요?

◐원래는 통일 된 한 국가 였습니다(다윗의 통치와 솔로몬 치세)

지도출처 : http://www.s-mok.com/imr/map/

2. 남유다 북이스라엘 이렇게 나오는데 이해가 안되서

◐위의 지도와 같이 북 이스라엘은 10지파의 땅을 여로보암이라는 왕이 차지하고. 남 유다는 르호보암이라는 왕이 유다와 벤야민의 두 지파를 한 나라로 이루어 졌습니다.

3. 분열되었다면 왜 그렇게 되었나요? 누구때문에 …

◐이스리엘의 분열 ○솔로몬에 의한 강경정책 특히 건축사업을 위한 강제노동은 백성들의 원망이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불만은 더욱 커져갔다. 이런 불만은 솔로몬의 탁월한 조직적인 행정력으로 그 씨앗을 터트리지 않은채 유지되었다. 그러나 솔로몬 사후 이 불만은 즉시터졌고 제3대 왕위에 오른 르호보암은 북쪽 10지파의 요구를 거절함으로 이스라엘은 분열되어 북쪽은 10지파를 대표하여 여로보암이 초대왕이 되었고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르호보암이 이끌고 가게 되었다.

4. 여튼 남유다 북이스라엘 그 안에 소규모 지역, 도시가 있을텐데 그 명칭도 좀 알려주세요.

1) 남 유다 :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남유다의 르호보암 사이에 경계를 갖고 있던 베냐민지파의 영토는 남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그 경계선 상에 있었기 때문에 르호보암은 베냐민 지역의 상실은 곧 예루살렘을 매우 위태롭게 만드는 것임을 알고 전력을 다하여 베냐민지파의 북쪽지역을 확보하였다. 2) 북 이스라엘 : 한편 여로보암은 세겜성을 건축하고 그곳을 수도로 삼았다. 3) 기타 도시 : 기타 도시는 지도에서 참고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5. 그리고 그 두 나라가 왜 갈라졌는지?

◐두 나라가 갈라지게 된 경위는 3번 답에서 간략히 설명을 하였고요. 그 과정을 성경 말씀으로 알아 보겠습니다. 1) 원인 : 솔로몬 왕이 이방 신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진노로 나라를 둘로 나누겠다고 하신 말씀의 결과입니다 왕상 11:9-11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찌기 두번이나 저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하사 다른 신을 좇지 말라 하셨으나 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 솔로몬에게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 : 그러나 솔로몬 때에는 그 나라르 나누지 아니하시고 그 아들 대에 가서 나누어지게 됩니다. 왕상 11:12-13 그러나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2) 과정 :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정치행보를 묻는 여로보암과 그 일행의 질문에서 의견 불 일치로 분열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왕상 12:13-14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쌔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14 소년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3) 결과 : 이에 반발을 일으킨 여로보암의 모든 백성이 돌아가 여로보암으로 왕을 삼게 되었습니다. 왕상 12:19-20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더라 20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돌아왔다 함을 듣고 보내어 저를 공회로 청하여다가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좇는 자가 없으니라

자세한 내용을 얻으려면 열왕기 11장과 12장 전체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6. 그 두 나라가 왜 갈라졌는지. 그리고 세기도 알려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분열왕국 연대표

Good4Joy

이스라엘 분열왕국과 주변 국가 (BC 9 세기)

솔로몬왕 후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BC 930)하고,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BC 721) 남유다가 바벨론에 망하기(BC 586)까지의 연대표입니다. 표는 두 왕국의 왕, 당시 활동했던 선지자, 그리고 주요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개요 (Overview)

남유다에는 그나마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게 행한 왕이 있었습니다. 특히 히스기야는 (왕하 18: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 그리고 요시야는 (왕하 23:25)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라는 평을 받습니다. 그런데 많은 왕이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모든 왕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남유다는 다윗의 자손이 계속을 왕을 이어가지만 북이스라엘은 쿠데타가 자주 일어납니다. 북이스라엘에서 오므리가 4대로 가장 오래 유지한 왕가입니다.

남유다

344년 동안 20 왕이 다스림

수도: 예루살렘

북이스라엘

209년간 19 왕이 다스림

수도: 세겜(BC 930년), 브누엘(BC 930-909년), 디르사(Trrsah, BC 909-880년), 사마리아(Samaria, BC 880-720년)

분열왕국 연대표

초록색은 선정한 왕 , 노란색은 중간 정도한 왕 , 나머지는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한 왕

, , 나머지는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한 왕 겹치는 시기는 두 왕이 함께 다스리는 기간입니다.

분열왕국 가계도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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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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