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의 욕망 을 욕망 한다 | 라캉이 말하는 인간의 욕망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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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정보
책제목 미치게 친절한 철학
지은이 안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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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임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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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나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 Naver Post

프랑스의 정신의학자였던 자크 라캉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모든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구요. 그가 철학자였는지, 혹은 의사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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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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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 충청타임즈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2-1981)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재해석하여 “개인은 타자(他者, Other)의 욕망을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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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ctimes.kr

Date Published: 9/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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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 간증 < 선교 < 기사본문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유명한 경구는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한 말이다. 라캉의 이론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아이는 엄마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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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cjlogos.org

Date Published: 4/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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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내 마음] 2.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2.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첫 번째 연재에서 ‘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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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psychiatricnews.net

Date Published: 4/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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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칼럼 – 나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 유로저널

유로저널 177 – 나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1. 나르시즘의 시작 우리는 매일 하루에도 여러번씩 거울을 본다. 오늘 내 얼굴은 어떤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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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knews.net

Date Published: 4/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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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 In His Step

인간은 타자(他者)의 욕망을 욕망한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말이다. 우리가 간절하게 바라는 욕망은 그 깊은 곳을 살펴 보면 다른 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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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overnance.tistory.com

Date Published: 6/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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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나의 욕망일까?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일까? – 마음밑돌

보건소에서 일하는 친구도 요즘 새벽까지 일한다더니 얼굴이 초췌해졌더라고요. 이 친구 말이 치사율은 메르스 때보다는 훨씬 낮은데, 전파 속도가 빨라서 걱정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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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ersket.com

Date Published: 4/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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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이 말하는 인간의 욕망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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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타인 의 욕망 을 욕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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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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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드리마 `오징어 게임’에서 극 중 인물인 형사가 사라진 형을 찾으러 형이 머물렀던 고시원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몇 권의 책이 슬쩍 비쳐진다. 라캉의 `욕망이론’, 카뮈의 `이방인’르네 마그리트 등이다. 다들 눈치 챘겠지만 감독은 이 책들을 통해 드라마 전개에 대한 복선을 깔아놓았다.

# 라캉의 욕망이론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2-1981)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재해석하여 “개인은 타자(他者, Other)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난해한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해석하자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그리고 독자 여러분 모두가 지니고 있는 어떠한 욕망은 누군가의 욕망에서 비롯된 욕망이라는 것이다. 진짜 주체인`나’의 욕망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캉의 욕망이론은 무의식과 언어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타인과 상호작용하면서 언어를 사용하기에 개인의 무의식은 그 언어로 구성된다는 것이 라캉의 이론이다. 그런데 그 언어는 본질적으로 타자의 언어(영아기에는 엄마, 유아기에는 주변 교사들, 아동기에는 주변 친구들 등)이기에 무의식은 결국 타자의 담론이 된다. 즉, 사람은 언어 속에서 태어나고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언어를 배우는데 그 언어는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의 담론이자 욕망인 것이다.

# 진짜 나의 욕망은

올해 초 주식 광풍이 불 때 생애 처음으로 주식 몇 주를 샀다. 내 주변에서 주식으로 재미 봤다는 사람들이 많을 때였다. 서울 사는 사촌 여동생 부부가 전세금 등을 탈탈 털어 영끌로 동탄에 아파트 분양을 받았다. 2년간 좁디좁은 친정집에서 얹혀사는 것을 무릎 쓰면서까지 웃돈 주고 청약티켓을 샀다.

나는 왜 평소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주식이라는 것을 사게 되었을까. 사촌 여동생 부부는 신혼의 단꿈을 포기한 채 친정살이까지 하면서 아파트에 매달리게 되었을까.

라캉은 욕망의 척도는 타자라고 했다. 따라서 남들도 원하는 것, 남들만큼 사는 것, 남들보다 더 잘 사는 것을 욕망한다. 우리의 욕망이라는 것을 돌아봤을 때 그것을 바라봐 주는 타자가 없다면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의 말을 빌리자면 나를 바라보는 것들이 나를 존재케 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욕망의 주체인 나는 주체적으로 자신을 욕망하기보다, 그 사회가 공유하는 욕망의 가치에 휘둘리게 된다. 이 욕망은 오롯한 나의 욕망이 아니기에 아무리 추구해도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욕망 자체를 욕망하게 된다. 욕망 자체를 욕망하는 것 `오징어 게임’의 내용이기도 하다.

# 불혹(不惑)에…

타자의 가치관에 미혹되기보다 주체적 가치관을 구축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공자(孔子)는 논어(語)에서`불혹’이라 했다. 불혹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이 아니라 스스로 옳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모색하고 추구하는 진정한 `나’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불혹, 이 역시 고민과 방황으로 점철되는 과정이겠지만 그래서 여전히 흔들리겠지만, 흔듦의 뿌리가 타자(세상)가 아니라 주체인 `나’안에 있다는 것이 불혹 이전과 구분된다.

주식과 투자, 남들에게 돋보이는 자리, 승진 자리를 끼웃거리는 욕망은 타자의 욕망인가, 진짜 `나’의 욕망인가. 불혹(不惑), 50대 중반에 나의 무의식과 차분히 치열하게 대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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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어렸을 때부터 꾸어온 꿈. 오늘도 이루고 싶어 하는 대부분의 꿈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성취하고픈, 마음 깊숙한 소원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신이 이루었다는 성취감을 상상하고 바라는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의 집에 대해 별 불편을 느끼지 못하다가도,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하거나 그 사람이 타는 차를 보면 심기가 불편해진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유명한 경구는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한 말이다. 라캉의 이론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아이는 엄마와 서로 반응하면서 사회생활의 원리를 배워나간다. 아이가 웃을 때 엄마가 좋아하면 아이는 자꾸 웃는다. 아이가 한 발짝 걸음을 떼었을 때 엄마가 박수를 치면 아이는 자꾸 걸으려고 한다. 아이의 한두 마디 말에 가족이 환호하면 아이는 자꾸 말을 하려고 한다. 아이는 나이를 먹으면서 대상을 엄마에서 친구, 선생님, 친인척, 사회로 바꿔가면서 자신의 행동을 사회적으로 정립해 나간다. 이렇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사회를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다른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살 수는 없다. 어느 순간 내 욕망과 다른 사람의 욕망이 구분되는 때가 온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을 때,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부모가 원하는 것인지, 선생님이나 이웃이 칭찬해 주니까 하고 싶은 건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런 분별 능력이 계발되지 않은 상태로 혹은 그러한 분별력을 싹수가 노랗다고 생각하는 부모나 사회의 억압 때문에 욕망을 누른 채로 성인이 되는 사람들이 많다. 부모가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에 가는 학생들도 부지기수이다. 그런 학생들은 대학 생활이 행복할 리 만무하고 졸업 후에 취업을 해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서른 살을 넘기고 마흔 살을 넘기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의 삶은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돌이키기에 너무 멀리 왔다는 깨달음 앞에서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타인의 욕망을 거부감 없이 자신의 욕망인 양 착각하고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자신의 가치나 선택을 사회적 잣대에 맞추고 보편적인 욕망으로 포장된 타인의 욕망에 맞추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자신의 욕망을 누르고 사는 게 덕목이라는 가르침을 받아왔다. 이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유교의 가르침이다.

하지만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건 슬픈 일이다. 열심히 살기는 살았는데 허무하고, 넉넉히 채운다고 채웠는데 허전하고, 많은 걸 성취한 것 같은데 텅 빈 가슴만 남았다고 뒤늦게 씁쓸해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보다 타인의 욕망에 더 불타오르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간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우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자는 말은 본능적, 동물적 욕구를 채우자는 말이 아님은 다 알 것이다. 크리스천은 누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한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서로 배치된다면서, 인간적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고 배워온 것이 문제이다. 욕망을 좀 더 멋진 말로 바꾸면 비전과 꿈이 된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예를 들어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원하지 않는 의사나 판검사의 길을 강요받는다면, 그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라는 달란트는 바로 욕망의 씨앗이다.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늦지 않았다. 마음 속 깊이 눌러 놓았던 자신의 욕망을 끄집어내어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말자. 타인이 규정해 놓은 행복의 척도에 자신을 맞추느라 인생을 소모하지 말자.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치를 보자. 따뜻하게 우리를 지켜보시는 그분의 눈을 보자.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이런저런 이유로 계발하지 못했다면 지금 시작해 보자.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계발해서 행복해진다면 남은 인생이 얼마나 소중할 것인가. 그 아름다운 달란트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있겠는가.

하나님은 골방이나 교회에서만 우리와 긴밀한 교제를 하시는 분이 아니다. 여행을 떠나자. 몸이 떠날 수 없다면 상상의 날개라도 펴보자. 일상이 짜증스럽고 공동체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도 타인의 욕망이 자신의 욕망을 누르기 때문이다. 타인의 욕망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자. 봉사하고 선교하는 많은 이들이 행복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을 누르고 있던 타인의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한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손짓하고 계신다. 골방에서 나오라고…

[내 인생, 내 마음] 2.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

2.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첫 번째 연재 에서 ‘전기밥솥에다가 에너지를 쓰면서 살지 말자(할 수 없는 것은 원하지 말자!)’라고 끝맺음을 하였었습니다. 이 원칙을 스스로의 삶에 적용을 해본다면 생각보다 많이 깜짝 놀라실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많은 곳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고?’

이것만 인식을 하셔도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훨씬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출근길 지하철에서, 퇴근길 양재 IC 인근에서 에너지를 쓰고 있을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미 시험을 보고 나서, 합격 발표를 앞두고는 더 이상 노심초사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더 이상 전기밥솥 앞에서 용을 쓰는 그런 어이없는 행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번아웃 시키지 말자고요.

첫 번째 연재 말미에 제가 이 원칙은 우리의 대인관계에 더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는 교훈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원칙이 우리의 대인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먼저 관계가 전혀 없을 거 같지만, 상당한 연관성이 있는 영상 이야기로 시작을 하고자 합니다. 그 영상은 김제동 씨가 ‘연애’에 관련해서 강의한 영상입니다. 유튜브에 ‘김제동 연애’라고 검색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영상에서 김제동 씨는, 연애는 무척 간단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연애는 ‘민주주의 원칙’에만 입각해서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내가 나에게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 듯이, 타인에게도 타인의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라고 강조합니다. 김제동 씨는 연애도 이 원칙만 적용을 한다면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고 재미있게 주장을 합니다. 정말 재미있는 영상이니 유튜브에 검색을 하셔서 직접 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원칙만 적용을 한다면,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이성이 보이면 그냥 말을 걸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지나가다가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식사 한 번 하실까요?’라고 그냥 툭 던지면 됩니다. 그렇게 하다, 그분이 ‘싫어요’라고 말하시면 그냥 가던 길 가면 됩니다. 그런데 ‘내가 고백을 했는데, 어떻게 내 고백을 거절해?’라고 생각을 한다면,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아주 독재적인 발상입니다. 고백을 하느냐 마느냐는 나의 권리이듯이, 고백을 받고 거절하느냐 마느냐는 그(그녀)의 권리인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해주지 않고 ‘왜 내 고백을 거절해? 내 고백을 거절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고백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면 고민은 내 것이지만, 고백을 하고 나면 고민은 내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것이 된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고백은 주로 중간고사 기간에 하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재미있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과장되어 있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과장 속에 우리 삶에 큰 교훈을 줄 수 있는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김제동 씨도 강의 말미에 이 원칙은 우리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대원칙이라고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답을 듣기 전에 답을 찾기 위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나의 마음을 고백하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고, 스트레스가 큰 사건입니다. 그런데 김제동 씨 영상을 보면 그렇게 간단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쉬워 보입니다. 그 차이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교훈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왜 나는 이성에게 고백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김제동 씨 이야기는 그렇게 간단할까요?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가 질문입니다. 한 번 답해 보시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수동적으로 글을 읽는 것과 능동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은 스스로 가져가는 것에 있어 큰 차이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위 기술에 답도 어느 정도 적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빈 공간에 자신의 생각을 넣어보시길 바랍니다.

생각을 좀 해보셨나요? 네, 맞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고백을 할 때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각을 강요합니다. ‘내 고백을 거절하면 안 되는데’, ‘내 고백을 거절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은 모두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생각들입니다. 김제동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독재적인 발상입니다. 고백을 할지 말지가 나의 권리이듯이, 고백을 받을지 말지는 상대방의 권리입니다. 게다가 ‘상대방이 고백을 받느냐 마느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주어 자체가 ‘나’가 아니지 않습니까?

첫 번째 연재의 결론이 생각이 나시나요? 맞습니다. 우리는 대인관계에 있어, 주어가 ‘나’가 아닌 많은 바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어가 ‘나’가 아니라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의미합니다. 대인관계가 어려운 연유는 대부분 여기서 기인합니다. 애초에 할 수 없는 것을 바라왔던 것입니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힘드신가요? 무엇을 바라고 계신가요? ‘엄마가 잔소리 좀 안 했으면 좋겠는데…’, 자식과의 관계에서 힘드신가요? 무엇을 바라고 계신가요? ‘아들(딸)이 공부 좀 했으면 좋겠는데…’, 친구와의 관계에서 힘드신가요? ‘그 친구가 다른 친구들보다 나를 더 좋아해 줬으면 좋겠는데…’, 이성관계에서 힘이 드신가요? ‘내 남자(여자) 친구가 이렇게 행동해줬으면 좋겠는데…’ 이 무수한 바람들의 공통점이 보이시나요? 이 바람들 중에 주어가 ‘나’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주어가 상대방(타인)입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대로 되기를 바라신 건가요?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사람들은 버튼만 누르면 작동이 되는 로봇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인정해주지 않는 한 대인관계가 편해질 수 없습니다. 전기밥솥 앞에서 용쓰고 ‘피가 말린다’라고 되뇌는 것이랑 별반 다르지 않은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에너지를 쓰면서 지칠 뿐이지, 바뀌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자크 라캉이라는 철학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요. 물론 이 문장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더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 연재 내용을 벗어나는 내용이라 생각하기에 간단하게만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연재 중반부에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여기까지 강의를 하고 나면 이렇게 반응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면 인간관계에서 모든 바람들을 포기하고 살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살 거면 굳이 사람들 사이에서 살 이유가 없겠지요. 그냥 산에 들어가서 혼자 살면 됩니다. 그런 무책임한 결론을 내리고자 말씀을 드린 것은 아닙니다. 일단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 인간관계에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인식’하는 것이 가장 가장,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첫 번째 연재에서 제가 ‘첫 번째 이유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스스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것이 할 수 있는 일인지 할 수 없는 일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인식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정신 건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고 제게 물어보신다면, 저는 ‘인식하기’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인식을 하고 나면 놀라운 것들이 발견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할 수 없는 것들’을 바라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요.

여기까지가 첫 단계입니다. 이 첫 단계는 강조, 또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첫 단계에서 끝내면, 대인관계에서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 허무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주장을 하고 싶지도 않고, 또 실제로도 제 주장이 거기서 끝나지도 않습니다. 그다음 단계에 대한 이야기도 가지고 있지만, 지면 관계 상 그 이야기는 다음 연재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힌트를 조금만 드리자면, ‘인식을 했다면, 해상도를 높여서 바라보자’입니다. 무슨 말인지 잘은 모르시겠지요? 다음 연재에서 자세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이번 연재에서는 생각해보면 좋음직한 질문 하나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법륜 스님 영상에서 보았던 질문이고, 제 강의 내용과 많은 것이 맞닿아 있는 질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좋은 질문이니 이 기회에 잘 생각해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어느 날 몸이 좋지 않아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며칠 뒤 건강검진 결과가 나와서 진료를 보러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위암’이니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내 일’이라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기분이 우울하고 침울해지시나요? 정말 위암을 통보받은 이 날이 우울해하고 침울해해야 하는 날일까요? 오히려 감사해하고 축하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을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여러분은 이 일이 ‘우울, 슬픔’으로 다가오시나요? ‘기쁨, 감사’로 다가오시나요? 한 번 생각해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이 질문이 제 강의 내용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도 다음 연재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커밍 순~

※ 본 연재는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강의 내용을 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나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유로저널 177 – 나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1. 나르시즘의 시작

우리는 매일 하루에도 여러번씩 거울을 본다. 오늘 내 얼굴은 어떤지, 옷매무새는 어떤지를 체크하기 위해서 우리는 거울 앞에 선다.

그런데 라깡에게 있어서, 거울은 나르시시즘의 시작이다. 인간은 자신의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상처와 불안을 자신이 투사해 놓은 이상적인 자아를 통해 위안 받고자 한다.

Norman Rockwell, Girl at the Mirror, 1953

라캉에 의하면 어린 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은 완벽한 나르시즘 그 자체라고 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태어난 후 처음으로 정신적 분열을 경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라깡의 말처럼, 우리 자신의 욕망을 타자의 욕망에 두게 되기 때문이다.

즉, 내가 꿈꾸는 지금 나의 욕망도 내가 생각해 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예전에 어느 누군가의 꿈, 어느 누군가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우리의 욕망을 누르고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 거울앞에 선 자화상, 1882-83

2. 근원적 나르시즘

자크 라캉(Jaques Lacan)은 주체의 문제, 사회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 그리고 인간과 언어와의 관계에 대해 프로이트를 재해석한 철학자다. 프로이트는 아동발달의 초기 단계에서는 주체와 객체, 자신과 외계 간에 뚜렷한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이 상태를 라캉은 상상계(The Imaginary)라고 지칭했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거울 단계를 통해 자기인식을 하게 되지만 타자 속에서 주체를 경험하게 되므로 소외의 길을 걷게 된다.

인간이 개별성을 획득하는 장소는 상징계이다. 그러나 상징계로의 이행은 주체의 분열을 초래한다. 또한 언어에 의해 중개된 주체는 분열되어 자기 자신을 기표로 표현하게 된다. 라캉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의 세 범주로 구분하여 설명했다.

라캉은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어린 아이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거울단계(mirror stage)를 거치면서, 처음에는 사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자신과 같이 서 있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잘 구분하지도 못한다.

그러다가 거울 속의 이미지가 바로 자신의 것이며 다른 사람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껏 파편적인 형태로 여겨졌던 자신의 신체가 거울 속에서는 완전한 이미지로 보여지는 것이다.

나와 거울 속의 나

그러나 사실 아이가 ‘나’라고 규정한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이미지일 뿐이다. 그 이미지는 자신을 실제 모습보다 작게, 그리고 거꾸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있어서 그 이미지는 자신의 완벽한 모습임과 동시에 자신을 돌봐주는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는 정신분석 용어로 이상적 자아로 불리며 타자에 의해 보여짐을 인식하지 못하는 ‘객관화되기 전의 나’에 해당된다.

보여짐을 모르고 바라봄만 있는 이 단계는 이미지를 이상화하기에 상상계라고도 불린다. 이 단계, 즉 거울단계이자 상상계가 바로,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라는 가설 가운데서도 나르시시즘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는 무의식이 있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유아기에 아기가 갖는 최초의 자아의식을 ‘근원적 나르시시즘’이라 불렀다.

나르시즘

3. 에고와 주체

아이가 거울단계에서 최초로 ‘나’라고 인식하는 존재를 라깡은 ‘에고(ego)’라고 불렀다. 이는 결여가 없는 정체성을 지닌 ‘나’를 만드는 허구적인 자기규정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일종의 환상인 것이다.

아니쉬 카푸어, 비정형(트위스트), 2008

마치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인 비정형의 매끈한 거울상들 사이를 걸어가면서 보이는 납작하게 짜부라진 자신의 모습, 이리저리 뒤틀린 상의 각도로 비쳐지는 우리들의 모습 때문에, 정작 우리 자신의 실체가 보이지는 않는 느낌처럼, 허구의 에고는 우리인 체를 하며 우리 삶속에서 우리 행세를 한다.

이 에고는 우리가 죽는 날까지 결코 벗어버릴 수 없는 단단한 갑옷처럼 우리들과 함께 존재한다. 라깡은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자아개념인 이 에고가 상징계(The Symbolic)에 의해서 주체(subject)로 바뀌게 된다고 했다.

아이가 거울단계에서 자신과 자신의 이미지를 동일시함으로써 만들어낸 것이 에고라면, 주체는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만들어내는 ‘나’에 대한 개념이다. 주체는 언어에 의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즉 사회 속에서 규정된 ‘나’이다.

Maurice Guibert, Henri de Toulouse-Lautrec as Artist and Model, 1900경

다시 말해 에고는 상상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반면에, 주체는 상징계에 의해 만들어진다. 또한 에고가 정체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주체의 본질은 분열이다. 주체의 분열은 자아의 의식적 담화와 행위, 그리고 문화 사이의 분열을 나타낸다.

이런 분열은 주체의 내부에 숨겨진 구조, 즉 무의식을 형성한다. 분열은 담화나 상징계가 주체들을 중개하여 진실로부터 멀어지도록 함으로써 발생한다. 중개에 의해 주체를 표현할 수밖에 없으므로 주체는 자신의 본질적인 부분을 박탈당하게 된다.

개별성을 보증하는 상징계로의 편입이 주체의 소외를 야기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어린 아이는 사회와 문화, 조직, 그리고 언어를 받아들게 된다. 어린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것들에 맞추어 오로지 자신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정신병인 신경증 현상을 일으키게 될 수도 있다.

4. 오이디푸스 현상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email protected]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인간은 타자(他者)의 욕망을 욕망한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말이다.

우리가 간절하게 바라는 욕망은 그 깊은 곳을 살펴 보면 다른 누구의 욕망이며, 때로는 조작되고 강요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셀럽을 동원한 광고의 영향을 받아 우리의 소유와 소비 욕구는 조작되고 강요되기도 하고,

부모나 사회의 선후배를 통해 그들의 바람이 우리의 욕망으로 강력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굳이 ‘타인’이라고 하지 않고 ‘타자’라고 한 것은

나와 다른 주체를 의미하기 보다는

주체(나)가 자기 안에서 하나로 환원시킬 수 없는 이질성으로서의 ‘남’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 욕망은 언제나 불안하고 두려움을 우리에게 남긴다.

남의 욕망이 나를 사로잡지 않도록 주체의식을 가지고 독립적인 삶을 사는 것도 중요하고,

또한 우리네 의식 뿐만 아니라 무의식 속에서도 건강함을 유지하는 삶을 살아가는 마음 챙김도 중요하다.

특히, 하나님을 이해하고 믿고 신뢰함에 있어 그 알아차림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를 찾고 그것을 꿈과 비전으로 삼았는지, 주변의 기대와 칭찬에 매몰되어 잊고 살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생의 후반에는 참된 내 욕망을 욕망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단상] 나의 욕망일까?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일까?

요즘 코로나 때문에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위축된 것 같아요. 저 역시 3월에 진행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워크숍이 보류되었는데요. 저야 함께 하는 직원이 없으니 저 하나 책임지면 되지만, 딸린 식구가 많은 사장님들, 손님이 오지 않는 자영업자분들, 중국에서 원자재를 가져와야 하는 관련 기업들은 타격이 클 테니 걱정이 됩니다.

어제는 제 첫 내담자였던 A가 “샘, 저 한국 돌아오자마자 돈 벌었어요.”라고 하길래 취직한 줄 알았더니 체측알바(?)를 했답니다. 코로나가 의심되는 분들 체온을 측정하는 아르바이트인데 시급이 세다고요. 아이고 ㅠ..ㅠ

보건소에서 일하는 친구도 요즘 새벽까지 일한다더니 얼굴이 초췌해졌더라고요. 이 친구 말이 치사율은 메르스 때보다는 훨씬 낮은데, 전파 속도가 빨라서 걱정이라고요. 요즘 다들 서로에게 예민해져 있어서 민원인들뿐만 아니라 동료들 사이에서도 신경과민 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좀 물러갔으면 좋겠네요.

요즘 저는 메타지능을 파다가 자아확장성에 꽂혀 있는데요. 결국 메타지능을 높이려면 자아확장성의 단계로까지 가야 한다는 거죠.

시작은 ‘나’를 위한 욕구와 욕망에서 출발하더라도, 자아확장성 단계까지 이르러야 삶의 에너지가 꽃피는데요. 스캇펙은 자아확장성은 외부에 존재하는 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그러고 보면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면 가장 빨리 깨치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랑할수록 더 알고 싶고 궁금해지니 탐구하게 되고, 이런 일련의 과정 자체가 즐거우니까요. 반면 해야 해서 그저 시늉에 그친 것들이나 어떤 자격이나 문턱을 넘기 위해 했던 건 금방 휘발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나의 욕망이란 것도 그래요. 내 욕망이 아닌, 알고 보면 타자의 욕망으로 점철된 경우도 많죠. 그래서 자크 라캉은 이렇게 말합니다. 진짜 내 욕망을 알고 싶으면 그 욕망을 가지지 않은 집단으로 한번 들어가 보라고요.

자크 라캉에게 사례를 보태자면 후배 C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C가 말하길 팀에서 자기 빼고 다 기혼이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신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소개팅도 하고, 검도, 스킨스쿠버 등 이성이 많은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했는데 그럴수록 마음만 허해지더래요.

그런데 이번에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는 대부분이 싱글이랍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결혼하고 싶은 욕망이 싹 사라졌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들 고양이를 한 마리씩 키우고 있어서 ‘나도 고양이 한 마리 키워 봐?’ 라는 생각이 들더래요.

그런데 “과연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욕망은 정말 나의 욕망일까?” 싶은 의문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제가 아픈 노묘를 돌보는 집사 까페를 링크해 주었습니다.

특히 신부전이랑 녹내장은 노묘의 단골 병인데, 만약 나중에 투병을 하게 되면 하루에 6번 시간 체크해서 안약을 넣을 수 있는지, 나비침을 등에 꽂아서 수액을 하루 세 번 맞출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너무 키우고 싶으면 한 번 키워보라고요.

까페에 들어가서 집사들의 간호일기, 무지개 다리 건넌 고양이 이야기를 읽던 C는 아무래도 본인은 야근이 잦고, 혼자 사는 데다, 간호할 여력이 안 될 것 같다며 유기묘를 여럿 돌보는 집사에게 얼마 기부하는 것으로 고양이에 대한 욕망은 마무리되었는데요.

암튼 이것이 진짜 나의 욕망인지 알고 싶으면 그 욕망이 없는 집단이나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보는 것, 그리고 그 욕망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어려움을 내가 감당하고 책임질 수 있는지 자각하는 건 중요한 지점이죠.

빅터 프랭클은, 어떤 욕구가 단지 욕구에 그치는 게 아닌, 진심으로 사랑하는 확장성의 단계에 이르면 설사 그것이 고통과 시련으로 오더라도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고 하는데요.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보면 이런 사례가 잘 나타나 있죠. (pp.186-189)

한번은 나이 나긋한 개업의 한 사람이 우울증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왔다.

그는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를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다. 내가 그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그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을 제외하고는 말을 될 수 있는 대로 자제했다.

“선생님, 만약 선생께서 먼저 죽고, 아내가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가 말했다.

“오 세상에! 아내에게는 아주 끔찍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견디겠어요?”

내가 말했다.

“그것 보세요. 선생님, 부인께서는 그런 고통을 면하신 겁니다. 부인에게 그런 고통을 면하게 해 주신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다. 그 대가로 지금 선생께서 살아남아 부인을 애도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조용히 일어서서 내게 악수를 청한 후 진료실을 나갔다.

어떤 의미에서 시련은 그것의 의미를 알게 되는 순간 시련이기를 멈춘다.

자기 시련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게 되는 자는 기꺼이 그 시련을 견딘다.

p.198

“염세주의자는 매일같이 벽에 걸린 달력을 찢어내면서 날이 갈수록 그것이 얇아지는 것을 두려움과 슬픔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비슷하다.

반면에 삶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의미를 찾는 사람은 떼어낸 달력의 뒷장에다 중요한 일과를 적어 놓은 다음 그것을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아 놓는 사람과 같다.

그는 거기에 적혀 있는 그 풍부한 내용들, 그 동안 충실하게 살아온 삶의 기록들을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반추해 볼 수 있다.”

pp.230-231

“사람이 삶의 의미에 도달하는 데에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자신의 일을 통해서, 두 번째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함으로써,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의미로 들어가는 세 번째 길이다.

자기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무력한 희생양도 그 자신을 뛰어넘고, 그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 인간은 개인적인 비극을 승리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자신의 시련을 자랑스러워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그것을 품위 있는 것으로 만들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불행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불행하다는 것만을 다만 부끄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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