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에 들게 하지 마옵 시고 | [날마다 기막힌 새벽 #131]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126 개의 자세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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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목사 새벽묵상 (한글 자막 유)
[날마다 기막힌 새벽 #131]
시험에 들게 마시옵고
본문말씀 마태복음 6장 13절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400장 험한 시험 물 속에서
1 험한 시험 물속에서 나를건져 주시고
 노한풍랑 지나도록 나를숨겨 주소서
2 권세능력 무한하사 모든시험 이기도
  풍랑까지 다스리는 주님앞에 비오니
3 죄악 길에 빠진이몸 캄캄한데 헤매며
  부르짖는 나의애원 들으소서 내주여
후렴 주여나를 돌보시사 고이 품어 주시고
       험한풍파 지나도록 나를 숨겨 주소서

#김동호목사 #새벽QT #날마다기막힌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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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이 기도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두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하나입니다. 시험에 드는 것은 곧 악에 빠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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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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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 양의문교회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라는 간구는 하나님께 ‘우리를 시험하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귀의 유혹에 걸려들어 마귀가 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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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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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간구: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 바른믿음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 6:13) 주기도문의 여섯 번째 간구(The Sixth Petition)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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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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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I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주기도의 마지막 청원은 바로 그러한 기준에 맞추기 위한 하나님 백성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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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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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 …

본문: 마 6:9-13 제목: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몇 주간에 걸쳐 우리는 주기도문을 본문으로 해서 서로 은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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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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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_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 코이네로 말하라

이처럼 에덴 동산에도 유혹하는 것이 있었는데,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이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사탄은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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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 네이버 블로그

다시 죄를 범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으로부터 우리의 영혼과 삶을 보존하기 위해 주님께서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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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파워]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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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 한마음교회

20180715(마 6:13).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시험되지 않은 믿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시험을 거치지 않은 믿음은 거짓일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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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13절 상반절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 …

마 6:13절 상반절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우리는 주기도문에서 처음으로 부정적인 간구를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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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시험 에 들게 하지 마옵 시고

  • Author: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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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11. 17.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WJNrbvU17oM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마태복음 6 장

13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말씀요약 —-

주기도의 마지막 여섯 번째 간구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 6:13) 입니다. 시험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시험이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를 유혹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범죄 하도록 하는 시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시험에서가 아니라, 우리로 범죄 하게 하는 악한 마귀의 온갖 계략에서 구하여 달라고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한 시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인 우리의 유익을 위해 고난으로 연단 받게 하는 것은 다 필요한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성숙시키기 위한 시련(연단)이요 훈련입니다.

그러나 시험이란 말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범죄 하도록 유혹하고 죄악에 빠지게 하는 유혹(temptation)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런 유혹으로 시험하여 죄악에 빠지게 하는 것은 악한 자 곧 사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지만 마귀처럼 죄에 빠지도록 유혹하는 시험은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창 22:1; 히 11:17).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유혹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 시험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전함과 견고함을 드러내어 믿음의 참된 본질이 어떤 것임을 그의 믿음의 후손들인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라는 간구는 하나님께 ‘우리를 시험하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귀의 유혹에 걸려들어 마귀가 파놓은 함정에(올무와 그물에) 빠지지 않게 해주소서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를 유혹하여 악에 빠지게 하는 마귀의 시험을 우리의 지능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의 시험에 걸려들어 악에 빠지게 되면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됩니다. 그러므로 “악에서(또는 악한 자에게서) 구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잘 나가던 사람들이 마귀의 유혹에 빠져 잘못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려 죄악에 빠져 비참하게 되는 사례들을 우리는 자주 듣고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마귀의 유혹과 자기 욕심에 끌려 받는 시험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과 시험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순종함으로 참고 견디는 인내로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 우리는 시련을 위한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 때에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믿음의 시련으로 인내를 온전히 이루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고 구비하게 됩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주는 유혹과 육체의 욕심이 주는 미혹의 시험을 이기는 길은 속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의 유혹으로 사람의 마음에 욕심이 잉태되어 죄를 낳고 그 죄가 자라게 되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 결과는 비참 뿐 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5-17).

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마귀의 유혹과 육체의 욕심에 끌려 죄를 짓고 나가면 영육 간에 망하고 비참하게 되는 것 뿐 입니다. 그러므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27문은 “우리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할 이유를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만으로는 너무나 연약하여 우리는 한 순간도 설 수 없사오며, 우리의 불구대천의 원수인 마귀와 세상과 우리의 육신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나이다. 그러하므로 주의 성령의 힘으로 우리를 친히 붙드시고 강하게 해주셔서,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패하여 거꾸러지지 않고, 마침내 완전한 승리를 얻을 때까지 우리의 원수에 대해 항상 굳세게 대항하게 하시옵소서.”

우리는 자신이 어리석고 연약한 줄 알고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공격하는 마귀와 세상과 육신에 대항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은 어디에서 무엇을 통하여 오는가

사탄은 수많은 방법으로 우리를 시험에 들도록 유혹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게 하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가까이 하고 사랑하게 하는 유혹은 마귀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이런 유혹의 시험에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 뿐 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육신의 생각과 욕망과 감정을 유혹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그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족관계, 교우관계, 친구관계 등)를 시험에 들게 하는 유혹의 기회로 사용합니다.

우리를 시험하는 것은 마귀와 주위 사람들 뿐 아니고, 시험은 나 자신에게서 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여 자기 체면과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하면 마귀는 그것을 통해 유혹하여 시험에 들게 합니다. 이런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합니다”(마 16:23 하).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마지막에 있을 주님의 인정과 칭찬과 상급만 바라고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더욱 헌신하는 삶을 살 때, 시험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시험을 통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유익들

시험과 관련하여 첫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시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시련(trial)이라고 말합니다. 시련, 연단, 그리고 훈련을 위한 시험은 그것이 어떠한 고난일지라도 유익을 위한 필요한 시험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시험을 만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약 1:2). 이 시험은 우리를 순결하게 하기 위한 시련이요 연단시키는 훈련입니다.

여러 가지 시련들(trials)을 위한 시험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충성스러운 종으로, 주님의 좋은 군사로 훈련을 받게 하는 유익이 있게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은 다 시련을 통해 형성된 인물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믿음의 시련보다 더 큰 유익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의 삶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시련들을 통하여 더욱 그리스도를 알아가게 하시고 더욱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만듭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 세상에서 시련보다 더 큰 유익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의 시련들을 통해 세상의 공허함과 자신의 연약함을 알게 하여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그분만을 기쁘시게 섬기는 자들이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고통 중에서도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난을 통해 죄를 그치게 되고,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벧전 4:1,2,19).

우리는 이 여섯 번째 간구(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는 ‘나로 하여금 어떤 유혹에도 노출되지 않게 하소서’ 라는 뜻도 아니고, ‘나로 하여금 어떤 고통도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라는 기도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 여섯 번째 간구의 뜻은 ‘우리에게 어떤 유혹과 위협과 고난의 시련이 닥칠는지 알지 못하지만, 어떤 시험을 만나게 되더라도 그 시험 때문에 넘어지지 않게 해주시고, 모든 시험과 시련들을 통하여 많은 유익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여섯 번째 간구: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 6:13)

주기도문의 여섯 번째 간구(The Sixth Petition)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이다. 이 간구의 위치는 우리의 청원(We-Petition) 마지막에 있다. 우리의 청원(We-Petition) 다섯 번째 청원에서 다루었던 용서의 간구는 지난 과거의 죄의 해결함을 위한 것이지만 시험에 들지 않기를 원하는 간구는 미래에 범할 수 있는 죄의 예방이고, 악에서 구하옵소서는 현재 당하고 있는 악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는 간구이다.

우리를 위하는 세 가지 간구 가운데 첫째 간구인 매일 양식(Daily Bread)은 육적인 것임에 대하여, 둘째 간구는 매일 용서(Daily Forgiveness)이고, 셋째 간구는 시험과 악으로부터 매일 보호(Daily Preservation)를 원하는 것이다. 마태와 누가의 두 주기도문을 비교해 보면 누가 복음에서 하나님에 관한 기원 중 셋째 기원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가 생략 되어 있다.

우리를 위한 간구에 있어서도 누가 복음은 셋째 간구의 하반절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가 생략 되어 있다. 즉 전자는 자율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는 반면, 후자는 타율적인 면이 보여진다. 죄 혹은 시험 (Temptation), 즉 악은 우리에게서 매일 제거 되어져야 하는 요소들 이다.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은 주기도문의 여섯째 기도에 우리가 무엇을 구하는가? 에 대하여 그 답을 이렇게 정의한다. “주기도문의 여섯째 기도는 곧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는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혹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아니하게 하시거나 시험을 당할 때에 보호하여 구하옵소서 하는 기도이다” 라고 했다.

이제 우리의 영혼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관관계를 밀접하게 가지고 있는 시험과 악에 관한 간구에 대해 더욱 구체적인 접근을 해 본다.

1) 주기도문의 넷째 간구와 다섯째 간구 사이, 또 다섯째 간구와 여섯째 간구 사이를 접속사 ‘그리고'(Kai; 카이)로 연결하고 있는데(‘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 다섯째 간구가 자율적인 것 즉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한 용서라면, 여섯째 간구는 타율적인 것 즉 외부로부터 오는 “시험이나 악”에 대한 간구라는 점에서 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매일 죄를 용서하심과 구원함에 대한 것이다. 매일 사단과 악에서 구원해 주십사는 간구는 자율적이든 타율적이든 인간을 구원함에 있어서 계속적이며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것 때문이다.

둘째 : 다섯째 간구는 구원의 서정(行定)에서 정의(Justification)의 소극적인 측면과 연결 된다면 여섯째 간구는 구원 서정에서 성화(Sanctification)에 관계된다. 이 두 가지는 구원 얻은 이후의 신자의 삶에서 결코 분리할 수 없고 매일 매일 계속 된다는 것을 구원의 서정에서 교리화 하여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 다섯째 간구는 죄의 유전성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구하는 간구이지만 여섯째 간구에서는 죄의 오염과 그 영향 아래 지배당하게 하는 시험과 악으로부터 하나님의 은혜, 힘, 권능으로 인하여 구원해 주시도록 간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2) 주기도문의 여섯째 청원에서 마태의 본문에 “다만” 이라는 번역을 헬라어 성경은 “알라”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여 서로 연결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태의 본문에 접속사 “알라”(αλλα)는 영어에서 그러나(but)이고, “메(μη)는 아니다(not)라는 단어를 취하여 영어의 구문서 not…but의 형식을 사용하여 여섯째 간구를 표현하고 있다.

헬라어 구문에서 알라(αλλα)는 문장의 절(Clause)이나, 전 문장의 경우에 있어서 앞에 나온 것과의 차이나 혹은 대조를 나타내는데 쓰는 반대적 의미의 불변사로서 “그러나”의 뜻을 가지고있다. 이것은 앞의 부정문에 이어서 긍정문을 이끌 때는 대조를 나타내면서 영어, 구문에 “not only…but also, … 뿐 아니라,……도 또한”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여섯째 청원의 전반절에서는 소극적으로, 후반절에서는 적극적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다만”은 “도리어”, “그러나”, “또한”의 의미도 포함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섯째 간구를 시험(유혹)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실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만 (또한, 도리어), 악에서 구하옵소서(승리하게 해주옵소서)라고 그 뜻을 더욱 구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소극적인 간구와 적극적인 간구가 한 간구 가운데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본다. 즉 우리는 본성적으로 연약하여 시험(유혹)에 쉽게 넘어질 수도 있고 거기에 빠졌을 때, 우리 스스로 헤어 나오기 어려울 경우,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 주시기를 요청하는 간구이다. 여기서 접속사 알라(αλλα)를 사용하여 연결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표현이고 두 조문을 한 기도로 생각 할 수도 있으나 각각 독립된 간구 (Petition)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누가의 주기도의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독립된 두 간구라는 표현도 동의할 수 있지만 두 조문을 한 간구(Petition)로 다루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3) 주기도문의 여섯 번째 청원과 신약성경 야고보서 1장 13절의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 하시고,친히 아무도 시험 하지 아니 하시느니라”(약 1 : 13)라는 말씀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야고보서 기자와 여섯 번째 청원의 표현과의 상관관계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야고보서 기자의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라는 기록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재삼 시험 하며”(시 78 : 41)라고 기록된 사실 간에 서로 모순되는 것이 없는 것처럼,”우리를 시험(Temptation)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주기도의 간구와, “친히 아무도 시험(Temptation) 하지 아니 하시느니라”(약 1 : 3 下) 라는 표현은 서로 자연스러운 접촉점을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아무도 시험하시지 아니 하시느니라”(약 1 : 13 下) 라고 기록된 것과 다르게 만일 “친히 아무라도 시험 하신다면” 그분의 성결성 또는 지선성(至善 性)은 무너지고 만다.

에덴의 아담과 하와의 타락의 경우에도 하나님 자신이 친히 범죄 하도록 유혹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친히 악으로 사람을 시험(Test) 하지 않으신다.〈이렇게 말씀 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試驗, Test)코자 하심이라. 요 6 : 6, 그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Test)하시려고… 창 22 : 1>. 하나님께서 하시는 시험(Test)과,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는 시험(Temptation)은 다르다.

(1) 하나님께서 하시는 시험의 출처는 하나님께로 오며, 마음 밖에서 오며, 하나님의 목적에서 승리하게 되며,신앙의 연단 혹은 단련(“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 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 23 : 1)을 하시기 위함이다. 즉 우리를 더 유익한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경험하게 하시는 시 험이라고 간주 한다.

(2)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는 시험(유혹,Temptation)의 출처는 마귀에게로서 온 것이며,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사람의 욕심(“오직…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 됨이니…” 약 1 : 14)에서 나며,패배 하기 쉽고, 유혹이라 할 수 있다. 즉 우리를 죄와 악에 빠지게 하기 위한 유혹(to solicit into evil)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도 시험(Temptation)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간구에서 나타나듯이,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우리와 공모 하는 일이 결코 없으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악의 유혹에 이끌리어 죄를 짓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람들은 죄 짓는 책임을 아담처럼 타인에게 전가 시키며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 3 : 12),자신의 타락한 본성(“욕심이 잉태 한즉 죄를 낳고…” 약 1 : 15)을 부인 하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악의 유혹에 이끌리어 짓는 죄를 시험(Test) 즉 신앙 연단으로 수용할 수 없을 경우 비난의 화살을 하나님께 돌리므로 자신을 변명 하려고 한다. 그러나 변명의 자리에 계속하여 설 수 없음을 야고보 기자는 약 1 : 14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욕심에 끌려 비롯됨이니”라는 말씀으로 보여 주고 있다. 자신을 솔직히 드러낼 줄 아는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이 여섯 번째 청원을 진정으로 드리는 간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김석원 목사는 부산 고신대, 총신 대학원, Heritage College(M.R.E., D.R.E), Luther Rice Seminary( D.Min 졸업), Westminster Seminary (D.Min 수료),에서 공부하였고, 서울 충현교회 부목사, 올랜도 충현 장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다 은퇴하였다. 국제 기도공동체 GPS Ministry,INC (Global Prayer Society)설립하였고, 주기도문 기도운동(LPG 24-365= Lord’s Prayer Global) 설립자이기도 하다. [기도의 신학], [1달러의 기적 플러스], [주기도문은 내 삶의 축복이다]를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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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I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태복음 6:5-13).

삶의 의미

“삶은 의미가 없다. 삶의 의미를 묻는 자는 병든 자이다.”라고 프로이트는 말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삶의 의미를 묻지 않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나치 시절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고통 속에서도 삶을 긍정하는 수감자들이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강제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수용소에서의 경험과 관찰을 통해 깨달은 바를 이용해 ‘로고테라피’라는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했습니다. ‘로고’는 의미를 뜻하는 ‘로고스’에서 나온 말입니다. 프랭클은 인간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이 필요하듯이 삶의 의미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프랭클은 삶의 의미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순간, 순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미를 부여하려면 어떤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그 기준은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주기도의 마지막 청원은 바로 그러한 기준에 맞추기 위한 하나님 백성의 기도입니다. 시험에 든다는 것과 악에 빠진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 뜻에서 벗어나기 쉬운 존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청원을 진지하게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구원될 때 모든 주기도의 간구들 또한 실현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삶의 의미 또한 분명해질 것입니다.

시험의 아이러니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 빠지지 않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은 다름 아닌 시험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잘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로 나가 금식하셨습니다. 사십 일을 금식하신 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어려운 시험이었지만 예수님은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시험을 이기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실 수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것은 성령에게 이끌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성령에게 이끌리시지 않았다면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인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시험은 숙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삶이 성령께 이끌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험 받는 것은 성령께 이끌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장악한 마귀의 공격을 받는 것은 하나님 백성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귀의 공격은 한 번 이겼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시험 기사의 끝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눅 4:13).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예수님께서 시험을 이기시고 공생애의 삶으로 나가시는 그 순간 마귀는 완전히가 아니라 얼마 동안 물러갔습니다. 마귀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살피고 있습니다. 약점이 무엇인가 파악한 후에 그것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이 있는 한 날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연약한 육체를 가진 우리는 세상 풍파에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귀는 우리의 필요와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해 올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청원은 그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성령의 보호를 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제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주님, 제게 힘을 주소서.’

결국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시험에 들어야 하고 시험을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시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끌어내십니다. 광야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백성이 되려고 할 때 먼저 거쳐야 할 곳은 광야입니다. 광야에서 체득한 것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보여 주신 하나님 백성의 삶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광야

무엇보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광야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자유롭지 못한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그 무엇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려면 먼저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는 황량하고 쓸쓸하고 모든 것이 부족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인간은 힘들어 하면서 자신이 작고 초라하다고 느낍니다. 광야라는 말을 들을 때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광야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는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메마른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한 광야는 우리의 삶과도 같습니다. 우리의 삶 역시 힘들고 통제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내면에 광야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영혼의 메마름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우리 안에는 영혼의 광야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 광야 외에 개인적인 광야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 때문에 삶이 광야가 됩니다. 어떤 이는 배우자 때문에,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문제로, 어떤 사람은 미움 때문에, 어떤 사람은 불치의 병으로, 어떤 사람은 장애로 자기의 삶이 광야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인정에 대한 갈구 때문에 어떤 사람은 열등감 때문에 어떤 사람은 우울함을 떨치지 못해 초라한 모습으로 광야를 헤맵니다.

각 사람 안에 있는 광야의 모습은 제각기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광야가 무엇인지 깊이 보고 실체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광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마음 바닥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우리 삶에 황폐함, 외로움, 목마름 등을 형성시키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는 자리입니다. 자신의 바닥을 대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벌거벗는 일입니다.

적나라한 모습이 되어 자신의 광야를 바라볼 때, 그 광야를 형성하는 정체가 무엇인지를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참 자신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광야를 형성하는 그 무엇을 하나님의 자비 앞에 바칠 수 있고, 그분께 구원과 해방의 은혜를 청할 수 있게 됩니다. 광야에 서 있는 시간은 반성의 시간이요, 탄원의 시간입니다.

걸림 없는 자유인이 되기 위해 우리보다 앞서 자유와 해방을 맞이하기 위해 광야에 서야 했던 이스라엘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기 위해 광야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었습니다(출 13:17-18). 하나님께서는 사흘에서 열흘이면 충분히 통과할 수 있는 광야에 사십 년 머물게 하셨습니다. 광야를 걷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자유인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간이었다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광야의 존재 목적

광야는 자유를 얻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자유의 땅에 들어가기 전, 누구라도 반드시 광야를 걸어야 합니다. 그 과정은 공간적, 시간적 차원의 중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존재 자체가 거듭나는 과정입니다. 사백여 년 간 애굽에서 노예의 삶을 살다가 탈출한 이스라엘은 즉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었습니다. 자리가 바뀌고, 시간이 경과했다고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외적인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 참된 의미에서 하나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존재 자체의 변화가 일어나야 했습니다. 자기를 정화하고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광야를 거쳐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광야는 존재 자체가 거듭나는 과정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백성이 되고 자유인이 되기 위해 광야를 거쳐야 했듯이 우리 또한 광야를 거쳐야 합니다. 당장 나와 고통스러울지라도 참된 하나님 백성이 되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광야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1) 옛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익숙했던 애굽 세계를 버려야 했습니다. 익숙했던 애굽의 관습과 세계관을 버려야 했습니다. 사백여 년 간 애굽 문화에 젖어 있었던 사람들이 바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되기 위해서는 골수에 스며들어 있던 애굽의 잔재들을 털어내야 했습니다.

3천 년 전 애굽은 세계 문화의 중심지이며 최고의 경제적, 군사적 힘을 자랑하는 제국이었습니다. 대학과 도서관 그리고 피라미드가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러한 나라에서 사백 년 이상 살았던 이스라엘이 하루아침에 애굽의 가치를 버리고 하나님의 가치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것을 삶으로 살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가치를 배우고 그것에 따라 살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애굽이라는 옛 습관을 버려야 했습니다. 광야는 과거의 세계관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기 위한 과정입니다.

출애굽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엑소도스’입니다. ‘엑소도스’는 ‘엑스’와 ‘호도스’를 합친 단어입니다. ‘엑스’는 영어로 ‘from’이고 ‘호도스’는 ‘way’입니다. 즉 그 동안 살아왔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자유인이 되고 하나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습관과 자아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자유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무엇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안주해 있었던 세속 중심의 삶을 버리는 것입니다. 중세 신학자이며 신비가인 에크하르트는 “하나님께 도달하는 과정은 영혼에 무엇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묻은 그 무엇을 털어내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영혼과 정신에 담겨 있던 모든 것을 비우는 장소가 바로 광야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한 부분을 허물고 부수는 일입니다. 애굽에서 사백 년을 살아왔던 이스라엘이 그동안 생명처럼 여기던 것들을 포기하기란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무려 4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광야 길을 걸어야 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그들이 얼마나 자주 애굽을 그리워하며, 광야로 이끌어내신 하나님을 원망하는지 보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익숙한 세상의 가치관을 버리는 일은 존재 자체를 허무는 일입니다. 우리의 옛 자아가 크게 반발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광야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광야를 받아들이고 새롭게 태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한 미아가 되거나 옛 세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광야에서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부수어야 할 것은 부순 다음, 새로운 존재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광야가 베푸는 첫 번째 은혜입니다.

2) 진정한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성경에는 광야로 나가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콘스탄틴에 의해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자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사막으로 들어가 사막의 교부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로 자주 나가 기도하셨습니다. 성령에 이끌려 결정적인 시험을 광야에서 받으셨습니다. 특히 중요한 일을 앞두고 광야나 홀로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아 기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광야는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보여 주는 곳입니다. 인간은 삶의 조건이 결여된 광야에 섰을 때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이끄신 것은 그들에게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삶의 근본이심을 체득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삶의 기본 조건이 철저히 말살된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었습니다. 광야라는 혹독한 조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나님만 의지해야 했습니다. 광야에서 목이 탈 때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외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애원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다른 민족의 침입을 받아 무서울 때에도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해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것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유의 땅으로 인도해 내시기 전에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은 그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양육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광야의 악조건을 통해 인간의 삶에서 최우선은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인간적인 계획이 통하지 않는 광야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의존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고통스런 삶의 한복판에서,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독과 무력함 속에서, 마침내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온전히 의존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 백성으로서 우리는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내어드려야 합니다. 가장 첫 번째 자리를 그분께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광야가 우리에게 베푸는 가장 큰 은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광야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광야는 우리 영혼에게 기회입니다. 광야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보물과도 같은 곳입니다. 가브리엘 마르셀은 “내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병고와 가난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광야의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광야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삶의 첫 자리에 모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우리를 깨달음으로 초대합니다. 먹고 살기 바빠서 삶의 의미나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우리에게 광야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에서의 삶 자체가 광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광야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덜 중요한 것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덧없는 것에서 돌아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명예입니까? 돈입니까? 인간관계입니까? 자식입니까? 아니면 다른 무엇입니까? 그 중요한 것을 얻고 삶의 의미까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삶의 우선순위를 바르게 정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실 때 우리는 해방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제자란?

하나님 백성의 삶을 살기 원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는 광야 체험과 은혜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반드시 당신의 백성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는 것에 늘 시선을 집중합니다. 하나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제자로의 거듭남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옛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게 된 하나님의 백성이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간다면, 그의 삶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삶이며 이미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왜곡되는 것은 존재의 변화가 아니라 행위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가 이루어져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때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가도 알게 될 것입니다. 일에 집중하면 결과에 연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면 위선과 교만이라는 시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일을 하는 사람이 큰 사람이 아닙니다. 작은 자가 되어 작은 일을 하려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광야 시험을 마친 예수님에게서 마귀가 얼마 동안 떠났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기회를 잡기 위한 작전상 후퇴입니다. 광야 체험과 은혜를 경험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마귀는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마귀는 참된 하나님 백성이 되지 못한 가짜 그리스도인들은 공격하지도 건드리지도 않습니다. 시험을 받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백성 된 우리들은 날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광야 체험은 은혜입니다.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가브리엘 마르셀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병고와 가난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광야 체험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아는 사람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그런 신앙의 자세를 가질 때 마귀는 우리를 시험하지 못합니다. 날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청원하면서 인생의 모든 정황들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周 永 敎 會

본문: 마 6:9-13

제목: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몇 주간에 걸쳐 우리는 주기도문을 본문으로 해서 서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주기도문의 마지막 부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는 무엇이든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입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기도의 시작은“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를 부름으로 시작해서

오늘 본문“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로

끝을 맺고 계십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중요 합니다만

그러나 오늘 본문 기도는 믿음으로 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성령님의 역사 가운데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지금 에덴에서 선악과로 하와를 유혹했던 사탄 마귀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며,

그리고 광야에서 주리신 예수님을 유혹했던 사탄 마귀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예전에도 악한 사탄 마귀들이 그랬듯이 지금도 악한 사탄 마귀들은

우리들에게 아주 조그만 틈만 보이면, 뱀처럼 슬그머니 들어 와서 혀를 날름거리며,

우리에게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런 성공을 보여 주며 유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우리에게 돈, 권력, 명예, 인기, 철학, 지식, 의학, 과학 등으로 유혹,

우리로 죄를 짓게 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 놓으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에 연약함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말입니다.

공동번역이나 영어성경 KJV, NIV 성경은 “temptation” “유혹”이라고 번역 되어 있으나

개역성경을 비롯해서 많은 성경에서는“test”“시험”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헬라어에서“시험”이라는 단어는“페이라스몬”인데 이“페이라스몬”이란 단어에는

“유혹”과“시험”이라는 두 의미를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대다수의 성경에서는 시험이라고 번역을 해 놓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는 그리스도인들은“유혹”과“시험”을 반드시 구분하여 읽어야

성경 저자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유혹”과“시험”은 그 뜻이 분명히 다릅니다.

영어로 템프테이선(temptation)이라고 하는“유혹”이라는 단어는 남을 꾀어서

정신을 혼미하게 하거나 또는 좋지 않은 길로 이끌다. 라고 사전은 정의를 하고 있으며,

테스트(test)라고 하는“시험”이라는 단어는 사람이나 또는 물건을 사용하기 전에

그 가치나 능력 성능 등을 시험하여 보는 것이라고 사전은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하나님의 시험”과“사탄의 유혹”은 구별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하나님의 시험”을 NIV나 NASB 영어 성경 세 군데서만 살펴보겠습니다.

창 22:1절“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시험 tested”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신 8:2절“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시험 tested”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등등…

히 11:7절“아브라함은“시험 tested”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위의 말씀들처럼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에 사람들을 시험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믿음에 사람들을 시험 하신 이유는 믿음에 사람들의 신앙 성장과

그리고 성숙도를 보시기 위함이시지 다른 뜻은 전혀 없으십니다.

사정이 이러므로 성경을 읽는 독자는 잘 구분해서 읽어야 저자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아래와 같이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약 1:13절“사람이 시험유혹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유혹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유혹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유혹하지 아니 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유혹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여기서 나오는“시험”이란 단어는 사탄으로부터 오는“유혹 tempted”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유혹은 악한 사탄 마귀가 하는 것입니다.

마 4:1절“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막 14:38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눅 4:13절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물론 여기에 쓰인 단어 “시험”도“유혹”temptation입니다.(NIV, NASB)

그러므로 창 22:1절, 신 8:2절, 히 11:7절 등에서“시험”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와

야고보서를 비롯해서 3복음서 등에 번역된“시험”즉,“유혹”을 구분해 읽지 못 하면

자칫 하나님을 유혹하는 하나님으로 오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의 신앙 성숙을 위해 때로 시험은 하시지만 유혹은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오해 하지 않으려면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내용이“하나님의 시험”인지“사탄의 유혹”인지 구분을 못합니다.

새벽기도, 수요, 금요, 주일, 십일조 감사헌금 교회의 모든 봉사에 앞장서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시들해지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글쎄! 저! 장로, 저! 권사, 저! 집사 시험 들었어!”라고 말들을 합니다.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사탄의 유혹에 빠진 것이지 시험에 든 것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더 좋은 것으로 주시기 위한“시험”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대부분은 사탄의 유혹, 사탄의 꾀임에 빠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신분 그리고 교회에서 자신의 위치 때문에

예수 없이 자신의 의지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열심히 일 하는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 없는 종교인은 모든 일을 열심히 하다가 목사나 교인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다가 마침내 교회를 분열 시키거나 아니면 교회를 떠납니다.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사탄은 자신들의 종을 유혹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없는 종교인은 이미 사탄의 종인데 왜! 사탄이 유혹을 하겠습니까?

마치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사는 우리를 유혹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종교인들을 통해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들은 사탄의 유혹이 아니라

사탄의 교활한 장난질일 뿐인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고,

구원에 확신이 있으므로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이지 예수가 없는 종교인들에게는 결코 찾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여러분!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시험은 교사나 교수가 학생들에게 내는 것이지 오락실 주인이 내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탄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시험 낼 수도 없을뿐더러 시험을 낼 자격도 없습니다.

사탄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유혹할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에게 시험을 내시는 것이지

믿음이 없는 종교인들에게는 시험을 출제 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약 1:13절에서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시험유혹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친히 아무도 시험유혹하지 아니 하시느니라”

야고보 1:13절 말씀처럼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기 백성들을 친히 아무도 유혹하지 않으신 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을 때로는 시험을 하십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을 시험을 하시는 이유는 더 좋은 것으로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학생이 밤잠을 자지 않고 코피 흘려 가며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이렇게 공부한 것에 대한 결과를 평가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받습니까?

평가 받는 방법은 바로 시험인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 했어도 시험 때 결석 하거나 시험을 잘 못 치루면 결과는 없습니다.

학생은 이 시험의 결과로 인해 학맥 좋은 명문대를 들어가고, 대기업에 취직을 하고,

좋은 배우자 만나 결혼 하여 가정 이루고 아들 딸 낳고 잘 먹고 잘 살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믿는 우리를 시험 하십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는 우리를 시험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험은 믿음으로 사는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우상의 도시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고 끊임없이 시험하셔서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칠 수 있는 믿음에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여러분!

만약 여러분에게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늙은 말년에 얻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

가문의 대를 이어 갈 아들을 바치라고 한다면 바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바칠 줄 몰라도 저는 못 바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에 조상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여러분!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또 다른 사랑의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시험하신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본문의“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에서

이“시험”이란 단어는“유혹”이겠습니까? 아니면“시험”이겠습니까?

당연히“유혹”인 것입니다.

그러므로“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말씀하시는

오늘 본문의 기도는 너희들은 언제든지 저! 사탄 마귀들에게 유혹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탄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하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서 너희는 언제든지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을 등 질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 아버지께 사탄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악으로 달려 나가지 않게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기도는“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지키셔서

우리가 악으로 달려 나가 죄를 짓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먹은 아담 한사람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 왔으므로 아담의 후손들인 모든 사람들은 아담의 죄를 전가 받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롬 5:12절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예수가 없이 아담의 원죄를 전가 받은 사람들은 사탄의 지배아래 있는 죄인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돈, 권력, 명예, 인기, 철학, 과학, 의학, 지식, 쾌락 우상 등에

눈과 귀가 가려저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보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이런 까닭에 이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통치를 싫어함은 물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찬송가 335장 목자의 음성 싫어서 떠난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받은 자들은(엡 1:4)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구원을 허락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앞서도 말씀 드렸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산다고 하지만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와를 유혹했던 교활한 뱀이 슬그머니 우리 안에 들어와서

돈, 권력, 명예, 인기, 의학, 철학, 지식, 과학, 쾌락, 중독, 우상 등을 보여 주며,

믿음으로 사는 우리를 유혹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늘 본문처럼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유혹을 하셨습니다.

눅 4:3~13절“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라고 말입니다.

사정이 이러 할 찐대 하물며 우리들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를 하러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막 14:37~38절“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유혹)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기도하라 하심은 베드로의 육신의 연약함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셨던 것인데 그런데 이러한 뜻도 모르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여 잠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육신이 연약하다는 말은 시몬 베드로의 몸이 연약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에 유혹에 빠질 수 있으므로 연약하다는 뜻인 것입니다.

피곤해서 졸린 베드로에게 사탄은 이렇게 속삭였을 것 같습니다.

어이! 베드로 오늘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예수 따라 다니며 정말 피곤했지

그러니 눈을 조금만 붙여봐 그러면 피곤이 풀릴 거야, 눈 조금 붙인다고 뭐 별일 있겠어

그리고 쉬어야 내일 또 예수를 따라 다릴 거 아이냐 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사탄 마귀의 유혹을 받아 잠든 결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님을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하는 행위를 하게 되고 맙니다.

막 14:67~71절“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 이니라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이런 베드로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사탄의 유혹에 넘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올해 환갑을 맞이하였습니다.

환갑 날 새벽에 십자가 밑에 앉아서 기도하며 생각을 하였습니다.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살아오면서 순간순간 참으로 수많은 결정들을 하였을 것 같은데

그 중에서 나는 어떤 결정을 가장 잘 하였는가? 하고 내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그 수많은 결정들 가운데 내가 가장 잘 한 결정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 결정 이였던 것 같았습니다.

1992년 무더운 7월 어느 일요일 낯 11시

전 날 먹었던 술 때문에 목이 말라 딸의 이름을 불렀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비쩍 비쩍 대며 밖을 나가보니 동네 사람들이 한 사람도 보이질 않고 조용했습니다.

심지어는 개들 까지도 짓지를 않았습니다.

저는 순간 무서웠습니다.

모두들 나만 홀로 남겨 놓고 어디론가 간 것이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

방으로 들어와 담배 한 대에 불을 붙여 맛있게 한 모금을 빨아 드렸을 때.

그 때 책상에 놓인 인쇄물이 나의 눈에 들어 왔습니다.

저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 인쇄물을 집어 들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그 인쇄물은 집사람과 아이들이 출석하는 효진교회 주보였습니다.

교회 주보 하단에 작은 글씨로 인쇄된 이 글을 읽어 보는 순간,

전 날 먹었던 술이 확 깨며 도대체 사람이 사는게 무엇이냐 하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평소에 저를 알고 지내던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에이! 김사장은 목사나 해야지 사업은 소질이 없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사람들이 그럴 때 마다 저는 목사는 무슨 목사냐고! 화를 냈었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며 세상 것을 즐기며 예수를 멀리 하던 내가 그 날 그 주보로 인하여

예수 십자가 밑으로 나가기로 결정 하였습니다.

정말 저는 기뻤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배란 예배는 모두 참석을 하였으며 매주일 감사예물과

십일조를 기쁨으로 구별하여 드렸습니다.

그러던 94년 8월 15일 사모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장로와 안수집사들이 작당을 해 목사를 내보려 하니 어쩌면 좋겠냐고 말입니다.

믿은지 얼마 안 되는 저였지만 저는 목사 편에 서야 될 것 같아서 목사 편에 서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습니다.

이러한 저를 장로 편에 선 사람들이 저를 폭력으로 고소를 하였고 저는 이로 인해서

폭행하지도 않은 폭력 전과자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훗날 안 사실이지만 내가 전과자가 된 것은 목사님과 장로의 타협 때문 이였습니다.

이 일 뿐만 아니였습니다.

목사님과 사정이 있어서 그 교회에서 나오게 된 저희 가족은 큰 교회로 가지를 않고,

천막을 치고 몇 명이서 예배드리는 교회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 교회에서도 저희 부부는 하나님의 은혜로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이 교회를 건축한다고 하였습니다.

교회 건축을 맡은 사람은 저를 따라 이 교회에 같이 등록한 모 집사였습니다.

착공 예배를 드린 며칠 후 모 집사가 저의 인쇄소를 찾아 왔습니다.

건축 자재를 사려고 하는데 재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의논을 하였는데 목사님께서 건축에 필요한 수표를 제가 끊어주면

건물을 담보로 대출 받아 갚아 준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님께 확답을 받고 집사에게 수표를 끊어 주었습니다.

교회는 그렇게 80% 이상 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집사가 다른 곳에 건축하던 건물이 잘 못 되어 구속이 되어 버렸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였습니다.

제가 끊어준 수표로 교회를 짓던 목사가 집사가 교회를 부실 공사하였다고 하면서

부도를 내고 말았습니다.

1차 2차 까지 막다 결국 저는 18년을 생계 수단으로 삼았던 인쇄소 문을 닫게 되었고

그나마 조금 있는 돈으로 여기 저기 막다 보니 저희 가족에 생계는 막막하였습니다.

그 때가 1997년 8월 이였고 그 해 11월에 IMF가 닥쳤습니다.

생각 같아선 당장에 교회로 쫓아가서 그 목사의 멱살을 잡고 결판을 내고 싶었지만

그러나 이상하게 그러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들어서 참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만약 그 때 제가 그 목사를 찾아가 멱살을 움켜잡았더라면 살인도 일어났을 것입니다.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나님의 시험 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 시험을 통과하므로 인해 지금 제가 이렇게 목사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까지 끝없는 유혹과의 전쟁인 것입니다.

저의 생각이지만 예수님도 분명 오늘 본문의 기도를 일상적으로 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은 악과 타협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악과 타협은 자기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먹는 행위로서

이는 영원한 패배이며, 영원한 사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악과 싸우다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악과 싸우다 죽는 것이 이긴 자이며 하나님은 이렇게 이긴 자에게 의에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고 천하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계 2:26절“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이렇게 악에게 이겨서 영광의 자리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은 악한 사탄 마귀들과의 끊임이 없는

영적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르쳐 준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기도가 여러분을 이긴 자로, 지킨 자로, 영광의 자리로 인도하여 줄 것입니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선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선배가 월남에 도착하여 부대 배치를 받자 말자 전투에 투입이 되었다고 합니다.

말로만 듣던 무서운 전쟁터 총알이 빗발치는 무서운 전쟁터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져 머리를 참호에 쳐 박고 총을 하늘을 향해 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조금 조용해졌다 싶어 머리를 살짝 들어 옆을 보면 옆에 있던 전우가 죽어있더랍니다.

그 때 선배는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러다가는 나도 죽고 모두 죽겠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선배는 그 때부터 총구를 적을 향해 조준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싸웠더니 자신도 살고 그리고 전우들도 살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배는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비록 내 다리 하나는 그 곳 전쟁터에서 잃었지만 그 때 내가 그렇게 싸웠기 때문에

오늘 내가 이렇게 살아서 무공 훈장도 받고 그리고 원호 대상자가 되어

국가로부터 보상 받으며 잘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신 성령님의 역사로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들면

아무리 악한 사탄 마귀라 할지라도 물러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에 4:16)는 결심 앞에 사탄은 물러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마귀를 피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맞서라는 것입니다.

전투에서 가슴에 총을 맞고 죽느냐 아니면 등에 맞고 죽느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슴에 총을 맞아 죽은 군인은 적과 싸우다 죽은 군인이며, 등에 총을 맞아 죽은 군인은

적이 무서워 도망가다 죽은 비겁한 군인이기 때문인 것 입니다.

오늘 본문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악한 사탄 마귀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인해

승리를 선포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죄로 죽었던 옛 사람을 벗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기쁨으로 순교 하겠다는

출전 선포식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출전 선포를 하고 전쟁에서 이긴 사람은 주와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데전 4:17절“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지금 우리 주변에는 예수 없는 종교인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예수 없이 교회만 다니는 종교인들은 영적 전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없는 종교인들은 이미 악한 사탄 마귀의 지배아래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우두머리인 사탄과 싸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사탄은 자기 지배아래 있는 종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십일조도 떼먹지 말고 잘 내고 그리고 목사 말에도 복종은 하되

나사렛 예수는 믿지 말라고 말을 합니다.

윤리와 도덕과 지성적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라는 것입니다.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우리 모두가 좋은 것이 좋은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갈 1:10절“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러나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함으로서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무한한 능력으로 인해 사탄 마귀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앞서 선배의 월남 참전 이야기를 말씀드렸듯이 나 살자고 참호 속에 머리 박고 있으면

내 옆의 전우도 죽고 그리고 마침내 나도 죽기 때문에 정신 신 바짝 차리고 다가오는

적들을 향해서 정 조준하여 사격을 할 때에 나도 살고 내 옆의 전우도 살 수 있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는 요청의 기도로

하나님께 능력을 받아 악한 영들을 물리치고 승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려서“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이 요청의 기도는 하나님 지금 저희는 보급품이 바닥이 났습니다.

하나님 저희에게 속히 보급품인 실탄과 포탄을 보내 주셔서 저들을 무찌르게 하셔서

저희를 저들 손에 넘어 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가“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 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이름만 갖다 붙이면

무조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처럼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번에 제가 산 로또가 일등으로 꼭 당첨되게 해 주세요,

하나님 이번 수능에 저희 아들이 수석을 꼭 차지하게 해 주세요,

하나님 저희 남편이 이번에는 꼭 영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기도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

다시 말씀드려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기도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소망이기도 하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안 들어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악에서 구해 주옵소서.”라는 이 기도문은 문맥상으로는 요청이지만 이 기도는 이미 믿는 자들 안에서 이루어진 기도인 것입니다.

단지 기도를 하여 놓고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인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사탄 마귀의 그럴싸한 유혹에 넘어가 인류에게 사망을 가져다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사탄 마귀의 유혹을 하나님 말씀(신 8:3)으로 물리치시고 승리를 하시어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시고 그리고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오셨습니다.

롬 5:19절“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이처럼 한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를 생활하므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사탄의 교활한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본문“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악에서 구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아주 조그마한 틈새로 사탄 마귀는 슬그머니 들어와서

우리를 유혹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이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절대로 무섭게 겁을 주지 않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잘 되고, 복 받고, 그리고 꼭 성공하라고 속삭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너희가 흩어짐을 면하려면 과학의 바벨탑을 쌓으라고 속삭입니다.

사탄은 나날이 발전하는 의술로 모든 병이 치료 되어 죽지 않을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과학이 인류를 부요하게 만든다고 속삭입니다.

여러분!

저희 어렸을 때는 하늘이 컴컴해지며 번개와 천둥이 치면 사람들은 무서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과학의 힘으로 피뢰침을 만들어 꽃아 놓고 안전하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들면 하늘에 기우제라는 것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과학에 발달로 곳곳에 큰 저수지를 만들어 그곳에 물을 가두어 놓고

농수로를 만들어 비가 오지 않아도 전혀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시지 않아도 이러한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이러한 것들이 바로 현대 과학의 바벨탑인 것입니다.

이 과학이란 바벨탑, 의학이란 바벨탑, 지식이라는 바벨탑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없는 사람들은 지금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날의 과학의 발달은 인류의 삶에 질을 풍요롭게 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과학의 발달은 사람들을 점점 바보로 만드는 것은 물론

죄만 짓게 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쌓은 과학이란 바벨탑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을 점점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과학을 초월해 계십니다.

여러분!

오늘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본문으로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항상 말씀을 드리지만 아는 것도 중요 하지만

그러나 삶에 적용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구파발 지하철역에서 앉아가려고 줄서 있는데 얌체머리 없는 사람이 슬쩍 새치기 하면

저처럼 큰 소리로 어디를 새치기해요 라고 하면 안 됩니다.

내가 조금 손해 본 것 같고, 내 자존심이 조금 상한 것 같을 때,

여러분은 이렇게 기도 하십시오,

“저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해 주옵소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만이 내 삶에 이루어지게 하시므로

악한 세력에서 저를 구해 주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끊임없이 하지 않고서는

악한 사탄 마귀에게 패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문은 모두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간절한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기도문 안에는 여러분이 원하는 집도 있고,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건강도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이 기도문 안에는

우리 인생의 모든 해답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앞서도 말씀을 드렸듯이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항상 하셨던 기도였으며,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다 이루어 놓으신 기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여러분은 이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기도를 할 때마다

우리의 기도할 바가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고 그리고 확인을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능력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시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jykch2002 2008, 8, 19 (2014, 12, 13)

惟爺 金 鐵 鎬 牧師

출처 : 사랑의 치유 선교회

글쓴이 : 주영교회 원글보기 : 주영교회

메모 :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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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기 도 문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사실상 우리를 시험하는 것들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도처에 있지 않는가?

우리는 에덴 동산하면 everything is perfect한 곳이라고 생각을 한다.

지상 낙원, 패러다이스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러한 그곳에도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는 것이 있지 않았는가?

아담과 하와가 최초로 유혹을 받은 곳이 바로 이 에덴 동산이 아니었는가?

결국은 유혹을 받아 죄를 범하게 되고 그래서 실낙원을 하게 되지 않았는가?

이처럼 에덴 동산에도 유혹하는 것이 있었는데,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이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사탄은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하지 않았는가?

감히 예수님까지도 넘보는 것이 사탄인데,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겠는가?

죤 번연의 소설 천로역정이 무엇인가?

천성길을 가는데 얼마나 많은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는데, 그 모든 유혹을 다 물리쳐야 천성에 들어갈 수 있다는 스토리 아닌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이 기도는

유혹을 피할 수는 없으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그런 기도이다.

유혹에 빠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유혹받을만한 곳에는 아예 가지를 않는 것이다.

일단 유혹받을만한 곳에 가게 되면, 그 유혹에서 빠져 나오기가 어렵게 된다.

유혹받을만한 곳에 가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백날 기도해봐라.

그 기도가 이루어지겠는가?

유혹받을만한 곳에 간 사람은 하나님도 그곳에서 그를 건져주지 못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나무를 가까이 가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은 유혹을 받지 않았을 것이고 유혹에 넘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선악과를 범하지 않으려면 선악과 나무가 있는 곳에 가지를 말아야 한다.

사탄과 거래하지 않으려면 사탄의 상점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시편 1편에서는 앉아야 할 곳 서야할 곳 가야할 곳을 바로 분별하라고 가르치지 않는가?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고 앉지 말아야 할 곳에 앉고 서지 말아야 할 곳에 서게 되니까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이 기도는 언제 하는 기도인가?

시험에 든 다음에 하는 기도가 아니라 시험에 들기 전에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하는 기도이다.

유혹에 빠진 다음에 그곳에서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저를 이 구덩이에서 건져주십시오 그런 기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보다는 유혹에 빠지기 전에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훨씬 현명한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도 시험에 들지 않도록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가?

깨어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시험에 든 다음에 건져달라고 애원하지 말고 시험에 들기 전에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아킬레스 건을 조심해야 한다.

이 아킬레스의 건이 무엇인가?

신화에 보면, 아킬레스의 어머니가 제우스에게 아킬레스가 그 몸에 칼이나 창이나 불이 해하지 못할만큼 강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제우스는 ‘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이를 테베강에 완전히 집어 넣었다가 꺼내라 그러면 소원대로 되리라’고 그 비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아킬레스의 어머니는 아이를 낳자마자 발뒤꿈치를 잡고 강물 속에 깊이 집어 넣었다가 꺼내었는데 그 아이가 강에서 나오자 마자 몸전체가 무쇠처럼 되어서 어떤 칼이나 활이나 창으로도 뚫을 수 없는 강력한 몸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물이 묻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어디였을까?

어머니가 붙잡은 발뒤꿈치였다.

그 약점 때문에 아킬레스는 패리스의 독화살을 발뒤꿈치에 맞고서 죽고 말았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이처럼 약점이 있는데, 사탄은 바로 이러한 약점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약점을 틈타 사탄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우리는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뜨리게 하는 것은 누구의 짓인가?

사탄의 짓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했는데,

더 정확한 번역은 “악한 자에게서 구하여 주시옵소서”이다.

악한 자가 누구인가?

사탄을 말한다.

사탄이 우리 안에 있는 악한 본성을 이용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로 하여금 악을 행하게 하는 것이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사탄의 역사를 차단시켜야 한다.

사탄이 감히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이다.

사탄이 우리에게 역사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이다.

사탄이 감히 우리에게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이다.

그래야 우리가 사탄에게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사탄이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하고 사탄이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에베소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으로 무장을 해야 한다.

하나님으로 완전무장해야 감히 사탄이 넘보지 못한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사탄의 궤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를 좀 더 적극적인 형태로 기도한다면,

“우리로 하여금 성령충만하게 하소서” 그런 기도가 된다.

성령충만해야 사탄에게 넘어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완전무장하지 아니하고는

아무리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

사탄에게 넘어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면, 정말 사탄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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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8.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Our Father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the evil one.’

For Yours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ever. Amen.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the evil one.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즉 죄 사함을 받은 다음에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사함을 받은 다음의 순간이 성도들에게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기도를 드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정체성이 분명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그 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하나님께 죄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고 다음날 하루를 시작하기 전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사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이라는 현실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간음한 여자에게 그의 죄를 용서하신 후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병고침을 받은 사람은 다시는 병들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듯이,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열망이 생기는 법입니다.

병고침을 받은 사람이 다시는 재발이 없을 것이라는 믿음은 하나의 방심이며 불행을 초래하는 낙관입니다.

죄사함을 받은 성도들은 끊임없이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이 시험과 대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시 죄를 범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으로부터 우리의 영혼과 삶을 보존하기 위해 주님께서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도록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the evil one.’

시험은 영어성경에 temptation(유혹) 또는 trial(시험)으로 되어 있으며, 헬라어로는 페이라스모스(peirasomos)로 나타납니다.

인생의 삶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은 유혹을 받지 않는 삶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며 또한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얻게 되는 깨달음은 만일 인생에 시험이 없다면 그것은 무언가 중요한 것이 결여된 삶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유혹에 대한 기독교적인 이해를 가늠해 볼 수 있도록 유혹에 대해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유혹은 보편적이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이런 기원을 드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둘째, 유혹은 하나님의 계획이나 섭리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그것은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뜻과 섭리의 일부분으로 작용하며 인간의 삶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유혹에는 늘 연단의 의미가 들어 있으며 따라서 일종의 시험과 가은 같은 것입니다.

비록 죄악에로의 유혹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인간의 저항력과 인내에 대한 시험의 요소가 들어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유혹을 너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벌로서 생각하기 보다는 인간에게 영광의 기회를 주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생각됩니다.

넷째, 우리가 이 기원을 하나님께 드리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유혹을 이길 수가 없으며 이 유혹으로부터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이 기도는 유혹의 세력에 빠지지 않도록 하니님께서 지켜주시고 도와주실 것을 간청하는기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기원은 곧 유혹의 세력에 빠지지 않고 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으로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편 적극적으로 이 기원은 유혹을 피하는 것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유혹에 싸워 이길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루터는 이 입장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사단의 세력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만 한다.”

지금까지의 이러한 설명은 유혹과 시험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고 하는 입장에서 설명한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유혹과 시험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유혹과 시험을 두 가지로 구분하여 교육적 의미의 시련과 파괴적 의미의 시련이 있으며 교육적 의미의 시련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며, 파괴적 의미의 시련은 사단이 개입한 것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첫째, 교육적 의미의 시련입니다.

요셉이 그의 형들에게 자기의 삶을 회고하면서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으니”(창 50:20)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연구해 보면, 아브라함이 한가지씩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아브라함의 인격은 견고해지며 보다 빛나고 영광스럽게 성숙해 가는 과정임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는 명령은 아브라함의 신앙이 가장 고조되었을 때 시행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 시험을 감당했습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치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신 13:1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나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둘째, 파괴적인 의미의 시련입니다.

이것은 피해야 하는 시험으로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F.B.Meyer는 “:하나님은 우리를 오르게 하기 위해 시험하시지만, 사단은 우리를 내려가게 하기 위해 우리를 시험한다,”고 말했습니다.

마귀의 시험에 스스로를 던지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며 무모한 짓에 불과합니다.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은 파괴적인 의미에서 그 사람을 멸망시킬 목적으로 누구에게도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파괴적인 시험은 오직 마귀로부터 옵니다.

이 시험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것으로 첫 사람 아담은 이 시험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깊은 시험의 미궁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but deliver us from the evil one.

‘다만’이란 말은 그러나, 오히려 라는 말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험들게 하지 마옵시고 그러나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나님 내가 시험에 들지 않고 악을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악은 영어로 evil(악) 또는 The Evil One (악한 자)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The Evil One는 구약에서는 사단(Satan) 신약에서는 헬라어로 디이볼로서 즉 마귀(Devil) 입니다.

사단은 그 자체가 고유명사는 아니며 ‘적’ ‘원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단이 이런 뜻으로 사용된 것은 7군데 있습니다(민 22:22; 삼상 29:4; 왕상 5:4: 11:14,23,25).

사단은 천사 중의 하나였으나 인간을 대적해서 하나님 앞에 인간을 고소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욥 1:6-12).

그래서 그는 인간의 적이며 원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마귀는 디아볼로스인데 고유명사가 아니며 ‘참소하는 자’라는 뜻을 가진 단어였습니다.

딤전 3:11; 딤후 3:3; 딛 2:3 등.

이상에서 보듯이 사단과 마귀는 같은 것입니다.

어쨌든 악한 자의 목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불화하게 하고 그 관계를 깨드리고자 하는데에 있습니다.

악한 자란 곧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을 파멸로 이끌려고 하는 모든 악한 세력들을 인격화시킨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죄악 속으로 빠져 들게 하는 악의 세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격적인 힘일 수도 있고 인간의 삶 속에 나타나는 악한 생각과 행동 모든 악한 결정들의 누적된 힘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원은 그러한 악의 세력에 빠지지 않게 무장하고 방어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원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18에서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마무리하는 이 기원은 세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인간이 처해 있는 상황의 위험과 어려움을 솔직이 인정하고 있으며

둘째, 이러한 위험을 극복하는데 있어서의 인간의 무력성을 고백하고

셋째, 이를 위해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는 기도입니다.

시험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시험받을 때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광야로 가셨으며 광야를 떠날 때 역시 성령이 충만하여 다시 갈릴리로 돌아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시험을 받기 전에 벌써 성령으로 충만했으며 시험을 받은 후에도 성령이 충만하셨기에 사단이 그를 이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성령 충만을 사모하여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 “주여 나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시며성령충만하게 하옵소서. 저에게는 주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내 결심과 의지만을 사모하는 인간적인 결단망을 갖고 이 하루를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나를 도와주시옵소서.”라는 솔직한 기도가 우리의 마음 속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여 내 영혼의 모든 것, 내 생활의 구체적인 모든 것까지 성령이 지배할 수 있도록 주님의 다스림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사단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악에서 구하옵소서에서 구하옵소서는 풀어버리다 혹은 해방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참된 의미에서 사단의 결박을 끊어버린 자유인입니다.

그리고 이 참된 자유란 성령안에서 자유이며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하나님을 우러러 우리의 마음 속에 조금도 부끄러움도 없는 자유를 갖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이 충만한 감격의 생활이야말로 자유로운 삶의 극점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이 기도야 말로 우리 평생의 삶이 다하도록 적용되어야 하며 간절히 구하고 붙잡아야 할 우리의 가장 절심할 기도 제목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한국 교회의 나침반 뉴스파워(newspower.co.kr)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김석원의 기도의 신학(9) 김석원 NO 9 여섯째 간구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마태복음6:13)

성경:마6:9-15, 약1:2-5,12-15

미국에 와서 누구나 한번은 치루어야 하는 시험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운전 면허 시험입니다. 법규시험, 교통 신호표시 시험에 합격 하면 그 다음에는 주행 시험을 치루어야 합니다.

운전 면허을 얻는데 세가지 시험을 한번에 합격 하지 못하고 재수 삼수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속도 상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열을 받습니다. 그런데 한번에 하루 만에 세가지 시험을 합격 하신분들을 보았습니다. 제가 함께 운전 면허 시험장에 갔었는데 저도 삼수씩이나 했는데 보기 좋았습니다.시험은 이렇게 한번에 끝내는 것이 좋습니다.

한국에서 운전을 하지 않았던 목사님 한 분이 미국에 이민을 와서 운전 시험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운동신경이 좋아 운동도 잘 하시고, 미국 오기 전에 한국에서 영어 통역관을 했을 정도로 영어도 아주 잘하는 똑똑하신 분입니다.

너무 머리가 좋아 문제가 될 만큼 아주 예리한 분별력을 가진 분인데도 운전 시험에 자꾸 떨어지셨습니다. ‘이상하다. 내가 영어를 못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운동신경도 좋은데 왜 이렇게 자꾸 떨어지는 걸까? 여자들도 한번에 붙는데….’ 어떤 때는 시험관을 옆에 태우고 거리로 나가게 되어 있는데 남의 잔디밭에 차를 올려놓고 말았습니다.

시험관이 “아니, 남의 잔디밭에 왜 차를 올려놨습니까?”하고 말하니까 당황하게 되고, 어떤 때는 기왕 올라왔으니까 뒤로 어떻게 나가보라고 해서 뒤로 나가다가 그 집의 쓰레기통을 와장창 들이받아 가지고 온통 길바닥을 쓰레기 천지로 만들어놓은 적도 있었습니다. 시험관이 “뻔뻔합니다, 뻔뻔해요. 아니, 어떻게 이런 실력을 가지고 시험을 보겠다고 합니까?”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자꾸 떨어져서 일곱 번이나 시험을 봤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나의 뇌 가운데 운전을 못하는 그런 조직이 있나? 왜 다른 것은 다 되는데 운전만 이렇게 안 되나?’라고 고민을 하던 중 미국에서 살려면 운전을 안 하면 살수가 없어서 여덟 번째 시험에는 머리를 썼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목사라고 하면 좀 봐주는 게 있다던데 내가 한번 머리 좀 써야겠다!’ 시험 보러 가서 운전대를 잡고 옆에 있는 시험관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목사입니다.”라고 소개를 했더니“아,그러십니까? 나는집사입니다.”라고 하면서 그 시험관이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주는지 “저희 교회 담임 목사님을 제가 너무나 사랑하고 교회가 너무 좋고….”

교회 이야기만 하면서 “그냥 한 바퀴만 돌다가 갑시다.”라고 안심시켜 주니까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운전도 아주 잘 되고, 운전에는 거의 신경도 쓰지 않고 교회 이야기만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또 어떠냐고 물어보기도 하는데 이 목사님이 영어를 잘하니까 영어로 한국교회는 이렇다 소개했습니다. 언제 이민 왔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아주 잘 됐다라고 여겨 졌습니다 생각하기를 ‘아! 진작 내가 목사라고 밝힐것을….’하고 흥분해서 운전 시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시험지를 본인에게 직접 줄 수 있어서 채점해서 몇 점이라고 써서 시험이 사인해 주었습니다. 그때 그 시험관이 웃으면서 See you again“또 만납시다.”라고 하는 겁니다.

받은 시험지를 봤더니 “NO PASS”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재미나게 이야기하고 운전도 잘했는데 불합격한 이유를 그 시험관에게 물어봤다고 합니다. “내가 오늘은 왜 불합격입니까?”

“당신이 목사만 아니면 오늘 합격입니다. 목사는 이 사회에 굉장히 중요한 사람인데 목사가 교통사고로는 죽지 말아야지요. 저는 목사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정도 운전 실력으로는 합격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연습 더 해 가지고 오세요.”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여덟 번째 목사라고 말한 것 때문에 또 한 번 떨어지고 아홉 번째서야 합격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험은 괴로운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은 한번에 합격하면 기쁨니다. 승리감이 넘칩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매일 시험에 재수 삼수하지 말고 한번에 합격하는 신앙 생활을 하면 신이 납니다

성경에는 두가지 시험에 관해 말씀니다. 마태복음 6:13 말씀에서는“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들지 않는 게 가장 좋다.”라는 말씀이 주기도문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 반대의 뜻도 있습니다. 야고보1:12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한 것입니다.

첫째:시험의 일반적인 이해와 시험의 종류는 무엇 입니까? 구체적으로 시험의 종류를 성경에서 세가지로 분류 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시험’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οσ)인데, 원문을 보면 ‘두나마이’(δυναμαι)라는 단어인데,이 말은 능력 혹은 권능의 의미를 가진 ‘두나미스’(δυναμισ)와 동족어입니다.

문맥에 따라 다음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유혹,시험,시련입니다.

① 유혹(temptation)입니다.

이것은 마귀(Satan)가 인간을 넘어뜨리고자 유혹하는 시험입니다.

야고보서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 됨이니” 라고 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but each one is tempted when, his own evil desire, 라고 했습니다.

② 시험(테스트:test)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신앙을 테스트 하는 시험을 하십니다. 이때 테스트를 거치면서 우리의 신앙이 강화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야고보서 1:3 “the testing of your faith”

③ 시련(trial)입니다.

이것은 유혹과 시험이 혼란스럽게 닥쳐오는 모든 종류의 고난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런 시련을 극복 할때 상급이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2(영) Blessed is the man who persevers under trial”입니다.

세가지를 두고 비교해서 설명 하겠습니다. 마귀가 시험할 때도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통제 하에 이뤄집니다. 욥기 1장을 보면 마귀가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직접 유혹의 시험을 하시지 않지만 마귀의 시험을 통제하고 간섭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님이 시험하실 때 우리 인간이 불완전하고 죄성을 갖고 있으므로 마귀가 틈을 타며 유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혼재된 시험을 가리켜 일반적 의미로 ‘시련(trial)’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련은 하나님의 소원이 들어있는 하나님이 동의하시는 부분을 말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2 에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했습니다. 여기에 시험이 시련의 의미에 가깝기 때문에 영어로 trial 이라고 번역 했습니다. 그리고 3절에서 “믿음의 시련” 이란 말씀으로 영어 성경에서는 “the testing of faith ” 라고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 라는 말씀에서 시험도 시련의 의미에 가깝기 때문에 영어로 trial 이라 영어 성경에는 번역을 했습니다. 이러한 시련의 과정을 겪을 때는 말도 못하게 괴롭습니다. 힘이 듭니다.죽고 싶을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잘 이기고 지나간 다음에는 내가 겪은 시험 비중에 따라 큰 영광스러움이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12에 시험을 잘 이기는 자에게 상을 약속 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본문에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예는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욥의 이야기 입니다

어느 날 마귀가 하나님 앞에 요청을 합니다. ‘하나님 !!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좋아 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좋은 것을 너무 많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한번 도로 빼앗아 보세요. 그러면 욥이 하나님을 저주할 것입니다.”

“그래? 그러면 너하고 나하고 욥을 시험해 보자!” 그래서 하나님이 욥에게 주신 모든 좋은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빼앗아 버리는 것을 동의합니다.

그러나 다만 욥의 생명에는 손대지 말라.”라고 약속을 하고 욥에게 시련 (trial)이 생겼습니다. 즉 영어로 시험(test; 테스트)을 하게 됩니다.

욥기1:3“동방 사람중에 가장 큰 자라 했습니다” 욥은 현대말로 하면 아시아 지역의 가장 큰 갑부 였다는 것입니다. 아시아의 재벌 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대 기업가인 욥의 사업이 망해 하루 아침에 알 거지가 된 것입니다. 재벌이 알거지가 되었으니 기가막힌 일 입니다.

또한 가정적인 몰락이 왔습니다. 욥기1:2 아들 일곱명 딸 세명 모두 죽었습니다. 그 많던 아들, 딸이 전부 죽었습니다. 자식이 한명만 죽어도 애통할 일입니다. 그런데 10명씩이나 모두 죽었어요. 이것보다 더 큰 시험은 없다는 뜻입니다. 자신에게도 시련이 들어옵니다. 몸에 질병이 생겼습니다. 견딜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의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지켜주던 아내도 욥을 저주하면서 자기 곁을 떠납니다. 만약 내가 병들었다고 부인이 집을 나간다면 정말 불행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외부 세계에 시험이 들어옵니다. 세 친구가 찾아와 온갖 비난을 욥에게 퍼부어 댑니다. 욥이 겪었던 이 테스트는 똑같지는 않아도 우리들 삶에도 찾아 올 수 있습니다. 때로는 물질적 시험을 당해서 슬퍼하던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녀들의 학교문제 진로 문제, 말썽 부리는 문제 건강문제 등 어려움 때문에 시험이 되어서 인생을 절망하고 후회하는 그런 일이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은 신체적 고통 속에서 인생의 고난을 뼈저리게 통감하는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가까운 친구들이나 남편, 아내의 오해와 비난 속에 외로운 시간을 슬프게 보내는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욥이 당한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당할 수 있는 절망스런 시험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유혹,시험,시련의 일반적인 이해와 우리의 삶에 적용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둘째: 왜 시험을 기쁘게 여겨야 합니까? 시험에 대하여 야고보서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trial)=(시련) 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말합니다. 왜 기쁘게 여기는 것일까? 망했는데 뭐가 기쁜 다는 것입니까?

1.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자녀들을 연단 시키시고 큰 일을 위한 귀한 그릇으로 사용코자 하신다는 것 때문 입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당하는 시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있습니다. 욥은 사랑 받던 부모와 생 이별하여 이산 가족의 아픔의 시험을 겪었습니다.

형들이 팔아먹었으니 혈육간의 인신매매 시험을 겪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써야 하는 스켄달의 시험 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옥의 죄수 생활이 주는 육체적, 정신적 갈등의 시험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욥도, 요셉도 테스트 안에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잘못이 없는 시험의 고난입니다.

그러나 이런 테스트의 시험은 과정이 지날 때 큰 영광스러움이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어떻게 됩니까? 그 테스트를 지난 다음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기 민족을 구원하는 역사를 만듭니다. 요셉 처럼 하나님의 자녀를 시련을 통해 연단 시키시고 귀한 그릇으로 큰 일을 위해 사용코자 하신다 는 것 때문입니다.

2)믿음의 상급반에 들어가도록 믿음의 학년에 맞는 시험을 주십니다.(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 하지아니 하시고 했습니다.”

여기서 시험이란 단어는 유혹이라는 영어 단어인 temptation 을 사용했습니다. 유혹이란 단어를 통해서 우리는 시험에 범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 관계 문제, 물질 문제, 건강 문제, 가정 문제, 자녀 문제, 직장 문제, … 헤아릴 수 없는 문제들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종합하면 그 범위를 제한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① 유혹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시험과 연관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람이 감당할 시험’즉 유혹만 허용 하신 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시험이란 뜻입니다. 영어성경(NIV)을 보면 ‘common to man’(인간에게 공통적인)이라고 번역합니다.

즉 누구나 다 당하는 유혹에 넘어 갈 수 잇는 시험만 우리에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흔히 시험을 당할 때 낙심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만 혼자당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유혹은 누구나 다 당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일일이 이야기하지 않아서 그렇지 누구나 다 시험이 있고,사연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유혹으로 넘어질 수있는 시험은 어디에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장에 나가 일을 할 때도 집안에 있을 때에도 있습니다. 산에 가도 있고 바다에 가도 있습니다.

여럿이 있을 때에도 생기고, 혼자 있을 때에도 생기고, 교회 오면 교회에도 있습니다. 심지어 설교를 들을 때에도 생길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도 끊임없이 생깁니다.

누구든지 시험(유혹)을 받게 되어 있는 보편성이 있습니다. 목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장로나 권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나는 모태 신앙이니까, 나는 새벽기도 교인이니까 라고 할찌라고 이 유혹은 끊임없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유혹을 말할 때 육하 원칙을 적용 할 수 있습니다. Whatever (무엇을 하던지) ‘Whenever (언제나)’, ‘Whoever (누구에게나)’, ‘Wherever (어디서나)’ Whichever(어떻게) 이렇게 말입니다. 가령 가난한 사람에게도 유혹이 오고 부자에게도 유혹이 옵니다.

돈을 한달에 1000불 벌때 100불 십일조는 쉽게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십만불 버니까 시험이 옵니다. 만불씩 십일조를 내야 하는데 돈이 많아지니까 더 큰 시험이 옵니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돈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보편성으로 오게 됩니다.

이렇게 유혹은 두 가지 길로 갈립니다. 예수님께 다가와서 시험하는 자를 누구라 했습니까?

성경은 마귀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유혹을 모든 것에서 언제,어디든지,무엇을 하던지, 어떻게든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왜 시험을 기쁘게 여겨야 합니까? 믿음의 상급반에 들어가도록 믿음의 학년에 맞는 시험(유혹)을 허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매일 시험에 합격 하려면 어떻게(How) 해야 합니까? 1. 순종해야 합니다. 사무엘상15:22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마귀는 영리해서 한번 건드려서 순종하지 않은 것 때문에 재미를 본 사람은 자꾸 건드립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평신도 모두가 대상입니다. 꾹꾹 쑤셔보고 건드려 봅니다 그래서 한번 시험에 떨어뜨립니다.

마귀는 한번 시험에 빠지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지” 하면서 스스로 위로까지 시키며 재수 삼수 7수 8수까지 하며 칠전 8기도 있어 하면서 계속 유혹 합니다. 믿음이 부족해서 순종 하지 않는 사람을 통해 재미 볼만한 사람을 계속 골라냅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영리한 마귀는 머리 잘 굴리는 가롯 유다를 선택합니다. 왜? 성경에 보면 예수님과의 말다툼, 언짢은 관계를 자꾸 일으킨 사람이 누구 였습니까? 가롯 유다 였습니다. 때문에 마귀는 ‘아! 이 놈 가롯 유다를 잡으면 되겠다!’

그래서 누가복음 22:3 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그때부터 이 사람은 유혹에 빠진 겁니다. 사단 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자살하는 죽음을 선택 했습니다

사무엘로부터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순종하지 않고 계속 유혹에 빠져 자살해 죽고 말았습니다. 순종하지 않고 유혹에 빠진 유다, 사울과의 공통적으로 선택한 죽음은 자살 이었습니다.

내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있다는 영적 결함이 나를 자꾸 유혹으로 끌고 갑니다.결국 죽을 수 있습니다. 가령 아! 하나님이 평생 나에게 물질을 많이 주셨는데 나는 하나님께 물질과 함께 충성하지 않고 있다.’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계속해서 물질적 시험이 옵니다. ‘내가 윤리 도덕적인 면에서 깨끗하지 않다.’ 그러면 그 윤리 문제에 자꾸만 시험이 듭니다. ‘나는 예배하나도 제대로 드리지 않고 살아간다.’ 그 사람은 예배에 자꾸 빠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의 고백이 부족한 부분을 마귀는 타고 들어옵니다. 어느 때에 가서는 결단을 해야 됩니다. 그 결단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마귀가 ‘어? 이 사람이 달라졌네?

무서워졌네? 하고 물러가게 됩니다.

집사님 한 분이 고백을 했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미국 로스앤젤레스는 라스베가스와 가까워서 그곳에 놀러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거기서 동전 하나 집어넣고 당기면 어떤 때는 돈이 몇 십불에서 몇백불씩 와르르 쏟아지니 게 무슨 벼락 부자가 곧 될것 같은 그런 기분을 듭니다.

그런데 거기 가서 돈을 따서 행복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유혹에 걸리니까 자꾸만 가게 되어 물질적 문제가 생깁니다. ‘이번 달 월급을 타면 생활비 얼마를 제하고 그리고 나서 빨리 가서 그거 또 해야지.’ 여기에 한번 걸리면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패가망신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거기에 빠져서 헤어날 수가 없게 됩니다.

또 고백합니다 “목사님한테 고백하는 것은 제가 월급 타서 생활비 딱 제하고 노름하러 다닐 수 있는 비용을 만들기 위해 줄일 수 있는 것은 헌금 밖에 없어 헌금 안내고 아내에게는 십일조 한다고 거짓말을 해서 노름하는데 모두 썼습니다.

이런 물질 시험에 계속 걸렸습니다. 그래서 내가 병적인 단계까지 와서 어느 날 내가 회개하고 다시는 안가겠다고 결심하고 지금 6, 7년째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물질적 시험이 없어졌습니다.” 시험거리는 어느 때인가는 결단을 하고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 3-8수 하면 어찌됩니까?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 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했습니다 말씀 안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목숨이 아깝 거든 순종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2. 매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통하여 일 시험에 합격 할 수 있습니다. 매일 시험에서 한번에 합격할 수 있도록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지혜를 구하라 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간증이 되는 하하하 하나님 탱큐가 지혜입니다.살전 5:16-18 말씀입니다.

시험에서는 재수생이 안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러면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는 매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통하여 매일 시험에 합격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의 비결인“하,하,하,하나님 탱큐”을 고백하고 그 표징을 체험 해야 합니다.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했습니다

기쁨(Rejoice기도(Prayer),감사(Thanksgiving)이 세가지 원칙은 사도 바울의 전도 행전에

어떤 시험에서도 승리의 개가를 부를수 있었던 삶의 비밀이 었습니다. 신자가 일생동안 시험을 만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이렇게 기도 하라” 라고 가르쳐주신 기도이면서도 너희는 “이렇게 살아라”라고 가르치신 기도의 중요한 부분 입니다

시험을 이기는 삶 실천 할 수 있는 세가지 비결은 기쁨,기도,감사를 통해 유혹에서 승리하는 삶을 훈련 해야 합니다. 그래서 (1)메일 시험을 한번에 합격하려면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6 “항상 기뻐하라” 했습니다.

시험을 이기면 기쁨이 있습니다. 운전 면허 한번에 붙는 것도 기쁩니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기쁨니다.

(한국어)나는 기뻐여 나는 기뻐요 정말 기뻐요

(중국어)와창 까울라 와짜아 까울라짱짱 까울라

(일본어)와다시와 우데시 와다시와 우데시 이찌마우데시

야고보 선생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1:2“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최대의 슬픔은 아담 하와가 사단의 유혹으로 범죄했을 때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잃었기 때문에 영원한 기쁨을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자연인들은 이 기쁨을 모릅니다. 아담이 유혹에 빠져 죄인된 인간의 노력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하나님으로 믿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들은 알 수있는 구원의 감격한 기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안에서 시험(Test, Temptation)에서 승리 했을때 기뻐하시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라고 약속 하셨음을 믿습니다. 상받는 기쁨입니다. 때문에 매일 성령 충만하여 이 기쁨을 매일 생할화 하며 성령 충만의 열매인 희락의 열매를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고 살기를 축복합니다.

셋째-2-2

(2)매일 시험에 한번에 합격하려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습니다. 기도는 시험을 이기는 최대의 무기이다. 기도를 생활화 하며 시험을 이기는 승리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일하면 내가 일하고,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그렇습니다. 시험을 당해서 사방 팔방 막히고 캄캄할 때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을 허락해 주십니다. 사방이 막혀도 하늘은 열려 있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피할 길을 주십니다. 어려운 시험을 이기고도 남을만한 영적인 능력을 주십니다. 과거보다 7배로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0:13 후반절을 보면 “ …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특히 ‘감당한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두나마이’(δυναμαι)라는 단어인데,이 말은 능력 혹은 권능의 의미를 가진 ‘두나미스’(δυναμι)와 동족어입니다. 그러니까 ‘감당한다’는 말은 능력을 ‘갖추다’ 혹은 ‘(을) 할 수 있다’ 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결국 “ …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라는 대목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영적인 능력을 부어주셔서 시험을 넉넉히 이기게 해 주신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하되, 특히 시험을 당할 때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육신의 힘만으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시험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적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렇게 기도하십시요. 어려운 일이 생기고 유혹이 올때 그런 것들이 다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 하나님, 내가 시험을 이기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이 사람과는 도무지 상종도 하기 싫으니 제발 제게서 멀리 떠나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지 말고 “ 하나님, 제가 이 사람으로인해 겪는 어려움을 잘 이기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제가 너무너무 힘들고 어려운데, 제게 이런 지긋지긋한 고생은 없으면 좋겠습니다 “ 이렇게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 이런 어려운 때에 잘 배우고 믿음이 커져서 잘 이겨낼 수 있게 해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 흔히 쓰면서도 쓰는 용어 중의 하나가 무엇입니까? ‘시험’이라는 말입니다.“누구 누구가 시험에 들었데요” 교회에 “ 거참 큰 시험거리네” 합니다. 그래서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에 어떤 절박한 문제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데도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개인이 그럴수 있고 가정이 사업이 교회 전체가 그런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혹에 넘어지지 않는 비결은 매일 쉬지않고 기도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 제가 유혹과 시험에 무너지는 자가 아니라 시험을 이기는 자가 되게 해주시옵소서.쉬지 말고 기도 함으로 매일 시험에 합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저와 모두가 될 수있기를 바랍니다.

셋째-2-3

(3)매일 시험에 합격하여면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를 믿음으로 생활화해야 합니다.범사에 믿고 감사 해야합니다. 감사하고 믿어 지나이다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과 구주로 믿는자들의 모든 시험을 잘 통과 하려면 믿음으로 이루어진 것을 감사 할 때 입니다. 믿음으로 감사를 생활화 할때 영성은 항상 깨어 있고 물권 영권 인권의 축복을 누릴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시험이 되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감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욕심이 역사하면 감사할 조건인데도 불만이 됩니다.

예를 들면 어느 집 아이가 시험을 보았는데 2등을 했습니다. 그 사실을 옆집에 사는 부인이 알았습니다. 길에서 만났는데 “이번에 집사님네 아이가 2등을 했다면서요? ”하며 자신이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 예.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러세요? 그것 가지고 되나요?” 뭘 보통 이죠 하고 대답했습니다.

지금 아이의 어머니는 2등한 것이 하나도 감사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위에 1등도 있고 또 전교 1등도 있고 전국 1등도 있는데.그래서 감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 20등을 하던 아이가 2등을 했다면 우선 감사하겠지요. 2등을 하면 잘했다고 하면서도 “좀 더해라!”하고 말합니다. 1등도 있다는 것이지요. 계속 2등만 하면 속이 상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 안에 있는 욕심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으면 욕심이 시험을 만듭니다.

시험이 안될 일을 시험이 되게 만든단 말입니다.

지혜가 있으면 자녀가 20등을 해도 건강한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저녁에 온 가족들이 다 무사히 집에 돌아온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어느 성도의 간증이 은혜가 됩니다.몇년 전 물건을 하나 비싸게 샀다고 부인이 속상해하고 억울하다 해서 남편이 그랬답니다.나는 두 가지만 생각하면 억울할 게 없어. 하나는 내가 예수 믿은 것이고 또 하나는 당신이 내 아내가 된 것이지, 이것만 생각하면 나는 억울한 것이 없어 했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남편 말이 백번 옳지요.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세상에서 잘 살았어도 죽을 때 지옥가면 그게 다 뭡니까?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억울할 것 없어요. 펑펑 쓸만한 돈 많이 없어도 괜찮아요. 영원의 눈을 뜨고 보면 예수님을 믿은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어요.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주셨잖아요. 그것을 생각하면 돈 좀 떼어 먹히고 좀 물건을 비싸게 산 것이 무엇이 그렇게 억울해요?

이처럼 깨닫는 것이 유혹을 이기는 지혜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욕심이 생기면 그 은혜가 하나도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시험에 말려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시험하시지 않으시는데도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시험이 되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감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욕심이 역사하면 감사할 조건인데도 불만이 됩니다. 매일 범사에 감사함으로 매일 시험에 한번에 합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저와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하하 하나님 탱큐 합시다 )

셋째: 매일 시험에 합격 하려면 어떻게(How)해야 합니까? 3. 인내 해야 합니다. 참으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1:12을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고 “옳다 인정을 받고 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참는다는 말의 헬라어 원문은 휘포메노입니다. 그 뜻은..밑에 머무르다 견디다, 참다 입니다.

무거운 것이 내리 눌러도 참고 견디는 것, 달리다가 장애물이 앞을 막으면 주저앉지 말고 제자리에서라도 뛰고 서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도 참아야 성장합니다. 서둘고 조급하게 굴면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다며 2-3년마다 교회를 옮겨 다니시는 분들도 있읍니다.

교회에서 장로 안 시켜준다며 교회를 옮겨다니는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 없이 교회를 지키고 충성한 그 분의 친구들은 모두가 장로님이 됐습니다. 참고 견뎌야 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 스러워도 참으면 결과가 좋습니다.

본문은 야고보서 1:12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인내를 생각하십시다. 멸시도, 조롱도, 천대로,고난도,십자가도,죽음도 다 참으셨습니다. 십자가의 인내가 부활생명을 이룩한 것입니다.

옳다 인정받기까지 참고, 참고, 또 참고 참는 사람이 됩시다. 참고, 참고, 또 참고!! 고통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놀라운 은혜의 소산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학교에서 시험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공부를 포기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틀림없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줄 것입니다. “너 할 수 있어! 너 합격할 수 있어. 힘을 내, 내가 도와줄게!”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말씀입니다.

결론: 매일 매일의 고탈픈 삶 속에서 하나님의 시련을 극복하며 매일 모든 시험에 한번에 합격 합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예수님 믿는 천국 학생은 마귀 유혹 으로 인해 실패하여 재수나 삼수 안하기를 원합니다. 왜요 계속 그러다가 죽어요. 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 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 한즉 사망(죽음)을 낳느니라”했습니다. 경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해야 삽니다. 그래서 시련을 통해 연단 받고 하나님의 큰 그릇들로 사용 되시길 바랍니다.

매일 시험에 합격하도록 순종 하십시다. 시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하하하 하나님 탱큐” 하며 살아 갑시다. 죽을 각오로 시련을 인내하여 생명의 면류관 상급 받는 모두 되시길 축원 합니다

▲ 김석원 목사가 쓴 <주기도문은 내 삶의 축복이다> ⓒ뉴스파워

*김석원 목사는 부산 고신대와 총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충현교회 전도사, 강도사, 부목사(1981년까지)를 역임하였다. 1981년 도미하여 Heritage College(교육학 석사 및 박사)와 Luther Rice Seminary(목회학 박사)를 졸업하고, Westminster Seminary(목회학 박사과정)을 이수하였다. 현재는 T.O.I(CCC 국제본부 신학대학원) 교수 및 한국부 책임자(Director of Korean Program)로 일하면서 올랜도 충현장로교회 담임목사를 맡아 사역하고 있으며, 또한 김치(KIMCHE) 선교회와 국제기도공동체를 설립하여 디렉터로 사역하고 있다. 저서로는 ‘기도의 신학'(주기도문 강해)과 번역서로 ‘부부위기관리'(CCC 창설자 빌 브라잇 박사), ‘전도를 위한 조직'(레리 루이스 SBC 총재), ‘1달러의 기적 플러스, 플러스’, ‘주기도문은 내 삶의 축복’ 등이 있다.

기사입력: 2014/10/09 [10:20] 최종편집: ⓒ newspower 관련기사목록 [김석원 목사] “주기도문을 생활화 하십시오” 김철영 2017/07/21/ [김석원 목사] 하나님 나라와 성시화 운동 김석원 2015/02/10/ [김석원 목사] 똑바로 믿고 똑바로 삽시다 김석원 2014/10/29/ [김석원 목사] 죄악의 독(毒)에 빠져 죽지 말아야 김석원 2014/10/20/ [김석원 목사]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김석원 2014/10/09/ [김석원 목사] 용서해야 내 안의 모든 독(毒)이 빠진다 김석원 2014/10/02/ [김석원 목사] 일용할 양식과 하하하 하나님 탱큐 김석원 2014/09/09/ [김석원 목사]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김석원 2014/09/06/ [김석원 목사]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김석원 2014/09/02/ [김석원 목사] 거룩한 이름의 가치를 알고 삽시다 김석원 2014/08/31/ [김석원 목사] 하늘에 계신 아빠 아버지 김석원 2014/08/25/ [김석원 목사] 하나님 계신 하늘나라 주소 김석원 2014/08/22/ [김석원 목사] 이렇게 기도하고 살라(마6:9-13) 김석원 2014/08/21/ [김석원 목사] 김석원 출판 김다은 2014/07/26/ [김석원 목사] “주기도문은 내 삶의 축복” 김준수 2014/07/21/

마 6:13절 상반절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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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13절 상반절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우리는 주기도문에서 처음으로 부정적인 간구를 접한다. 이 간구와 관련하여 자연스러운 질문은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으로 인도하는 분이신가? 약 1:13은 아니라고 한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그렇다면 시험 (peirasmon)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복음서에서 시험은 주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거나 바리새인과 같은 예수님의 대적들이 예수님을 대적하는 행위와 관련된다 (마 41:1; 막 1:13; 눅 4:2; 고전 7:5; 마 16:1; 19:3; 22:28; 막 8:11; 10:2; 눅 11:16 등). 예수님으로 하여금 메시아의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활동하는 사탄의 시험과 유혹과 방해 공작은 나중에는 교회를 향해서도 계속된다. 따라서 복음서 기자들은 비록 그것이 사탄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마음-내면에 유혹을 받게 하여 죄를 범하도록 하는 차원으로는 ‘시험’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마 26:41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주기도문의 간구처럼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주의를 주신다. 이 시험은 사탄에 의한 것으로서 제자들을 향한 시험이다. 따라서 이 시험은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이루기 위해 당하는 외적인 어려움과 핍박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주님께 더욱 헌신하면 할수록 이런 어려움과 시험은 더욱 많아지는 것이다. 반대로 그리스도의 흔적도 더 많아진다 (갈 6:17).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그러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는 기도는 무엇인가? 이 간구는 우리가 사탄의 유혹과 핍박을 전혀 만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간구는 아니다. 반대로, 사탄의 시험을 만나더라도 이기도록 해 달라는 간구이다. 예방 차원이 아니라 승리하고 극복하는 차원의 간구이다. 예수님의 사역에 사탄과 대적의 시험은 지속적이었는데, 그 때 마다 피하거나 경험하지 않도록 간구 한 적은 없다. 예수님은 그 시험과 타협하지도 않으셨을 뿐더러 실패하지도 않으셨다. 이런 경험을 가지고 계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체험에서 나오는 확신 가운데 기도를 가르치시고 있다. 성도는 본질적으로 그리고 존재론적으로 마귀와 싸울 수밖에 없다.

뒤따르는 “다만 (그) 악에서 구하옵소서”는 앞부분과 무슨 연관을 가지며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악’ (tou poneirou)는 무엇인가? Tou라는 정관사를 남성으로 볼 수도 있고 중성으로도 볼 수 있다. 남성으로 본다면 사탄을 가리키며, 중성으로 본다면 그 악 혹은 그 악한 행동을 의미한다. 마 13:19, 막 4:15, 눅 8:12, 요 17:15, 그리고 요일 5:18에서 악한 자는 사탄을 가리킨다 (그리고 엡 6:16; 살후 3:3도 보라). 이 구절들을 통해서 볼 때 ‘그 악’은 사탄을 가리키는 것 같다. 따라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는 부정적인 간구는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는 긍정형으로 다시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 즉 주제의 반복을 의미하기에 같은 내용의 다른 양상일 뿐이다. 고후 12:23이하에서 사탄에 의해 고난 당한 바울의 모습을 우리는 본다. 매를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했지만 하나님은 사탄의 손에서 바울을 건지셨고 보호하셨다. 히 11장은 믿음의 선진들 역시 이런 고난을 통과했다고 증언한다. 따라서 우리는 엡 6:10 이하에서 말씀하듯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은 부활로 사탄을 이기셨고 그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교회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지속적인 승리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분의 나라를 확고히 해야 한다. 이것이 이 간구에 나타난 주님의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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