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복음 기록 연대 | [성경이야기] 마태복음 이야기 1 / 저자, 연대 32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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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미자 교수(Ph.D/ University of Manchester)는 영국 맨체스터 나사렛신학대학 (Nazarene Theological College/ Manchester, UK) 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The Path to Salvation in Luke’s Gospel: What must we do? (LNTS 607; London: T\u0026T Clark, 2019) 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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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의 저자와 기록 연대와 주요 내용] – Daum 블로그

마태복음의 저자와 기록 연대와 주요 내용 [저자] 예수님 곁에 있었던 12사도 중의 한사람인 직업이 세리였던 마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레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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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0/18/2021

View: 6719

성경/사전/주석 – 두란노닷컴

그러나 마태복음의 내용만으로는 더 이상 정확한 연대를 추정하는 것은 어렵다. 마가복음이 주로 이방인들과 아직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자들을 염두에 두고 기록된 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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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uranno.com

Date Published: 3/5/2022

View: 449

사복음서(마가, 마태,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의 저작 시기에 …

마가복음의 저작시기는 대체로 AD64년과 AD70년 사이로 주장한다. 일부의 학자들은 70년에 일어났던 예루살렘 멸망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다하여 70년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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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392766.tistory.com

Date Published: 7/29/2022

View: 3543

마가복음 기록 연대 – Hong-Bridge

복음서의 연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인류 역사를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 평행구절인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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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ong-bridge.com

Date Published: 7/12/2022

View: 2673

파피루스에 기록된 마태복음 세 조각 < 신학 < 기사본문

물론 이러한 주장도 현재까지 발견된 최고 고대 문서가 바로 요한복음이고 문서 기록 연대가 주후 125년이라는 피할 수 없는 증거가 제시되었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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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snjoy.or.kr

Date Published: 12/10/2022

View: 7306

마태오의 복음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마태오의 복음서(공동번역), 마태오 복음서(가톨릭), 마태복음(개신교)는 기독교 신약성서의 첫 권이며, 세 개의 공관복음서들 중 하나이다.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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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2/14/2021

View: 5431

마태복음 – 하나님의 교회 지식사전

마태복음(Matthew)은 신약성경의 첫 번째 책이다. … 기록 연대(추정), 60-70년경 … 마태복음의 기록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마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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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hurchofgod.wiki

Date Published: 4/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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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각권 간략한 소개 – 신학자료실

그러나 마태복음의 내용만으로는 더 이상 정확한 연대를 추정하는 것은 어렵다. 마가복음이 주로 이방인들과 아직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자들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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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tsnu.org

Date Published: 8/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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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개론 – 마태복음 개론

흠정역에 나타나는 “성 마태에 의한 복음”이란 표제는 비교적 후기의 사본들에서 다수 … 그는 사건들이 나타나는 대로 기록하는 연대학자가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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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gw.org

Date Published: 4/27/2021

View: 9756

마태복음 개론 – 성경개론 신약 – 광영생명교회

그러나 본 서의 연대를 정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마가복음과의 관계이다. 본 서가 마가복음을 기초로 하여 기록되었으며 마가복음이 베드로가 순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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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ynlc.org

Date Published: 6/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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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야기] 마태복음 이야기 1 / 저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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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마태 복음 기록 연대

  • Author: 살리는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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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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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의 저자와 기록 연대와 주요 내용]

마태복음의 저자와 기록 연대와 주요 내용

[저자]

예수님 곁에 있었던 12사도 중의 한사람인 직업이 세리였던 마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레위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고있다.

[기록 연대]

A.D.50년대 후반부터 예루살렘 멸망이 있은 A.D.70년대 이전

[주요 내용]

(1)-그리스도의 탄생과 유년기

(2)-그리스도의 세례와 시험

(3)-산상 설교

(4)-열 가지 이적

(5)-열두 제자 파송

(6)-세례 요한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

(7)-바리새인들의 반대

(8)-천국 비유

(9)-배척 당하심

(10)-공동체 삶의 원리들

(11)-심판에 대한 경고와 예언

(12)-수난과 죽으심

(14)-부활하심

사복음서(마가, 마태,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의 저작 시기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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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의 저작 시기에 대한 고찰사복음서(마가, 마태, 누가복음)

신약성경에는 특이하게 예수의 생애를 다룬 복음서가 네 가지가 있다. 성경의 순서에 따르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순이다. 그러나 학자들을 대체로 마가복음이 가장 빠르다고 주장하며, 가장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것을 ‘마가복음 우선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근래의 몇몇 학자들은 마가복음 우선설에 희의적으로 반응한다. 그들의 주장은 일부이며, 마가복음 우선설을 재고할 근거가 희박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마가복음 우선설이 우세하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어록을 정리한 Q문서를 기반으로 예수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하여 공관복음으로 부른다. 공관복음은 동일한 관점에서 예수를 바라본다는 의미이지만, 비평학적으로 동일한 문서를 참고하여 만들었다는 의미다. 요한복음은 가장 후대에 기록된 것이며, 앞선 복음서들과는 서술의 방법이나 흐름은 상당한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을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이 순서이고, 그 다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다루고,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을 살펴보자.

1. 마가복음

마가복음의 저작시기는 대체로 AD64년과 AD70년 사이로 주장한다. 일부의 학자들은 70년에 일어났던 예루살렘 멸망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다하여 70년 이후로 잡기도 한다. 그러나 전통적 견해는 70년 이전으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은 바울 서신에 비해서도 상당히 늦은 시기에 기록되었다. 최초의 서신으로 알려진 갈라디아서는 남갈라디아설을 지지할 경우 48-50년이며, 북갈라디아설을 지지할 경우 57-58년이 된다. 가장 늦은 시기엔 58년을 잡아도 6년이나 빠른 셈이다. 그럼 왜 이렇게 늦은 시기에 복음서가 기록되었을까?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복음서를 기록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직접 경험했고, 기억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제자들의 순교와 죽음 등은 예수의 생애와 말씀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마가는 급하게 예수님의 어록을 정리한 Q문서와 다른 몇 가지 자료들을 수집하여 급하게 예수의 생애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마가의 저작설을 전제한다면) 대체로 마가복음의 독자들을 로마에서 고난당하는 기독교인으로 본다. 네로 황제의 광기가 극에 달할 때 마가복음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읽혀졌고, 고난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답을 얻었다. 이것이 전통적인 마가복음에대한 관점이다.

그렇다면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기록되었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가장 확실한 근거는 마가복음이 마태와 누가복음에 의해 인용되었다는 점이다. 마가복음에 기록된 적지 않는 구절들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인용되고 있다는 점은 마가복음을 참고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마가복음을 그대로 인용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요한도 마가복음에 대해 알았을 것이라고 추측 가능하다. 랄프 마틴도 스트리터의 를 인용하여, ‘요한복음 기자도 아마 그 책(마가복음)을 알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마가복음의 것을 인용한 것인지, 마태나 누가의 것을 인용한 것인지에 대한 학문적 작업은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자. 그들은 이미 마가복음이 우선했음을 대부분 인정한다.

L. 방가나이는 2세기의 기록된 <베드로 복음>과 마가복음을 비교 분석한 후 <베드로 복음>의 저자가 마가복음을 친숙하게 알려져 있다고 말한다. 즉 마가복음을 토대로 베드로 복음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마가복음의 본문은 그 외의 초대교회 문헌에도 종종 발견된다. 헤르마스는 마가복음 6:52과 8:17을인용했다. 타티안은 사복음서를 하나로 묶은 <디아테살론>에서 마가복음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간다. 초대교부였던 이레니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베드로와 바울)이 죽은 후에, 베드로의 제자요 해석자인 마가가 또한 베드로의 의해 선포된 것을 저술로서 우리들에게 남겼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역시 마가가 베드로가 선포한 복음을 자신의 복음서에 기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2세기 교부들은 마가복음을 인용하지 않은 듯하다. 그들의 문헌 속에 마가복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초대교회가 1세기 후반부터베드로가 아닌 바울의 지대한 영향력 아래 들어간 탓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리처드 보컴은 <예수와 그 목격자들>에서 매우 독특한 사실을 제시한다. 마가복음에서는 베드로의 이름은 유난히 많이 기록되었다는 것과 공생애의 시작과 끝에 베드로를 배치시킴으로 ‘이 야기가 일찍부터 전승들 속에 자리 잡은 것이 확실하다’고 말한다. 논외이기는 하지만 <젤롯>의 저자인 레자 아슬란은 마가가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으로 치부한다. 직접 인용해보자.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마가복음이 상당한 수준의 문학적 기교를 드러낸다고 전제하는데, 그러한 증거는 전혀 없다.(마가복음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조잡하고 초보적인 수준이며, 이로서 마가가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아슬란의 일관된 주장은 갈리리 출신의 사람들은 무식하고, 열심?에 압도된 하층민으로 이야기한다. 투박한 마가복음의 문체는 그가 무식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직설적이고 맹백한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방법일 수 도 있다.

어쨌든 이러한 근거에 의하면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가장 빠른 시기에 기록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저작 시기에 대해서는 약간 모호하다. 대체로 70년 이전에 기록된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다른 복음서에 비해 마가복음은 초대교회 전반에 알려진 상태였으며, 그것을 토대로 다른 복음서를 기록할 결단을 하게 했을 것이다.

2. 마태복음

지금도 그렇지만 초대교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복음서는 마태복음이었다. 마소(E. Massaux)는 초대교회 문헌 속에서 마태복음이 얼마나 많이 인용되었는가를 치밀하게 살폈다. 그는 마태복음이야말로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저작물이었다고 결론 내린다. 예를 들어 디다케와 저스틴, 또한 다른 교부들의 문헌 속에서 마태복음의 내용이 적지 않게 인용된 것이다. 그렇다면 마태복음은 언제 기록되었을까?

랄프 마틴은 4복음서 문제를 다루면서 마태복음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의 ‘구성과 관련하여 큰 논란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큰 논란’을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 부분은 도날드 거스의 <신약 서론>에 나타난 마태복음 논란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공관복음 연구가들은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예언적 능력을 부정하므로, 마가, 마태 및, 누가의 연대가 모두 마가의 연대에 전적으로 수반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논의는 다음의 순서를 따른다. 첫째, 예수님의 능력이 부인되므로, 마가복음은 예루살렘 멸망 바로 몇 해 전에 작성되었다고 추천된다. 둘째,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을 사용했으므로 예루살렘 멸망 후로 연대가 잡혀야 한다. 셋째, 이그나티우스와 디다케 양자 모두 마태복음을 인용한 것으로 나타나므로, 마태복음은 양자의 저술보다 약간 앞서 권위를 얻은 것이 틀림없다. 넷째, 그러므로 마태복음의 추정 연대는 AD 80-100이다. 이 기간 안에서 정확히 어느 때인가는 일반적인 의견 일치가 없다.”

이곳에서 연대 기준의 중요한 잣대는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멸망이다. 마태복음에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예언한 것이 아니라 후대에 예수의 입을 빌려 기록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비평학적 내증에 의해 학자들은 80-100년 사이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태복음은 의외로 늦은 시기에 기록된 것이다.

필자는 학자들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 마태복음에 종말에 대한 예언과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상세한 첨부는 예루살렘 멸망 이후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하여 기록한 것이다. 즉 멸망 이전에는 전해 이해하지 못하다 멸망 후에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한 것이다. 이것은 고향을 잃고 정처 없이 유랑하게 된 상황 속에서 진정한 모세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요,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을 증언하기에 충분히 적합한 것들이다.

정확한 시기를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70년 이후 예루살렘 멸망 이후는 분명하다. 마태복음은 성전 파괴 이후,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구약에서 예언한 ‘그 메시아’이며 새로운 성전임을 말하고 있다.(마 26:61, 27:40)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이다.(마 27:37)

3. 누가복음

학자들의 관심이 다른 복음서에 비해 적기는 하지만 누가는 신약의 가장 중요한 저자 중 한 명이다. 왜냐하면 그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이자, 바울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당대에 엘리트로서 의사이며 역사가이다. 마태복음의 저자가 마태가 확실하다면 누가는 마태와 더불어 바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엘리트이다.

일반적 견해는 누가복음은 사도행전보다 앞선다. 근거는 사도행전 1:1에서 ‘앞선 글’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선 글’은 누가복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한 것은 아니다. 일단 사도행전이 누가복음의 후속작이라 전제하고 누가복음을 접해보자. 그렇다면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던 시기로 마무리된다면, 누가복음은 바울이 로마에 가기 전에 적힌 것은 분명하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누가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바울과 함께 한다. 그렇다면 누가는 바울의 죽임 이후나, 말년에 누가복음을 기록하고 얼마 가지 않아 사도행전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마태복음처럼 누가복음 역시 70년 디토 장군의 예루살렘 멸망 이전인가 이후인가에 대한 논쟁은 여전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바울의 죽음(65년)이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최소한 60년쯤으로 예상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누가복음은 마태복음보다 시기적으로 충분히 앞설 수 있다. 마가복음의 절반 가까이가 누가복음에 인용된 것을 볼 때, 누가는 마가복음을 의존하여 연대기적 기술방법으로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피츠마이어는 누가 문헌이 바울의 재판이나 죽음 이전에 작성되었다는 결론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몇 가지를 제시한다.

ㄱ. 누가 이전에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저술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언급은 초기 연대설을 지지하기 힘들다.

ㄴ. 예루살렘을 향해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고 말한 누가복음 13:35절은 예루살렘 함락이 분명하다.

ㄷ. 예수님의 성전에 대한 심판(막 13:2, 눅 21:5) 상황이 눅 21:20에서는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상황’으로 바뀐다. [이것은 실제로 그 사건을 목격하거나 들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구체적인 묘사이다.-필자]

피츠마이어는 이러한 근거를 통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70년 이후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만약 마태복음처럼 누가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됨을 변증하기 위한 것이라면 70년 이후일 가능성은 농후하다. 또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작 시기가 그리 멀지 않다면, 누가복음은 70년대 중반, 사도행전은 80년대 초기일 가능성이 충분한다.

4. 요한복음

요한복음은 너무나 명백해 논쟁의 여지가 거의 없다. 요한복음은 공관 복음서와 확연히 다르며 헬라적 영향을 강력하게 받은 복음서이다. 헬라적 영향을 받은 것이지, 헬라철학을 결코 옹호하거나 칭송하지 않는다. 오히려 헬라철학을 기독교로 바꾸고 싶어 한다. 요한복음은 90년 이전으로 보는 학자는 아무도 없다. 어떤 학자는 2세기 중반까지 미루기도 하지만 대체로 90년에서 100년 즈음으로 본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늦은 시기로 기록되었다. [만약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동일한 요한이 아니라는 전제 안에서] 에즈라성경대학원대학교 조석민 교수는 네 가지 이유로 65년 이후에 기록되었다고 확신한다.

(1) 이 복음서가 집필된 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65년 이후라는 암시가 있다. 그것은 베드로의 순교가 암시되고 있기 때문이다(참조. 21:18-19).

(2) 이 복음서 안에서는 공관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사두개인(the Sadducees)의 언급을 찾아 볼 수 없다. 사두개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전 70년까지 성전에서 봉사하며 종교적 특권과 권세를 행사하던 유대교 종파 중 하나이다.

(3) 신약성서 전체에서 이 복음서 안에서만 유대인들의 파문 즉, 출교에 대한 언급이 명시적으로 나타난다(참조. 9:22; 12:42; 16:2).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회당에서 쫓아 낸 일은 80년 이후에 등장한다.

(4) 이 복음서의 기록 시기를 추정하는데 여러 파피루스의 증거가 사용된다. 그 가운데 라이랜즈 파피루스 457(the Rylands Papyrus 457)은 P52로 알려져 있는데, 신약성서 사본 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본으로 요한복음 18:31-33, 37-38을 포함하고 있다. 이 사본은 1920년 이집트(애굽)에서 발견되었고,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34년이다. 이 사본은 파피루스 양면에 필사되어 있어서 두루마리가 아니라 코덱스(codex) 형태의 사본이었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현재 영국 맨체스터(Manchester)에 있는 존 라이랜즈 도서관John Rylands Library)에 소장되어 있다. 이 사본의 제작 시기는 약 125년경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이 사본이 제작되기 약 20-30년 전에 이미 요한복음은 세상이 잘 알려진 복음서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글의 출처 http://www.londonkc.com/xe/index.php?document_srl=66841&mid=board]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에 비해 현저히 다르다. 헬라적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며, 그 어떤 복음서보다 변증적이다. 그럼에도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육화된 하나님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관점을 견지(堅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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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기록 연대

각 복음서를 함께 읽을 수 있는 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1 인류 역사와 함께 보는 성경

복음서의 연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인류 역사를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를들어 본디오 빌라도가 언제 총독이 되었는지 고대 문헌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년수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모든 근거는 성경에서 언급된 단어, 문장을 기반으로 하는데요. 마가복음이 언제 기록되었는지도 복음서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2 막 13장의 말씀

a.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여쭤봅니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막 13:1)

예수님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진다고 대답을 하십니다.

b. 제자 몇은 다시 여쭤봅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막 13:4)

c.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미혹, 난리와 소문, 지진과 기근 등을 언급하시며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막 13:13) 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산으로 도망가며, 뭔가를 가지려 돌아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d. 그 후 이 말씀을 하십니다.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3:18)

3 마가복음의 기록 시기

서중석 교수님은 이 구절에서 마가복음의 기록연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13장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은 ‘주후 70년 8월’ 에 일어났습니다. 즉, 여름에 멸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합니다.

평행구절인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들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이란 구절은, 로마의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할 때 이해가 가능합니다. 누가복음의 정보가 마가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마가가 그 전쟁의 마지막 시기에 관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추정하게 합니다. 누가복음의 저자는 멸망의 날이 겨울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일부러 마가복음 13장 18절의 구절을 언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란 구절은, 로마의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할 때 이해가 가능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마가복음의 ‘겨울’ 을 ‘겨울이나 안식일’ 이라는 구절로 변경됩니다. 마가복음에 지정된 겨울보다 안식일을 추가하여 선택적 대안을 하나 더 마련하도록 수정을 했습니다. 그로인해 마가의 보도가 지닌 문제의 크기를 축소시키며, 멸망이 어느 계절에 일어났어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라는 구절로 변경됩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세상이 망하는 것 같은 그 충격의 날을 잘못 기록한다는 것(여름을 겨울로)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은 마가복음의 저자가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는 예루살렘이 멸망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멸망한 계절을 겨울로 기록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68년에는 유대인들이 유대지역의 2/3를 장악하며 희망을 지속하던 시기였고 그렇게 긴급한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진군이 69년 말 혹은 70년 초에 일어났기 때문에 마가복음은 바로 그 시기에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연대를 설정하는 의의

복음서 중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기록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기록시기를 설정한다는 것은, 다른 복음서들의 연대를 이보다 앞설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마가복음이 평온한 때,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마자 기록된 것이 아니라, 로마가 전쟁을 위해 출발할 때, 이제 멸망을 앞두고 있는 그 때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마가복음을 어떤 배경 가운데 읽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마가복음 저자가 경험한 것은 그가 처해있던 공동체, 그룹들도 함께 경험한 것입니다. 복음서는 그 상황 가운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성령의 영감을 통해 기록된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으며 우리는 당시 시대와 지금 우리의 시대를 살펴보며 지금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기록연대를 안다는 것, 그것은 더 정확하고 깊은 말씀의 세계로 인도하는 지름길입니다.

* 참고문헌 *

서중석, 『복음서해석』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2), 15-29.

– 서중석 교수의 ‘복음서 해석’ 를 요약, 편집 한 것이니 이 글을 인용하실 때는 서중석 교수를 언급해 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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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끄는 말

신약성경 중에서 사복음서 기록 시기는 언제일까? 예수그리스도가 사도로 선택하시고 증거하라고 명하신 사도들의 기록일까? 아니면 사도들은 구전으로 전했고 이것을 후대 사람들이 기록한 것일까? 오래전에는 마가복음이 최초의 기록이고 다른 복음서는 이것을 기초로 확장되었다는 설이 유력했다. 그러나 현재의 신학계는 주후 125년경 요한복음이 처음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고 다른 복음서들도 이 시기를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즉 사복음서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직접 선택받은 사도들이 활동하면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전한 내용을 후대 사람들이 기록했다는 뜻이다.

사복음서는 물론이고 모든 신약성경이 예수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한 당시 사도들이 기록한 것이라고 믿고 증거하는 우리들에게는 곤혹스럽지만 저 유명한 하버드나 옥스퍼드 신학 교수들이 말하는 것이 이러하다. 사실 이런 주장도 성경 비평을 주장하는 학자들에 비하면 완화된 견해다.

19세기 말엽(1940~1970) 자유주의 신학이 세계 신학계를 휘젓고 다닐 때는 성경 비평이 더욱 심했다. 그때는 사복음서 중에 마가복음 기록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복음서들은 마가복음을 기초로 후대 기록자들이 확대하거나 신화 내용을 덧붙여 기록했다고 말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성경 기록대로 믿고자 하는 복음주의자들이 다시 힘을 얻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해 바다 근처에 있는 쿰란이라는 지역에서 고대 문서들이 다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기록에 대한 내용을 해석하면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성경 비평은 힘을 잃기 시작했다.

쿰란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감추어졌던 시기는 주후 68년경이다. 당연히 예수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했던 사람들이 다수가 살아 있던 시대다. 물론 그 당시보다 오히려 이전에 기록되었을 문서들이 2000년 만에 그 모습을 드러낸 사건이다. 이 쿰란 유물이 중요한 것은 상당수 기록이 히브리어 헬라어 아람어로 이루어진 구약성경들이 다수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쿰란 기록이 서서히 조금씩 확인되면서 (기간이 40년 정도 걸리고 있고 현재도 진행 중) 그동안 기세등등하던 문서 비평가들은 위기에 처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고대 구약성경임에도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과 별 다른 차이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유명한 학자들이 주장하던 신화가 첨부되었다. 확대된 내용들이다. 그리스도 이후의 기록물이라는 주장들이 그만 우스갯거리가 된 것이다.

이로써 19세기 중엽을 풍미하던 문서 비평이 1970년대를 기점으로 후퇴하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신약성경의 사복음서 기록 시기는 주후 125년경으로 보이고 이중 요한복음이 가장 고대 기록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도 현재까지 발견된 최고 고대 문서가 바로 요한복음이고 문서 기록 연대가 주후 125년이라는 피할 수 없는 증거가 제시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이 1994년 12월 24일 런던 타임스지에 실렸다. 바로 옥스퍼드 칼스텐 디테이 교수가 마태복음 기록이 주후 60년경 기록되었음을 증명하는 고대 성경을 발견하였고 이 주장을 합리적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디테이 교수는 이집트에서 생산된 파피루스에 기록된 세 조각의 고문서를 발견했다. 그 내용은 마태복음 26장 일부분으로 어떤 여인이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발을 씻는 내용이다. 그리고 다른 부분은 가룟 유다가 성전으로 대제사장들을 찾아가 그리스도를 팔고자하는 것이고 마지막 부분은 최후 만찬에서 나를 팔자가 함께 있다고 선언하는 내용이다. 이 고대 성경은 현재 영국의 멕더란 칼리지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칼스텐 디테이 교수의 주장이 런던 타임지 기사로 공개되자 문서 비평에 찌들어 있던 수많은 사람에게서 엄청난 반응이 나타났다. 여러 대학에서 문의가 빗발치기 시작했으며 디테이 교수의 연구 업적에 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대부분 신학계 중진들은 오히려 난색을 표했고 이 중 런던 대학 킹스 칼리지의 그레이엄 스탠드 교수는 즉각적이고 적극적 반대를 표명했다.

과연 디테이 교수는 어떠한 방법으로 마태복음서 기록 연대를 주후 60년경이라고 증명하였고 이를 반대하는 스탠드 교수의 주장은 무엇일까? 디테이 교수가 걸었던 사본학 연구 과정과 증명 방법을 총 정리하여 보고 신학계 반응도 간략하게 확인하도록 한다.

2. 고대 유물 발견

옥스퍼드의 사본학 전문가 칼스텐 디테이 교수는 1994년 초엽 맥더란 칼리지를 방문하여 그곳에 전시되어 있는 파피루스에 기록된 고대 문서를 살펴보게 되었다. 이곳 문서는 불과 세 조각에 불과하였으며 그 세 조각을 모두 합하여도 명함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매우 소량이다. 내용은 마태복음 26장 일부분으로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 상황을 말해 준다. 물론 이 기록은 주후 300년 이후 기록이라는 설명도 친절하게 부착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을 살피던 디테이 교수는 주후 300년경보다 훨씬 이전에 사용된 필체가 기록물에 나타나 있음을 보게 된다. 고대 사본의 기록 연대를 추정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기록물 필체다. 그런데 바로 자신이 확인한 고대 유물 필체가 주후 300년경 필체와 많이 차이점이 나고 있는 것이다. 현대도 물론이지만 필체는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특징이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발전하면서 달라지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식별을 연대기의 중요한 기준으로 이해하고 있다.

고대 문서에 대한 연대 측정은 과학계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탄소 연대 측정을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탄소 연대 측정은 그 오차 범위가 최소한 50~100년까지이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 그리고 글이 기록된 문서의 시기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서에 기록한 기록 시기를 측정하는 것이 목적임으로 탄소 연대 측정은 사본학에서는 무의미하다.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기록 연대 측정 방법은 바로 비교 연대 측정이다. 이것은 연대가 확인된 고대 문서와 연구하려는 문서의 필체를 서로 비교하여 확인하는 방법이다.

디테이 교수는 먼저 파피루스에 기록된 문서를 자신의 연구실로 가지고 와서 최첨단 레이저 현미경을 통해 입체적으로 샅샅이 조사했다. 연구 결과 디테이 교수는 연구하고자 하는 마태복음 문서가 원본이 아니라 필사된 기록물이라는 점을 확인한다. 당연히 필사된 고대 유물의 원본은 이보다 더욱 오래되었음이 자명하다.

레이저 현미경을 통한 확인 작업이란 문서에 기록된 필체의 먹물 깊이를 측정하는 것이다. 기록된 글씨의 먹물 깊이는 일정하게 11- 11.1 마이크로미터 깊이로 배어 있다. 그러나 유독 점 하나가 4.0 마이크로미터 정도로 아주 얇게 찍혀 있음을 발견한다. 이렇게 얇게 찍힌 것은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필사 과정에서 실수로 떨어트린 먹물 방울이라는 증거다. 만약 필사자가 점을 찍은 것이라면 먹물 깊이는 다른 글자와 오차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또 이 고대 기록물을 주후 300년경 이후라고 평가한 것은 바로 찍힌 점이 필사자가 임의로 기록한 쉼표, 혹은 더욱 발전된 어떤 문자의 부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필사 과정에서 실수로 발생된 점이라고 보면 이 필사본이 훨씬 오래된 고대 기록임을 증거하는 단서가 된다. 디테이 교수는 자신감을 얻고 이 기록물이 더욱더 오래된 고대 문서임을 밝히기 위한 비교 연대 측정을 시작했다.

3. 19세기 목회자

파피루스에 기록된 고대 마태복음 문서를 최초 발견한 자는 맥더란 칼리지에서 신학을 배웠던 찰스 휼리엣이라는 목사다. 그는 맥더란 칼리지를 1886년 졸업한 다음 옥스퍼드 위클리프를 거쳐 이집트 룩소에 파송된 바 있다. 룩소에서 목회하던 휼리엣 목사는 시장에서 판매하는 고대 파피루스에 기록된 마태복음 문서를 발견한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물건이지만 휼리엣의 눈에 이 유물의 중요성이 발견된 것이다.

고대 기록을 구입한 휼리엣 목사는 떨리는 마음으로 문서 일부분을 자신의 모교인 옥스퍼드 대학 사본학 권위자에게 보내어 문서의 가치와 역사적 해석을 부탁했다. 그러나 옥스퍼드에서는 아무런 해명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왜냐하면 휼리엣 목사가 이 문건에 대한 회신을 기다리다 지쳐 또 다시 옥스퍼드 도서관장에게 답신을 부탁하였기 때문이다. 이 간절한 편지는 현재 옥스퍼드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어 고대 문서의 발견자가 바로 휼리엣 목사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에 대한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한 휼리엣 목사는 이후 이집트 룩소를 떠나 이탈리아의 메시나로 목회지를 옮기게 된다. 그러나 1908년 메시나에서 엄청난 지진이 발생했고 안타깝게도 그와 그의 가족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물론 그가 옥스퍼드로 보내어 간절하게 회신을 원하던 몇 조각 문서 외에 틀림없이 그가 소장하고 있었을 더 많은 분량의 고대 기록도 함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아마 문서 비평 사상이 휩쓸고 있던 당시 옥스퍼드 환경이 이러한 결과를 낳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4. 비교 연대 측정 대상

디테이 교수는 휼리엣 목사가 이집트 룩소 시장에서 발견한 고대 기록(다음부터는 룩소의 문서로 칭함)에 대한 연대를 측정하기 위해 역사적 연대기를 비교할 수 있는 장소인 이스라엘 사해 근처의 ‘나할 헤브너’ 지역과 ‘마사다 요새’ 그리고 ‘쿰란 동굴’들을 차례차례 조사하기로 작정했다. 왜냐하면 이 세 지역에서 발굴된 문서들은 피할 수 없이 확고한 연대기를 확정함으로 이와 비교하려는 작업이다.

그는 우선 사해 접경지 ‘나할 헤브너’ 지역을 먼저 찾았다. 이곳은 주후 135년 ‘바코크바’ 로 일컬어지는 사람에 의해 주도된 유대 독립 운동의 마지막 저항 현장이다. 바코크바 저항군은 1만 5000 명이 넘는 로마제국의 군대를 대적하다. 마지막에는 황폐하기 짝이 없는 이곳 동굴로 몸을 숨기게 된다.

로마 군대는 주변에 진을 펼치고(현재도 그 흔적이 존재함) 이들 저항군이 굶주림에 지쳐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렸다. 물론 몇 사람은 동굴을 나와 로마 군사에게 끝까지 대적하다 죽기도 하였지만, 많은 어린아이와 노인들 그리고 저항군들은 동굴 안에서 그대로 굶어 죽음으로 ‘바코크바’ 항전은 끝나게 된다. 이때가 주후 135년경이며 이후로 이곳은 역사에서 사리진다.

역사학자들은 1996년 이곳에서 고대 동굴을 발견하고 유물을 발굴하기 시작했는데 동굴 안에는 당시에 굶어 죽은 다수 저항군 유골이 출토되었고 그들 소지품도 다수 발굴되었다. 그 중에 가죽 종이에 기록한 문서들도 다수 있었는데 이 중에는 구약 예언서도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예언서의 기록 필체와 연구하고자 하는 룩소의 문서가 동일한 필체임을 확인하게 된다.

저항군이 남긴 가죽 종이에 기록된 예언서 기록과 룩소 문서에 기록된 헬라어는 전체적으로 동일한 필체임이 분명하고 이 중 헬라어 알파벳 ‘로(영어로는 P자)’와 ‘에타(영어로는 A자)’는 확실하게 동일한 필체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룩소의 문서는 적어도 주후 135년보다는 이전 기록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다음은 마사다 요새다. ‘마사다 요새’는 주후 70년 로마제국 ‘베스파시안’과 ‘티투스’에게 대항하던 유대인 저항 운동으로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무너진 이후 일단의 유대인들이 피난해 대항하던 요새지다. 이 요새는 헤롯 1세가 건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주후 73년 로마 대군을 이끌고 유대 마지막 저항군을 진압하던 로마 ‘티투스’가 총공격을 감행하여 마사다 요새를 점령했을 때 그들은 놀라운 광경을 직면한다. 그것은 약 9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두 스스로 자결했고 남아 있던 사람은 여인 2명과 어린아이 5명에 불과 했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현재도 마사다 요새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끼치는 정신적 감동은 대단하다.

디테이 교수는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만약 이곳에서 발굴된 기록물과 룩소의 기록이 비교된다면 연대 측정은 더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는 글이 기록되어 있는 조그마한 사기그릇을 찾는 데 성공했다. 사기 용기에는 헬라어로 ‘사 레아’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그 뜻은 알 수 없고 기록된 필체가 룩소 문서와 동일하다. 룩소 문서와 같은 필체를 언셜체라고 칭하는데 요타를 표기할 때 위로 끌어 올리듯 멋을 부리는 기법이 사용되었는데 바로 이러한 기법이 동일하다. 당연히 룩소 문서는 최소 주후 73년 마사다 요새 저항 운동 이전 기록임이 또다시 비교 측정된다.

마지막으로 쿰란 동굴을 찾아보았다. 쿰란 동굴은 주후 68년까지 에세네파로 칭해지던 무리들이 거주하던 지역이다. 이들은 극한 빈곤에도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였고 세속을 멀리하고 메시야 도래를 소망하였다. 이들이 중요시하던 임무 중 하나는 고대 성경의 필사와 보관이다. 이들은 수많은 가죽 문헌을 필사하고 항아리에 담아 쿰란 지역 여러 동굴에 감추어 두었다. 그리고 그들은 주후 68년 저항군으로 오인되어 로마의 공격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이 지역은 폐허가 되었다.

에세네파 사람들이 감추어 둔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물은 1930년경 베두인족 한 양치기 소년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이어서 엄청난 고대 문서들이 계속 발굴되었고 현재도 발굴되고 있다. 디테이 교수는 이곳에서 발굴된 여러 가지 문서들을 확인하다 ‘레위기서’를 기록한 두루마리 가죽 문서를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헬라어로 기록되어있는데 놀랍게도 그 필체가 룩소 문서와 일치하는 언셜체였기 때문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더욱 획기적인 유물이 또 하나 발견된다. 그것은 쿰란 제7 동굴에서 두루마리 가죽 종이에 기록된 마가복음이다. 이 유물의 크기는 고작해야 우표 정도의 크기지만 그 가치는 대단한 발견이다. 왜냐하면 이 기록 중에는 ‘게네사렛’이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이 지명은 오직 마가복음에서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마가복음도 주후 68년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증거다. 물론 이 문서를 보관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항아리도 록펠러 박물관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디테이 교수가 시도한 비교 연대 측정 작업은 끝났다. 일단 휼리엣 목사가 발견한 룩소 문서는 적어도 주후 68년 쿰란 문서가 기록된 시기와 동일하다는 것은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욱 중요한 부분을 쿰란 문서에서 발견한다. 그것은 이곳에서 발굴된 가죽 두루마리에 기록된 마가복음과 휼리엣 목사가 이집트 룩소에서 발굴한 파피루스에 기록된 마태복음에는 너무도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5. 원본에서의 필사

마가복음의 기록은 양가죽을 벗겨 말린 다음 두루마리 형식으로 만들어 글을 기록하고 보관한 것이었다. 이것은 목축업이 주업이었던 유대 민족이 주로 사용하던 고대 기록 방법이다. 반면 룩소에서 발견된 마태복음 기록은 파피루스에 기록되었다. 이것은 이집트 나일 강 유역에서 살던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록 방법이며 두루마리 형태에서 책으로 진보한 것이다.

파피루스는 나일 강 유역에서 자라나는 갈대 일종으로 이것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얇게 두드려 펼친 다음 가로와 세로로 겹치고 매끄럽고 무거운 돌판을 짓눌러 말리면 얇고 질긴 종이 모양을 얻게 된다. 파피루스 종이는 일정한 크기로 잘라 사용할 수 있으며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양면에 기록할 수 있는 책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죽을 가공하여 두루마리 형식으로 만드는 것에 비해 파피루스는 시간상으로나 경비 면에 있어 비교가 되지 않게 쉬운 방법이다. 또 두루마리에 비해 이동하기에도 더할 수 없이 간편하며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저렴한 금액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 파피루스다. 이 때문에 가난한 서민들은 가죽 종이에 기록한 내용을 파피루스로 필사하여 보관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결국 휼리엣 목사가 룩소 시장에서 발견한 마태복음은 주후 68년 이전에 존재하던 가죽에 기록된 마태복음 내용을 파피루스에 옮겨 기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히 파피루스보다 먼저 가죽 종이에 기록되었을 원본 기록 시기는 적어도 이로부터 10년~20년 전이라고 말해도 무리는 없다. 이로 말미암아 마태복음 기록 시기를 주후 60년경이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결론

옥스퍼드 디테이 교수 주장에 반대하는 킹스 칼리지 그레이엄 스탠드 교수는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그는 이러한 연구 방법은 반대할 수 없고 매우 합리적 연구 결과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두 가지 측면에서 그는 이 증명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하나는 룩소 문서가 이집트 지역에서 발굴되었다면 그 발굴된 지역 유물을 통해 연대를 비교 측정을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디테이 교수는 다른 지역에서 출토되는 문서들을 비교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디테이 교수 말대로 사복음서 기록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전에 함께 존재하던 자들에 의한 기록이라고 해도 달라질 것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그 역사적 현장을 목격한 자의 글이라 하더라도 합리적 사고로는 그 사건을 믿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연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000명을 먹이고 남았다는 사건을 기록하는 내용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단지 상징으로 보아야 하는데 기록자는 마치 사실인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독자들이여, 디테이 교수의 증명과 그 반응에 대한 글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십니까? (내용은 다큐(예수의 흔적)방영을 강세창이 요약 정리한 후 설명을 붙인 것임을 밝혀 둔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마태오의 복음서(공동번역), 마태오 복음서(가톨릭), 마태복음(개신교)는 기독교 신약성서의 첫 권이며, 세 개의 공관복음서들 중 하나이다.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어떻게 이스라엘에서 거부당하고 처형당했으며, 어떻게 이스라엘과 그 지도자에 대한 예언을 남겼고, 어떻게 이방인들의 구원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책이다.

명칭 [ 편집 ]

고대 그리스어: Kατά Ματθαίον, Kατά Ματθαίον Ευαγγέλιον, τὸ εὐαγγέλιον κατὰ Ματθαῖον

라틴어: Evangelium secundum Matthaeum

영어: By Matthew, Gospel of Matthew, Gospel According to Matthew

공동번역: 마태오의 복음서(福音書)

가톨릭: 마태오 복음서(福音書) [2]

개역성경: 마태복음(馬太福音)

구성과 형성 [ 편집 ]

ευαγγελιον κ̣ατ̣α μαθ᾽θαιον (euangelion kata Maththaion, 마태오의 복음서)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4번 파피루스조각.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초반의 것으로 추정되며, 제목을 담고 있는 가장 오래된 사본이다.

26장 의 내용을 담고있는 37번 파피루스. 3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원고 [ 편집 ]

가장 오래된 완전한 성경사본은 4세기경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코덱스 바티카누스와 코덱스 시나이티쿠스이다. 이외에도 성경의 일부 구절을 담은 사본은 더 오래된 것들도 발견되는데, 마태오의 복음서는 104번 파피루스와 67번 파피루스가 참고할만 하다. 이 둘은 사본의 사본으로, 지역마다 사본 제작 문화가 어떻게 발전되었으며 교정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여준다. 현대의 본문비평가들은 교부들의 인용문을 포함해 현존하는 모든 사본들을 모아 사라진 단락들을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저자 [ 편집 ]

초대교회 교부들은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인 마태오가 히브리어로 집필하였고, 후대의 어느 누군가가 그것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다고 추정했다.[4] 이 가설은 2세기 리용의 주교이자 교부인 이레나이우스, 교회사학자 에우세비오스(유세비우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레나이우스는 마태오의 복음서의 저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 베드로와 바울로(바울)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있을 때, 마태오는 히브리 사람들 가운데서 살면서 그들의 고유한 언어(히브리어)로 복음서를 펴냈다. ” — 이레나이우스, 《이단반박》

“ 마태오는 히브리어로 말씀을 편찬했으며, 번역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번역하였다 ” — 에우세비오스, 《교회사》

현재도 일부 성서 연구자들은 마태오의 복음서 9장 9절에 나오는 세리 마태오가 복음서를 집필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5] 하지만 성서비평학이 도입되면서 이러한 주장들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등장한다. 이를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마태오의 복음서에는 저자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마태오가 마태오의 복음서를 썼다는 내적 근거가 없으며, 단지 초대교회 교회사학자들의 견해에 따른 해석일 뿐이다. 마태오의 복음서는 히브리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리스어로 쓴 것이다. 예수의 제자인 세리 마태오가 마태오의 복음서를 집필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만약 세리 마태오가 마태오의 복음서를 썼다면, 자신의 선생인 예수를 따라다니면서 보고 들은 내용(1차적 경험)을 적었을 텐데,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는 Q문서(예수 어록, 50~60년경에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르코의 복음서(마가 복음서), 마태오가 별도로 수집한 특수 자료(SM)를 집필 자료로 사용하고 있다.[6] 두 출처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마태오의 복음서의 저자가 Q문서와 마르코의 복음서를 참고하여 복음서를 집필한 것으로 보며 마태오의 복음서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본다.[7] 신약성경학자들은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가 세리 출신의 마태오가 아닌, 그리스어를 구사할 줄 아는 유대 기독교인으로 보고 있다. 단지 편의상 마태오(마태)라고 부르는 것이다.[8]

저술 시기 [ 편집 ]

기원후 80년에서 기원후 90년 사이에 쓰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 시각에서는 24장의 성전 파괴 예언이 기원후 70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저자가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예언하셨다는 전승을 삽입하였다고 본다.

기원후 65년에서 기원후 75년 사이에 쓰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 시각에서는 마르코의 복음서보다도 마태오의 복음서가 먼저 쓰였거나, 아니면 Q문서와 마르코의 복음서를 참고하여 쓰였다고 본다.

여러 가설이 있으나 정확한 저술 시기를 추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내용 [ 편집 ]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 [ 편집 ]

마태오의 복음서는 구조적으로 구별되는 네 가지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부분은 도입 부분이며, 세 번째 부분은 다시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주요 부분과 마지막으로 고난과 부활로 이루어진 부분으로 되어 있다. 공관 복음서, 즉 예수에 대한 관점이 같은 복음서라는 복음서 이해에서 보면 마르코의 복음서의 90% 이상의 구절들이 마태오의 복음서에도 발견되고, 루가의 복음서의 40% 정도가 마태오의 복음서에서도 발견된다. 이는 최초의 복음서인 마르코의 복음서를 루가와 마태오가 참조하고, 루가복음서를 마태오가 참조했기 때문이다.(두 자료설)

족보, 예수의 탄생과 유년기 (1장, 2장) 예수의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을 준비하는 세례자 요한의 설교와 활동 (3장~4장 11절) 갈릴래아(갈릴리)에서의 예수의 설교와 활동 (4장 12절~20장 16절) 산 위에서의 설교 – 대안적 세상인 하느님 나라의 전복성과 믿음의 실천을 통한 구원에 대해 말씀하다.(5장~7장) 전도 설교 – 예수가 제자들을 파송함 (10장) 비유 설교 –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는 이야기.(13장) 교회의 질서 설교 – 기독교인 내에서의 관계 (18장) 종말 설교 – 예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24장~25장) 예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 위임 (20장 17절~18절)

설교를 다섯으로 나누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설교 뒤에 “… 예수께서 이 모든 말씀을 마치신 후에”로 시작되는 결말 구절이 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역시 신약성경 중에서 사도행전 다음으로 가장 어려운 책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복음과 마귀의 직접적인 공격과 그리고 부활이 있고 구원이 나오고 표적이 나오고, 무엇보다 사도행전과 더불어서 과도기적인 책이고 사도행전, 히브리서, 요한계시록과 더불어 유대인, 이방인 모두가 나오기에 설교를 5으로 결코 나눌수가 없을 상황이다. 마태복음은 구약(이사야 54장)과 사도행전과 히브리서(마태복음 24장) 그리고 요한계시록(마태복음 24장) 등과 비슷하지 바울 서신과는 구별되는 책중 하나이다. 더욱이 사도행전보다 더 교리적으로 현 시점에서 적용시킬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이 나오고, 고자에 대한 이야기를 잘못풀어서 오리겐은 거세까지 했다. 특히나 물위를 걷는다는 것을 그대로 따라해 악어가 있는 곳에 걸어가다가 죽거나 원수의 뺨 이야기를 잘못 적용시켜서 그것을 그대로 교회 지도자가 교회내 폭력으로 적용해 물의를 빚었다. 마태복음의 경우는 7장의 경우는 불안전한 구절이라 로마서 2장인 신약시대 회개의 장으로 보면 되는 것이고, 마가복음 7장에 나오는 죄의 이야기와 같이 봐야 안전하다. 마가복음 7장을 로마서 1장 28절부터 32절로 연결시켜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마태복음 5장의 경우도 불안전한 구절이라 요한복음 7장 24절의 의로운 심판과 같이 봐야하고 이는 로마서 12장 17절부터 21절까지 악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아닌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과 에베소서 4장 26절과 27절에 화를 내며 죄를 짓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말라로 연결한다면 문제는 없다.

그리고 마태복음 14장의 물위를 걷는 이야기의 경우는 요한복음 20장 28~29절 이야기와 디모데전서 3장 16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로마서 3장 4절과 로마서 5장 12절과 로마서 7장 15절~25절에 나오는 인간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신성이 없는 것을 조금만 이해하고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같이 봐야한다.

참고로 마태복음 19장에 있는 고자에 대한 이야기는 결혼 이야기인데 이는 고린도전서 7장과 에베소서 5장에 결혼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보면 끝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얻으리라.”보다 로마서 10장 9절과 10절에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를 사도행전 8장 37절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나이다.”까지 인용하여 구체적으로 말한 것과 비슷하다.

이는 “너 자신을 알라”를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자신의 눈속에 있는 들보는 생각지 못하느냐?”로 풀이한 것과 비슷하다. 초신자의 경우 마태복음의 경우는 이렇게 풀면 되는 것이다.

구약성서 인용 [ 편집 ]

마태오의 복음서에는 구약성서의 많은 절들을 예수를 예언하는 것으로 인용하고 있다. 마태오의 복음서에는 65개 이상의 구약성서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이 중 43개는 직접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서 다른 복음서의 양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성서학자들은 마태오가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쓰면서 예수가 모세처럼 위대한 분임을 주장하려 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모세 유형론) 즉, 파라오를 피해 미디안[9]으로 달아난 모세처럼 아기 예수도 헤로데의 손길을 피해 이집트로 달아났다고 주장함으로써 예수를 모세와 대비시키는 것이다.[10] 물론 예수와 모세를 비교하는 마태오의 편집 방식은 모세에 대해 친숙함을 갖고 있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느님께 온전히 복종하는 예수 [ 편집 ]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주님의 기도/주기도문’가 마태오의 복음서 6장 9절부터 13절 사이에 실려 있는데, 마태오는 주의 기도에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문장을 추가하였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수난하시기 전날 기도할 때에 두 번이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는 기도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는 예수를 하느님 뜻에 순종하시는 분으로 묘사하여, 그분의 순종과 헌신을 본받게 하려는 편집의도가 담겨 있다.[11] 마태오는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과장법으로 율법의 권위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마태오 교회가 유대인 디아스포라로 구성된 유대인 교회[12]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삶 [ 편집 ]

마태오복음서에서는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삶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태오복음서 25장에 나오는 세상의 마지막 날 이야기는 가난한 이들과 삶을 나누었는지가 심판과 구원을 정하고 있다. 마태오복음서 20장에 나오는 포도원 노동자 비유는 하느님의 나라(하나님나라,하늘나라, 천국)을 포도원 주인이 노동의 양과 관계없이 일 데나리온을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일급으로 주는 이야기이다. 당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고, 구한다고 해도 꾸준히 일할 수 없던 노동자들에게 포도원 주인은 당시 노동자들의 하루 임금인 1데나리온을 일을 일찍 시작한 사람이나 늦게 시작한 사람이나 똑같이 주고 있다.가난한 이들을 배려하는 사회가 하느님나라임을 예수는 주장한다. 하지만 마태복음 20장은 나중된자 먼저되고 먼저된자 나중된자라는 만족과 번영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과 나눔이 아닌 누가 더 어떠한 처지에서 만족을 누리고 만족과 번영을 덜 누리는가의 내용으로 이는 여호수아 1장 8-9절, 요한복음 12장 1절부터 6절, 빌립보서 4장 10-13절,로마서 8장 24-28절에 있는 만족과 번영의 장과 가장 비슷하다.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삶은 마태복음 4장과 5장과 사도행전 4장과 야고보서 5장에나 언급되고 그리고 고린도전서 1장과 디모데전서 6장에서 언급이 다소 될뿐이다. 그리고 마태복음 20장은 하늘 나라에 대한 정의를 이야기 하고있다. 가난한 이들과 삶을 나누는 것과는 상관관계가 부족하다. 바울서신으로 인용하면 로마서 14장 8절부터 10절에 있는 그리스도의 심판석 즉 유업에 관계가 되는 것이다.

각주 [ 편집 ]

↑ 구 ‘성 마두 복음’ ↑ 박태식. 〈마태오복음서〉. 《《복음서와 시간》》. 생활성서. 72쪽쪽. ↑ 제임스 벨, 제임스 다예트. 〈세관원이 전하는 좋은 소식〉. 배용준 옮김. 《《나 혼자서 터득하는 독학성경》》. 규장. 160쪽쪽. . ↑ 박태식, 앞의 책, 73쪽. ↑ 브래드 스캇. 김기석 옮김, 편집. 《예수의 비유 새로 듣기》. 한국기독교연구소. . ↑ 정양모 편저. 《《마태오복음서》》. 분도출판사. ↑

오경준. 〈모세의 부부싸움이 있다〉. 《《우리가 모르는 것들, 성경에는 있다.》》. 홍성사. 이집트와 가나안 사이의 지명이다. ↑ 김득중. 《《복음서신학》》. 컨콜디아. ↑ 박태식, 앞의 책, 107~108쪽. ↑ 같은 책, 77쪽.

외부 링크 [ 편집 ]

하나님의 교회 지식사전

마태복음

Matthew 약자 마, Mt 구분 신약 분류 4복음서 장수 28장 기록 관련 기록자 마태 기록 연대(추정) 60-70년경 기록 장소 알렉산드리아, 수리아, 동요르단의 펠라 등 여러 견해가 있음

마태복음(Matthew)은 신약성경의 첫 번째 책이다. 열두 사도의 한 사람인 마태가 기록했다. 원래 히브리어로 기록됐다.[1] 신약성경의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과 함께 ‘복음서’ 또는 ‘사복음서’, ‘사대복음서’라고 불린다.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이 기록된 복음서 중에서도 분량이 가장 많고 예수님의 가르침이 상세히 서술돼 있다. 가톨릭에서 주로 사용하는 공동번역 성경에는 ‘마태오의 복음서’라고 표기되어 있다.

기록자 마태

마태복음의 기록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마태다. 마태의 본명은 ‘레위’이며 직업은 세리였다.[2]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세리는, 동족에게 세금을 받아 지배국인 로마제국에 바쳐서 이익을 챙기는 매국노 취급을 받았다. 필요 이상의 세금을 거두어 미움을 사는 경우도 많았다.[3] 예수님은 그런 부류에 속한 마태를 불러 제자로 삼으셨다.[4]

작성 배경

마태복음은 주로 유대인 또는 유대의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기록되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그래서 첫 장에서 예수님의 공생애를 바로 다루는 마가복음과는 달리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유대 계열 족보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또한 예수님이 구약성경의 여러 예언을 성취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마태복음의 특징

마태복음에는 마태의 직업적 성향이 군데군데 묻어난다. 마태복음에는 다른 세 개의 복음서에 비해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훈이 특히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도 내용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이후의 행적은 연대순에 따랐지만, 이전 행적은 가르침, 권능, 비유의 말씀 등 주제를 중심으로 정리되었다. 세리는 필수적으로 꼼꼼해야 했으며 사건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에 능숙했기 때문이다. 다른 세 복음서보다 세겔(마 17:24, 27), ‘달란트’, ‘데나리온'(마 18:24) 등 화폐가 자주 언급된 것도 직업적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마태복음은 구약성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자 마태는 예수님께서 선지자들의 예언에 따라 오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예수님의 행적에 대하여 구약성경을 인용해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이라고 기록하곤 했다. [5] [6] [7] [8] [9] [10] [11] [12] [13] [14]

예수님이 영적 왕으로 오신 분임을 강조한다.[15][16][17] 첫 장에서 예수님의 계보를 보인 것 역시 예수님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유다 왕조의 시조인 다윗의 자손임을 알리고자 함이었다. 유대인의 왕이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구약성경의 예언대로 마침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본서의 핵심 주제다.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인 관점, 같은 서술법으로 기록되었다 해서 ‘공관복음’이라고 불린다.

마태복음의 내용 구성

장 구분 1-2장 예수님의 탄생 3-4장 침례와 시험 받으심 4-18장 갈릴리 사역 19-20장 유대 지경에서의 사역 21-25장 예루살렘 입성 26-27장 새 언약 유월절과 수난 28장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탄생하셨다. 처녀인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셨는데, 이는 이사야 선지자가 기록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성취하기 위함이었다.[18]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것 또한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이룬 것이다.[19] 유대 땅에 구원자가 탄생하셨음을 감지한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을 찾아왔다.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문을 들은 헤롯은 예수님을 찾아 죽이려 했다. 요셉은 꿈에서 아내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데리고 피신하라는 주의 사자의 지시를 듣고 애굽으로 피했다가, 헤롯이 죽고 난 후 이스라엘에 돌아와 나사렛 동네로 가서 살았다.

침례와 시험 받으심 (3-4장)

예수 그리스도의 침례

예수님이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다. 침례 받으실 때 예수님께 성령이 임했으며 하늘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소리가 났다. 이후 40일 동안 금식하시고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사단은 먹는 것,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 세상의 부귀와 영광에 대한 것으로 시험했으나 예수님은 말씀으로 사단을 물리치고 시험에서 승리하셨다. 예수님은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 해변가 도시 가버나움에서 머무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 또한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와 형제 안드레를 부르셨다. 야고보, 요한도 부르심에 순종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갈릴리는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신 중심지다. 갈릴리에서 열두 제자의 대부분을 찾으셨고, 많은 교훈과 기적을 베푸셨다. 고향인 나사렛에 가서도 복음을 전하셨으나 사람들은 예수님의 육신적인 면만 바라보며 배척했다(마 13:53-58).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관해 교훈하셨다(마 5:1-7:29). 5-7장의 내용은 갈릴리의 작은 산에서 주신 교훈의 말씀이라 해서 ‘산상수훈’이라고도 불린다.

병든 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는 기적을 베푸셨으며(마 8:1-9:34),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축사하여 오천 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마 14:13-21)과, 떡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신 칠병이어의 기적(마 15:32-39)을 베푸신 장소도 갈릴리 지방이었다. 제자들에게는 물 위를 걸으시는 권능을 보이기도 하셨다(마 14:22-33).

예수님은 사람들이 구원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다양한 비유를 통해 복음을 전하셨다(마 13:1-52). 비유 속 오묘한 뜻을 깨닫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 마태복음 13:10-11

유대 지경에서의 사역 (19-20장)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에 이르자 많은 무리가 쫓아왔다.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도 여러 가르침과 비유의 말씀을 전하셨으며, 기적을 베푸셨다.

예수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는데, 이는 시온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탈 것이라는 예언을 성취하신 것이었다.[20]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며 성전을 깨끗이 하셨고,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의 허례허식을 지적하셨다. 또한 예루살렘의 멸망과 재림에 대해 예언하셨다. 구원받는 성도에 관해 혼인 잔치의 비유,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 등의 비유 말씀을 주셨다.

새 언약 유월절과 수난 (26-27장)

유월절을 집전하시는 예수님

유월절 이틀 전,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은화 30개를 받고는 예수님을 넘길 기회를 엿보았다. 한편 예수님이 베다니 시몬의 집에 계실 때 한 여자가 귀한 향유 한 옥합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예수님은 이것이 당신의 장례를 위한 것이라 하며 여자를 크게 칭찬하셨다.

유월절 저녁이 되어 예비된 큰 다락방에 제자들이 모이자 예수님은 당신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나눠주셨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마태복음 26:26-28

유월절 예식이 끝나고, 당신의 죽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셨다. 그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보낸 많은 무리가 가룟 유다와 함께 도착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라” 하고 말씀하시며 순순히 잡혀가셨다.

무리는 밤새 예수님을 심문한 뒤 총독 빌라도 앞으로 끌고 갔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려 했으나 결국 무리의 요청대로 예수님께 사형을 언도했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채찍질한 뒤 홍포를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씌웠다. 이어서 침을 뱉고 갈대로 머리를 치는 등 온갖 조롱을 한 뒤에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갔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가 붙었다. 제구시(오후 3시경)에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셨고, 성소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 (예수님 부활 후에 죽은 성도들의 몸이 무덤에서 일어나 거룩한 성에 들어가는 모습이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 시체를 가져다 자신의 무덤에 안치했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지 사흘째인 일요일 새벽,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다. 그들 앞에 흰옷을 입은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의 부활을 알렸고, 여자들은 이를 제자들에게 알렸다. 무덤을 지키던 파수꾼들 역시 이 소식을 대제사장에게 전했으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군병들에게 돈을 주며 예수님의 제자가 시체를 훔쳐갔다는 소문을 내게 했다.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세계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분부하셨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 28:19-20

같이 보기

마태복음 개론

1. 표제

현존하는 헬라어 신약 사본들 중에 가장 오래된 사본에는 이 책의 표제가 “마태에 의하여”라고 되어 있다. 흠정역에 나타나는 “성 마태에 의한 복음”이란 표제는 비교적 후기의 사본들에서 다수가 발견되는데, 단지 “성” 자가 빠진 채로 나타난다. 텍스투스 레셉투스(Textus Receptus)에 있는 “마태에 의한 거룩한 복음”이란 표제는 오직 후기의 사본들에서만 발견된다. 성경에서 “복음”(헬라어, euaggelion)이란 용어는 “좋은 소식” 즉 예수의 생애와 교훈에 나타난 구속의 복된 소식을 의미한다. 그것은 기록된 문서 그 자체에서 적용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 이후에 그 용어는 단독적이든 집합적이든 기록들 그 자체에도 적용되게 되었다.

2. 저자

고대의 기독교 저술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결같이 사 복음서 중의 첫째 것을 사도 마태의 기록으로 보았다. 내적인 증거는 이 책이 분명히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에 의하여 기록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와 같은 사람은 바로 마태였다(마 9:9; 막 2:14). 사도로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세리였던 마태는 아마도 기록된 문서들을 간직하는데 익숙했던 것 같고, 이러한 자질은 역사적인 설화를 집성(集成)하는 사람에게 의심할 여지없이 큰 가치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가 잔치에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매우 겸손히 언급한 사실(마 9:10; 눅 5:29)은 요한(요 21:24)과 어쩌면 마가(막 14:51, 52)가 자신들에 대하여 언급한 방법과는 대조를 이루는데, 이것 또한 마태복음이 그의 저술이라는 간접적인 증거가 된다.

A.D. 140년경에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는 유세비우스가 기록한 인용문에서 이렇게 진술하였다. “마태는 말씀들(orcles)을 히브리어로 기록하였고, 각 사람은 그것을 그가 할 수 있는대로 번역하였다.” 반세기 뒤에 이레내우스는 유세비우스가 기록한 인용문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에서 전도하면서 교회를 세우는 동안, 마태는 히브리인들 가운데서 그들 자신의 언어로써 그의 복음서를 간행하였다.” 이러한 기록들과 그 후기의 저술가들이 남긴 유사한 진술들에 기초하여, 어떤 이들은 마태복음이 처음에 아람어(파피아스와 이레내우스가 말하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가 후에 헬라어로 번역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학설은 일반적인 환영을 받지 못하였다. 지금까지 제시된 증거로는 그러한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허다한 “저작들”(works)이 단지 구전적인 형태로만 유대인들 사이에 유포된 것으로 알려진 사실에 비춰볼 때, 예수의 “말씀들”을 마태가 기록했다고 하는 파피아스의 언급은 기록된 형태가 아닌 구전 형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레내우스가 말하는 “복음서”도 역시 구전적인 이야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파피아스와 이레내우스가 언급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태복음으로 알고 있는 바로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마태복음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바와같이 처음부터 헬라어로 기록되었다고 결론짓는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1)마태복음의 헬라어 원문에 번역의 냄새가 전혀 없다. 다른 복음서에도 아람어 어투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그것은 기자가 기록은 헬라어로 했지만, 생각은 아람어 식으로 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 요한 계시록은 아람어의 관용적 표현으로 가득차 있다.

(2)언어와 문체의 통일성은 이 책이 원래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는 뚜렷한 인상을 주고 있다.

(3)특별히 마가복음과 매우 흡사하고 누가복음과도 다소간 비슷한 그 큰 언어적 유사성은 그 헬라어가 번역문일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3. 역사적 배경

그리스도의 일생 동안 팔레스타인 지방은 로마의 통치하에 있었고, 로마는 폼페이우스의 지휘하에 그 지방을 정복한 뒤 B.C. 64-63년에는 이 지방을 로마 제국의 수리아 도에 예속시켰다. 로마군이 침입하기 전 약 80년간 정치적인 독립을 누려온 유대인들은 외국민들의 침입과 압력, 그리고 군대의 무력 밑에 있음을 지극히 분개해 하고 있었다. 로마 원로원이 헤롯 대왕(37-34 B.C.)을 팔레스타인 대부분의 지역을 다스릴 왕으로 임명하자, 유대인들의 운명은 더욱 어둡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독립에 대한 갈망은 민족적인 염원이 되었고, 국민 생활의 모든 국면에 실질적으로 스며들게 되었다. 다른 모든 것보다도 이 갈망은 구약의 메시야에 관한 기록들을 해석하는 일과 그 날을 기대하는 모든 종교적인 사상까지 물들이게 되었다. 로마에 의한 유대의 복속(服屬)은 하나님의 요구를 불순종함에 대한 직접적인 결과였다.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불순종에 따르는 고통에 대하여 경고하셨다.

매우 자연스럽게도 유대인들은 가이사와 헤롯에 의하여 그들에게 지워진 이중의 멍에로부터의 구원을 갈망하였다. 검으로써 권리를 쟁취하고 그의 백성의 잘못을 시정하려는 자칭 메시야들이 반복해서 출현하였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메시야 예언을 외세의 압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모든 나라들을 굴복시킬 정치적 메시야를 약속한 것으로 믿기를 즐겨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열망이 메시야에 대한 희망을 왜곡시켰다. 그리고 나사렛 예수가 이러한 그릇된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게 되자, 결국 민족적인 오만이 그분을 선지자들이 증거한 분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를 못하게 하였다.

4. 주제

사 복음서의 각 책의 주제는 우리의 주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모범적인 생애, 공적 봉사, 대속적인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이다. 사 복음서가 모두 거룩한 신약 경전의 한 부분이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각 책은 복음 설화에 있어서 각각의 특징적인 공헌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사명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얽혀 있어서, 그 놀라운 생애의 모든 세부 사항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은 예수와 매우 가까이 교제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심히 어려운 일이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후세대를 위하여 예수의 생애와 봉사에 대하여 할 수 있는 데까지 완전한 모습을 남겨놓기 위하여 영감(靈感)은 네 명의 기자들을 인도하시고 능력을 주셔서 복음 설화(說話)의 기록을 보존하게 하셨고, 그들 각자는 자신에게 특별히 감동을 준 관점에서 기록했을 것이다. 네 명의 복음서 기자들은 그들이 기록할 때에 뚜렷한 목적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았다. 각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언급한 어떤 사건들을 생략하기도 하였고, 그 자신의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마치 네 사람의 화가가 예수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하여 앉아 있되, 각사람이 다른 관점에서 그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각 화가에게 있어서 주제는 같지만 국면은 다르다. 네 개의 초상화를 함께 모아 놓으면 다른 어떤 한 개의 그림보다 더욱 확실하고 완전한 예수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네 명의 복음서 기자가 제시한 종합된 묘사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생애를 올바로 조명할 수 있게 해 준다. 구주에 관해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이 거기에 계시되어 있다.

영감의 인도를 받아 각 복음서 기자는 사건들을 선택하고 그것들을 그의 견해에 따라 목적에 가장 맞는 형태로 정리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다른 기자들이 서술한 사건들을 생략해 버리는 일을 가끔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복음 설화의 여러 부분들을 상호 연관시키고 또 사건들이 발생한 순서대로 정확한 위치에 배열하는 일이 때때로 어렵게 되었다. “성경에는 언제나 완전한 순서와 분명한 통일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적들은 정확한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원고 24, 1886)

네 명의 복음서 기자들 각자는 그의 복음 설화의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에서 독자들에게 독특한 방법으로 예수를 소개하고 있다. 마태와 누가는 사람의 아들로서의 그리스도의 역할에 강조점을 두고 있고, 마가와 요한은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에 강조점을 두면서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가리키고 있다. 마태는 예수를 아브라함의 자손, 곧 한 사람의 유대인으로서, 부조들에게 한 약속을 성취하러 오신 분으로 제시하고 있다. 누가는 그분을 아담의 자손으로 가리킴으로써(눅 3:38), 그분이 모든 인류의 구주임을 제시한다. 마가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당연시하면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명백히 진술한다(막 1:1). 요한은 예수의 참된 인성(요 1:14)이, 그분이 절대적인 의미에 있어서 신성이시라는 사실(요 1:1-3)을 결코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님을 확증하고 있다.

마태복음의 뚜렷한 특징은 저자가 구주의 설교와 다른 연설들을 완전하게 제시하고 있는 점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대한 교사로서 제시한다. 그의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들이 간략하게 언급하거나 전혀 언급하지 않은 여섯 개의 주요 연설들을 상당한 길이로 보도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산상 설교, 5-7장.

(2) 제자 직분에 대한 말씀, 10장.

(3) 오로지 비유로 구성된 해변에서의 설교, 13장

(4) 겸손과 인간 관계에 대한 말씀, 18장.

(5) 외식에 대한 말씀, 23장.

(6)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말씀, 24, 25장.

두번째의 중요한 특징은 마태가 기록할 당시 일차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던 독자가 누구였던지를 명백히 나타내는 복음서의 국면들과 관련이 있다. 이 독자는 주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불신자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같다. 그러므로 분명히 불신자 유대인들로 하여금 예수를 예언된 메시야로 믿는 신앙으로 개종시키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공고히 하는 것이 그의 주된 목적이었다. 다른 복음서 기자들이 한 것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이 마태는 예수를 구약의 모형들이 예표하고 상징한 분으로서 그리고 그것들이 그분 안에서 성취된 분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예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취하러 오셨음을 제시한다(마 5:17). 그는 예수를 민족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자 손으로서, 또 민족의 대표적인 왕인 다윗의 후예로서 제시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그분을 거절한 것은 메시야의 인격과 그의 왕국의 성질에 대한 그들의 그릇된 개념 때문이었다. 그들이 꿈꾸던 메시야는 민족을 독립시켜서 세계에서 뛰어나게 할 위대한 왕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자신의 생애에서 죄를 정복하게 하고 진정한 영적 자유를 누리게 하실 분, 곧 의의 왕으로서의 메시야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고난받는 메시야를 기대하는 구약의 귀절들과 그의 영광스런 통치를 예언하는 다른 귀절들을 조화시키지 못한 결과, 그들은 전자를 무시하게 되고 후자를 잘못 적용하게 되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표면적으로 모순되어 보이는 귀절들은 분명히 해결될 수 없는 역설이었다. 그들은 오로지 영광의 왕국에 해당하는 것들만을 찾고 있었으므로, 영광의 왕국에 필요한 전제로서의 은혜의 왕국은 그들의 계획에서 설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마 4:17; 5:2, 3). 마태는 정복하는 메시야가 또한 고난받는 메시야라는 미묘한 입장을 해결하려는 부담을 지고 있은 듯이 보인다. 그는 이 문제를 예수가 참으로 이스라엘의 왕이요, 다윗에게 약속된 “씨”이며, 그러면서도 또한 고난받는 종임을 보여줌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한다(마 2:1 참조).

마태복음을 연구할 때,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은 이 복음서가 그리스도의 생애를 근본적으로 연대순이라기보다는 논리적, 주제별 순서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예수의 생애와 봉사에 대한 주요 국면들의 배열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연대순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주어진 기간 안에서의 사건 나열은 올바른 연대순서를 따르지 않고 있다. 사실, 마태는 다른 복음서 기자들 중의 누구보다도 더 많이 엄격한 연대기적 순서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주된 목적이 예수의 생애와 봉사의 개념을 발전시키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그의 일차적 기록 목적에 부합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사건들이 나타나는 대로 기록하는 연대학자가 아니라, 선택된 민족의 역사 안에서 그들이 가진 바 더 큰 역사적 배경에 비추어 그 사건들의 의미를 성찰하는 역사가이다.

5. 개요

Ⅰ. 탄생, 영아기, 유년기 1:1-2:23

1. 예수의 탄생 전 1:1-25

2. 예수의 유년 시절 2:1-23

Ⅱ. 봉사를 위한 준비, 가을(A.D. 27) 3:1-4:11

1. 침례자 요한의 봉사 3:1-12

2. 침례 3:13-17

3. 시험 4:1-11

Ⅲ. 갈릴리 봉사,유월절에서 유월절까지(A.D. 29-30) 4:12-15:20

1. 초기 갈릴리 봉사 4:12-25

2. 산상 설교 5:1-8:1

3. 질병, 자연, 마귀에 대한 예수의 권능 8:2-9:34

4. 전도 방법에 대한 교훈 9:35-11:1

5. 침례자 요한으로부터 온 파견단 11:2-30

6. 바리새인들과의 갈등 12:1-50

7. 해변에서의 설교: 천국에 관한 비유 13:1-52

8. 갈릴리에서 공적 봉사를 마침 13:53-15:20

Ⅳ. 공중 봉사에서 물러나심, 봄에서 가을까지(A.D. 30) 15:21-18:35

1. 갈릴리 경계 지방에서의 봉사 15:21-39

2. 바리새인과의 또 다른 갈등 16:1-12

3. 십자가를 내다봄 16:13-17:27

4. 인간 관계에 있어서의 겸손의 문제 18:1-35

Ⅴ. 페래아 봉사, 가을에서 봄까지 (A.D. 30-31) 19:1-20:34

1. 페래아에서 가르치고 치료하심 19:1-20:16

2.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 20:17-34

Ⅵ. 예루살렘 봉사를 마치심, 유월절(A.D. 31) 21:1-27:66

1. 서기관들 및 바리새인들과의 갈등 21:1-23:39

2.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교훈 24:1-25:46

3. 체포와 심문 26:1-27:31

4. 못박힘과 장사 27:32-66

Ⅶ. 부활과 그 후의 나타나심 28:1-20

마태복음 개론 – 성경개론 신약

마태복음 개론

[제목]

본서의 명칭은 저자의 이름을 따라 붙여진 것으로 헬라어 표제는 [카타 마타이온]이며 ‘마태에 의한’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기쁜 소식을 의미하는 ‘복음'[유앙겔리온]이라는 말이 붙게 되었는데 이는 본서의 내용과 성격에 근거하여 붙여진 것이다.

[저자]

본서의 저자로는 12사도들 중의 하나였던 마태라는데 전통적으로 견해를 같이 해 왔다. 그러나 현대 비평학자들은 그들의 연구 결과 마태가 마가복음의 자료에 의존해서 기록했다고 가정함으로서 마태의 저작권을 포기하도록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들의 가정이 어느정도 맞다 할지라도 우리는 여기에 당황할 필요가 없다.

[기록연대]

본 서를 기록한 연대만큼 알기 어려운 것도 별로 없을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공관복음서 문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기에 정확한 연대를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학자들마다 의견이 각각 다르다. 어떤 학자들은 본문 중에 오늘까지(마27:7: 28:15)라고 한 것을 보면 장구한 시일이 경과한 후에 기록한 증거이므로 주후 70년 혹은 80년경, 즉 예루살렘 멸망 후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본문 중에 거룩한 성(마4:5,6), 예루살렘(마5:35), 성전(마17:24) 등의 성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예루살렘과 성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때에 기록했다는 증거이므로 주후 70년 이전에 기록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또한 스트롱(Strong)이나 켈(Kell)은 주후 50년경에 기록되었다고 하며, 파피아스 같은 교부는 저작 연대를 주후 45년으로 잡기도 한다. 그러나 본 서의 연대를 정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마가복음과의 관계이다. 본 서가 마가복음을 기초로 하여 기록되었으며 마가복음이 베드로가 순교한 후에(A.D.65년경) 기록되었다고 하면, 본 서는 주후 65년 이후일 것이다. 둘째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예루살렘 멸망이다. 어떤 학자들은 본 서에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명확한 언급이 없으므로 주후 70년 이전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예루살렘의 멸망은 사도행전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따라서 누가복음이 사도행전보다 더 일찍 기록되었으며 또 마태복음은 누가복음보다 분명히 일찍 기록된 것으로 보아 본 서는 대략 주후 50년에서 70년 이전에 기록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배경]

본서는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이 어떻게 예수의 생애를 통해 성취되었는가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저자는 예수를 권위를 지니신 메시야 즉 ‘다윗의 자손’으로 나타내고 있다.

[특징]

복음서는 단순히 예수님의 행적을 시간순으로 배열한 전기나 어록이 아니다. 복음서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신앙의 대상인 예수님에 대한 교훈과 신앙고백의 모본을 보여주기 위해, 특별한 관점에서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을 기록한 것이다. 마태는 본서를 집필함에 있어서 시간적 선후 문제보다 주제별 구성 원칙에 더 충실하였다. 따라서 이것을 읽는 이들은 예수님의 생애의 시간적 전개보다 예수님의 삶의 의의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본 서에는 저자의 일반적인 목적과 일치하는 다양한 특성이 기록되어 있다. 첫째로 본 서는 왕과 왕국을 다루고 있는 유대적인 요소를 지닌 책이다. 둘째로 본 서의 체계적인 구성과 신학적인 특성이다. 우선 마태는 자료들을 배열함에 있어서 신중한 주의를 기울였다. 셋째로 본 서의 처음 1~4장은 연대기적 진술이며, 5~13장은 주제별적 진술, 14~28장은 마 21:18,19을 제외하고는 역시 연대기적 진술이다. 넷째는 ‘의로운, 의’란 용어가 다른 나머지 세 복음서를 합친 데서보다도 오히려 본 서에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다섯째로 본 서에는 헬라어 ‘토테 ‘(그 때, 그리고)란 말이 90번이나 나온다. 여섯째는 교회란 말이 나타나고 있는 유일한 복음서이다(마 16:18; 18:17). 일곱째는 마태가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이 어떻게 예수의 생애를 통해 성취되었는지에 대해 그의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 구약을 자주 인용한다. 여덟째는 저자가 옛 계약과 새 계약의 관점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서 차지하는 이중적인 지위를 조명해 준다. 아홉째는 본 서에 6개의 대강화가 있다는 점이다. 열번째는 본 서에는 15개의 비유와 20개의 기적이 있다는 점이다. 열한번째는 이방인에 대한 저자의 관심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마 1:5; 2:1~12; 8:11, 12). 열두번째는 유다의 후회 사실(마 27:5~10)과 부활 사건에 대한 날조 사실(마 27:62~66; 28:11~15) 그리고 부활 후에 성도들의 부활 사건(마27:51,52) 등이 유일하게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목적]

본서는 구약의 예언에 따라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간절히 사모하고 갈망하는 유대인들에게 다윗의 자손 예수가 유대인 뿐 아니라 온 인류가 그토록 대망하던 메시야이시며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심을 확증시키기 위해 기록하였다. 또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성도들에게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과의 관계를 설명해 줌으로 그들의 믿음을 더욱 굳게하기 위해 기록하였다.

[구조]

본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1~10장)에는 그리스도의 초림에 역점을 둔 데 비해, 후반부(11~28장)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역점을 두었다. 이것을 서로 대비시켜 보면, 전반부에는 무리를 가르치셨고, 후반부에는 열두 제자를 가르치셨다. 그리고 전반부는 “섬기기 위하여’라면, 후반부는”고난받기 위하여’이다. 활동지역도 전반부에는 북부지방이고 후반부에는 남부지방이다. 본서가 신약, 특히 4복음서 중 처음에 위치한 것은,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수의 메시야직을 강조하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예수가 구약을 통해 숱하게 약속되고 계시되었던 메시야 예언의 성취자임을 보여줌으로써 구약과 신약의 교량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본서는 유대인 저자가 구약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구약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복음서이며, 또한 그 때문에 구약의 인용이 매우 잦다. 이처럼 구약에서 신약으로의 새 장을 열어주는 마태복음은 예수가 왕으로 오신 메시야임을 선포하기 위해 예수의 행적과 설교 및 교훈들을 대체로 시간순에 맞추어 왕이심을 나타내는 7개의 주제별로 내용을 전개시키고 있다. 즉, 왕의 강림(1:1~4:11), 왕의 선포(4:12~7:29), 왕의 권능(8:1~11:1), 왕에 대한 세상의 거부(11:2~16:12), 왕의 가르침과 훈련(16:13~20:28), 왕의 수난과 죽음(20:29~27:66), 왕의 부활과 승천(28:1~28:20)이다.

[내용]

본 서는 기독교의 신앙과 생활에서 언제나 최고의 평가를 받아 왔다. 왜냐하면 본 서가 다른 복음서들의 맨 앞에 나와 있을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의 첫번째 책으로 구약과 신약의 교량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후 2세기 이후에 본 서는 복음서들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었으며 특히 본 서의 체계적인 구성과 예수님의 가르침 등은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숭고한 윤리적인 표준을 제시해 왔다. 뿐만 아니라 본 서는 교회 안에서와 밖에서 모두 문학과 음악 그리고 미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팔복이나 주기도문 그리고 수난 기사와 같은 본문 등에 대한 본 서의 설명은 기독교 문학과 교회의 선포와 가르침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말씀에서 행동의 길잡이와 유대주의의 낡은 규범과 예수의 규범 사이의 관계를 이해한 지침도 찾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본 서에는 현존하는 기록들 중에서 예수의 생애, 즉 그의 행적과 말씀이 가장 완전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교훈]

본서는 그리스도의 초림(1~10장)과 그리스도의 재림(11~28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을 서로 대비시켜 보면, 그리스도의 초림에서는 무리를 가르치셨고, 그리스도의 재림에서는 열두 제자를 가르치셨으며, 교훈의 핵심은 “섬기기 위하여”, “고난받기 위하여”이다. 특히 본서는 예수의 메시야직을 강조함으로써, 이를 증명하기 위해 예수가 구약을 통해 숱하게 약속되고 계시되었던 메시야 예언의 성취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왕의 강림, 왕의 선포, 왕의 권능, 왕에 대한 세상의 거부, 왕의 가르침과 훈련, 왕의 수난과 죽음, 왕의 부활과 승천으로 구성된 본서는 예수가 왕으로 오신 메시야임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선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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