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8 장 | 창세기 38장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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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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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8

유다와 다말 · 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 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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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8/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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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8 | RNKS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창세기 38. 38. 유다와 다말. 1그 무렵에 유다는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나가, 히라라고 하는 아둘람 사람이 사는 곳으로 가서, 그와 함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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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11/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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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8 – 다국어 성경 Holy-Bible

창세기 38장 · 그 후에 유다는 형제들을 떠나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 가서 그와 함께 머물러 있었다. · 거기서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만나 그녀와 결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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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4/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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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성경 창세기 38장

쉬운성경 창세기 38장 · 쉬운 성경 · 자료선교부 09.23 17:37 확대 축소. 38:1 <유다와 다말> 그 무렵에 유다는 자기 형제들 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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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ocr.net

Date Published: 11/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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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8장 – 유다 가문의 부끄러운 이야기 – 새벽기도 설교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아 의롭게 된 성도들이 다시 죄악된 삶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 의지함으로써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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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tynch.kr

Date Published: 12/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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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2월 5일. 창세기 38장. – 하늘품은교회

창세기 38장. 유다와 다말, 그리고 요셉. 1. 38장의 유다 가정의 이야기는, 37장과 연결한다면 야곱가문이 얼마나 가나안 문화에 젖어 타락해 있는지를 보여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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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apoom.or.kr

Date Published: 2/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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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와 다말의 이야기 창세기 38:1-30 오늘 본문에는 요셉에 …

장 현명한 선택을 한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미련한 선택을 했습니다.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교회공동체를 떠나지 마십시오 우리는 혼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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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onnuri.org

Date Published: 10/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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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8장 유다와 다말 이야기 – 순례자의 여로에서

그런데 창세기에 나오는 부녀 사이에 일어난 성관계, 그리고 며느리와 시아버지 사이의 성관계 같은 음담패설을 읽고 이것도 종교 경전이냐는 의구심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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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ckam.kr

Date Published: 1/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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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8장 유다의 일탈(逸脫) / 창 38:1-30 – 네이버 블로그 – NAVER

창세기 38장은 요셉의 스토리가 갑자기 단절되고, 요셉의 넷째 형인 유다와 그의 며느리인 다말의 수치스러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37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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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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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창세기 38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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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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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8

유다와 다말

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4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5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6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8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9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11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12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13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14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15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16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17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18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19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20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21 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1)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1)창녀가 없느니라

22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23 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24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25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27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

28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29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2)베레스라 불렀고

30 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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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유다와 다말

1 그 무렵에 유다 는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나가, 히라 라고 하는 아둘람 사람이 사는 곳으로 가서, 그와 함께 살았다. 2 유다 는 거기에서 가나안 사람 수아 라고 하는 사람의 딸을 만나서 결혼하고, 아내와 동침하였다. 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유다 가 그 아들 이름을 에르 라고 하였다. 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번에는 아이의 어머니가 그 아들 이름을 오난 이라고 하였다. 5 그가 또다시 아들을 낳고, 이름을 셀라 라고 하였다. # 칠십인역은 유다 의 아내를 가리키고, 마소라 본문은 유다 를 가리킴 그가 셀라 를 낳은 곳은 거십 이다.

6 유다 가 자기 맏아들 에르 를 결혼시켰는데, 그 아내의 이름은 다말 이다. 7 유다 의 맏아들 에르 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하므로, 주님께서 그를 죽게 하셨다. 8 유다 가 오난 에게 말하였다. “너는 형수와 결혼해서, 시동생으로서의 책임을 다해라. 너는 네 형의 이름을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 9 그러나 오난 은 아들을 낳아도 그가 자기 아들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형수와 동침할 때마다, 형의 이름을 이을 아들을 낳지 않으려고, 정액을 땅바닥에 쏟아 버리곤 하였다. 10 그가 이렇게 한 것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하였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난 도 죽게 하셨다. 11 유다 는 자기의 며느리 다말 에게 말하였다. “나의 아들 셀라 가 다 클 때까지, 너는 네 친정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서, 과부로 살고 있거라.” 유다 는 셀라 를 다말 에게 주었다가는, 셀라 도 제 형들처럼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12 그 뒤에 오랜 세월이 지나서, 수아 의 딸 유다 의 아내가 죽었다. 곡을 하는 기간이 끝났을 때에, 유다 는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 와 함께 자기 양들의 털을 깎으러 딤나 로 올라갔다. 13 다말 은 “너의 시아버지가 양털을 깎으러 딤나 로 올라간다” 하는 말을 전해 듣고서, 14 과부의 옷을 벗고, 너울을 써서 얼굴을 가리고, 딤나 로 가는 길에 있는 에나임 어귀에 앉았다. 그것은 막내 아들 셀라 가 이미 다 컸는데도, 유다 가 자기와 셀라 를 짝지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길을 가던 유다 가 그를 보았지만,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므로, 유다 는 그가 창녀인 줄 알았다. 16 그래서 유다 는 그가 자기 며느리인 줄도 모르고, 길가에 서 있는 그에게로 가서 말하였다. “너에게 잠시 들렀다 가마. 자, 들어가자.” 그 때에 그가 물었다. “저에게 들어오시는 값으로, 저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17 유다 가 말하였다. “나의 가축 떼에서 새끼 염소 한 마리를 보내마.” 그가 물었다. “그것을 보내실 때까지, 어떤 물건이든지 담보물을 주시겠습니까?” 18 유다 가 물었다. “내가 너에게 어떤 담보물을 주랴?” 그가 대답하였다. “가지고 계신 도장과 허리끈과 가지고 다니시는 지팡이면 됩니다.” 그래서 유다 는 그것들을 그에게 맡기고서 그에게 들어갔는데, 다말 이 유다 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19 다말 은 집으로 돌아와서, 너울을 벗고, 도로 과부의 옷을 입었다.

20 한편 유다 는 자기 친구 아둘람 사람 편에 새끼 염소 한 마리를 보내고, 그 여인에게서 담보물을 찾아오게 하였으나, 그 친구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하였다. 21 그 친구는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에나임 으로 가는 길 가에 서 있던 창녀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거기에는 창녀는 없다고 하였다. 22 그는 유다 에게 돌아가서 말하였다. “그 여인을 찾지 못하였네. 그보다도,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그러는데,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고 하네.” 23 유다 가 말하였다. “가질 테면 가지라지. 잘못하다가는 창피만 당하겠네. 어찌하였든지, 나는 새끼 염소 한 마리를 보냈는데, 다만 자네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 것뿐일세.”

24 석 달쯤 지난 다음에, 유다 는 자기의 며느리 다말 이 창녀짓을 하여 임신까지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유다 가 명하였다. “그를 끌어내서 화형에 처하여라!” 25 그는 끌려 나오면서, 시아버지에게 전갈을 보냈다. “저는 이 물건 임자의 아이를 배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다말 은 또 말을 계속하였다. “잘 살펴보십시오. 이 도장과 이 허리끈과 이 지팡이가 누구의 것입니까!” 26 유다 는 그 물건들을 알아보았다. “그 아이가 나보다 옳다! 나의 아들 셀라 를 그 아이와 결혼시켰어야 했는데” 하고 말하였다. 유다 는 그 뒤로 다시는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쉬운성경 창세기 38장

38:1 <유다와 다말> 그 무렵에 유다는 자기 형제들 곁을 떠났습니다. 유다는 히라라는 사람과 함께 살았습니다. 히라는 아둘람 마을 사람이었습니다.

38:2 유다는 그 곳에서 어떤 가나안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그 여자의 아버지 이름은 수아였습니다. 유다는 그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했습니다.

38:3 여자가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유다는 아들의 이름을 엘이라고 지었습니다.

38:4 그후에 여자가 또 아들을 낳았습니다. 여자는 그 아들의 이름을 오난이라고 지었습니다.

38:5 그후에 여자가 또 아들을 낳았습니다. 여자는 그 아들의 이름을 셀라라고 지었습니다. 여자가 셀라를 낳은 곳은 거십이었습니다.

38:6 유다는 다말이라는 여자를 자기의 첫째 아들 엘에게 아내로 주었습니다.

38:7 엘은 유다의 맏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엘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나쁜 일을 했으므로 여호와께서 엘을 죽이셨습니다.

38:8 그러자 유다가 엘의 동생 오난에게 말했습니다. “가서 너의 죽은 형의 아내와 같이 자거라. 그렇게 해서 네 형의 자손을 낳아 주는 것이 네 의무다.”

38:9 그러나 오난은 그렇게 해서 자손을 얻더라도 그 자손은 자기 자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난은 다말과 잠자리를 같이하다가도 다말이 절대로 임신할 수 없게 했습니다. 그래서 다말은 임신을 할 수 없었고, 엘의 자손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38:10 이러한 오난의 행동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나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오난도 죽이셨습니다.

38:11 그후에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있어라. 그리고 내 막내 아들 셀라가 어른이 될 때까지 결혼하지 말고 있어라.” 유다는 셀라마저도 그 형들처럼 죽을까봐 두려웠습니다. 다말은 자기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38:12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유다의 아내가 죽었습니다. 유다의 아내는 수아의 딸이었습니다. 유다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는 기간을 지낸 후에 딤나로 갔습니다. 유다는 자기 양 떼의 털을 깎고 있는 사람들에게 갔습니다. 유다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도 함께 갔습니다.

38:13 다말은 시아버지인 유다가 양 떼의 털을 깎으러 딤나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38:14 그래서 다말은 과부들이 입는 옷을 벗고 얼굴을 베일로 가렸습니다. 다말은 에나임 문에 앉았습니다. 에나임 문은 딤나로 가는 길에 있었습니다. 다말이 이런 일을 한 까닭은 유다의 막내 아들인 셀라가 다 커서 어른이 되었는데도, 유다가 그 아들을 자기와 결혼시키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8:15 유다는 다말을 보고 그녀를 창녀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말이 자기 얼굴을 베일로 가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8:16 그래서 유다는 여자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우리 같이 자자.” 유다는 그 여자가 자기 며느리 다말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여자가 물었습니다. “제가 같이 자드리면 그 값으로 무엇을 주실 건가요?”

38:17 유다가 대답했습니다. “내 가축 떼 중에서 새끼염소 한 마리를 보내 주겠다.” 여자가 대답했습니다. “그러시다면 염소 새끼를 보내 주겠다는 약속의 물건을 먼저 맡겨 주시지요.”

38:18 유다가 물었습니다. “어떤 것을 맡기면 좋겠느냐?” 다말이 대답했습니다. “가지고 계신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주십시오.” 유다는 그것들을 여자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유다와 다말은 잠자리를 함께 했고, 다말은 임신을 했습니다.

38:19 다말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말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베일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과부들이 입는 옷을 입었습니다.

38:20 유다는 자기 친구 히라를 시켜 그 여자에게 새끼염소를 보내면서 자기가 맡겼던 도장과 지팡이를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히라는 여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38:21 히라가 에나임 마을의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길가에 있던 창녀는 어디에 있소?” 사람들이 대답했습니다. “여기에는 창녀라곤 없소.”

38:22 히라는 유다에게 다시 가서 말했습니다. “여자를 찾지 못했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여기에는 창녀라곤 없소’라고 말하던걸.”

38:23 유다가 말했습니다. “내가 맡겼던 물건들을 그 여자가 그냥 가지도록 내버려 두게. 괜히 우리만 망신당할까봐 걱정일세. 약속했던 염소를 보냈지만 자네가 그 여자를 찾지 못해서 못 준 것이 아닌가?”

38:24 세 달쯤 뒤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며느리 다말이 창녀와 같은 짓을 했소. 지금 그 여자는 임신중이오.” 그러자 유다가 말했습니다. “그 애를 끌어 내어 태워 죽여 버려라.”

38:25 사람들이 다말을 끌어 내려 하자 다말은 자기 시아버지께 어떤 이야기를 전하도록 했습니다. 다말이 말했습니다. “이 물건의 주인이 나를 임신시켰습니다. 이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잘 살펴보십시오. 이것이 누구의 것입니까?”

38: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유다가 말했습니다. “그 애가 나보다 옳다. 내가 내 아들 셀라를 주기로 약속하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그 애가 이런 일을 한 것이다.” 유다는 그 뒤로 두 번 다시 다말과 같이 자지 않았습니다.

38:27 다말이 아기를 낳을 때가 되었고, 배 안에는 쌍둥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38:28 다말이 아기를 낳는데 한 아기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산파가 그 아기의 손에 붉은 줄을 매어 주면서 “이 아기가 먼저 나온 아기다” 하고 말했습니다.

38:29 그런데 그 아기가 손을 거두어들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아기가 먼저 태어났습니다. 산파가 말했습니다. “어쩌면! 네가 먼저 터뜨리고 나왔구나!” 그래서 그 아기의 이름은 베레스 가 되었습니다.

38:30 그 다음에 붉은 줄을 손에 맨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기의 이름은 세라 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38장 – 유다 가문의 부끄러운 이야기 – 새벽기도 설교

오늘 본문은 요셉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간에 어울리지 않게 잘못 편집된 듯하게 끼어져 있는 단편입니다.

그러나 구속사적 측면에서 오늘 본문은 메시야의 혈통을 잇는 계보를 보여 주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의 도덕적 타락상에 물들어 가는 모습을 통해 애굽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도적인 기록으로 볼 수 있습니다.

1절에 당시 유다는 헤브론에 살고 있는 형제들과 따로 떨어져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둘람 성읍에 거주하고 있었음을 통해 여기서 유다의 집안에 닥친 불행의 한 원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유다가 자기 부모형제에게서 떠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유다가, 경건했던 아버지 야곱과 비록 요셉을 팔아버릴 정도로 완악했지만 그래도 지극히 부패하고 타락했던 가나안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을 섬기는 형제들과 함께 있었다면 신앙적으로 그렇게 나태해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가 가나안 여인과 결혼을 하려고 했을 때 아버지와 형제들이 잘못을 지적하고 충고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랬다면 그에게 불행이 닥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같은 신앙을 가진 부모와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신앙이 나태해져도, 그가 잘못된 결혼을 해도, 잘못을 일깨우고 바른 믿음의 길로 인도할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그 결과 불행을 피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유다의 모습을 통해, 성도는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거할 때에 죄의 유혹을 이겨내고 올바른 믿음을 지닐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아 의롭게 된 성도들이 다시 죄악된 삶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 의지함으로써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교회를 중심으로 자주 모여야 합니다.

주일 예배 뿐만 아니라 함께 모여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배우며 찬송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하다못해, 같이 모여 차 한 잔을 마시며 대화하고 교제를 나누는 것까지도 성도들에게는 매우 유익한 일입니다.

그것을 통해 성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적으로 성숙해지고 죄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독불 장군이 없듯이 신앙에도 독불 장군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임을 소중하게 여기고, 다른 성도들과의 교제를 소중하게 여기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7절에 유다 집안에 찾아온 첫 번째 불행은 장자였던 엘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다가 자녀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본문은 엘이 어떤 악을 행했는지 자세히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10절에 비추어 볼 때 성적인 범죄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와 관련해서 또 하나의 사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15절 이하에서 엘의 아버지인 유다가 며느리인 다말을 창녀로 알고 그녀와 동침했다는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유다는 평소에도 창녀와 관계를 가졌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인 유다와 장자인 엘의 성적인 타락,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아버지 유다의 성적인 범죄가 그것을 보고 자란 장자 엘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의 말과 행동이 자녀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 줍니다.

교육학에서 ‘어린이의 최초의 학교는 가정이며 최초의 교사는 부모’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자녀는 그 부모의 행동을 그대로 보고 배운다는 뜻입니다.

자녀들의 삶의 교과서는 부모의 ‘말과 행동’ 그 자체입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가정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중에는 어려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자주 때리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 생각에 어릴 때 어머니가 맞는 것을 보며 자란 사람은 커서 아내를 때리지 않을 것 같은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자녀는 부모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배우며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범죄자의 가정에서 범죄자가 많이 나오고, 선한 자의 가정에서 선한 사람이 많이 나오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자녀를 바른 신앙의 사람으로 키우려면 부모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부모가 주일에 교회 빠지고 놀러 가고, 거짓말과 음란한 행동을 하는데 자녀가 제대로 자랄 리가 있겠습니까?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먼저 매일 말씀과 기도 생활에 열심을 내고 모범적인 신앙의 자세를 갖는다면 하지 말라고 해도 자녀들은 저절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모범적인 사람으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신앙적인 나태함이 찾아올 때나, 죄의 유혹이 찾아올 때, 자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죄악된 행동을 장차 자신의 자녀들이 그대로 답습할 것을 생각한다면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과 사람 앞에 바로 서서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자녀들의 좋은 신앙적 스승이 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8절에 엘이 죽자 그의 동생 오난이 그의 형수인 다말과 혼인하게 되는데 이는 고대에는 형이 자식이 없는 상태로 죽으면 아우가 형수를 통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을 형의 이름으로 상속시키는, 공인된 관습으로 계대법, 또는 수혼법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볼 때에는 말도 안 되는 법으로 보여 지지만 이 법은 모세 때 율법으로 성문화되었습니다.

신명기 25:5-6입니다.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이러한 법이 생겨난 가장 큰 이유는 유산의 상속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의 유산이 며느리가 다른 사람과 재혼함으로 잃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난은 그의 형 엘이 아들이 없이 죽었기 때문에 그의 형수인 다말과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형수인 다말과 결혼한 오난은 자신을 통해 낳게 될 자녀가 엘의 기업을 받을 것임을 알고 이기적인 마음에 계대 의무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행한 오난 또한 죽음으로 형벌을 받게 됩니다.

갑작스럽게 두 아들을 잃은 유다는 11절에서 다말에게 수절하고 친정에 가서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이 말은 변명과 구실에 불과하였습니다.

유다는 다말과 결혼한 두 아들이 모두 죽은 사실을 통하여 그의 마지막 아들인 셀라도 죽을까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말은 어찌할 수 없이 유다의 말을 듣고 친정으로 돌아가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다말은 시어머니가 죽고, 또 셀라가 장성했음에도 자기를 셀라의 아내로 주지 않자 시아버지 유다가 양털을 깎기 위해 딤나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창녀로 변장하였습니다.

다말이 이렇게 한 이유는 성인이 된 셀라를 유다가 자신의 남편으로 주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이제는 궁여지책으로 유다를 통해서라도 자식을 얻을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나안이 성적으로 얼마나 문란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을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어찌되었던 다말을 알아보지 못한 유다는 그녀를 창녀로 알고 그와 동침하고 맙니다.

시아버지 유다를 속인 다말은 자신과 동침한 대가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유다는 동침한 대가로 나중에 염소 새끼를 주기로 하고 그 담보물로 도장과 그것에 달린 끈과 지팡이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뒷날 대가를 지불하고 담보물을 되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친구를 통해 담보물을 찾으려고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임신에 성공한 것을 안 다말이 잠적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담보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석 달쯤 후에 다말이 음행으로 인해 임신하였다는 말을 듣고 유다는 크게 화를 냅니다.

그러나 끌려 나온 다말을 통해 그녀와 동침한 남자가 다름 아닌 유다 자신임을 알고 그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다시는 그녀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유다를 통해 다말은 쌍둥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것은 유다의 부끄러운 역사인 동시에 메시야의 족보로서 중대한 뜻을 지닙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간혹 성경을 통해서도 충격적인 내용을 접할 때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창 38장입니다.

그것도 메시야의 조상인 유다에게서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죄악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가증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들에게 무조건적인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매일말씀묵상. 2월 5일. 창세기 38장. > 매일말씀묵상

창세기 38장. 유다와 다말, 그리고 요셉.

1. 38 장의 유다 가정의 이야기는 , 37 장과 연결한다면 야곱가문이 얼마나 가나안 문화에 젖어 타락해 있는지를 보여주며 , 39 장과 비교할 때는 요셉과 얼마나 구별이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 요셉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이야기 같지만, 이러한 구별을 위해서 매우 적절한 배치입니다.

2. 유다는 형제들을 떠나 가나안 여인과 결혼 했는데, 유다가 아버지 야곱으로 인하여 세상과의 원칙 없는 교류가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왔는지 ( 디나 사건 ) 를 벌써 잊어버렸습니다 . 가나안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세 아들 중 첫째 아들 엘은 다말과 결혼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므로 하나님은 그를 죽이셨습니다(7). 악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창세기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둘째 아들 오난은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형의 대를 잇게 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지만, 그는 이 관습을 자기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에만 이용했고 자식을 낳기를 원치 않았습니다(9절). 이 일도 하나님 앞에서 악한 것이었기에 하나님은 오난도 죽이셨습니다. 셋째 아들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유다에게 있었던 것은 당연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채 , 아니 의무를 이행할 생각을 가지지 않고 다말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버렸습니다 (11). 셋째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는 거짓 약속과 함께 말입니다.

3. 유다는 상처한 후 친구와 함께 양털 축제에 참여하였습니다(12절). 다말은 거기서 시아버지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얼굴을 가리고 신전 창기와 같이 꾸미고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성관계를 가집니다(15절). 석 달 후에 며느리의 임신 소식을 들은 유다는 화형을 시키라고 명하지만(24절), 다말이 자신으로 인하여 임신한 것을 알고는 “ 그녀는 나보다 옳도다 ” 라고 선언합니다 (26). 이 선언을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다는 시아버지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록 방법은 극단적이었을지라도 그녀의 행동은 당시의 문화에서 규범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은 것 입니다. 다말은 죽은 남편을 위하여 가장 가까운 친족들을 통해서 자식을 낳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

4. 다말이 유다에게 낳은 아들은 쌍둥이였습니다 (27 절 ). 여기서도 동생이 형을 이겼습니다 (29 절 ) . 동생 베레스는 형 세라를 제치고 먼저 나왔습니다. 이 사건은 동생 요셉의 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자고 하면서 애굽으로 팔아넘긴 유다를 간접적으로 고발합니다. 결국 유다의 세 아들, 엘과 셀라 그리고 베레스 중에서 하나님은 막내 베레스의 계보를 통하여 메시아를 허락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의 기대와 계획과는 다르다는 것을 여기서 보여주십니다 .

5. 본문은 하나님의 언약을 무성의하고 불성실하게 다루는 유다의 타락한 가정에서 다말이라는 한 여인이 정당한 명분을 위한 싸움을 벌이는 것을 통하여 언약의 계보를 이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합니다 . 하나님의 백성이 이처럼 그 언약을 잊어버리고 무너져갈 때조차도, 하나님은 비상한(혹은 본문의 이야기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것을 바로잡으시고 당신의 일을 성취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가나안의 풍습에 젖어서 살아가는 타락한 형제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오히려 요셉을 멀리 애굽으로 보내셔서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 참 기가 막히는 섭리입니다 . 그러므로 38 장의 유다와 39 장의 요셉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 유다는 성적으로 가나안의 삶 속에 빠져서 살아가고 있지만 , 요셉은 언약 백성의 정체성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인식 앞에서 자신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 무엇이 진짜 행복이고 , 불행일까요 ?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불행한 것입니까 ? 아니면 요셉을 팔아넘기고 세월을 보내며 가나안의 삶에 젖어서 살아가는 유다의 삶이 행복한 것일까요 ?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의 인생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요구됩니다. 인생의 어떤 환경에서든지 주님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로써 우리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길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이 모습에서 여전히 세상적인 냄새가 납니다. 악한 죄인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순간에도 우리를 보호하여 주시고, 언약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주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오늘도 의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창 38장 유다의 일탈(逸脫) / 창 38:1-30

창 38장 유다의 일탈(逸脫) / 창 38:1-30

12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13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14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15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16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17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18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창세기 38장은 요셉의 스토리가 갑자기 단절되고, 요셉의 넷째 형인 유다와 그의 며느리인 다말의 수치스러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37장 마지막 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디안 사람이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요셉을 팔았더라”(36절) 그리고 39장 1절을 보면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이 요셉을 샀더라는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창 39:1) 그러니까 요셉이 노예로 팔리고 다시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가는 것에 한 장의 차이가 나고, 창세기 38장에는 요셉의 네 번째 형인 유다의 가정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서 화산이 폭발해서 용암이 흘러넘쳐 섬이 생기면 처음에 그 섬에는 풀 한 포기 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섬에 흙이 덮이고, 먼 곳에서 날아온 식물의 씨가 그 위에 떨어져서 자랍니다. 더 시간이 지나면 나무들까지 자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강인함입니다. 아마도 식물의 씨앗은 바람을 타고 날아오든지, 아니면 새의 몸에 묻어서 오든지, 아니면 조류를 타고 흘러왔을 것입니다.

이렇게 식물처럼 강인한 생명을 가진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각 족속과 민족에 퍼지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떤 민족이든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기만 하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나 예수를 잘 믿는 분들을 통해서도 복음이 증거되게 하시지만 어떤 때는 예수를 믿어도 시원찮게 믿고 심지어는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고 타락한 사람을 통해서도 복음이 증거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유명한 성경 주석가인 메튜 헨리(Matthew Henry)가 “창세기 38장 유다의 이야기만 보면 아무도 그를 칭찬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차라리 이 사건은 숨기는 것이 더 낫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것도 숨기는 것이 없습니다. 일점일획도 거짓이 없고 숨김이 없는 정직한 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수치스러운 이야기가 기록된 이유는 이런 방법이 아니고서 우리에게 가르칠 수 없는 비상한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 수치스러운 사건들

1. 유다의 이탈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1절)

유다가 형제들에게서 내려갔다는 말은 ‘형제들을 떠났다’는 의미입니다. 유다가 형제를 왜 떠났겠습니까? 그것은 아마도 형제들의 위선적인 언행에 염증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들이 요셉을 팔아먹고도 요셉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을 뿐만 아니라 요셉의 채색옷에 숫염소 피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오랫동안 애곡하니까 그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모든 일을 저질러놓고 슬픔에 빠진 아버지를 위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다는 자기가 앞장서서 동생을 팔아먹었지만, 형제들의 계속되는 위선적인 언행에 염증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집을 떠난 유다의 삶은 거룩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유다의 삶에는 여러 가지 실수가 있었습니다. 먼저 아둘람 사람 히라와 친구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유다와 친구 사이가 되어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3절에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지금 좋지 못한 친구 관계를 맺고 잘못된 행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다가 아주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음이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2절)

유다가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한 것입니다. 이 죄는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큰 죄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 즉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이방 여인,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딸들도 이방 남자에게 시집가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택한 백성들의 경건성을 보전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창세기 20장을 보면 그랄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를 취하고자 했을 때, 하나님이 현몽하셔서 그것을 막아주셨습니다. 창세기 24장에는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의 며느리를 구할 때 늙은 종을 불러다가 “너는 가나안 족속 중에서 며느리를 찾지 말고 메소보다미아 내 고향 밧단아람으로 가서 며느리 감을 찾아오라”고 분부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종이 거기까지 가서 리브가를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28장에도 이삭은 아들 야곱을 불러서 “너는 가나안 사람들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외삼촌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하였습니다. 가나안 여인들과 결혼을 엄금했습니다. 창세기 34장에서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의 남자들을 죽인 이유도 여동생 디나를 이방 남자에게 아내로 내어줄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방인과의 혼인을 막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택자들의 경건성을 보존하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의 백성이 가진 경건성을 오염시키고 메시아가 도래할 라인을 끊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핵심 라인에 있는 유다가 하나님의 거룩한 의도를 무시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방인 친구를 사귄 것보다도 더욱 큰 죄악이었습니다. 유다가 이방 여인과 결혼함으로 인해서 그의 가정에는 참혹한 심판이 오게 되었습니다.

2. 아들들에게 임한 저주와 계대결혼

유다는 결혼을 해서 아들 셋을 낳았습니다. 맏아들은 ‘엘’이요, 둘째 아들은 ‘오난’ 이요, 셋째 아들은 ‘셀라’ 입니다. 맏아들 엘은 다말이라는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취하니 그 이름은 다말이더라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6, 7절).

유다의 맏아들 엘의 아내는 다말이었습니다. ‘다 말아 먹었다’고 ‘다말’입니다. 히브리어로 ‘다말’은 ‘종려나무’를 뜻합니다. 종려나무에서 맺히는 열매는 대추야자열매입니다. 대추야자는 모양이 꼭 한국 대추처럼 생겼는데, 맛은 한국 대추와 다릅니다. 엄청나게 단 꿀과 같은 열매입니다. 그러니까 그 이름은 아주 좋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엘이 다말과 결혼했는데,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셨습니다. 엘의 죄가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그는 하나님이 죽이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부패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다는 장남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둘째 아들 오난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8절).

이것이 바로 ‘계대결혼’입니다. ‘수혼제’라고도 합니다.

신명기 25장 5-6절에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의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대결혼제도는 후에 유대인의 법으로 편입이 되었습니다.

계대결혼은 형사취수(兄死娶嫂), 영어로 ‘Levirate marriage’라고 하는데, 라틴어 ‘Levir’가 ‘남편의 동생’, ‘시동생’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시동생과 결혼하는 결혼을 ‘계대결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계대결혼을 통해서 동생이 아들을 낳게 되면 그 첫 아들은 죽은 형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의 후사가 되는 것입니다. 형의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제도였던 것입니다. 즉 가문을 줄이지 않고 그 스케일을 유지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중요한 경제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형이 죽으면 형수가 형의 재산을 상속받지 않습니까? 그러면 받은 재산을 가지고 다른 씨족 사회로 시집을 가게 됩니다. 그러면 씨족 사회의 재산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씨족 사회에서는 재산이 줄어드는 일을 막기 위해 이 제도를 시행했던 것입니다. 또 반면에 가난했던 형이 죽으면 형수가 굶어 죽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경우 아우가 형수와 결혼하여 굶어 죽지 않게 하는 복지적인 이유와 목적도 있었습니다.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9, 10절)

첫째 아들 엘이 죽고 난 이후 유다는 둘째 아들 오난에게 홀로 남게 된 다말과의 계대결혼을 요구하였습니다. 형의 아들을 낳아서 형의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분부였습니다. 그러나 오난은 아버지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싫어하였고, 아들을 낳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난은 형수와 동침하면서 땅에 설정하였습니다. 이것은 생명을 만드는 남자의 정액을 몸 밖, 곧 땅바닥으로 사정했다는 뜻으로 고의적 피임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간음죄가 되기도 합니다. 죽은 형에게 아들이 있게 하려고 형수와 관계하는 것은 합법이지만, 성관계는 하면서 피임을 하는 것은 형수를 속이는 것이고, 이것은 간음이었습니다. 또한, 유다의 후손을 이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난도 죽이셨습니다.

유다의 집안에 장남이 죽고 둘째 아들도 죽었습니다. 유다가 무엇을 생각했겠습니까? 며느리 다말은 아들들을 다 해치는 해로운 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말의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유다 본인의 죄악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다보니까 유다는 나이 어린 셋째 아들 셀라에게 또 다시 다말을 아내로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다말에게 친정으로 돌아가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유다는 이 약속을 지킬 의사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럭저럭 다말이 다 포기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다말을 너무 과소평가하였습니다. 다말이 이 집안의 대를 이어 하나님의 뜻을 이뤄야 한다는 확고한 결심이 있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3. 유다의 근친상간

이방인 친구를 사귄 것도 잘못이었고,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도 큰 잘못이었지만 제일 큰 잘못은 자기 며느리와 근친상간을 행한 것입니다.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12, 13절)

유다는 수아의 딸이었던 아내를 잃었습니다. 얼마 후, 외롭기도 하고, 마침 이방인 친구 히라도 있고 해서 함께 딤나로 올라갔습니다. 때는 양털을 깎을 철이었습니다. 유다는 양을 털 깎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계속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여유 시간도 많이 있었습니다.

유다가 딤나로 올라왔다는 소식을 며느리 다말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기로 변장하여 딤나의 길 에나임 문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유다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14-16절)

한가해진 유다는 창기를 보고 슬슬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문 옆에 얼굴을 가리고 있는 여자에게 “내가 네게 들어가도 되겠느냐?”라고 한 것입니다. 며느리인 줄 알아보지 못하고 동침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니 다말이 보통여자가 아닙니다. 여기서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에게 화대를 요구하였습니다.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17-19절)

그래서 유다는 염소새끼 한 마리를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말은 “당신이 염소새끼를 줄지 안 줄지 어찌 알겠느냐?”며 약조물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다의 인감도장과 도장 끈, 그리고 짚고 다니는 지팡이를 달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세 가지 약조물, 즉 삼중적 증표를 건네주고 다말과 동침하였고, 유다로 말미암아 다말이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인장은 그 사람을 대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끈은 인장을 몸에 매어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끈이 있는 인장은 본인이 풀어 주지 않는 이상 절대로 그 사람의 몸에서 떨어질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팡이는 그 사람의 권세나 지도력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다말은 유다에게 삼중적인 증표를 요구했습니다. 왜냐하면, 혹시 한 가지만 요구하면 불확실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증표가 필요할까요? 사람의 마음은 얼마든지 거짓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아니라고 잡아떼면 본 사람이 없는 이상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말은 염소 새끼를 받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염소 새끼는 죽을 수도 있고, 또 비슷한 것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말에게 중요한 것은 염소 새끼 한 마리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염소 새끼가 있으면 다말에게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증표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는 것은 이 세상의 많은 재산이나 권력을 가지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것을 가지고는 지옥불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다른 것을 요구하면 안 됩니다. 누구든지 가질 수 있는 염소 새끼 같은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불을 통과할 수 있는 증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요, 변화된 생활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결코 자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유다의 증표가 그 의 음란한 값의 대가였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수치와 고난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표시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집으로 돌아간 유다는 이방인 친구 히라에게 “염소새끼를 줄테니 너는 가서 에나임 문 곁에 있는 창기에게 화대로 전해주고 약조물을 받아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히라가 에나임 문 곁에 가서 사람들에게 창기에 대해 수소문을 해 보았지만 “여기는 창기가 없다”는 말만 듣고 약조물을 되찾아오지 못했습니다.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24-26절)

그리고 석 달이 지난 후 유다는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여 잉태하였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분노한 유다는 다말을 끌어내어 불사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스스로 행음한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 며느리가 한 것은 큰 문제가 되는 아주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며느리 다말도 보통여자가 아닙니다. 시아버지 앞으로 나오더니 세 가지 약조물을 내놓고 “이 약조물을 준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나이다”고 응수하였습니다. 그러자 유다는 며느리를 불태우려고 하다가 깜짝 놀라면서 “그는 나보다 옳고, 나보다 의롭도다”, “내가 그에게 내 아들 셀라를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고백하며 다시는 다말을 가까이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유다가 다말을 향해 그가 나보다 의롭다고 말했습니다. 창기 짓을 한 사람이 무엇이 의롭습니까? 그런데 유다는 의롭다고 했습니다. 다말이 왜 의롭습니까? 다말은 유다로부터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메시아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의롭다’는 말은 믿음 이외에는 들을 수 없는 말입니다.

유다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을 때 하나님은 모두 다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말은 쌍둥이 아들을 낳았는데, 이 쌍둥이 아들은 죽은 유다의 두 아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다말은 자기 품에서 두 명의 남자가 죽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두 명의 남자를 주셨습니다.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27-30절)

다말은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먼저 나오지 않고 팔이 먼저 나오는 난산이었습니다. 먼저 나온 팔이 첫째인 줄 알고 손에 붉은 줄을 묶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손을 도로 집어넣습니다. 뒤에 나오는 아이가 그 팔을 잡아당긴 것입니다. 그래서 뒤에 나오려던 아이가 먼저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베레스’가 되었습니다. ‘깨뜨렸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손에 홍사를 맨 ‘세라’가 나온 것입니다. ‘세라’는 ‘밝다’는 의미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여명’이라는 의미입니다. 다말이 낳은 베레스와 세라 두 아들 가운데 베레스가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마 1:3)

바로 이 유다의 자손 중에서 다윗 왕이 나오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시아버지와 행음했던 다말의 이름이 명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창세기 38장의 사건은 무엇을 교훈하는가?

그러면 왜 창세기 38장에는 이토록 수치스럽고 낯 뜨거운 사건, 차라리 기록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법한 사건이 기록되었습니까?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여기에는 세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실천적인 교훈, 교리적인 교훈, 영적인 교훈입니다.

첫째, 실천적인 교훈입니다.

인간의 환경은 부요(富饒)보다 역경이 낫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돈 많고 잘 먹고 잘사는 것보다 차라리 어려운 것이 영적으로 낫다는 것입니다. 역경 가운데 있던 요셉이 부요 가운데 있던 유다보다 훨씬 훌륭하고, 성화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기 위함입니다. 유다는 시간도 많고, 돈도 많아서 화대를 주고 창기와 동침하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9장의 요셉은 그와 달랐습니다. 그는 비록 보디발 집안의 노예로 시련과 역경이 있었지만, 보디발의 아내가 동침하고자 유혹할 때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경건성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역경이 오히려 유익한 것입니다. 번영이 역경보다도 훨씬 위험하다는 진리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경을 통해서 성도를 성화시키십니다. 요셉은 역경 가운데 성화되었지만, 유다는 번영 가운데 부패하고 오염되어 메시아의 라인을 끊어놓을 뻔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에게 혹시 역경과 시련이 찾아와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역경을 통해 주의 법을 배우게 되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고 더욱더 성화 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역경을 주시도록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번영과 부요한 상황 가운데서도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역경의 때에 가졌던 그 마음과 신앙을 계속 유지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둘째, 교리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지는 두 종류의 의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명령적인 의지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와 같은 명령적 의지입니다. 그러나 명령적인 의지는 인간이 순종할 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또 하나의 하나님의 의지는 작정적인 의지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적인 의지는 인간의 순종여부와 상관없이 100%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이 교리적인 진리입니다.

레위기 18장 6절에 “각 사람은 자기 살붙이를 가까이하여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동성애와 근친상간과 같은 성적인 규례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싫어하시고 가증이 여기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적인 의지입니다. 다말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적인 의지를 범하였고, 유다는 잘 모르고 하나님의 명령적인 의지를 범하였습니다. 둘 다 하나님의 명령적인 의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와 다말의 막장 드라마와 같은 죄악 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작정적인 의지를 성실하게 실행해 나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적인 의지는 아브라함의 자손, 유다의 자손들 중에서 메시아를 보내시겠다고 하는 의지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죄악을 저질러도 하나님의 작정적인 의지는 그대로 실현이 된 것입니다. 100% 온전히 실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작정적인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죄악된 인간들도 사용하십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왜 하필 죄악된 인간을 사용하시는가?”, “흠 없는 인간을 사용하시고, 의로운 인간을 사용하시고, 완전한 인간을 사용하시지, 왜 유다와 같은 죄인을 사용하셨는가?” 하나님이 완전한 인간을 사용하신다면 이 세상에 하나님이 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할 수 없이 죄인도 쓰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인간이 명령적인 의지에 불순종해도 작정적인 의지를 이루시는 분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영적인 교훈입니다.

창세기 38장의 기록목적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창기로 변장해서 시아버지와 동침할 것을 계획하고 그것을 실천한 다말은 훌륭한 여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다말이라는 여인이 신약 성서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 1장의 3절에 당당히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 조상으로 그 이름이 올라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족보에는 다섯 명의 여자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중에 마리아를 제외하고 나머지 네 명은 모두 다 엄청난 흠이 있는 여자입니다. 다말, 그리고 기생 라합. 라합은 살몬과 결혼해서 보아스를 낳았습니다. 그녀는 비록 기생이었지만 여호와가 진실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여호와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보아스는 이방 여인인 룻과 결혼하여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이새는 다윗을 낳게 되었습니다. 또 다윗의 아들은 솔로몬이었는데, 솔로몬의 어머니도 정상적인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을 버리고 왕과 간통한 여인 밧세바가 솔로몬의 어머니 아닙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의 족보에 다섯 명의 여인이 나오는데, 한 명만 제외하고 네 명은 상당히 심각할 정도로 흠이 있는 여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많은 흠과 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족보에 당당히 올라간 이유는 바로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이들이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다말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고 천국에 들어간 여인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이외에는 다른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유다도 얼마나 큰 죄인입니까? 자기 동생을 은 20개에 팔아먹었습니다. 동생을 팔아먹은 것도 큰 죄인데, 며느리와 근친상간을 한 아주 큰 죄인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가 인생 후반부에 가보면 아주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창 44:33)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준 베냐민의 자루 안에서 은잔이 발견되어 베냐민이 노예가 되려던 순간에 유다가 나서며 했던 말입니다. 엄청난 변화입니다. 요셉이 이 소리를 듣고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자기 방에 들어가 방성대곡하였습니다. 그리고 형제들 앞에 자신이 요셉임을 밝히게 된 것입니다. 야곱이 죽기 전 유다를 이렇게 축복합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9:10).

‘규(圭)’은 ‘왕의 지팡이’입니다. 유다로부터 예수님이 오시게 된다는 복된 예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다 지파의 사자’(The Lion from the Tribe of Judah)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유다의 죄는 용서함을 받았고, 구약에서 가장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20절에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의 증인이 바로 유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죄를 스스로 해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유다는 아주 나쁜 사람이었지만 인생 후반부에 그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성령이 그를 변화시키셨습니다. 예수님 앞으로 나오면 하나님의 구원도 은혜지만 성화되는 것도 큰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인간의 가장 부끄러운 죄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어린이들에게 이야기하거나 설교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을 드러내신 것은 바로 우리가 이런 죄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의 예표(豫表)가 됩니다. 예수의 모친 마리아는 정상적으로라면 아이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요셉과 정식으로 결혼한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임신으로 인하여 부정한 여인의 딱지를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도 어린 시절에 동네에서 사생아 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고향에서 설교했을 때 동네 사람들은 그를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온 세상을 구원하는 구세주였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은 하나님은 인간의 가장 부끄러운 죄악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원하는 자들은 자신의 치부를 하나님 앞에 드러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누구도 이방 여인 다말을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여자를 알고 계셨고, 결국 유다의 타락과 시련을 통하여 다말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유다가 왜 그렇게 형제들을 버리고 일시적으로 세상적인 삶을 살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다 보고 난 후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말을 사랑하셔서 그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유다를 사용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 인도되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계획에 따라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구원받은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다말은 유다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을 낳아서 자신과 자손들이 영원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혹시 이 세상에서 염소 새끼 한 마리로 만족하지는 않습니까? 그것으로는 사탄의 불 시험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결사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서 위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묵상과 나눔>

1. 유다는 왜 가나안으로 갔습니까?

2. 다말은 남편 엘이 죽었을 때 왜 가나안 남자와 재혼해서 다시 행복을 찾지 않고 죽음을 무릅쓰고 유다 자손을 낳으려고 했습니까?

3.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다말처럼 붙들어야 할 삼중적인 담보는 무엇이며,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복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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